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비정전>의 유명한 대사 ‘발 없는 새’처럼 착륙할 수 없는 비행이 있다. 팬데믹 시대가 만든, ‘무착륙 비행’이 그것이다.

 

돌아보면 지난 2020년의 시작은 평화로웠다. 나는 팬덤을 몰고 다니는 한 아이돌 멤버와는 몰디브 촬영을, 늘 감탄스러운 연기를 선보이는 배우와는 발리 촬영을 앞두고 있었다. 조금씩 새로운 바이러스에 대한 윤곽이 드러나면서 결국 출발 2주 전 항공편과 호텔 예약을 취소해야만 했다. “하반기에 다시 만들어봐요.” 서로 아쉬운 인사를 나눴지만 그날은 아직 오지 않고 있다.

모든 해외 여행이 멈춰진 지 1년 하고도 석 달이 흘렀다. 각종 촬영과 출장, 패션위크 등으로 한 달에 두세 번도 비행기에 몸을 구겨넣었던 에디터와 사진가, 스타일리스트 등은 좀이 쑤시다 못해 온몸을 비틀고 있다. “출장이 지겹다고 했던 걸 후회해.” “나는 이제 이코노미 클래스를 타고 남미에 가도 불평불만을 하지 않을 거야.” “방콕이라도, 아니 대만이라도 갈 수 있다면…!” 하며 만나기만 하면 그리움을 털어놓기 일쑤다. 저가 항공의 홍수 속에서 누구나 마음만 먹으면 훌쩍 여행을 떠날 수 있었던 기억이 쉽게 사라질 리 없으니 여행을 좋아해온 사람들은 금단 증상에 시달린다. 개중에는 “그냥 비행기라도 타고 싶다!”고 절규하는 사람도 있다. ‘무착륙 관광비행’이라는 초유의 여행 상품은 그렇게 기획되었다.

무착륙 관광비행은 출국 후 다른 나라 영공까지 선회비행을 하고 착륙과 입국 없이 출국 공항으로 재입국하는 형태의 비행이다. 인천국제공항에서 탑승했다면 인천국제공항에 내리게 된다. 지난해 12월 국토교통부 허가를 받은 이 상품은 타고 내리는 곳은 같지만 엄연히 영공을 지나는 루트이기 때문에 해외 여행과 동일한 자격과 조건이 필요하다. 대한민국 여권을 소지해야 하고, 출입국 절차를 진행한다는 점. 그리고 해외 여행 시와 동일한 면세 혜택이 부여된다는 점이다. 자가 격리에선 제외된다.

이 무착륙 비행은 짧은 비행을 즐기고 싶은 사람과 면세 쇼핑 혜택을 누리려는 사람을 겨냥한다. 구매한도 5000달러, 면세한도 600달러이므로 잘 계산한다면 평균 10만원대의 비행을 통해 면세 쇼핑의 득을 더 볼 수 있다. 술 1병, 향수 60ml도 허용된다. 단, 팬데믹을 고려해 기내식과 음료 서비스는 없다. 이리저리 서핑을 해보니 한진관광의 무착륙 비행 상품은 일반석 기준 15만9천원부터다. 대한항공의 자랑인 A380을 띄운다. 단 2시간여의 비행이지만 쾌적하게 다녀오라는 것이다. 소노호텔, 롯데면세점과 연계해 여러 할인 혜택을 제공 중이다. 계속 휴가를 쌓아두고 있는 나는 머릿속으로 이런 궁리를 해본다. 무착륙 비행을 결제해서 1년여 동안 유명무실했던 모닝캄 혜택도 써보고, 라운지도 가보는 거다. 샤넬 부티크에 아침부터 줄을 그렇게 선다는데, 면세점에 내가 원하는 게 있을지 모른다(추가로 세금을 내겠지만 국내 매장에선 구경은커녕 매장도 못 들어간다). 그동안 떨어진 필수 뷰티템을 개비해볼까?(갑자기 제값을 주고 사려니 어쩐지 손해 보는 기분이다). 무엇보다 잠시나마 여행하는 기분을 누릴 수도 있겠다. 공항 근처의 호텔에 투숙해, 대만인 셈, 발리인 셈 치면서 하루 여유를 부릴 수도 있겠다. 꼬리에 꼬리를 무는 생각은 결국 다음과 같은 질문으로 끝난다. 우리는 언제 다시 여행할 수 있을까? 시간이 더 흐르면, 무착륙 관광비행도 이 모든 일도 추억이 될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