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예슬은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고 오로지 자신이 믿는 길을 간다. 한예슬은 아찔한 개척자다.

 

언밸런스한 블랙 드레스는 니나 리치 바이 한스타일닷컴(Nina Ricci by Hanstyle.com). 꽃 모티브 장식의 샌들 ‘샤샤 2’는 슈콤마보니(Suecomma Bonnie).

당신이 타인을 마주할 때의 태도가 궁금하네요. ‘한예슬’은 어떻게 사람을 보나요? 
저만의 기준이 분명히 있죠. 제 관점을 투영해 타인을 바라봐요. 기본적으로는 상대에게 호감과 호기심을 가진 상태로요. 당연한 말이겠지만 나와 비슷한 성향을 가진 사람에게는 편안함과 친근함을 느끼죠. 무조건 비판적인 태도를 가진 사람은 별로예요. 가까운 곳에서 오래 함께하기에는 힘들죠. 결국 그 뾰족한 잣대가 저를 향해 날아올 수도 있으니까요.

잘 모르는 다른 사람은 당신을 어떻게 볼까요? 그걸 의식해요?
아니요. 타인이 나를 어떻게 보는지, 그건 그다지 신경 쓰지 않아요.

자기 자신을 잘 알아요? 스스로가 어떤 사람인지 정의할 수 있나요?
그럼요. 저는 저에게 굉장히 엄격하면서 동시에 자유롭고, 게으르면서 부지런해요. 차갑지만 따뜻한 온기를 품고 있고요. 긍정적인 면과 회의적인 면을 함께 가지고 있어요. 아주 열정적이지만 굉장히 비관적이기도 해요. 한마디로 모순덩어리라고 정의할 수 있죠.(웃음)

지브라 패턴의 미니 드레스는 8 몽클레르 리차드 퀸(8 Moncler Richard Quinn). 탈착 가능한 꽃 장식 스니커즈 ‘플로르 3’는 슈콤마보니.

다양하고 다채로운 삶이라고 볼 수도 있죠. 자주 뒤돌아보는 사람이 있고, 무조건 앞만 보는 사람도 있어요. 단지 오늘을 사는 사람도 있겠네요. 당신은 어때요?
그냥 지금을 살아요. 무조건 앞만 본 상태로요. 내일 일은 내일 일이죠. 걱정이든 희망이든 내일 일은 내일 생각해요.

오늘은 뒤를 한번 돌아보면 어때요? 2001년 참가한 슈퍼모델선발대회를 공식적인 데뷔로 계산하면 올해로 데뷔 20주년이더군요. 
금방인 것 같았는데 사실 긴 시간이죠. 끝나지 않는 서바이벌 게임에 참여했다는 생각이 먼저 드네요. 아직도 끝나지 않은 느낌이 들어요. 어쩌면 인생이 그런 걸지도 모르죠. 제가 어떻게 보이세요? 누군가는 한예슬의 삶에 고통은 없고 오로지 꽃길만 걸어왔을 거로 생각하더라고요. 근데 삶은 똑같이 힘들어요. 그게 누구든지요. 니체가 그러더라고요. “삶은 고통이고 생존은 고통에서 교훈을 얻는 것이다(To live is to suffer, to survive is to find some meaning in the suffering).”

고통의 무게만큼 영광의 무게도 공평한지도 모르죠. 지난 시간 중 생생하게 남아 있는 영광의 순간은 언제인가요?
미국에 살다가 혼자 한국에 왔거든요. 외롭게 생활하다가 처음으로 드라마의 주연을 맡게 된 순간, 그 작품의 첫 촬영장, 첫 신을 촬영하던 순간은 지금도 잊을 수 없죠. 그 감동이요. 아주 대단한 시상식에서 상을 받는 것보다 더 감동스러운 순간이거든요. 어제 일처럼 생생해요.

블랙 맥시 드레스는 레나 루멜스키 바이 아데쿠베(Lena Lumelsky by Adekuver). 핑크 리본 장식의 스니커즈 ‘버드웰’은 슈콤마보니.

후회는 없어요? 아쉬움이나 미련으로 남아버린 순간이요.
후회 안 해요. 그땐 분명 그게 최선이었을 테니까.

20대는 어땠어요? 20대를 돌아보면 좀 그렇잖아요. 왜 그랬나 싶으면서 왜 그럴 수밖에 없었는지 이해하게 되죠. 
참 당돌했죠. 지금 생각하면 헛웃음이 나올 정도로요. 20대의 한예슬은 도무지 멈추어 설 줄 모르는 에너자이저였어요. 삶에 대한 무한한 호기심과 미래에 대한 부푼 기대감으로 어쩔 줄 몰라 하며 하루하루를 살았던 거 같아요.

언제라고 정확히 규정할 순 없는데요. 어느 날 불쑥 당신이 완전히 다른 사람처럼 보이기 시작했어요. 외모나 태도 전부 다 그래요. 알을 깨고 나온 것처럼. 
정말요? 그게 언제였을까요? 되게 궁금하네요. ‘알을 깨고 나왔다’는 표현이 너무 귀엽고 마음에 들어요. 어느 날 갑자기 찾아온 깨달음 같은 게 있었던 것 같아요. 원래는 두려워하던 모든 것이 어느 순간 두렵지 않게 됐어요. 전혀요.

블랙 맥시 드레스는 레나 루멜스키 바이 아데쿠베. 진주를 장식한 로퍼 ‘클레어 2’는 슈콤마보니.

스터드 장식의 미니 원피스는 데이비드 코마(David Koma). 크리스털 장식의 미드힐 슬링백 ‘문빔 3’는 슈콤마보니.

어떤 계기나 이유가 있었나요?
제 나름의 깊고 어두운 시간을 버텨낸 다음 얻게 된 능력이 아닐까요? 전 그렇게 믿고 있어요.

20대를 지나왔고 이 일을 한 지 20년 가까이 흘렀어요. 안정적인 자리에 머문 채 고이려면 그럴 수도 있었겠죠. 당신은 머무는 대신 함께 흐르고 있는 것 같아요. 어떤 위험마저 감수한 사람처럼 보이죠.
전 제 삶을 정말 사랑해요. 하지만 동시에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에 전적으로 동의하기도 해요. 다시 한번 말하지만 정말 모순덩어리죠.(웃음) 살아 있으므로 느낄 수 있는 거잖아요. 삶이 가져다주는 빛나는 순간 전부를 알고 싶고 직접 경험해보고 싶어요. 마냥 안정적이지 않으면 어때요? 혹시 그 끝에 허망함만 남는다고 해도 괜찮아요.

삶을 사랑하는 사람들은 자신의 삶뿐만 아니라 타인의 삶 또한 관찰하는 걸 즐기는 법이죠. 당신도 그래요?
호기심이 아주 충만한 상태로 열심히 관찰하죠. 세상에서 가장 흥미로운 건 사람이에요. 전 정치나 경제 같은 건 전혀 궁금하지 않아요.

메시 디테일 드레스는 레나 루멜스키 바이 아데쿠베.

할 말은 꼭 해야 하는 사람이죠?
할 말은 하고 살아야죠. 그렇다고 악의적인 마음을 품고 다른 사람을 공격하지 않아요. 그냥 제 생각과 의견을 표현하는 것뿐이죠. 상대방도 그러기를 바라요. 그때그때 할 말을 하지 않고 참는 거 너무 답답하지 않아요? 심해지면 화병이 나서 죽을지도 몰라요.(웃음)

말은 오해와 억측을 동반하기도 해요. 유명인의 말은 특히 더 그렇죠. 신경 쓰이지 않아요?
말을 안 하면 안 하는 대로 오해와 억측이 난무하던데요. 내가 당당하면 되죠. 그럼 견딜 수 있어요. 상관없어요.

최근 어떤 인터뷰에서 “결혼 생각도 없고, 결혼하면 아이를 꼭 가져야 한다는 생각도 없지만, 여자로서 아이를 가져보고 싶다”고 말했어요. 마치 지금 필요한 화두를 던지는 것처럼 보였어요. 
말 그대로예요. 제가 순진한 소녀처럼 결혼과 출산에 판타지를 갖고 있을 리는 없잖아요. 오히려 결혼과 출산이 가져오는 현실적인 고통과 희생에 대해서 더 잘 알아요. 아이를 갖는다는 건 살면서 제가 경험해보지 않은, 짐작조차 할 수 없는 삶의 기적일 거예요. 그 기분을 알고 싶어요. 궁금함과 호기심만으로 선뜻 실천할 만한 일이 아니라는 걸 알기 때문에 참 어려운 문제 중 하나예요.

레이어드한 가죽 장식은 준야 와타나베 바이 10 꼬르소 꼬모(Junya Watanabe by 10 Corso Como). 슬립 드레스는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스포티한 감성의 러플 디테일 샌들 ‘버드볼’은 슈콤마보니.

주름 장식의 드레스는 니나 리치 바이 한스타일닷컴. 다채로운 컬러 디테일의 스포티 샌들 ‘버블 픽’은 슈콤마보니.

아이를 낳고 기른다는 건 “내가 너를 기꺼이 책임지겠다”는 묵직한 결심 아닐까요? 혼자일 때와는 전혀 다를 거예요.
맞아요. 아이가 생긴다면 전 그 아이에게 제 영혼을 다 바칠 거예요. 그럴 수 있어요. 하지만 역시 두려운 것도 사실이죠.

당신은 어떤 부모가 될까요? 어떤 부모가 되고 싶어요?
엄마와 아빠의 역할을 동시에 하는 싱글맘이 될 수도 있지만, 사랑하는 파트너와 함께라면 더 좋겠죠. 자신이 사랑받고 있다는 걸 언제든 느끼게 해주고 싶어요. 모든 순간에요. 그런 부모가 되고 싶어요.

주눅들거나 눈치 보지 않고 떳떳하게 용기 낼 수 있는 힘은 어디서 나와요?
종교를 가지고 있어요. 기독교. 전 정말 엉망진창인 사람인데 그런 저를 무조건 사랑해주는 하나님이 있어요. 아마 그 덕분인 것 같아요.

역시 믿는 구석이 있군요. 신을 믿는 것처럼 자기 자신을 믿어요? 강하게?
저 자신을 절대적으로 믿는다고 확신할 순 없어요. 다만 최선을 다할 뿐이죠. 제가 강하다는 건 알아요. 그건 아주 굳게 믿고 있어요.

레이어드한 가죽 장식은 준야 와타나베 바이 10 꼬르소 꼬모. 슬립 드레스는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가죽 꼬임 디테일의 미드 힐 스트랩 샌들은 슈콤마보니.

입춘의 2월은 여전히 한겨울이지만, 경칩의 3월은 확실한 봄이죠. 봄을 기다려요?
너무 좋아하죠. 봄을 정말 좋아해요. 모든 게 다 새롭게 태어나는 계절이니까요. 여름은 생명력이 넘치고요. 가을은 낭만적이니 그 모습 그대로 좋아요. 추운 겨울은 좀 힘들지만.

지금 뭐가 보여요? 당신은 어느 방향을 보고 나아가나요?
현재에 집중해서 오늘을 살 것. 쉼 없이 배우고 도전하고 성장하고 발전하기 위한 노력을 멈추지 않을 것. 그걸 바라보고 생각하면서 살아요.

오늘 촬영에선 이런저런 신발을 원 없이 신었네요. 올해는 어디든 훌쩍 떠날 수 있다는 믿음을 강하게 품으면서, 좋은 신발 신고 어디에 갈래요? 
떠날 수만 있다면 어디든 다 좋지만, 지중해의 어느 도시라면 좋겠네요. 눈부신 햇살과 따스한 바람을 느끼며 한없이 걷고 싶어요. 동네의 소박한 카페에 앉아서 에스프레소나 와인 한 잔을 마셔도 좋고요. 사브리나 클라우디오의 음악을 들으면서요. 제가 아는 한 세상에서 가장 편안한 슈콤마보니의 운동화를 신고요.(웃음)

지브라 패턴의 미니 드레스는 8 몽클레르 리차드 퀸. 반짝이는 실버 소재의 펌프스 ‘쉬라즈’는 슈콤마보니.

*본 기사에는 협찬이 포함되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