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손절각’을 재보았나? 인간관계와 멘탈 관리 사이에서 줄타기를 하고 있는 건 당신만이 아니다.

 

‘손절’은 손해를 감수하고도 더 큰 손실을 피하기 위해 매도한다는 뜻의 주식 용어다. 하지만 주식 투자를 하지 않는 사람에게도 손절이라는 말은 낯설지 않은데, 인간관계에서의 끝맺음을 뜻할 때도 쓰는 말이 되었기 때문이다. 타인과의 관계는 언제나 어렵고 복잡한 문제였으니 맺고 끊음 자체가 새로운 현상은 아니다. 하지만 이전의 절교, 절연과 달리 손절이 갖는 특유의 뉘앙스는 새로운 것이다. 주식의 손익 개념을 인간관계에 차용한 만큼, 감정적인 요소보다 실리적인 계산에 초점을 맞춘 표현이다. 말하자면 손절은 단순히 관계를 끊는 것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인간관계에서 가성비를 따지는 현상을 내포한다. 지난해 사람인에서 성인 4013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인맥 다이어트’에 대한 설문조사에서 인맥 정리의 경험이 있다고 답한 비율은 53.7%다. 주로 어떤 인맥을 정리했냐는 물음에는 ‘앞으로 교류의 가능성이 적은 사람(62%)’이 ‘최근 1년간 소통이 없었던 사람(55.6%)’보다 많았다. 미래의 양상을 예측한 후 판단하는 것 또한 주식투자의 원리를 꼭 닮았다. 이러한 손절은 개인주의가 팽배한 시대, 정 없는 ‘요즘 애들’의 이기적인 관계법일까 또는 전략적인 인맥관리법일까? 이에 답하기 위해서는 손절이 확산된 배경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

어쩌다 손절

처음부터 모든 인간관계를 플러스, 마이너스로 바라보는 사람은 없다. 아는 사람이 늘고, 시간은 부족하고, 감정도 체력과 같이 소모된다는 것을 느낄 때 비로소 관계에도 선택과 집중이 필요하다는 것을 깨닫는다. 강남푸른정신건강의학과의원의 신재현 원장은 실제로 우리가 맺는 인간관계의 양상이 달라졌다고 말한다. “이전의 관계가 좁은 지역에 한정된, 직접 교류 중심이었다면 이제는 더 넓고 간접적인 형태가 중심을 이룹니다. 관계의 수도 절대적으로 늘어나니 이 과정에서 효율을 따지기 시작했고요. 이 사람과의 관계가 나에게 도움이 될 것인지, 도움이 되려면 얼마큼의 노력을 투입해야 할 것인지 계산하게 되는 거죠.” 다수의 소비 트렌드 서적에서 이러한 흐름을 발견할 수 있다. 1인 가구의 정체성에 익숙한 지금의 세대는 대면 관계보다 디지털 관계를 통해 세계를 구현한다. 매체가 개인화될수록 관계는 얕고 넓어지는 특징을 보이는데 그에 따라 단발적이고 일회적인 관계가 급증했다는 것. 손절은 이처럼 전과 다른 규모와 성격의 인간관계의 장을 배경으로 자연스럽게 출현한 전략이다. 그렇다면 문제상황에서 중요한 것은 전략 그 자체가 아닌, 전략을 어떻게 사용하는가가 아닐까. 면밀히 따져봐야 하는 것은 언제, 어떻게 손절하느냐이다.

손절 적용법

다시 주식시장으로 돌아가서 생각해보면 간단하다. 손절은 손해를 정확하게 예측하고 매도한다면 나의 자산을 지킬 수 있는 최선의 방어이지만 섣부른 손절은 후회를 부를 뿐이며 뒤늦게 땅을 쳐도 돌이키기 힘들다. 그렇다면 인간관계에서의 상향과 하향을 어떻게 판단하고 예측할 것인가? 이에 대해 신재현 원장은 우선 자신의 인간관계 양상에 대해 면밀하게 들여다보는 시간이 필요하다고 답한다. “인간관계에서 발생하는 갈등이 스쳐 지나가는 일시적인 것인지, 반복적인 문제인지 파악해야 합니다. 후자의 경우 상대가 달라져도 반복해서 발생한다면 관계를 끊기에 앞서 자신에게 초점을 맞추어

그 원인을 생각해봐야 합니다.” 문제의 원인을 직시하지 않은 채 택하는 손절은 회피일 뿐이며 결코 전략적인 선택이 될 수 없다. 똑같은 문제가 발생할 때마다 근본적인 해결책을 찾기보다 인연을 끊어버리는 쪽을 택한다면 자기 자신을 고립시키는 함정에 빠지고 만다. 성공적인 손절을 하기 위해서는 현상태에 대한 객관적인 분석이 전제되어야 한다. <정신적 폭력으로부터 나를 지키는 방법>의 저자이자 일본의 정신과 의사인 가타마 다마미는 건강한 인간관계를 구분하는 방법 중 하나로 ‘기록’을 제안한다. 이때 중요한 것은 감정과 사실을 분리해서 기록해야 한다는 점인데 이 과정을 통해 여러 요소가 얽히고설킨 기억을 스스로 분석하며 상황을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게 된다. 이제 그 기록을 기반으로 나의 노력으로 바꿀 수 있는 것과 노력해도 바꿀 수 없는 것으로 나눈다. 만약 노력해도 바꿀 수 없는 것이 많거나, 가장 핵심적인 요소라면 관계를 정리하는 것이 나를 지키는 길이 된다. 이미 차단한 연락처가 꽤나 쌓여 있는 프로 손절러라면 한번쯤 상황을 돌아보는 것도 좋다. 특별한 갈등 상황이 있었던 것이 아닐지라도 관계에 있어 회의감이나 허무함을 느끼고 있지는 않은가? 조금 더 깊은 관계를 원하면서도 지속하기를 포기한 것은 아닌가? 손절은 틀린 방법은 아니지만 쉬운 방법이라는 점에서 가장 마지막에 고려해야 하는 선택지다. 앱, SNS 등 손가락 하나로 새로운 관계를 쉽고 빠르게 만들어낼 수 있는 시대에서는 역으로 쉽고 빠르지 않은 관계가 그만큼 귀해진다. 운명의 인연을 꿈꾸며 무턱대고 참고 살라는 이야기가 아니다. 재빠른 손절보다 느슨한 삼진아웃을 도입하는 방법도 있다는 걸 말하고 싶다. 주식 매도는 취소라도 할 수 있지만 인간관계에서 무르기 버튼은 찾기 힘드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