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지성은 세상의 모든 동물과 사회적 약자들이 차별 없이 행복하기를 바란다. 동등하고 당당하게.

 

코트는 양리(Yang Li), 팬츠는 리에르 바이 아데쿠베(Rier by Adekuver), 신발은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네크리스는 포트레이트 리포트(Portrait Report), 이어커프는 실크(Sylk), 링은 링키 래버토리(Linky Laboratory).

당신을 만나면 우선 물어야 할 것 같더군요. 밥은 먹었나요?
제가 팬들을 부르는 애칭이 ‘밥알’이에요. 집에서 나오기 전에 간단히 볶음밥 먹었습니다. 밥이 제일 중요하죠.

직접 만들어서요?
강원도에 사는 어머니가 마침 서울 집에 계셔서 같이 먹었어요. 어머니가 해주셨어요.

이틀 전이 당신의 서른한 번째 생일이었죠. 겸사겸사 아들 집에 오신 건가요?
네, 맞아요. 제 생일 때문에 잠깐 올라오셨어요.

전역 후 맞은 첫 생일인데 어떻게 보냈어요?
점심에는 가족이랑 맛있는 거 먹었고요. 브이앱으로 팬들과 만나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눴어요. 그러곤 평소처럼 일했고요. 지금 앨범 준비 중이거든요.

서른 넘어 맞은 생일은 어때요? 감회가 좀 다른가요?
딱히 나이를 생각하면서 사는 편은 아니라서요. 서른이 넘었다고 해서 뭐가 다른 건 없는 것 같아요. 대신 전역하고 처음 맞는 생일이라는 게 특별하다면 특별하죠. 직접 얼굴을 마주하진 못했지만, 팬들이랑 소통할 수 있다는 게 좋았어요. 그게 또 새롭더라고요.

나이를 의식하지 않아요?
네, 서른이 넘은 지금도 그렇고요. 아마 마흔 살이 돼도 그럴 거 같아요. 제가 어릴 때 <내 이름은 김삼순>이라는 드라마가 있었거든요. 서른 살의 삼순이를 보면서 ‘서른이 되면 인생이 끝나는구나’. 그 전에 모든 걸 다 이뤄야 하는구나. 그런 생각을 했던 것 같아요. 제가 막상 그 나이를 먹고 보니까 여전히 모르는 게 더 많아요. 세상을 살면서 필요하거나 챙겨야 할 것들 있잖아요. 아직 뭐가 뭔지 모르겠어요. 서른에는 어때야 하고, 마흔이면 어때야 한다는 건 시대가 만들어낸 이상한 프레임에 불과하다고 생각해요. 서른이면 이제 막 시작할 나이잖아요.

당신의 생일인 3월 8일은 1975년 유엔(UN)이 지정한 세계 여성의 날이기도 하죠. 생일 브이앱을 끝낼 즈음 세계 여성의 날을 축하한다며 빨간 장미를 꺼내 들더군요. 신선했어요. 
워너원 활동 끝나고는 제 이름을 검색창에 검색하는 일이 잘 없거든요. 그러다 생일 아침엔 괜히 한번 검색해봤어요. 마침 그날이 세계 여성의 날인 걸 알았고요. 함께 축하하고 축하받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냥 자연스럽게요.

최근 만나서 인터뷰하는 이들에게 묻고 있어요. ‘남자답다 혹은 여자답다’ 같은 기준에 대해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가능하면 그런 표현 자체를 지양하려고 해요. 앨범 작업할 때 보면 제 노래 가사에도 굳이 성별을 구분 짓는 표현이 있더라고요. 사랑 이야기인데 그 주체가 남자와 여자인 거예요. 세상에는 이성 간의 사랑 말고도 훨씬 더 다양한 종류의 사랑이 있잖아요. 대중가요의 가사를 이성의 사랑으로 일반화하는 것 자체가 별로더라고요. 굳이 성별을 지칭하지 않는 표현으로 바꾸는 편이에요.

톱과 팬츠는 모두 보테가 베네타(Bottega Veneta).

‘그’와 ‘그녀’로 나누던 표현을 ‘그’로 통일하는 식이겠네요. 처음에는 좀 어색할 만도 하죠.
제 여동생이랑 그런 이야기를 되게 자주 하는데요. 저희 결론은 모든 변화는 불편함을 감수하는 데서부터 시작한다는 거예요. 지금이야 마땅한 단어를 찾는 게 어렵고, 어색하기도 하겠지만 불편한 시간을 감내하면 익숙해진다고 믿어요. 연예인 굿즈 상품을 제작할 때요. 남자 아이돌의 경우 여성 팬 비율이 훨씬 높기 때문에 상품의 색깔이나 디자인이 좀 더 여성적인 경우가 많아요. 근데 저는 그게 싫더라고요. 남자 아이돌을 좋아하는 남자 팬도 많으니까요. 그 부분에 대해서 나름대로 의식하며 공부하고 있어요. 사람은 다 같아요. 남자와 여자가 다르지 않고, 누가 우위에 있거나 밑에 있는 것도 아니라고 생각해요.

당신이 이런 말을 할 줄 미처 예상하지 못했어요. 좀 놀랍네요.
관심이 많아요. 공부하려고 해요. 책도 많이 읽고요. 그래도 아직 실수할 때가 있어요. 그때마다 바로 반성하고 새로 배우고 다짐해요.

여성인 어머니와 동생의 영향을 받았다고 할 수 있을까요?
그렇기도 한 것 같아요. 여동생이 그런 문제에 관심이 많거든요.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다른 사회 문제에도 관심을 가지게 됐고요. 세상엔 작지만 소중한 목소리들이 분명 존재하잖아요. 갈수록 그런 소수자에게 눈길이 가더라고요.

군대 이야기를 하는 건 어때요?
음, 전 막 싫거나 그러진 않아요. 군대 질문을 많이 받는데 군대 그 자체가 궁금해서 물어보는 경우는 잘 없으니까요. 그 안에서 지낸 시간과 당시의 감정을 궁금해하는 거니까. 오히려 듣는 사람이 지겨울까봐 그게 걱정이죠.

남자 둘이 앉아서 군대 이야기나 하는 그림은 아무래도 좀 별로죠. 그래도 이건 궁금하네요. 그 안에서 얻은 것과 잃은 것이 있다면?
저는 다 괜찮은 편이었어요. 입대 전까지 쉼 없이 일을 해서 그런지 오히려 여유롭다는 느낌마저 들었거든요. 좋은 사람도 많이 알게 됐고요. 군대에 늦게 간 편이라 대부분의 선임이 저보다 나이가 어렸거든요. 어린 선임의 명령을 따라야 하는 게 기분 나쁘지 않았냐는 질문도 있는데 전혀 그렇지 않았어요. 군대는 여기와는 다른 사회고, 그 안에서 저보다 경험이 많은 사람이 선배인 건 당연해요. 파견 생활할 때 만난 동료 연예인들이 잘 챙겨줘서 그것도 참 좋았고요.

니트 톱은 꼼데가르송(Comme des Garcons). 팬츠는 르메테크(Lemeteque). 레그워머는 아드베스(Arts De Base). 벨트는 알렉산더 왕(Alexanderwang). 부츠는 오프화이트(Off-White). 브레이슬릿과 링은 보테가 베네타.

어떤 이름들인지 궁금하네요.
샤이니의 온유 형, 조권 형, 성규 형, 성렬이, 배우 김민석 형, 빅스의 학연이 형, 시우민 형, 홍기형, 엑소 디오, 브로맨스 창동이 등이요. 다 너무 착한 사람들이에요. 이번 제 생일에도 연락을 다 주셨고요. 항상 고맙죠.

워너원 활동을 마치고 금세 입대했잖아요. 아쉽진 않았어요?
아쉬운 면이 있었죠. 제가 군대에 있던 시절 워너원의 다른 친구들은 솔로나 그룹 활동을 하고, 연기도 하면서 자신의 색을 갖춰가는데 저는 그러지 못했으니까요. 좀 다르게 생각해보면 전역 후 다시 활동하면 오히려 신선하려나요? 그래서 그 시간이 마이너스라고 생각하지는 않아요. 약간의 조급함은 있지만.

자기 객관화를 잘하는 편인가요?
저는 그게 진짜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이에요. 특히 연예인이라는 직업은요. 아니 꼭 연예인뿐 아니라 살면서 내가 잘할 수 있는 걸 찾으려면 자신을 객관적으로 바라볼 줄 알아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래야 상처를 안 받을 수 있어요. 상처를 안 줄 수 있고.

그리고 또 망가지지 않을 수도 있을 것 같아요. 말처럼 쉽지 않은 게 문제겠지만.
저도 처음엔 엉망이었어요. 워너원 활동할 때는 다른 친구들보다 나이만 먹었지. 그렇게 큰 사랑을 한꺼번에 받아본 게 처음이잖아요. 아마 기억 속엔 남아 있지 않은 실수도 많이 했을 거예요. 시간이 흐르고 마음속으로 혼자 사죄하고 반성한 것도 많아요. 아마 그 시간이 없었다면 이렇게까지 저를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없었을 거예요.

그때나 지금이나 당신은 현실에 닿아 있는 사람이라는 느낌이 들어요. 휘둘릴 것 같지 않고 담담해 보인다고 할까요?
어릴 때부터 능동적일 수밖에 없는 상황이 많았어요. 주체적으로 책임을 져야 하는 상황이요. 부모님은 맞벌이했고, 저는 첫째고, 집이 아주 어려웠으니까요. 붕 떠 있는 것도 해본 사람이나 잘하는 것 같아요.

트러커 재킷은 다잉 브리드(Dying Breed), 티셔츠는 모와로라(Mowalola), 팬츠는 르메테크, 벨트는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이어커프는 링키 래버토리, 링은 실크.

반려동물과의 첫 기억은 뭐예요?
병아리. 작은 병아리를 닭이 될 때까지 키운 적이 있어요. 반려 닭이라고 해야 하나?(웃음) 너무 커져서 할머니 댁으로 보냈는데 다음 날 백숙이 되어 식탁에 올라왔더라고요. 충격이 컸어요. 그 이후로 다람쥐도 키우고, 강아지도 키우고 늘 반려동물과 함께했던 것 같아요.

오늘 함께한 베로는 지난 2월 유기견 보호소에서 직접 입양했죠?
맞아요. 유기견 입양에 관심 두게 된 건 제가 좋아하는 연예인 때문인데요. 어릴 때부터 이효리 누나를 정말 좋아했어요. 그분이 유기견과 동물, 여러 사회 문제에 관심이 많잖아요. 그런 효리 누나를 보고 자라서 그런지 저도 유명해지면 그런 사람이 되고 싶더라고요. 옳다고 생각하는 사회 문제에 충분히 목소리를 낼 줄 아는 사람이요.

유기견을 향한 편견 중에는 이런 게 있죠. 문제가 있어 버려졌을 거라는.
솔직히 저도 그런 편견이 있었던 것도 같아요. 보이지 않는 어떤 문제가 있을 것 같고, 함께 살기 어려울 것 같기도 하고요. 하지만 그게 다 사람 하기 나름인 거더라고요. 사람이 동물을 어떻게 대하는지에 따라 달라지는 문제예요. 세상의 어떤 강아지든 털이 빠져요. 시끄럽게 짖을 때도 있고요. 그건 이 친구의 본능이에요. 누구도 어쩔 수 없는 부분인 거죠. 근데 입질을 심하게 한다거나, 배변 실수를 한다는 이유로 너무 쉽게 파양하는 사람들이 있어요. 그건 훈육을 통해 충분히 개선되는 부분이거든요. 별문제가 아니에요. 제 생각에는요. 파양에는 합당한 이유나 근거가 없어요. 그냥 무책임한 거고 옳지 못한 거예요.

팻숍에서 반려동물을 사는 것에는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어요?
제가 초등학교 5학년 때 키우기 시작한 사랑이는 팻숍에서 데려온 친구예요. 그땐 팻숍이니 유기견 입양이니 그런 개념이 없었기 때문에 당연한 일처럼 팻숍에서 구입했어요. 그 후 어머니가 유기견인 ‘호두’를 데려왔고요. 저는 ‘베로’를 데리고 온 거예요. ‘호두’는 어머니와, ‘베로’는 저와 동생이랑 살아요. 반려견을 선택할 때요. 사람마다 원하는 품종이 있을 수 있고, 마음이 가는 크기가 있을 수 있어요. 대형견에 로망이 있는 사람도 꽤 있고요. 저는 그런 마음이 잘못됐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펫숍에서 데려온 아이를 사랑으로 키우는 사람도 많아요. 다만 특정한 품종견이 팻숍 쇼윈도에 들어서기까지 정상적이지 않은 환경에서 나고 자라는 걸 반대하는 거예요.

데님 재킷은 스테판 쿡×리(Stefan Cooke×Lee), 티셔츠는 셀린느 옴므(Celine Homme).

베로와의 첫 만남은 어땠어요?
유기견을 입양해야겠다고 생각한 건 1년이 넘었어요. 입대하고 훈련소에 있을 때 전역하면 하고 싶은 위시 리스트를 적어뒀거든요. 반려견 키우기가 리스트에 있었어요. 그때부터 이런저런 공부를 시작했어요. 동물을 사랑하는 마음만 가지고는 부족하다는 생각 때문에요. 제가 아이에게 바라는 건 딱 하나, 차멀미 없는 거였어요. 아무래도 제가 차를 타고 이동하는 시간이 많으니까요. 아이가 얼마큼 크게 자라는 품종인지, 맨 처음 누구와 어디에서 자랐든지 털이 얼마나 빠지든 그런 건 아무 상관없었어요. 보호소에도 자주 가고 유기동물에 가족을 찾아주는 ‘포인핸드’라는 앱도 찾아보고, SNS 해시태그에 #유기견입양을 검색하기도 하면서 기다렸죠. 그러다가 우연히 SNS에서 베로를 봤어요. 너무 예쁘더라고요. 그래서 바로 얘가 있는 곳으로 달려갔어요.

발견 당시 베로가 살던 곳은 어디였나요?
공사장에서 구조됐어요. 공사장 컨테이너에서 생활한 것 같아요. 제가 알기로는 베로의 모견 한 마리와 네 마리의 새끼가 함께 있었다고 들었어요. 입양자가 나타나지 않으면 안락사까지 일주일 남짓 남은 상황이었고요. 처음 본 순간 그냥 눈이 확 가더라고요. 베로는 처음에는 푹신한 데를 싫어했어요. 굳이 컨테이너 바닥처럼 차갑고 딱딱한 곳에 있으려 하더라고요. 저와 거리를 유지한 상태로요. 근데 며칠쯤 지났나. 어느 순간부터 푹신한 침대, 소파, 쿠션만 찾아다니기 시작하더라고요.(웃음) 사람을 피해 다녔는데 또 어느 순간 쓱 옆에 다가와 붙어 있기도 하고요. 단 몇 주 사이에 그렇게 됐어요. 진짜 감동적이지 않아요? 처음 저한테 자기 어깨를 이렇게 비볐을 때 너무 행복하더라고요. 드디어 닫혀 있던 마음을 우리에게 열어준 것 같아서.

작은 동물의 마음을 닫은 것도 사람이고, 다시 열게 만든 것도 사람이네요. 결국 위안을 얻는 건 사람이겠죠. 
그래서 반려동물이라고 하는 것 같아요. 요즘 아침마다 꼬리를 흔들면서 제 침대로 펄쩍 뛰어오르거든요. 그렇게 저를 반가워해요. 한 번씩은 그런 생각도 들어요. 세상에 누가 나를 이렇게 사랑해줄 수 있을까. 아무런 조건도 없이.

니트 톱은 요지 야마모토(Yohji Yamamoto), 링은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팻숍에서 사든, 유기견 보호소에서 입양하든 반려동물을 가족으로 맞이하기 전에 꼭 한 번 생각해봐야 할 건 뭘까요?
반려동물에게 너무 많은 걸 기대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사랑해 주면 안 되나요? 서로 같이 알아가면서 살면 돼요. 한 번씩 그런 생각 들거든요. 베로가 지금 나랑 살아서 정말 행복할까? 우리 집에 오기 전처럼 길바닥과 공사장을 자유롭게 오가며 사는 게 더 행복하진 않았을까? 이 아이의 마음을 제가 다 알진 못하니까요. 저는 그래요. 베로가 하기 싫은 건 안 해도 돼요. 텔레비전에 나올 법한 천재 개가 되지 않아도 좋아요. 그냥 얘가 건강하게만 자랐으면 좋겠어요.

베로가 하기 싫은 건 안 해도 좋다는 말이 좋네요.
얘가 지금도 사람을 좀 어려워해요. 그래서 오래 안겨 있는 걸 잘 못 해요. 이 아이가 안겨 있는 걸 싫어하면 제가 안 그러면 되는 거예요. 싫어하는 걸 안 하면 되는 거예요. 되게 심플해요.

보통 인간은 반려동물을 책임진다고 생각하죠. 너의 주인은 나야. 당신의 관점은 좀 다른 것 같네요?
상하 관계나 복종 관계를 생각하죠. 저는 좀 아닌 것 같아요. 개 위에 사람 있는 거 아니고 개 아래에 사람 있는 것도 아니에요. 모든 생명은 똑같이 소중하니까. 베로랑 저는 다 같은 존재라고 생각해요. 그냥 가족인 거예요.

처음부터 끝까지 신선한 충격과 화두를 던지는군요. 서른한 살 윤지성은 이토록 단단한 사람이네요. 
사람들이 아직 저를 잘 모르는 것 같아요. 제가 어떤 사람인지. 그래서 더 신선해 보일 수도 있을 것 같아요. 이게 다가 아니에요. 지금부터가 진짜 시작이에요. 아직 보여드리지 못한 모습이 더 많아요.

트러커 재킷은 다잉 브리드, 링은 실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