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사랑한 스파이

냉전 시대를 기억하는 사람이 가진 향수인 것처럼, 스파이 소설을 읽으면 가슴이 뛴다. 스파이 장르의 대가로 손꼽히는 존 르 카레의 <스파이의 유산>은 대표작인 <추운 나라에서 돌아온 스파이>의 50년 후의 이야기로 2017년에 발표된 작품(그렇다, 1931년생 작가 존 르 카레는 엄연한 생존 작가다). 일명 ‘TTSS’로 불리는 <팅거, 테일러, 솔저, 스파이>의 조지 스마일리도 등장하지만 이 작품의 주인공은 피터 길럼이다. 은퇴 후 농장에서 평화로운 일상을 살고있는 피터 길럼에게 ‘서커스’에서 보낸 편지가 도착한다. 내용은 ‘윈드폴 작전’으로 인해 사망한 이들의 유가족이 정보부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다는 것. 이제 피터 길럼은 자신과 동지들의 ‘유산’을 돌아봐야 한다. 외무성을 위해 일한 경험이 있는 존 르 카레는 스파이를 멋진 시선으로만 보지 않았고, 오히려 시대의 요구에 따라 희생되고 소모된 존재로 보았다. 시간이 흐른 만큼 스파이들은 더욱 지치고 깊은 회의와 고뇌에 빠져 있다. 작가의 다른 작품인 <리틀 드러머 걸>을 드라마화한 박찬욱 감독이 직접 추천사를 썼다.

<어셴든, 영국 정보부 요원>은 서머싯 몸이 쓴 스파이 소설이다. 서머싯 몸이 제1차 세계대전 중 실제로 첩보 활동을 했다는 건 잘 알려진 이야기다. 작품에 등장하는 작가 어셴든이 작품 구상을 핑계로 각국을 오가며 만난 일화 위로 작가가 겹치는 것은 당연하기도 할 것이다. 본래 30여 편을 썼으나, 지금의 ‘기밀누설죄’에 해당할 수 있다는 처칠의 조언에 따라 절반은 파기했다고 전해지며, 나머지 16편이 책에 실려 있다. 그 시절을 서머싯 몸은 낭만적으로 추억하는 듯하다. 그의 임무는 여러 사람과 사교하며 정보를 수집하는 행위에 가까웠고, 덕분에 그 시절 유럽 사회의 분위기와 정세가 고스란히 담겨 있다. 아, 그때도 스파이에게 보답은 없었다. 스파이물의 클리셰인 사건사고가 생겨도 국가의 도움을 바라지 말라는 당부가 나온다. 물론, 어셴든은 그 일을 받아들인다. 세계 평화를 위해서.

이건 우리 안의 거리

오늘도 운전하면서 ‘인간성’을 생각했다. 매일 펼쳐지는 도로는 어느덧 인생의 축소판이 되고, 혼자 운전하는 일이 많은 운전자라면 한 번쯤은 도로 위의 철학자가 된다. 소설가, 다독가, 칼럼니스트, 번역가 등 다양한 활동을 하고 있는 작가 박현주는 도로 위에서 ‘관계’를 다시 생각한다. 담담한 필체에 깊이 있는 사유는 저자가 여러 상황에서 떠올린 책으로, 다시 인생이란 운전대를 잡고 있는 책 밖으로 우리를 끊임없이 안내한다. 책을 읽은 후 오늘의 도로는 어제보다 온화하게 느껴지고, 무엇보다 책에 언급된 책을 다시 읽고 싶다.

그녀의 집

1991년대생 작가 샐리 루니의 책을 읽다 니콜 크라우스를 떠올렸다. 1974년생인 니콜 크라우스가 첫 장편 <남자, 방으로 들어간다>를 발표한 것이 스물여섯 살이었고 지금 샐리 루니만큼의 찬사를 받았다. 니콜 크라우스는 이후 <사랑의 역사>, <어두운 숲>으로 자신의 작품 세계를 펼쳤고, <어두운 숲>은 7년 만에 내놓은 작가의 최신작이다. 출간을 기념해 작가의 대표작도 다시 함께 나왔다. 나란히 두고 보면 유대인이라는 정체성을 바탕으로 시선의 확장을 느낄 수 있다. 새로운 시대의 작가를 알리는 요란한 수식어는 없지만, 그렇기에 작가는 진짜 하고 싶은 이야기를 쓰고 있는 듯하다. <어두운 숲>은 그런 작품이다.

 


NEW BOOK 

<상처는 한 번만 받겠습니다>

정신과전문의 김병수는 어떻게 그럴 수 있을까. 진료와 연구를 하면서도 끊임없이 ‘마음’에 대한 글을 써낸다. 전문가의 이성과 작가의 감성이 조화된 글에서, 나도 몇 번이나 위로받았다. 이번 책에서 그는 좀 더 자신의 이야기를 한다. 인생은 누구도 쉽지 않고 상처는 우리를 할퀼 것이며, 그럼에도 치유된다는 것을 말한다.
출판저자 김병수

 

<물범 사냥>

지금도 비가 내린다. 벌써 50일째 마른 땅을 보지 못했다. 빙하는 2030년이면 다 녹을 것이라는 비관적 뉴스도 들려온다. <물범 사냥>은 북극해의 물범 사냥 시즌의 이야기다. 젊은 수의사 마리가 물범잡이 배에 탑승한 6주를 다룬다. 여성, 생명, 환경. 모든 것이 더없이 공포스럽다. 뭘 해야 할까?
출판 책공장더불어 저자 토르 에벤 스바네스

 

<내가 말하고 있잖아>

소설가 정용준의 신작은 한 소년의 이야기다. 말을 더듬는 소년은 언어 치료원에 다닌다. 도통 믿음직해 보이지 않는 원장은 소년과 치료원에서 만난 사람들에게 늘 별명을 붙여준다. 성장 소설과도 같은 이 따스한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면 소통의 본질에 다다른다. 말이 문제가 아니다. 마음이 문제다.
출판 민음사 저자 정용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