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슨하게, 때로 단단하게. 한효주는 자신의 궤적을 만들어가는 중이다.

 

몇 해 전에 촬영한 드라마 <트레드스톤(Treadstone)>이 정식으로 한국 시청자들을 만나게 됐네요. 
벌써 2년 전이네요. 운 좋게 곧 OCN에서 방송하게 됐어요.

OTT 시대이긴 하지만, TV에서 방영되는 것과 아닌 건 여전히 차이가 있는 것 같거든요. 
맞아요. 저도 미국 드라마를 찍은 건 아는데 어떻게 보냐, 어디서 볼 수 있냐는 질문을 많이 받았거든요. 이번에 좋은 기회로 한국 시청자분들에게 보여드릴 수 있어서 너무 기뻐요. 본 시리즈를 좋아하시는 분들이 기대해주시면 좋을 것 같아요. 제가 처음으로 도전한 액션 장르이고, 미국 드라마이다 보니까 많은 분이 재미있게 봐주셨으면 좋겠어요. 오늘이 <트레드스톤> 관련 첫 홍보 활동이거든요.(웃음)

그런 설렘이 느껴져요. 어떤 기분인가요? 2년간 부은 적금을 찾는 기분? 
하하! 그런 느낌일 수도 있겠네요. 우선 열심히 찍은 작품을 보여드릴 기회가 있다는 게 너무 감사하죠. 나눠서 찍긴 했지만, 1년 가까이 찍은 것 같거든요. 미국 드라마는 파일럿 개념이 있어서 1편을 공들여서 한 달 반, 두 달 찍고 남은 편들을 5~6개월 동안 몰아서 찍거든요.

촬영지가 헝가리였죠? 그리운 곳인가요, 헝가리는? 굴라시도 많이 먹고요? 
낮도 예쁘고 부다페스트는 야경이 너무 예뻐요. 낮은 낮대로, 밤은 밤대로 예뻐요. 굴라시도 먹었죠.(웃음) 헝가리의 사계절은 거의 다 경험해봤다고 할 수 있어요. 헝가리에 있을 때는 건강하게 생활했어요. 장르가 액션이니까 운동을 많이 했어요. 루틴이 거의 운동선수 같았어요. 주말에는 촬영도 훈련도 없어서 쉬는데, 평일엔 회사원처럼 출근해서 아침에 스턴트 훈련하고 오후에는 체육관 가서 훈련했어요.

라운드 베스트와 팬츠는 모두 샤넬(Chanel).

훈련이군요, 연습이 아니라. 
훈련이에요. 스턴트 훈련은 안무를 배우는 거라서 근육이 늘지는 않는데 이걸 하려면 근육이 있어야 하니까 체육관에 가서 근육을 만들어요. 하루 종일 먹고, 운동만 했어요. 먹는 것도 자연스럽게 편안하고 건강한 음식을 찾게 되고요. 그러다 보니 타의로 강해진 것 같아요.

타의라도 강해진 건 좋은 일이네요. 그때 만든 근육이 여전히 힘을 발휘하고 있나요?
많이 빠졌어요. 작년에 <해적: 도깨비 깃발>을 촬영할 때에는 칼을 주로 많이 썼거든요. 꾸준히 운동하다 보니 어느 정도 유지는 하고 있는데, 한번 만들어놓은 속근육이 있으면 금방 올라오더라고요. 아직은 괜찮은 것 같아요.

근육이 붙으면 확실히 활기가 생기나요? 
모두에게 추천합니다.(웃음) 확실히 건강한 기분이 들어요. 저도 <트레드스톤>을 계기로 그 정도까지 해본 것이지, 그전에는 운동을 열심히 하거나 좋아서 하지는 않았어요. 그런데 운동을 하다 보니까 중독처럼 되는 거예요. 운동하고 나면 개운한 느낌을 알아버렸어요.

운동신경이 좋은 걸로 유명하잖아요? 두 가지 상반된 이미지가 다 있어요. 단아한 중전의 이미지부터 와일드한 액션 배우의 이미지까지. 
운동신경이 좋아서 어렸을 때부터 운동하는 건 좋아했어요. 하는 건 귀찮아했지만…(웃음) 몰랐는데 몸 쓰는 걸 제가 좋아하더라고요. 해보니까 더 좋아지고 적성에 잘 맞더라고요. 제가 단아한 이미지로 대중에 비춰 있는데 그런 면도 제 일부지만 실제로는 되게 밝고 털털하고, 친한 사람들은 다 소년 같다고 할 정도로 와일드한 면도 있어요. 굳이 내세워서 보여줄 마음은 없지만 그런 면도 있어요. 제 안에 다양한 면이 있는 것 같아요.

재킷과 러플 디테일 셔츠는 모두 발렌티노 콜레지오네 밀라노(Valentino Collezione Milano).

그런 다양한 면이 캐릭터를 통해 드러날 때가 있어요. 대중은 그제야 알아보곤 하죠. 그럴 땐 어때요?
청개구리 같은 면이 있어서 그러면 또 살짝 숨고 싶어요.(웃음) 저도 왔다갔다하는 것 같아요. 그러다 어떤 작품, 배역을 맡느냐에 따라 조금씩 꺼내서 쓰고요. 액션을 할 때는 그런 성격이 부각이 많이 됐다가, 차분한 역할을 할 땐 또 그런 성격이 부각되고요. 그래서 배우라는 직업이 저랑 잘 맞는 것 같아요.

오래전이지만 촬영했던 때로 돌아가보면 어떤 기억이 가장 선명한지 물어보려고 했는데, 아무래도 운동인 것 같네요. 마치 선수촌 후기 같아요. 
맞아요. 운동이에요. 운동 진짜 많이 했어요.(웃음) 아무래도 장르물이다 보니 액션을 열심히 했고, 스파이물이니까 여러 언어를 자유롭게 구사해야 해서 북한 사투리도 열심히 연습했어요. 사람들이 미국 드라마 찍어서 영어 많이 늘었냐고 물어보면 사투리 많이 늘었다고 해요.

원래는 청주 출신이죠? 본래 억양이 강한 곳은 아니에요.
맞아요. 거의 억양이 없어요. 끝에 ‘겨’를 붙이고 살짝 올리는 정도죠. 저는 외가, 친가 모두 충청도거든요. 청주는 잘 안 써요. 밑으로 갈수록 사투리가 세져요. 지역마다 편차가 있는 것 같아요.

북한 사투리도 그렇겠죠? 평양 표준어를 배웠나요? 
실제로 평양에서 오신 분한테 나름 평양 표준어를 배운 거죠.(웃음) 저희가 많이 접한 북한 사투리는 과장된 거라고 해요. 평양에서는 사투리를 그렇게 많이 안 쓴대요. 파일럿 찍는 두 달 동안은 선생님을 모시고 헝가리에 가서 매일 연습했어요.

화이트 셔츠 드레스와 양말, 슈즈는 모두 펜디(Fendi).

<트레드스톤>은 미국에서는 아마존 프라임으로 공개가 되었잖아요? 당시 반응은 어땠어요? 기억에 남는 반응이 있어요? 
소윤이라는 제 캐릭터를 좋아해주셔서 힘이 많이 됐어요. 처음 방영 시작했을 때 소윤이 너무 매력 있다고, 마음에 든다고 얘기해주시니까 감사했죠. 액션 연기를 마음껏 펼치는 여성 캐릭터라는 점도 좋아해주셨던 것 같아요.

<트레드스톤>의 뿌리인 ‘제이슨 본’ 시리즈는 어마어마한 성공작이죠요. 특히 애착이 가는 편, 인물이 있나요? 
세 편 다 너무 훌륭해서 뽑기 어렵지만 <본 얼티메이텀>이요. 여자 주인공 닉키 파슨스(줄리아 스타일스)도 너무 매력적이었어요.

닉키는 본 시리즈 첫 편에 나왔다가 비중 있는 모습으로 다시 등장했어요. 그런 식으로 숨겨진 이야기가 시리즈의 묘미 같아요. 스핀오프도 끝난 줄 알았던 이야기가 계속되니 시리즈 팬에게는 굉장히 큰 선물이죠. 
저도 <해리 포터>의 스핀오프인 <신비한 동물 사전>을 정말 좋아하거든요. <트레드스톤>이 본 시리즈의 스핀오프인 것처럼, 소윤을 중심으로 스핀오프 나왔으면 좋겠다고 저희끼리 얘기는 했어요.(웃음) 보여줄 게 많거든요. 지금은 한 시즌만 보여드렸지만 처음 캐릭터 만들 때 앞으로 이어질 긴 얘기와 캐릭터의 전사가 많았거든요.

너무 궁금하지만 그중에 들려줄 수 있는 건 없겠죠? 
저도 소윤의 이야기를 더 보여드릴 기회가 있었으면 좋겠어요.(웃음)

플라워패턴 드레스는 짐머만 프롬 네타포르테(Zimmermann from Net-A-Porter).

소윤은 북한 사람이에요. 우리와 같은 언어를 쓰지만 또 다른 문화권이라고 볼 수 있죠. 어떻게 접근하려고 했나요? 
깜짝 놀랐던 게, 부다페스트에 첫 미팅을 하러 갔는데 그 사무실 한쪽 벽면 전체가 북한 시안이었어요. 깜짝 놀랄 정도로 자료가 너무 어마어마하더라고요.

처음 본 모습이었겠어요. 우리도 잘 모르잖아요, 북한을.
저도 이번 드라마 하면서 북한의 다양한 모습을, 다른 시각을 자료로 접했는데 너무 신기했어요. 외국인들의 시각으로 보는 북한은 이렇구나 했어요.

소윤이 자신의 정체성을 깨닫는 과정은 제이슨 본과 비슷해요. 그런 ‘아이덴티티’에 대한 주제는 여전히 계속되는 것 같아요. 
같은 결이죠. 같이 트레드스톤이라는 훈련기관에서 트레이닝이 된 요원인데 기억을 잃고 자기가 누군지 모르는 설정 자체는 많이 닮아 있어요. 저도 깨어나고, 누군가는 알래스카에서 깨어나고 베를린에서 깨어나고 세계 각지에서 깨어나면서 흥미로운 소재가 될 수 있었어요. 로케이션이 많아서 보여줄 것도 많고요.

한국 작품의 해외 로케 촬영과 비교해서 배우로 느끼기에 크게 다른 점은 뭐였어요? 
가장 달랐던 건 드라마 감독님이 많이 온다는 것. 파일럿 감독님이 다르고 에피소드 2편마다 감독님이 달라요. 10편에 감독님이 5~6분 정도 계셨어요. 파일럿은 제일 유명한 감독님이 오시고, 물론 다른 감독님들도 유명하지만, 여러 감독님이 있어서 새로운 시도도 많이 하세요. 에피소드 두 편마다 감독님이 다르니까 저도 다양한 분을 만나봤어요. 시스템 자체가 한국과는 다르더라고요. 감독님이 다르니까 더 편한 것도 있고, 어색한 것도 있었어요. 일을 정확히 일처럼 딱 하고 가시니까 ‘오… 그렇구나’ 했어요.

한국식으로 오늘 끝나고 식사를 하면서 이야기하자, 이런 모습은 없었겠네요.
전혀 없어요.(웃음)

카키 컬러 재킷과 팬츠, 체인 벨트는 모두 지방시(Givenchy). 슈즈는 매그파이(Magpie). 퀼팅 모티브의 코코 크러쉬 이어링은 샤넬 화인 쥬얼리(Chanel Fine Jewelry).

연기하는 방법 또는 디렉팅에도 차이가 있었나요? 
그런 것에 있어서는 차이점을 별로 못 느꼈어요. 오히려 연기할 때 조금 더 자유로웠던 이유는 거기서는 제가 누군지 하나도 모르니까 기대감이 크지 않은 것에서 온 것 같아요. 제가 어떤 식으로 연기할지도 모르고, 어떤 모습일지도 모르는데 현장에서 조금만 잘하면 박수가 나오는 거예요. 그게 저한테도 되게 신선하고 새로운 영감이 됐어요. 그걸 계기로 자존감도 높아졌고요. 그 이후로 저도 박수를 많이 쳐줘요.

어쩐지 아까 촬영장에서도….
열심히 쳤죠.(웃음) 한국 현장에서도 누군가 잘하거나 분위기가 좋을 때 박수 치면서 좋아하는 걸 더 많이 표현하게 됐어요. 제가 그걸로 힘을 많이 받아서 저도 사람들한테 많이 해줘야겠다 생각이 들었거든요.

자유로웠다는 이야기가 좋네요. 자유로움을 느끼는 게 쉽지 않잖아요? 어떤 작품에 캐스팅되면 그날 기사가 ‘한효주 차기작’ 이런 식으로 나곤 하니까요. 시작부터 무게감이 주어진다는 게 무섭게 느껴질 때는 없나요? 
무섭죠. 그런데 또 재미있기도 하고요. 어떤 캐릭터로 나를 채우고 다시 비워내는 과정이 아직은 너무 좋아요. 겁나고 무섭지만 현장 가면 너무 행복해요. 에너지를 쓰기도 하지만 에너지도 받고요. 현장이 제일 재미있는 것 같아요. 제가 제일 자유롭게 놀 수 있는 놀이터예요. <트레드스톤> 현장은 되게 신기한 게 처음부터 불편하지 않았어요. 사실 불편할 것 같았거든요. 그런데 너무 편했어요. 한효주로서 가질 수밖에 없는 기대감과 부담감을 내려놓게 되고, 전혀 모르는 사람과 전혀 낯선 환경이니 편하더라고요.

현장에서는 어느 순간이 제일 좋아요? 
처음엔 무서우니까 몸을 사리다가 중간쯤 되면 사람들도 편해지고 캐릭터도 체화되면 제일 자유로운 느낌이 들어요. ‘이제부터는 진짜 놀 수 있겠구나’ 그런 순간이 올 때가 제일 좋아요. 그게 작품에 따라서 빨리 올 때도 있고, 중간쯤 지났는데 안 올 때도 있으면 너무 불안하고요. 빨리 오면 빨리 올수록 현장이 더 재미있죠.

헝가리에서 1년을 보내고, 또 영화 촬영으로 한동안 일본에 있었죠? 한국 팬들은 그동안 한효주가 왜 이렇게 쉬고 있나 했겠어요. 
많이들 그렇게 생각하셨을 것 같아요. 저는 나름 열심히 일을 했는데 말이죠.

활동을 하지 않을 때는 굉장히 조용하게 지내는 듯해요. 조용한 사람인가요?
언니들한테 애교가 많아요. 친해지면 장난을 많이 쳐요. 기본적으로 엄청 수다스러운 편은 아닌데요. 어렸을 때보다는 말을 많이 하는 것 같아요. 30대부터 친구들과 수다 떠는 즐거움을 알게 됐어요. 이제는 힘든 일, 좋은 일 있으면 친구들과 나누고 싶고요. 같이 얘기하면서 부담도 덜고, 즐거운 것도 같이 나누는 걸 진심으로 좋아해요.

튜브톱 점프슈트는 머테리얼 바이 무이(Materiel by Mue).

<서울촌놈> 예능에 출연한 걸 보니, 예능에도 자연스럽게 녹아들던데요. 더 해보고 싶지는 않아요? 
친구인 승기(이승기)가 같이 하자고 해서 했어요. 저는 그냥 예능을 잘하고 못 하고가 뭔지 모르겠어요.(웃음) 아무래도 제 고향이니까 저는 보기에 재미있었어요.

어제는 뭘 했고, 내일은 뭘 할 건가요? 
어제는 오늘 촬영을 위해 운동을 했죠, 헤어 트리트먼트도 하고 준비했어요. 끝나자마자 떡볶이를 먹긴 했지만요. 내일은 일, 일이 있습니다.

여러 소식을 보니 다시 바빠질 것 같더라고요? 어떻게 보낼 계획인가요? 
늘 그래왔듯 열심히 일할 것 같아요. 앞에서 보여지는 일들은 아니지만 열심히 촬영하고 좋은 작품 보여드릴 수 있게 열심히 최선을 다해야죠. 다행히도 올 연말 꽉 채워서 일하고 있지 않을까 해요. 늘 감사해요. 제가 일하게 해주셔서요.

열심히 일하려면 또 뭔가를 채워야 하잖아요? 
올해는 채우는 것도 일터에서 하려고 해요. 전 현장에서 많이 채워지기도 하거든요. 작년에는 <해적> 촬영장에서 힘을 많이 받았어요. 올해는 바쁠 것 같아요.

이번에 꺼내고 싶은 당신 안의 다른 면도 있어요? 
음… 지금은 그냥 지금의 제가 좋은 것 같아요. 무리하게 꺼내거나 만들어서 쓰는 것보다는, 자연스럽게 운명처럼 제 안의 어떤 걸 꺼내서 보여주고 싶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