핫하다는 카페에서, 셀러브리티의 촬영장에서, TV 광고에서 어김없이 들려오는 그 노래는, 오래전 들었던 것 같은 시티팝이다. 2020년의 시티팝.

 

1994년 크리스마스 즈음 TV에서는 신은경과 김원준, 이병헌이 등장하는 X세대를 위한 화장품 선물세트 광고가 등장했었다. 거기에는 머라이어 캐리의 크리스마스 캐럴이 흐르고 있었는데, 한 번도 좋아한 적이 없는 그의 목소리를 들으면서 급작스러운 기대감이나 흥분 같은 것이 생겼던 기억이 난다. 그 크리스마스 광고가 나오기 6년 전, 일본의 철도회사 JR은 크리스마스 익스프레스 TV 캠페인 음악으로 야마시타 타츠로의 ‘Christmas Eve’를 선택했다. 시리즈로 진행된 이 광고에는 크리스마스에 사랑하는 사람을 기다리면서 갖게 되는 떨림이나 기대감, 혹은 행복감 같은 것들이 잘 표현되어 있다. 그리고 타츠로의 음악은 그 모든 감정을 증폭시키는 역할을 한다.

21세기가 되어 사람들은 갑자기 시티팝을 얘기한다. 그리고 종종 시티팝이 대체 어떤 음악을 의미하는 것인지 묻는다. 지극히 주관적인 표현이 되겠지만, 이 음악을 얘기하자면 앞서 언급한 두 가지 광고의 영상과 음악이 제공하는 감정, 이를테면 크리스마스의 로맨스 같은 것을 기대하는 두근거림에 관한 음악이거나 1980년대 도쿄나 1990년대 초중반 서울 같은 도시의 배경음악 같은 것이라고 설명할 수 있을 것 같다. 1990년대 초중반의 서울은, 1980년대의 도쿄는 이전 세대에 없었을 풍요로움과 확대된 자유, 취향에 대한 존중, 그리고 미래에 대한 희망으로 들떠 있었다.

일본어 위키피디아에서는 시티팝을 이렇게 설명한다. ‘1970년대 후반부터 1980 년대 사이 일본에서 유행한 음악 중에서 도시적이고 세련된 서구 지향 멜로디와 가사를 가진 대중음악. 록과 포크를 일본식으로 소화한 일종의 하이브리드 음악을 모태로 하지만 정해진 스타일도, 명확한 정의도 없다.’

시티팝 앨범 아트워크의 상징이라 할 수 있는 일러스트레이터 나가이 히로시는 시티팝의 의미를 묻는 질문에 ‘당시에는 그런 단어를 들어본 적이 없다’고 답한 적이 있다. 당사자들보다는 음악을 마케팅하는 주체들이나 TV 광고를 제작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어쩌면 더 중요하게 얘기되었을, 그러니까 이름을 앞세워 음반을 쉽게 판매하고자 하는 목적을 두고 있었거나 일련의 음악을 통해 브랜드와 제품을 세련된 이미지로 포지셔닝하고자 하는 상업적 의도가 다분한 작명이었을 것이다.

1990년대 서울에도 마찬가지의 움직임은 있었다. 다만, 그 당시에는 하우스 음악을 바탕으로 한 댄스 음악이나 팝적인 R&B 음악이 주류였고 따라서 당시 광고 음악은 그 흐름을 반영하고 있었다. 그러니까, 만약 1980년대 도쿄의 음악가들이 다른 스타일의 음악에 빠져 있었다면 우리가 아는 시티팝은 전혀 다른 음악으로 남아 있었을 수도 있다. 그래서 이 단어는 음악 장르에 관한 용어라기보다는 풍요로웠던 한 시대의 소비를 예찬했던 마케팅용 조어라고 보는 것이 맞을 것 같다.

버블경제 시대의 활력이 사라진 2010년대에 이 음악이 다시 주목을 받게 된 과정은 매우 복합적이어서 단정적으로 표현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2000년대 초반부터 디제이들이나 음악가들 사이에서 1970년대 소프트록/AOR(‘성인 취향의 음악’이라는 뜻인데 이 단어 역시 일본에서 만들어졌다)이나 1980년대 신시사이저 팝음악이 재평가되고 있었고, 그 흐름이 유튜브 같은 인터넷 공간을 통해 날개를 달고 광범위하게 퍼져나간 것이 주된 계기였던 것만은 확실하다. 일본 바깥에서는 거의 알려진 적이 없는, 심지어 들을 기회조차 없었던 이 시티팝은 새로운 세대들에게는 ‘신선한 발견’일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2010년대부터 본격화된 바이닐 레코드의 중흥기와 맞물려, 일본에서는 중고 레코드 품귀 현상도 생겨나기 시작했다. 이전에는 도쿄 그 어떤 레코드 매장에 가도 쉽게 볼 수 있었던 야마시타 타츠로의 <For You> 같은 앨범은 이제 도쿄 내에서도 구경하기 어려워진 것은 물론, 3~4년 전에 비해 7~8배의 돈을 지불해야 구매할 수 있는 레코드가 되었다.

AOR이나 신시사이저를 기반으로 한 과거 팝음악에 대한 재평가는 그것이 주류 음악계의 ‘트렌드’가 되어버리는 결과까지 이끌어냈다. 그저 ‘지금 유행하고 있는 음악’ 정도에 관심이 있는 소극적인 음악 청취자들마저 1980년대 일본 TV광고에서 흘러나왔을 법한 음악 스타일에 익숙해지고 있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들이 인터넷 인공지능이 추천한 타케우치 마리야의 ‘Plastic Love’를 우연히 듣고 ‘좋아요’를 누르는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니며, 음악을 다루는 공간에 가서 시티팝을 찾는 것은 자연스러운 흐름이 되었다. 찰나의 유행일까? 그러나 지난 몇 년간 그래왔고 적어도 앞으로도 몇 년간은 그럴 것이다.

– 김영혁(음악 칼럼니스트) 

 

지금 이 앨범

이 시점에서 들어볼 만한 시티팝 관련 음반을 몇 가지 소개하고자 한다. 지난 1년 사이 재발매되었거나 새롭게 기획된 앨범들 중에서 골랐다.

여러 음악가 Various Artists/ Pacific Breeze 2: Japanese City Pop, AOR & Boogie 1972- 1986(2020)

유럽과 북미에서 시티팝이 큰 인기를 얻게 되자 중고 레코드를 구하기 위해 도쿄행 비행기 티켓을 끊는 음악팬들이 늘어났다. 여전히 상당수 음악은 스트리밍 사이트에서 들을 수 없기 때문이다. 이런 무드 속에서 편집음반이 본격적으로 기획되기 시작했고, 시티팝을 가장 잘 담아낸 음반이라고 할 수 있다. 빈지노의 프로젝트 재지팩트가 발표한 <하루종일>에 사용된 안리(Anri)의 ‘Last Summer Whisper’를 포함해 오타키 에이치, 브래드 앤 버터, 아란 토모코 등 시티팝을 얘기할 때 1순위로 언급되는 음악가들의 곡들을 골라 담은 앨범이다.

 

마츠시타 마코토 Makoto Matsushita/ First Light(1981)

주로 세션 연주자로 활동하던 기타리스트 겸 작곡가 마츠시타의 첫 번째 솔로 앨범. 이 음반이 계기가 되어 요시노 후지마루의 앨범에 참여하게 되고, 결국 AB’S라는 밴드까지 결성하게 되었다. 주로 스튜디오에서 활동하는 연주자였기 때문에 당시 높은 인지도를 갖고 있는 음악가는 아니었지만, 이 앨범에 담긴 탁월한 기타와 베이스 연주가 주는 생동감, 단번에 귀에 들어오는 멜로디가 주는 흥분감이 인터넷을 통해 전 세계로 퍼져나가면서 어느 순간 ‘시티팝의 대표작’이 되었다.

 

시사이드 러버스 Seaside Lovers/ Memories In Beach House(1983) 

해변 사진이나 해변 풍경을 담은 일러스트는 시티팝 앨범 커버의 단골 소재다. 메이저 음반사였던 CBS/소니는 1970년대 후반 <사운드-이미지>라는 이름의 시리즈를 시작하는데 여기에도 바다가 자주 등장한다. 호소노 하루오미가 참여한 유명 앨범 <Pacific>, 사토 히로시, 이노우에 아키라, 마츠토야 마사타카 3명의 연주자와 작곡가들이 ‘시사이드 러버스’라는 프로젝트명으로 발표한 이 앨범 등이 대표적이다. 프로젝트 이름이나 앨범명에서 연상되는 것처럼 휴양지의 여유나 로맨틱한 무드를 팝, 재즈, 펑크, 크로스오버 음악으로 표현하고 있다.

 

오누키 타에코 Taeko Ohnuki/ Sunshower(1977)

발매 당시에 큰 인기를 끌지는 못했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점점 더 높은 평가를 받게 된 앨범. 시티팝의 시작점을 슈가 베이브의 ‘Songs’로 보는 이들이 많은데, 오누키는 이 밴드의 멤버였으며, <Sunshower>는 1977년에 발매된 그의 두 번째 앨범이다. 시티팝을 대표하는 명반이자 입문용으로 가장 많이 추천되는 앨범들 중 하나로, 우연이겠지만 이 앨범에서 가장 유명한 곡도 ‘Tokai(도시)’다. 오리지널 레코드는 한때 거래가격이 3백 달러에 육박할 정도로 매우 귀해서 국내외에서 재발매 요청이나 수요가 폭발적이었는데, 2017년 이후로는 종종 재발매되었고, 최근에는 2장의 레코드에 곡을 나눠 담은 ‘고음질’ 버전까지 등장했다.

 

키쿠치 모모코/ Momoko Kikuchi/ Adventure(1986)

시티팝을 얘기할 때 주로 언급되는 가수들은 대부분 TV 출연을 적극적으로 하지 않았던 인물들이다. 하지만 키쿠치 모모코는 1980년대 일본 최고의 인기 아이돌들 중 한 명이자 인기스타였고, 앨범이 발매된 1986년에도 악수회를 통해 27만 명을 동원하는 등 최고의 인기를 누리고 있었다. 만 18세의 나이로 발매한 그의 세 번째 앨범은 일본 바깥에서는 시티팝의 대표작으로 인식되고 있다. 이 앨범의 재발매 역시 북미 시장에서 먼저 이뤄졌다. 키쿠치는 아이돌 이미지에서 벗어나고자 1987년에 RA-MU라는 밴드를 결성하는데, 상업적으로 실패한 이 밴드의 데뷔작 역시 오늘날 시티팝 팬들에겐 열광의 대상이 되고 있다.

 

마미야 타카코 Takako Mamiya/ Love Trip(1982) 

앨범의 주인공이 단 한 장의 앨범을 내고 홀연히 음악계에서 사라졌기 때문에, 음악가의 존재는 물론 앨범 자체가 ‘도시 전설’이 되어버린 경우. 이 앨범 역시 발매 당시에 화제가 되었다기보다는 앨범의 수록곡들이 훗날 인터넷에서 회자되면서 더 유명해졌고, 경매 시장에서나 구경할 수 있을 정도로 매우 귀한 앨범이었다. 1980년대 초 시대의 분위기나 느낌이 고스란히 반영된 가사와 멜로디, 그리고 화려한 관악기 연주가 더해진 편곡은 시티팝의 전형이라고 할 수 있으며, 최근 들어 몇 차례 재발매되면서 이전보다는 구하기 쉬워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