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보다 발랄한 봄나물을 이렇게 보다가, 마지막에는 팍팍 무쳤다.

달래 먹고 냠냠

달래 한 단이 든 포장지를 열었더니 특유의 알싸한 향이 훅 치고 든다. 마늘 향이라고 해야 할지 아니면 대파 향 같기도 한데 어느 쪽으로든 고약하진 않다. 달래는 봄의 찌뿌드드한 미각을 깨우는 대표 봄나물이다. 아담하게 차오른 뽀얀 알뿌리며 곧고 푸르게 자라난 이파리며 푸릇한 기운을 머금고 있다. 달래를 먹어 치우는 방식이야 각자의 자유에 맡기면 될 일이지만 송송 썬 달래와 간장, 참기름, 통깨를 주축으로 한 달래장을 최고로 친다. 맨밥에 척 올려 비벼 먹어도 그만, 김에 싸 먹어도 좋고 콩나물밥이니 버섯밥이니, 각종 솥밥에 들이부으면 원재료의 묘미를 해치지 않으면서도 향기롭다. 불에 살짝 그슬린 날 김에 쌀밥과 함께 싸 먹기 시작하면 한도 끝도 없이 입을 벌리게 된다. “봄이라 식욕이 가물하다”라느니 그런 소리가 쏙 들어간다.

 

흙내 폴폴 냉이

냉이 맛을 모르고 살던 어린 날, 세상에 웬 잡초를 다 먹나 싶었다. 엄마가 “아” 하고 냉이를 내밀면 “윽” 하고 입을 닫았다. 냉이는 겨울의 언 땅을 온몸으로 버티는 풀이다. 잎은 얼지 않으려 납작 엎드리고, 뿌리는 언 땅을 파고들기 좋게 가늘고 길다. 냉이에서 특유의 달큼한 흙내가 나는 이유란다. 흐르는 물에 팔이 떨어질 지경으로 잔뿌리까지 잘 씻는다. 그래야 흙을 씹는 참사를 방지할 수 있다. 뭐니 뭐니 해도 냉이엔 된장찌개 아닐까. 맑은 찌개 대신 일명 ‘고깃집 된장찌개’ 스타일로 긴 시간 뭉근하게 끓인 뚝배기에 지치도록 씻은 냉이를 수북이 올리면 사람 많은 꽃놀이 같은 건 생각나지 않는다. 냉이의 고향은 뜻밖에도 유럽이다. 올리브 오일을 베이스로 한 파스타에 바지락과 마지막에 냉이를 쌓아 올려도 그 존재감은 확실하다. 한결 고상한 것 같은 ‘정신적인’ 장점도 있다.

 

다재다능 참나물

원래 참나물의 제철은 8월이지만, 특유의 상큼함으로 봄나물의 자리까지 꿰차게 된 형국이다. 막상 식탁에 올라온 참나물을 참나물로 알고 먹은 일은 드문 것 같다. 봄에는 그렇게 나물을 먹는다. 참나물을 알고 제대로 맛보았을 때 특유의 향미에 감탄했다. 특히 데치거나 양념하지 않은 날것 그대로를 뜯어 먹을 땐 나물이라기보다는 흥미로운 허브를 대하듯 다시 보게 됐다. 싱그럽고 개운한 향은 셀러리와 미나리의 좋은 점만 잘 섞어놓은 듯 여운이 길다. 생으로 먹을 땐 두부와 함께하는 것도 방법이다. 묵묵한 담백함을 품고 있는 두부의 부드러운 맛에 경쾌한 산미가 쫙 퍼진다. 맑고 삼삼한 국물 요리에 참나물 한 움큼을 쿨하게 흩뿌리면 풍성한 향과 식감이 배가 된다. 쑥갓이나 미나리, 고수 대용으로 써도 못지않은 쾌감을 낸다.

 

와사삭 돌나물

돌에 살면서 번진다고 ‘돌나물’이라 이름 붙은 돌나물은 지역에 따라 돗나물이나 돈나물로도 불린다. 새싹처럼 작고 통통한 잎 속에 수분이 가득해 아삭아삭 씹히는 식감에 더해 팡팡 채즙이 터진다. 개운하면서도 깔끔한 풍미 덕분에 살랑살랑 가볍게 무쳐 먹기 좋다. 제일 만만한 건 역시 초고추장일 텐데 매콤하고 상큼한 것이 식전 입맛을 자극한다. 돌나물은 손으로 박박 주물러 무치면 풋내가 나며, 무친 다음 오래 두면 숨이 죽어 특유의 생생한 맛이 사라진다. 그럴 바엔 드레싱을 두르듯 살포시 끼얹어 내는 게 낫다. 사실 봄나물과 초고추장의 조합은 안전한 고전이지만 참신함은 떨어진다. 오동통한 돌나물에 올리브 오일과 레몬즙, 사과 몇 쪽만 잘게 썰어 올려주면 가볍고 간편하지만, 세련된 샐러드 한 접시가 금세 완성이다.

 

드랍 더 두릅

두릅나무 끝에 눈송이처럼 솟아나 우산처럼 펴지는 두릅은 새순이라서 그런지 보송보송 연하고 귀여운 구석이 있다. ‘산채의 왕자’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을 만큼 귀한 두릅은 사포닌이 들어 있어 쌉쌀하면서도 나무의 독특한 향을 낸다. 손질할 땐 가시에 유의한다. 질 좋은 식자재의 제1 법칙이 그렇듯 복잡하게 조리하지 않는 게 맛을 느끼기에 좋다. 소금을 넣은 뜨거운 물에 2분 정도 데쳐서 초고추장을 훑고 지나가듯 살짝 찍어 먹으면 씁쓸한데 달착지근하고, 부드러운데 까슬까슬한 것이 영락없이 새봄의 맛이 입안 가득 춤을 춘다. 두릅 초보자에게는 튀김을 추천한다. 튀김은 만능 치트키 아닌가. 깨끗한 기름에 데치듯 튀긴 두릅튀김에는 간장보다는 산뜻한 레몬즙 몇 방울이 더 낫다. 고운 소금 한 꼬집을 솔솔 뿌려도 개운하다.

 


쓰다고 씀바귀

고들빼기, 도라지와 더불어 쓴맛을 논할 때 빠지면 서운한 씀바귀는 쓴맛이 하도 강해 이름마저 씀바귀다. 입에는 쓰나 비위에 역한 법은 없다. 약간씩 집어 먹으면 둔감해진 입맛에 생기가 돈다. 이른 봄에 수확한 어린 씀바귀는 상대적으로 부드러운 쓴맛이 은은하니 산뜻한 나물로 무쳐 먹어도 썩 괜찮다. 씀바귀는 매콤달콤 새콤한 고추장 양념과 환상의 궁합을 자랑한다. 특유의 불편한 쓴맛은 중화시키고 은은한 단맛과 구수함은 끌어올린다. 쌈 채소로도 좋다. 한 쌈에 씀바귀 몇 뿌리를 슬쩍 올리면 맛의 구색이 다채로워진다. 민들레와 닮은 샛노란 씀바귀꽃의 꽃말은 ‘순박함’이다. 여기저기 다 까탈스럽기만 한데 묵묵히 자리를 지키며 피어나는 씀바귀꽃은 흔하지만 듬직하다. 봄에 씀바귀를 많이 먹어두면 여름에 더위를 덜 탄다고 하니 역시 입에 담아 쓴 것이 몸에는 이롭단 말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