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봄 강남역의 한 화장실에서 발생한 살인사건은 한국의 여성들에게 잊지 못할 사건이 되었다. 세찬 추모 물결이 일었던 ‘그 사건’ 이후 나와 당신, 우리는 어떻게 달라졌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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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세계를 산다

데뷔가 결정된 한 아이돌 팀의 멤버가 서바이벌 예능 프로그램에서 ‘강남역 10번 출 구’라는 조 이름으로 경연을 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굳이 저런 이름을 붙여야 했을 까 납득이 안 가 얼떨떨했다. 사람이 잘못한 일 없이 죽었던, 여자라는 이유로 살해당 했던 공간인 강남역 10번 출구는 이제 우리 사회에서 그저 번화가의 은유로만 쓰일 수 없게 되었다. 붐비는 거리 이면에서 벌어진 혐오범죄의 상징이며, 그 이후 추모의 메 시지로 유리벽을 알록달록하게 채웠던 여성들의 슬픔과 분노, 연대의 상징이기도 하 다. 그런 무거운 의미를 몰랐던 걸까? 혹은 알면서도 장난스럽게 소비한 걸까? 철이 없거나 분별이 없거나 어느 쪽이건 부적절한 행동이었다(그러도록 내버려둔 제작진 도 무책임하다). 그렇게 자신과 상관없는 일로 여기며 한발 떨어져 있을 수 있다는 게 바로 강자의 특권이다. 자신도 어쩌면 타깃이 될 수 있었을 거라 느끼는 여성들의 공 포, 그리고 남성들의 무관심 혹은 무지 사이의 거리는 멀고도 멀다. 똑같이 강남역을 일상적으로 방문하는 동시대 사람들도 이렇게 서로 멀리 떨어진 세계를 산다.

강남역 사건 이후 3년 남짓은 우리 사회에서 페미니즘 이슈가 본격적으로 불거진 시 기이자 남자들과 내가 사는 세상의 온도차를 몸서리치게 느끼는 시간이었다. 그전까 지는 내 스스로를 페미니스트로 정체화하는 일에 적극적이지는 않았다. 가부장적 남 성 중심 사회에서 내가 하고 있는 싸움이 그래도 제법 고차원적인 것이라 여겼다. 심 리학에서 사용하는 매슬로우의 욕구단계 이론에 따르면 피라미드처럼 생긴 인간의 욕 구 꼭대기에는 자아실현이 있다고 한다. 그 아래로 존경-애정과 소속-안전, 그리고 생리적 욕구가 가장 바닥에 자리한다. 인간은 아래 단계의 기초적인 욕구가 충족되고 나서야 그 상위 단계의 고급한 목표를 향해 노력할 수 있는 존재라는 이야기다. 여성 으로서 20년간 사회 생활을 해오면서 임금 격차라든가 승진, 경력 단절 같은 ‘자아실 현’ 레벨에서 유리 천장에 부딪히며 차별받는다고 여겼지만 사실 꼭대기의 싸움을 하 고 있다는 건 내 착각이었다. 현실은 안전의 욕구 아니 가장 기본적인 생리적 욕구도 여성이기 때문에 위협받는 레벨로, 처참했다. 클럽의 강간 약물, 교사나 상사의 위력 에 의한 성폭력, 남편의 아내 살해…. 뉴스를 며칠만 집중해서 봐도 여성을 위축시키 고 위협하는 함정은 너무나 촘촘해서 어지러울 지경이다. 육아나 가사노동의 부담과 경력의 공존을 고민하는 레벨이 아니라 화장실에서 용변을 보는 일부터 안심할 수 없 는 이 세상은 내가 열심히 한다고, 뛰어나고 잘났다고 해서 원하는 대로 멋지게 살 수 있는 곳이 아니라는 걸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그저 운이 좋아서 여기까지 왔을 뿐.

세상의 차별과 혐오를 조금씩 바꿔나가는 일은 아주 멀어 보이고, 주변 남자들과 대화 하며 설득하는 일은 너무 지치는 가운데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사소하지만 중요한 일 을 함께 해나가기로 했다. 할 수 있는 한 여자들에게 더 힘을 실어줘야겠다는 결심이 다. 플라톤이 이런 이야기를 했다고 한다. “친절하라. 당신이 만나는 모든 이들은 힘든 싸움을 하고 있으니까.” 여자들에 대해서라면 더더욱 맞는 말이다. 나는 비슷한 능력 치라면 여성들을 더 추천하고, 여성 창작자들의 작품에 대해 더 언급하며, 둘째를 가지지 않는 새언니를 이기적이라 욕하는 고 모에 맞서 싸우고, 지나치게 겸손해지는 여 자 동료들을 더 북돋워준다. 할수록 나에게 도 힘이 되어 돌아오는 일이다. 여자들끼리 밀어주고 끌어주는 일도, 마다 않고 할 것이 다. 운이 좋아서 살아남았다지만, 우리는 이 렇게 서로에게 운이 되어줄 수도 있을 것이 다.

– 황선우(<여자 둘이 살고 있습니다> 저자) 

 

페미니즘의 언어

근 10년을, 성차별에 분노하고 지적하는 사 람으로 살았다. 이 ‘불편한’ 말을 꺼내면서도 분위기를 최대한 해치지 않기 위해 온갖 화 술을 발달시켰음도 물론이다. 결론부터 말 하면 다 헛짓이었다. 그걸 깨닫고 그만둔 계 기가 내겐 강남역 살인사건이다. 정확히 말 하면 이 사건에 대한 여성과 남성의 반응 차 이, 그 간극에서 얻은 깨달음이 계기다. 강 남역 이후 나는 페미니즘 출판사를 차렸고 열 권 넘는 책을 펴냈는데, 이것도 그런 깨 달음의 실천이라 할 수 있다.

강남역 사건을 접한 여성들은 “죽은 게 나였 을 수도 있다”는 공포 속에 연대했다. 놀랍 게도 남성들은 그런 여성들을 비난했다. 이 들은 애도의 물결에 형성된 공포의 공감대 가 “남자를 잠재적 범죄자 취급한다”며 분 노했다. 그리고 이 두 입장 간의 대화는 대 부분 처참히 실패했다. 사회는 이 사태를 ‘남녀 진영 대결’로 묘사했는데, 나는 이런 묘사가 옳지 않다고 느꼈다. 내가 겪은 바 이 대립은 여성들의 감정과 앎을 남성이 짓 밟고 재단하는 진압의 현장이었기 때문이 다. 늘 밤길을 조심하며 걸어온 여성들에게 “난 무서워해본 적 없다. 유난을 떤다. 불쾌 하다”고 말하는 것이 어떻게 논쟁일 수 있을까. 이때 여성들은 대결에 나선 것이 아니라 폭력에 직면한 것이다. 사회가 진압하는 것은 여성의 경험과 말이었다. 그냥 여자 하나가 운 없이 죽은 것뿐이야, 조용히 해, 너 희가 그러면 꼭 내가 나쁜 것 같잖아, 라고.

그러나 이때 많은 여성이 침묵하지 않기를 선택했다. 그렇다면 무슨 말을 해야 할까 . 우리가 분명히 느낀 것을 분명한 말로 뱉어야 한다.“죽 은 게 네 여동생이라고 생각해 보라”며 주변 남성의 감정적 동조를 구걸하는 대화로 무엇을 얻을 수 있는가. 차라리 “너희들이 뭐라 하든 나는 이것이 여성혐오 범죄임을 알고 있다”고, 스스로에게 열 번 말하는 것이 낫다. 우리가 이번에 함께 깨달은 핵심을 똑바로 세상에 뱉어내는 것. 그 게 시작이라고 생각했다. 강남역 살인 사건은 여성혐오 범죄다. 여성혐오는 실재한 다. 그렇다면 그 속에서 살아가는 나를 위한 말과 통찰을 만드는 게 중요하다. 남성 기 득권의 언어가 여성들의 앎을 무화하고 진압한다면 다른 언어, 페미니즘의 언어로 우 리의 앎을 축적해야 한다.

그래서 책을 내기 시작했다. 원래 출판편집자였던 나는 강남역 사건 즈음 알게 된 페 미니스트 동료들과 페미니즘 출판사 봄알람을 차렸다. 이후 3년여간 우리는 여성의 이야기를 담은 책을 냈다. 페미니즘 책이라는 공통점뿐, 그림책부터 철학책까지 분야 는 다양하다. 작년에는 동료들과 함께 여행기< 유럽 낙태 여행>도 썼다. 유럽 5개국을 직접 여행하며 낙태권 활동가들을 인터뷰한 기록이다. 강남역 사건에 대해 그러했듯 낙태권 이슈에서도 우리는 남성 기득권을 설득하는 대신 우리의 뜻을 모을 수 있는 언 어를 선택했다. “불법 낙태로 죽은 여성들을 생각해달라”며 낙태죄 찬성론자에게 호소 하기보다 “낙태는 여성의 기본권이다”라고 확신을 갖고 외칠 수 있게 하는 이야기들을 담았다.

회사에 다닐 적, 내 말투가 충분히 나긋나긋하지 않아 오해를 사기 쉽다는 상사의 조 언을 받은 적이 있다. “사무실에 남자 선배들뿐이라 못 배웠겠지만”이라고 이해한다는 듯 덧붙였다. 즉 남자 선배들에겐 필요치 않은 ‘애교’가 내게 없다는 충고였다. 나는 빨 리 알아들었다. 목소리를 높게 하고 말투에 적절한 리듬과 웃음을 매달았다. 회사를 나온 지 3년여가 되지만 아직 그때 붙인 습관을 다 버리지 못했다. 페미니즘의 언어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나는 남성 언어 속에서 자랐다. 강남역 사건 때의 깨달음 이후 ,여 러 실패를 겪어가면서 나는 내게 틀 잡힌 남성적 기득권 언어의 독을 조금씩 빼고 있 다. 세상은 조금씩 변하고 페미니즘의 언어도 점차 많아진다. 나도 그런 언어를 계속 만들어내며 함께 변화하고 싶다. 올해도 나는 여성들의 이야기를 펴낼 예정이다.

– 이두루(편집자) 

 

요즘 애들은 

복학을 했다. 새학기라는 이유로 설렐 일도 없는 고학년이 되었지만 한눈에 들어온 강 의실의 모습이 여느 해와 달라 놀랍다. 2년 내내 긴 생머리를 고집하던 동기는 투블럭 쇼트 커트를 한 채 나타났고 오전 9시 수업 에도 풀메이크업을 하고 오던 선배는 맨 얼 굴에 안경을 낀 채 수업을 듣는다. 남자친구 이야기만 하느라 바쁘던 동생은 트위터로 ‘페미계정’을 리트윗하는 데 핸드폰 배터리 를 소진하고 여성학 수업은 듣고 싶어도 듣 지 못하는 최고 인기 수업이 되었다. 우리에 게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났던 걸까?

강남역 살인사건이 일어난 후, 정말 많은 친 구들이 남자친구와의 연애를 끝냈다. 이별 의 후일담은 다른 듯하면서도 같은 이야기 들이었다. 사건이 여성혐오 범죄이냐 아니 냐를 둘러싸고 언쟁을 벌이다가 감정이 상 해 헤어졌다는 것이다. 단순한 말싸움이 아 니었다. 그것은 단절이었다. 나와 가장 가 까운 사람이라 여겼던 이가 나의 불안과 분 노에 공감하지 못할 때 느껴진 벽은 그 어떤 노력으로도 허물어지지 않을 듯이 단단했 다. 그들의 남자친구는 자신의 사랑스러운 여자친구가 유별난 페미니스트로 ‘변모’할 까 두려워하며 자신을 포함한 모든 남자를 나쁘게만 보는 것 같아 ‘불쾌’해했다. 공포와 생존에 대한 발언이 순간의 기분에 의해 기 각당한 것, 이별의 모든 전말이었다.

헤어짐의 슬픔보다는 배신감에 시달리는 날들이 길었다. 그래도 말이 통하는 사람이 었는데, 그렇게나 착한 사람이었는데, 굉장 히 똑똑한 사람이었는데 어떻게 그럴 수가 있지? 한 사람을 이해하고 판단하는 것이 무모하다 못해 불가능한 일이라는 것을 알 면서도 이 아이러니에 대한 답을 얻고 싶었 다. 이후로 우리는 ‘인간됨’을 가늠하는 새로 운 지표로써 젠더 감수성을 고려하게 되었 다. 젠더 감수성은 천성적으로 타고나는 감각이 아닌, 철저히 공부에 의해 발달하는 지 형이다. 곧, 여성으로 태어났을지라도 페미니 즘을 공부해야 하는 것이다. 지난 언쟁에서 나의 불안과 분노를 정확히 언어화하지 못한 때를 떠올리며 우리는 스스로의 언어를 얻기 위해 책을 읽고 함께 토론하기 시작했다.

우리의 토론은 성차별을 포함한 거시적인 사 회 문제뿐만 아니라 일상 속의 미시적인 억압 에 대해서도 이루어졌다. 나는 주변의 그 누 구보다도 화장품을 사랑했던 소위 ‘코덕’이었 다. 매달 평균 30만원 이상의 돈을 화장품 사 는 데 썼으며 한정품이라도 출시되는 날에는 백화점 개장 시간에 맞추어 줄을 서고는 했 다. 그런 나에게 ‘탈코르셋’은 여성인권을 위 해 내 삶의 가장 큰 즐거움을 희생해야 한다 는 말로 들리기까지 했다. 내가 좋아서 한다 면 괜찮은 게 아닐까? 나는 스스로가 ‘주체적 으로’ 화장을 한다고 믿었다.

지난봄의 미세먼지는 연일 주의보가 내려질 만큼 최악이었다. 그러나 나는 매일 아침 마 스크 쓰기를 망설였다. 애써 공들인 베이스 메이크업이 무너지는 것도, 두 볼을 물들인 블러셔가 망가지는 것도 싫었기 때문이다. 어 느 날 갑자기 그깟 화장과 건강을 같은 선상 에 두고 고민하는 내가 바보 같았다. 그제야 비로소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나는 주체적 으로 화장을 하는 사람이 아니라 화장을 하지 않고서는 밖에 나가지 못하는 사람이었다. 나 는 나의 민낯을, 가장 자연스러운 얼굴을 부 끄러워하는 사람일 뿐이었다.

이제는 맨 얼굴로 밖을 나서는 일이 자연스럽 다. 민낯이 낯선 이의 것 같아 거울을 애써 외 면하며 사진 찍을 엄두조차 내지 못했던 지난 날의 나는 누구였을까. 그때를 생각하면 실없 이 웃음이 샌다. 생각보다 내 피부가 추위에 약하다는 걸 지난겨울에 처음 알았다. 코끝에 겨울이 찾아오기 무섭게 볼과 콧등이 타오르 듯 붉어지는 것을 보고 나는 나에게 사과해야 만 했다. 언제고 이렇게 떨었을 텐데 내가 그 걸 몰라줬구나. 누군가는 페미니즘을 접하며 전보다 더 예민한 삶을 살게 되어 힘들다고 말한다. 역시 공감한다. 그렇지만 조금 다르 게 말한다면, 우리는 이제야 조금씩 스스로를 사랑하는 법을 배워 나가고 있는 건지도 모르 겠다.

– 정지원(이화여대 재학생) 

 

달라진 것들 

다르다고 했다. 똑똑한 여자는 매력이 없다고도 했다. 까다롭거나, 생각이 많거나, 복잡하거나 아주 가끔은 이상하다고 표현 당하기도 했다. 그런 말을 들으면 때때로 자책했던 것 같다. 그럼에도 내 생각을 바꿀 수는 없었다. 나는 ‘그 사건’ 이후에야 내 가 지금까지 원한 것이 지극히 ‘상식’이었음을 알았다. 내 생각대로 내 삶을 주체적으 로 선택하며 살고 싶었을 뿐인데, 남성주의 사회에서는 여성이 자신의 생각을 말하 는 것조차 받아들여지기 힘들었던 게 사실이다.

그러나 그 상식은 이제야 비로소 상식이 되고 있다. 여성들이 목소리를 내고, 서로 연대하며 함께한 결과다. 한번 변화한 여성들은 다시는 예전으로 돌아갈 수 없다 . 이건 문맹이었던 사람이 글을 깨우친 것만큼이나 극적인 변화다. 겉으로는 아무것 도 변하지 않았을지라도 사실은 모든 것이 달라진 세상이다. 변하는 이 세상에 발을 맞추지 못한다면 그것이 산업이든, 사람이든 도태될 것이다.

이런 분위기는 일에도 영향을 주었다. 잡지, 특히 패션 매거진은 가장 빠르게 세상을 감지하고 해석해 다양한 종류의 ‘콘텐츠’를 만들어낸다. 최근 몇 년간 패션 매거진은 여성을 독자로 하건, 남자를 독자로 하건 빠르게 여성주의를 채택했다. 어떤 기사는 진정을 담았을 거고, 어떤 기사는 여성주의를 ‘액세서리처럼’ 걸쳤을 것이다. 어쨌거 나 모두가 여성주의를 말하기 시작한 것은 의미가 있다. <얼루어 코리아> 역시 꾸준 히 여성주의 책을 소개했고, 불법 촬영 영상에 대한 분노, 여성들의 의미 있는 창작 물과 산업, 예술, 생리와 건강, 여성의 연대를 다뤘다. ‘코르셋’에 대한 이슈는 나 스스 로를 고민하게 하기도, 반성하게 하기도 했다. ‘코르셋’ 면에서 봤을 때 매거진 역시 부역자에 불과하지 않냐는 물음 앞에서 쉽게 답을 할 수 없었다. 그러나 모든 논의는 의미가 있다. 얼마 전, 홍콩을 베이스로 한 세계적 기업에서 홍보를 담당하는 싱가포 르인 친구를 만났을 때 그녀는 한국에서 ‘안티 메이크업’ 운동이 일어나고 있는 게 사 실이냐고 물었고, 나는 기쁘게 한국 여성들의 근황을 전했다.

많은 동료들처럼 나 역시 잡지 키즈였다. 그 당시 잡지의 대부분을 차지했던 이른바 ‘중철지’에서 빠지지 않는 것은 ‘남자들이 좋아하는 패션’, ‘남자들이 좋아하는 향수’ ,‘남자들이 호감을 갖는 소개팅 룩’ 같은 기사였다. 10년 전만 해도 그랬다. 그것이 정 보이고, 읽을거리였던 시대였다. 그런 기사를 읽고 자라면서 나 역시 영향을 받았을 것이다. 그러나 이제 그런 기사는 사라졌거나 현저히 줄었다. 매체 안에 여러 기자 와 여러 성격의 기사가 있는 만큼, 모든 기사가 한목소리를 내는 것은 어렵지만 가야 할 방향은 있다. 나 역시 마감을 하면서 눈에 띄는 <얼루어 코리아>의 기사를 여성주 의 시각으로 다시 읽으며, 마음에 걸리는 문장을 손질하거나 바꿔버린다(또는 그렇 게 하는 게 어떻겠냐고 제안한다). 성 중립적인 표현을 하려 노력하고, 여배우라는 말을 삭제한다. 여성에 보다 주목하며 인터뷰를 할 때면 여성의 언어를 좀 더 생생하 게 담을 수 있도록 노력한다. 우리의 오디언스들이 자기주도적인 시각으로 주체적 으로 자신의 인생을 결정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여성을 위해 무슨 일을 할 수 있을 지를 고민한다. 때로는 좌절하고 반성하고, 쉽지 않은 딜레마를 겪을 때도 있다. 어 쩌면 당신도 나와 같지 않을까.지금 이 시대를 살아가는 여성들은 수천 가지의 컬러 셰이드 안에서, 제각기 던져진 질문에 답을 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 다. 이렇게 말하고 싶다. 그 과정으로 이 순간에도 세상은 변한다고. 다른 누구도 아 닌, 모두 여자들이 한 일이라고.

– 허윤선(<얼루어 코리아> 피처 디렉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