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의 장르로 완전히 자리 잡은 하이패션과 스포티즘의 만남.

 

기능과 실용이 먼저 부각되는 스포츠 브랜드는 하이패션이 엄격한 역사를 관통해 이룬 고급스러움을 탐닉했고, 하이패션은 서브 컬처를 베이스로 하는 스포츠 브랜드의 타고난 쿨함을 열망했다. 2000년대 이래로 둘은 운명적 끌림에 의해 손을 맞잡았고, 그 화합은 지금껏 풀릴 줄 모르며, 오늘날 피고 지는 트렌드가 아닌 하나의 장르로 굳건하게 자리 잡아 그 가치를 증명했다. 한 몸을 이룬 스포티-시크의 본질은 트랙슈트, 아노락, 야구점퍼 등 스포티 아이템을 기능이 아닌 패션 아이템의 하나로 바라보는 데서 시작한다는 것이다. 매혹적인 룩을 완성하는 하나의 스타일 도구로 인정하는 데서 출발하는 것. 일례로 H라인 스커트에 하이힐을 신고 낙낙한 아노락을 무심하게 걸친 여인을 상상해보자. 클래식한 레귤러 셔츠에 방수 기능이 있는 버석버석한 스포티 스커트를 매치한 여성은 어떤가. 낯선 결합이 불러오는 예측 불가능한 틈의 미학은 이론적으로 설명이 불가하다.

스포티즘을 손안의 장난감처럼 잘 가지고 노는 루이 비통의 니콜라 제스키에르는 이번 시즌 역시 많은 스포티 아이템을 런웨이에 올렸다. 미래지향적인 디자인에 레트로 무드를 더해 과거와 현재, 미래가 밀접하게 관련을 이룰 수 있도록 재편했다. 1970년대풍 딱 붙는 팬츠와 뾰족한 굽의 앵클 부츠에 우주선이 연상되는 높은 워머를 더한 오버사이즈 아노락을 매치하거나, 러플을 장식한 무릎 길이의 A라인 스커트에 어깨가 도드라지는 메탈릭한 바이커 재킷을 더하는 식이다. 튤 드레스와 러플을 겹겹이 쌓아 마치 페티코트를 연상시켰던 스커트는 컬렉션이 드라마틱함을 유지하는 데 큰 공을 세운 하나의 아이템. 여기에 더한 스포티 아이템은 자유분방하면서도 고상한 이미지로 컬렉션의 완성도를 높였다. MM6 메종 마르지엘라와 쟈딕앤볼테르는 각각 노스페이스, 어니스티 리오티와 협업하며 보다 확실한 협업을 보여주었다. 먼저 MM6 메종 마르지엘라는 기능적 아웃도어 웨어라는 이미지 강한 노스페이스를 그들만의 독창적인 감각으로 재해석했다. 팔이 없는 아노락을 컬러풀한 트랙팬츠 슈트에 더하거나 케이프처럼 실루엣을 변형한 패딩을 패턴 있는 이너 톱과 매치해 불균형한 연출이 주는 아름다움을 마음껏 누렸다. 퍼플, 그린, 오렌지 등의 컬러 팔레트 역시 적재적소에 쓰인 블랙과 어우러져 최고의 밸런스를 선사했다. 쟈딕앤볼테르의 런웨이를 장식한 어니스티 리오티는 프랑스 감성의 테일러드를 기반으로 하는 럭셔리 액티브웨어 브랜드다. 슬리브리스 톱에 매치한 컬러 블록 아노락, 짧은 가죽 스커트에 더한 니트 풀오버 등이 바로 이들의 작품. 젠더리스한 나머지 컬렉션 피스와 어우러진 스포티 피스는 컬렉션 전반에 활기를 더하며 눈길을 사로잡았다.

그 밖에 진주 네크리스와 클래식한 레이스 스타킹에 복서 쇼츠를 매치한 에밀리오 푸치, 거대한 맥시 주름 스커트에 짧은 아노락을 더한 오프화이트, 관능적인 레오퍼드 코트 안에 캐주얼한 트랙슈트를 매치한 톰 포드 등 런웨이 속 스포티 터치는 살펴보는 것만으로도 재미가 쏠쏠하다. 이번 겨울에는 옷장 속에서 깊이 잠들어 있는 아노락을 깨워 코트 안에 매치해보면 어떨까. 레저용 스트레치 팬츠, 저지 농구 유니폼, 오래된 야구점퍼 등 어쩌면 당신의 옷장은 생각보다 더 많은 보물을 품고 있을지도 모른다.

줄무늬 캔버스 코트는 44만원대 가니 바이 매치스패션(Ganni by Matchesfashion).

 

컬러 블록과 스터드 장식의 스니커즈는 가격미정, 크리스찬 루부탱(Christian Louboutin).

 

무선이어폰을 넣을 수 있는 가죽 팔찌는 가격미정, 프라다(Prada).

 

아세테이트 선글라스는 59만원대, 발렌시아가 바이 매치스패션(Balenciaga by Matchesfashion).

 

가죽 트리밍의 벌룬 팬츠는 2백50만원, 로에베(Loew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