철마다 생기는 ‘짐’은 마치 계절의 저주처럼 느껴진다. 특히 크고 무거운 겨울 짐 없이 홀가분하게 여름을 지내고 싶었던 에디터가 짐 보관 서비스를 신청했다.

 

0607-302-1

계절의 변화는 가혹하다. 대체로 한국의 날씨는 너무 덥거나 너무 춥다. 각자 체질에 따라 무엇을 더 괴롭게 여기는가의 문제만 남았다. 여름에는 냉방비가 겨울에는 난방비가 때마다 통장을 스쳐 지나간다. 게다가 1년에 두 번, 계절에 맞게 옷장을 바꾸어야 한다. 결코 미니멀리스트가 아닌 나는 옷을 넣고 빼고 정리하는 것만으로도 짧으면 사흘, 길면 2주가 걸린다. 동시에 6개월간 다시 꺼내지 않을 짐이 생겨버리는 건 또 어떠하고! 유독 길었던 꽃샘추위가 끝날 무렵, 매트리스 위의 구스타퍼가 더워지는 순간이 왔다. 또 반년은 쓸모 없어진, 하지만 반년 후엔 나의 생존을 책임질 겨울 짐을 꾸릴 때가 왔음을 피부로 느끼며 구스이불을 발로 찼다. 다시 넣어두어야 할 텐데…라는 생각이 들자마자 한숨이 절로 나왔다. 그때 떠올랐다. 단기로 짐을 보관해주는 ‘마타주’ 서비스. 내 겨울 짐도 맡아줄까? 얼마면 될까?

나만의 창고를 임대하다

각자의 사정으로 창고를 알아보는 사람은 생각보다 흔하다. 당장 1년간 미국으로 발령이 나서 창고를 알아본 친구가 있었다. 나는 집과 드는 집의 이사 날짜가 맞지 않아 온 가족의 짐을 창고에 맡기고 서비스드 아파트먼트에서 한 달을 지낸 지인도 있었다. 우리 집도 컨테이너를 알아본 적이 있었다. 그런데 실제로 짐을 맡긴 사람은 아주 적다. 대개 1~2인 가구의 짐을 맡기기엔 비용대비 이득이 적었다. 돈 문제가 해결된다고 해도 외부에 노출된 컨테이너 등은 냉난방과 제습이 되지 않아 물건이 망가지는 경우가 많다. 그렇다 보니 창고를 임대하는 대신 해외 이사를 하거나, 울며 싸게 처분하거나, 부모님의 집 또는 친척집에 꼭 필요한 짐을 맡기는 방식을 취한다. 그런데 이 ‘마타주’는 단 한 개의 박스도 맡아준다는 거다. 공식 트위터에 올라오는 문구들은 이렇다. “짐을 맡겨, 집을 넓게”. “더워서 입을 수 없는 겨울 니트, 패딩 코트, 팬싸를 위해 구매한 CD 오조오억장, 자주 읽지 않는 책 등 이제 짐을 맡겨 집을 넓게 사용해보세요.”

웹사이트를 열어 보관비용을 시뮬레이션해보았다. 마타주는 보관박스와 기간 단위로 비용이 책정되고 있었다. 8개 정도면 넉넉할까? 보관료가 생각보다 비싸지 않았다. 박스 1개 기준 1개월에 1만원, 6개월에 3만원 정도였던 것. 추위를 많이 타는 나는 겨울 짐이 유독 많았다. 저 코트며, 이불이며 히터를 잠시 치워버릴 수만 있다면 좋을 것 같았다. 마음을 굳힌 나는 앱을 깔고 정식으로 서비스를 신청하기에 이르렀다. ‘안데스고양이03.’ 가입을 했더니 자동으로 암호명 같은 닉네임이 생겼다.

짐 싸는 나날들

박스 수량을 정하고 결제를 마치면 빠르면 다음 날 마타주의 전용박스가 배송된다. ‘마타주’라고 써 있는 흰색 박스는 두 종류로, 의류 전용 박스와 일반 박스로 나뉜다. 의류 전용으로 맡기면 옷이 구겨지지 않게 ‘걸어서’ 보관해준다. 단, 박스당 6벌까지만 넣을 수 있는데 수량을 제한하기에 일반보다 비싼 셈이다. 반면, 일반 박스는 20kg까지는 박스가 닫히는 만큼 무엇이든 넣을 수 있다. 내가 신청한 박스는 의류 3박스, 일반 5박스. 먼저 의류 박스부터 짐 싸기를 시작. 박스마다 6벌씩 코트와 트렌치코트류를 넣었다. 의류 전용 박스는 쉽게 마무리. 코트와 아우터류가 빽빽히 걸려 있던 왼쪽 붙박이장이 거의 비었다. 일반 박스를 접은 뒤 겨울 스웨터를 넣었다. 그 다음 박스에는 구스타퍼와 전기담요를, 그 다음 박스에는 겨우내 따스한 바닥을 만들어준 러그를. 그 다음 박스에는 거위털 이불을, 그 다음 박스에는 부츠와 신발을…. 겨울용 스웨터나 목도리 등은 조금 과장하면 한도 끝도 없이 들어갔다. 반면 구스 이불이나 타퍼, 러그 등은 부피가 크기 때문에 그것 하나만으로도 박스가 차는 기적이 일어난다. 요령은 최대한 부피를 줄이라는 것. 구스타퍼는 돌돌 말아 안 쓰는 베갯잇에 집어 넣으니 여유가 생겨 담요 하나와 소형 히터를 더 넣을 수 있었다. 바닥이 고무 처리가 된 러그는 도저히 그 이상 들어가지 않았다. 짐을 싸면 쌀수록 흰 박스는 산처럼 쌓였다. 미국까지 진출한 정리전문가 곤도 마리에가 늘 주장하던 것 아닌가. 짐을 다 꺼내고 그 부피와 압박감을 느껴보라는! 8개의 박스를 쌓아두니 어마어마했다.

이제 ‘미봉인’과 ‘봉인’을 선택할 차례. ‘봉인’을 선택하면 업체에서 박스를 뜯지 않은 그대로 보관만 한다. ‘미봉인(촬영)’을 선택하면 업체에서 박스에 들어 있는 각각의 제품을 촬영한 후 보관한다. 이 경우 물품 사진을 앱으로 확인할 수 있어서, 앱에서 바로 원하는 물건의 반출이 가능하다. 봉인의 경우에는 프라이버시를 지킬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안에 무엇이 들었는지는 짐을 싼 사람밖에 모르는 거다.

보관의 딜레마

이번에 짐을 맡긴 나만의 원칙은 ‘여름에는 쓸모 없지만 6개월 후에 다시 필요한 짐일 것’이었다. 어린 시절의 소중한 추억이 담긴 <메르헨 전집>과 <에이브 전집>을 맡길까 고민했지만 이번에는 그냥 두기로 했다. 짐을 싸는 동안 여러 망설임의 순간이 있었다. 예를 들면 가장 비싼 값을 치른 코트 네 벌은 남겨두었다. 그럴 리는 없겠지만 분실될 수도 있다는 상상만으로도 머리가 아팠다. 두 번째, 다음 시즌에도 입을까 말까 싶은 코트도 남겨두었다. 어쨌든 맡기는 데 돈이 들기 때문에, 만약 필요치 않은 것이라면 정리를 하는 것이 합리적일 테니까. 세 번째, 짐을 다 싼 후에도 이미 돈을 지불한 박스 하나가 남았다. 무엇을 넣어야 할까 고민 끝에 이제는 유행이 지난, 하지만 당시엔 비싼 물건이었던 가방을 넣었다. 도대체 루이 비통 에삐의 유행은 언제 다시 온단 말인가? 내 또래라면 기억할 그 시절의 ‘잇 백’들은 옷장 속에서 만만치 않은 공간을 차지하고 있었으나 오랜만에 집 밖으로, 창고로 외출을 하게 되었다.

나는 방문 서비스를 신청했기에 약속된 날짜와 시간대에 방문 기사가 집을 방문했다. 8개의 박스가 단숨에 집 밖으로 사라졌다. 그 빈자리가 곳곳에서 느껴졌다. 그만큼 물건이 많았다는 이야기도 된다. 한정된 공간과 에너지를 효율적으로 쓰고 싶은 사람들의 일부는 미니멀리스트가 됐다. 그렇지 않은 사람들은 대부분 짐과 함께 사는 것을 선택한다. 낭비되는 공간 역시 비용인 셈이나, 이번처럼 돈을 들여 짐을 보관하는 것도 각자의 생각이 다를 법하다. 짐을 맡기며 나역시 조금은 줄여야 한다고도 생각했으니까. 그럼에도 짐이 빈 만큼 내 공간이 쾌적해진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었다. 서비스에 충분히 만족했다면 6개월 후에는 다시 여름 옷을 챙기고 있는 나를 발견하게 될 터였다. 그렇게 24만원을 지불하고 6개월간 나를 떠난 물건들의 긴 목록을 읊어본다. 코트 6벌(문의 후 옷걸이까지 보냈다), 니트 드레스 2벌, 재킷 3벌, 퀼팅 코트와 퍼코트, 스웨터 23장, 두꺼운 팬츠 잔뜩, 구스 이불과 타퍼, 담요, 큰 러그, 소형 히터, 길고 짧은 부츠와 겨울 신발 매우 많이, 목도리와 모자, 양말과 스타킹, 과거의 잇백 5개… 잘 있거라, 내 짐들아. 늦어도, 11월이 올 때까지는.


짐 보관, 이것이 궁금해

짐을 맡기면서 생긴 궁금증을 ‘마타주’에 직접 물어보았다.

1 규격 박스 외에도 짐을 맡길 수 있는가? 자전거, 트렁크 등 박스가 아닌 규격 외 제품도 맡길 수 있다. 단, 일반 자전거보다 작은 사이즈의 물건만 가능하고, 서울 내에서만 이용 가능하다.
2 기본료에 포함된 사항은? 왕복 배송비, 포장 박스 및 배송비, 배상보험 가입비, 창고 내 입출고비, 6개월 이상 보관 시 사진 촬영비 등이 포함되어 있다. 종료 시에는 택배로 무료 발송되나, 서울 내에서 날짜에 맞춰 예약 방문으로 직접 배송받는 ‘익스프레스 배송’을 신청하면 건당 1만원이 별도 청구된다. 이 외에 유료 세탁 서비스가 있어서, 세탁 비용을 지불하면 세탁 후 배송된다.
3 만약 분실된다면? 도난, 파손 시 보관함당 최대 40만원이 배상된다.
4 봉인과 미봉인 보관 서비스의 차이는? 1개월 보관은 무조건 봉인 보관되며, 6개월 보관은 봉인과 미봉인(사진 촬영) 중 선택 가능하다. 미봉인의 경우 고객의 물건을 개별 검수 및 촬영하며 고객이 마타주 앱으로 물건 사진을 확인할 수 있다. 미봉인을 선택하면 이후 개별로 필요한 물품을 찾을 수 있다.
5 보관 센터의 환경은 믿을 만한가? 보관 센터는 24시간 항온/항습/항균/보안 관리된다. 약 2천 평으로, 항온 항습 관리를 위한 공조, 제습, 온도 조절 시설을 갖추었다. 특히 의류 전용 보관함은 전용 공간에서 특별히 관리된다.
6 코트나 재킷을 맡기면 어떤 옷걸이에 걸려 있게 되나? 어깨가 망가질까봐 걱정된다. 일반적으로는 흰색 철제 옷걸이에 걸어 보관한다. 옷과 옷걸이를 함께 보내면 그대로 걸어 보관하지만, 이후 만약 마타주에서 제공하는 세탁 서비스를 이용하게 되면 동봉하신 옷걸이는 폐기 처분된다. 세탁소에서 개인 옷걸이까지 챙겨주지 않기 때문이다.
7 현재 어떤 사람들이 서비스를 이용 중인가? 마타 컴퍼니는 여성 창업자가 자취 생활의 경험을 살려 짐 보관의 불편함을 해소하고자 창업한 회사다. 그 취지처럼 현재 고객의 80%가 여성이다. 지역별로 강남구와 관악구, 서초구 순으로 이용률이 높으며, 전체 물건의 50%는 의류와 신발, 30%는 책과 캠핑 등 취미 용품, 20%는 소형 가구 및 육아 용품이다. 평균적으로 1회 보관당 3개 박스를 맡기며 50만원 이상 결제하는 고객도 10%를 차지한다.
8 트렁크 등을 맡기는 경우, 그 안을 물건으로 채워서 보내도 되는가? 가능하다. 이 경우 열어보지 않으며, 규격 박스와 마찬가지로 20kg을 넘지 않으면 된다. 단, 트렁크 내부를 열어보지 않기 때문에 개별 찾기는 어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