팬데믹 시대를 슬기롭게 헤쳐나가고 있는 에디터가 초대받은 곳은 어디일까? 새로운 경험을 제안하는 재미와 실험 사이의 패션 신에 들어가봤다.

 

“VR 매장으로 초대합니다.” 패션 행사 초대장에 VR 매장, 증강현실 쇼룸 등의 단어가 심심찮게 등장하고 있다. 이는 사회적 거리 두기는 지키면서 브랜드의 새로운 컬렉션을 선보일 수 있는 방법 중 하나이기 때문. 직접 만나지 않아도 제품을 눈앞에 있는 것처럼 보여주기 위한 패션하우스의 바람은 3D, VR, AI 등의 다양한 기술을 더욱 빠르게 패션계로 끌어들였다.

초대받은 디지털 세상 속에서는 손가락만 움직이면 모든 곳을 돌아다닐 수 있다. 두 발 대신 줌아웃이나 클릭 몇 번이면 매장 곳곳을 마음껏 살펴볼 수 있는 것은 물론 점원에게 묻지 않아도 보고 싶은 제품의 자세한 디테일이 설명서처럼 눈앞에 펼쳐진다.

 

가장 먼저 코치는 ‘디즈니 미키마우스 X 키스 해링’과의 협업 컬렉션을 디지털 팝업 전시로 공개했다. 이들의 디지털 쇼룸에서는 익스클루시브 캠페인 영상을 시청하고 돌아다니면서 키스 해링처럼 직접 아트 스타일을 꾸밀 수 있도록 하는 등 디지털 속에서만 느낄 수 있는 경험을 제공한다.

 

또 발렌티노는 랜선 집 투어 ‘발렌티노 인사이트’를 공개했는데, 발렌티노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피에르 파올로 피촐라의 집에서 영감을 받아 만들었다고. 리빙룸 테이블 위, 소파 옆, 벽에 걸린 액자 등에서 그가 만든 발렌티노의 컬렉션을 작품처럼 확인할 수 있고, 거실 한복판에는 음악을 들을 수 있도록 플레이리스트까지 담아놨다. 마치 친한 디자이너의 방에 놀러 간 듯한 느낌의 색다른 놀거리가 가득하다. 디지털 기술이 매장 투어만 구현한 것은 아니다. 살바토레 페라가모는 마이크로소프트와 그들의 기술 파트너 헤볼루스와 함께 혁신적인 증강현실 서비스를 제공한다. 온라인상에서 증강현실을 통해 트라메짜 남성 신발 컬렉션의 맞춤화를 선택할 수 있도록 돕는 것. 디지털 화면 속에서 신발을 고르고 3D 복제와 상호 작용해 재료, 색상, 디테일, 마감재 등을 선택해 자신만의 MTO서비스를 즐길 수 있다. 이 플랫폼은 고객이 마이크로소프트의 홀로랜즈 2/ 홀로그래픽 컴퓨터를 착용하고 가상공간에 들어가 현실감 있게 확인할 수 있도록 돕는다. 아쉽게도 한국에는 아직 서비스되지 않지만 머지않아 우리도 쇼룸에 있는 것처럼 메이드 투 오더를 할 수 있는 날이 오지 않을까.

 

이쯤 되면 집에서 옷을 피팅해볼 수는 없을까 욕심이 생긴다. 온라인으로 옷을 구매했을 때 가장 걱정되는 부분은 바로 사이즈다. ‘온라인 쇼핑할 때도 나에게 꼭 맞는 옷을 찾을 수만 있다면?’ 고민하고 있을 때 마치 인형놀이하듯 옷을 입혀볼 수 있는 앱을 찾았다. 바로 패션 테크 회사 에이아이바에서 만든 가상피팅 앱 ‘마이핏’이다. 이 앱은 스마트폰 카메라로 사람의 앞과 옆면을 촬영해 업로드하면 자신의 신체 사이즈를 얻고 신체 사이즈와 일치하는 가상의 아바타를 통해 옷 사이즈를 가늠할 수 있도록 만든 앱이다. 앞과 옆면이 나온 두 장의 사진에서 추출한 위치값을 분석해 인체의 사이즈값을 계산하는 방식이다. 이를 통해 만들어진 가상의 아바타에게 마음에 드는 옷을 입히면 각 부위마다 사이즈를 체크해 어울리는 사이즈를 추천하고 수선 정보까지 제공해준다. 앱을 다운받아 성별과 키를 입력하고 앱 순서에 따라 앞과 옆(몸매가 드러나는 옷을 입고) 사진을 찍어 업로드했다. 3D로 구현한 나와 비슷한 모양의 아바타가 등장하고 곳곳의 신체 사이즈가 자세하게 표시된다. 약간의 오차는 있지만 거울로만 보던 내 모습을 아바타를 통해 확인하니 새삼 신기하다. 여기에 내가 마음에 드는 옷을 선택해서 입히면 된다. 아직 쇼핑까지 원활하게 이뤄지는 단계는 아니지만(현재 사이즈를 체크할 수 있는 콘텐츠만 구현, 쇼핑 콘텐츠는 2월 말 업데이트 예정) 이 회사는 이미 지난 2020 코카 디지털 패션위크와 2021 봄/여름 서울 패션위크를 통해 VR 패션쇼를 선보일 정도로 패션에 대한 이해와 기술력을 보유했으니 시간을 두고 기다려볼 가치가 있을 듯하다.
제품 핏과 소재 표현, 재단이 복잡한 것은 물론 고객의 개인적인 신체 특징까지 정확하게 구현해야 하는 패션산업의 특성상 증강현실을 활용한 신기술을 바로 접목하기란 그리 쉬운 일은 아니다. 또 신제품 출시 주기가 빠른, 유행에 민감한 분야라 제품의 3D 객체를 만드는 비용이 만만찮은 것도 현실. 집에서 쇼핑을 하는 일이 머지않았다고는 하지만 아직은 직접 보고 입고 신는 것이 익숙한 에디터에게 디지털 세상은 그저 흥미로운 게임 같은 공간으로 남아 있다. 익숙한 것과 새로운 것, 재미는 있지만 아직은 생소함으로 가득한 버뮤다 삼각지대 같은 곳에 서 있는 것과 다르지 않다.
하지만 아직 포기하기엔 이르다. 이 미스터리만 풀리면 진짜 새로운 세상이 열릴지도 모르니까. 에디터도 집에서 프랑스에 있는 매장을 방문해 모바일로 옷을 입고 클릭 한 번으로 구매할 수 있는 날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