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on’t Categorize Me.” 그가 말했다. 배우 유태오는 더없이 자유롭다. 자신의 연기 속에서, 또한 삶 속에서.

 

브라운 슈트는 르메르(Lemaire). 브라운 로퍼는 구찌(Gucci). 펄 네크리스는 칸티크(Kantique).

<머니 게임>이 방영될 때 소속사에 연락했더니 이미 해외에서 다른 작품을 촬영 중이라고 하더군요. 어떤 작품인가요? 
아직은 말할 수 없어요. 촬영으로 갔던 건 맞아요.(웃음)

돌아와 자가격리까지 무사히 마치고 만나게 됐네요. 격리 기간 동안 집에서 뭘 하면서 시간을 보냈나요? 
지난 2년간 일을 엄청 많이 했어요. 오랜만에 보고 싶었던 드라마와 영화 보고, 요리하고, 니키랑 보드게임 하고 그렇게 보냈어요. 요즘 ‘카탄’에 미쳤어요. 지금 일주일에 한두 번씩 친구들이랑 모여서 밤새워 보드게임을 하고 있어요.

아내인 니키와 음식만 있으면 딱히 답답함을 느끼진 않는군요?
맞아요. 전 집이 너무 편하고 좋아요. 집을 같이 꾸미는 것도 좋아하고요. 운동기구는 조금 아쉽지만 그래도 집에서 운동을 할 수 있으니까 괜찮아요. 어떤 극단적 상황에 놓이면 인간이 적응하고 스스로 행복을 찾아간다는 걸 믿어요. 아무리 제한적이더라도 그 안에서 행복을 찾는 연습을 항상 하죠. 그게 요리가 될 수도 있고, 공상하는 게 될 수도 있고요. 관심 있는 걸 알아보면서 즐거움도 느껴요. 요즘은 버섯에 관심이 많고, 이전엔 샤퀴테리를 만들기 위해 곰팡이를 조사했어요.

지난 2년간 일을 많이 하게 된 건, 계획된 거였나요? 
<레토>로 칸 영화제를 다녀오고부터죠. 전에도 작품을 많이 하고, 선댄스 영화제도 갔지만 크게 반응은 없었는데 이번엔 달랐어요. 인지도를 높이기 위해 2년 동안은 들어오는 건 무조건 하자고 회사와 약속했는데, 지금이 딱 2년이에요. 그동안 드라마 <아스달 연대기>, <초콜릿>, <베가본드>, <보건교사 안은영>을 찍었고 마지막으로 <머니게임>을, 그리고 영화 5편을 했어요.

어떤 목표의식 없이는 불가능한 일처럼 느껴지네요. 
근육을 키울 때 운동으로 근육을 찢고 거기에 단백질을 채워야 근육이 커지잖아요. 그런 개념이었어요. 내가 어디까지 갈 수 있나 하는 생각이었죠. 여러 작품을 연달아 하면서 프로정신을 경험할 수 있게끔 일부러 저를 밀어붙였어요. 진짜 고맙게도 팬들이 저를 알아봐주시고 인지도가 올라가서 러브콜도 받아요. 너무나 이상적으로 단계를 밟고 있어요. 지금은 신중하게 작품을 고르고 있어요.

처음으로 돌아가보면, 독일에서는 어떤 어린 시절을 보냈어요? 
생김이 다르니, 독일에서는 아웃사이더였어요. 15살 때 농구단 합숙훈련 받으러 한국에 왔었어요. 1995년도였는데 한창 <마지막 승부>와 <모래시계>가 유행할 때였어요. 리버스 쇼크를 느꼈죠. 한국에서는 농구를 이렇게 힘들게 하는구나. 같이 맞기도 하고 텃세도 느꼈죠. 어릴 때는 잘 모르니까 욕이 욕인 줄 알고, 정인지도 몰랐어요.

어떤 분위기였는지 그려지네요. 
그러고 독일로 돌아갔는데 그때 인터넷이 발전하면서 처음으로 교포들이 모일 수 있는 인터넷 커뮤니티가 만들어졌어요. “우리는 한국사람이고, 더 이상 혼자가 아니다”라는 플랫폼이 생겨서 교포들끼리 만났는데 저는 방학 동안 한국 문화를 경험했으니 교포 친구들의 정서와도 달랐어요. 제가 보기에 그들은 여행자 같았죠. 저는 한국의 정체성을 조금 더 느꼈으니까요. 그래서 항상 외로웠던 것 같아요. 여기에도 저기에도 안 속한. 공허했던 것 같아요, 어렸을 때는.

블랙 집업 니트 톱은 보테가 베네타(Bottega Veneta). 화이트 데님 팬츠는 르메르.

지금도 같은 감정을 느끼나요? 
근본적인 감정은 비슷하지만 이제는 거기서 긍정적인 영감을 얻죠. 어렸을 때는 제 정체성이 뭔지 몰라서 조금 더 부정적이었어요. 이제는 성인으로서 안정감을 느끼고 정체성이 확고해졌어요. 그걸 제 일을 통해 어떻게 표현할 수 있는지에 대해 많이 고민해요.

독일을 떠나 뉴욕 생활을 시작했을 땐 어땠나요? 
독일과 한국에서 완전히 벗어나서 지내니까 뉴욕에서는 오히려 저의 독일적인 정체성을 조금 더 찾게 됐어요. 실제로 뉴욕에 있을 때 먹고 싶은 게 딱 두 가지 있었어요. 육개장이랑 맛있는 빵.(웃음) 되게 이상했어요. 저는 지금도 한국을 오래 떠나면 육개장이 먹고 싶어요. 다들 그렇지 않나요?

<아스달 연대기>의 문을 연 라가즈, <머니게임> 속 사건의 중심이었던 유진한은 여러 정체성이 혼재되어 있는 역할이었죠. 누구보다 잘 이해할 수 있었겠네요. 
<아스달 연대기>의 경우 고조선의 판타지니까 제 동물적인 본능을 가지고 연기를 한 작품이었요. 데칸족 연기를 위해 다 같이 크로스핏을 하면서 작품 준비를 했는데 제 목표가 항상 1등이었어요. 실제로 항상 1등 했고요. 준비 과정에서부터 내 캐릭터가 ‘미친 캐릭터’라는 걸 염두에 뒀죠. 호랑이와 사자가 어떻게 뛰는지 연구했어요. 고양잇과 동물은 뛰어다닐 때 까치발을 해요. 저도 실제로 그렇게 뛰어다녔어요. <아스달 연대기>가 본능이었다면 제 정체성을 한국적 문법 안에서 연기로 표현하면 어디까지 나올까라는 걸 증명할 수 있었던 작품이 <머니 게임>이었어요 제 마음대로 연기할 수 있게 감독님이 저를 백퍼센트 믿어주셨어요.

믿어주는 분위기 속에서 캐릭터를 만드는 건 어떤 경험인가요?
제 정서를 마음대로 보여주면서 한국적인 어투, 언어로 표현을 해서 탄생했어요. 다행히 시청자들에게 매력적으로 어필된 것 같아요. 과연 시청자들이 편하게 받아들일 수 있을지 저한테도 모험이었어요. 감독님이 첫 미팅 때 저와 모험을 하고 싶다는 말씀을 해주셔서 너무 감사했죠. 다 표현의 자유 안에서 나오는 것들인데, 표현의 자유는 심리적으로 억압되지 않아야 나올 수 있거든요. 저는 그냥 재료를 드리는 것뿐이고 조각은 감독님이 하시는 거니까요. 제가 가진 것들을 자유롭게 보여드리면 그게 좋은지, 나쁜지에 대한 판단은 감독님이 해주는 거죠. 그게 제 역할이라고 생각해요. 아까 사진촬영 때도 기자님이 알아서 해달라고 했잖아요.(웃음) 저는 그냥 악기예요. 악기를 켜야 하는 건 기자님이시죠.

수영장 장면이 떠오르네요. 유진한이라는 인물이 등장하면서 드라마에 긴장감이 생기기 시작했어요. 당신에게는 어떤 인물이었나요? 
11월이었는데, 이성민 선배님과 두 번째 만난 장면이었어요. <머니 게임>은 그러니까, 제가 안타고니즘(Antagonism) 같은 역할이었죠. 어떤 캐릭터든 연기를 하기 위해서는 제가 동질감을 느껴야 해요. 지금까지 연기한 작품 중 유진한이 제 실제 성격과 제일 먼 캐릭터였어요. 그래서 너무 어려웠어요.(웃음)

혜준을 맡은 심은경 배우와의 미묘한 감정이 중요하게 표현돼요. 심은경 배우와의 호흡은 어땠어요? 
너무 편했어요. 은경 씨가 저보다 훨씬 경험이 많잖아요? 저는 뭘 배울 수 있는지, 뭘 얻어갈 수 있는지 그런 마음으로 항상 현장에 가거든요. <머니 게임>만으로는 너무 아쉬워서 또 같이 하고 싶어요. 저는 해외 활동이 많으니, 국내 활동만 보지는 않는데, 은경 씨는 다양한 모습을 세계에 보여줄 수 있는 사람이에요. 동료 배우로서 기대되는 부분이 많아요.

헨리넥 슬리브리스 톱은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점프슈트는 김서룡 옴므(Kimseoryong Homme).

유진한이 혜준에게 가지고 있는 감정은 뭐였을까요? 
처음부터 사랑이라고 생각하고 연기를 했어요. 여러 가지 사랑이 있는데, 그중 모성에 대한 그리움에서 나오는 사랑이라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그걸 표현하기가 사실 어렵잖아요. 자칫 이상하게 보일 수 있으니 그걸 그렇게 느껴지지 않게 해야 했죠. 표현하자면 ‘Sympathy’였던 것 같아요.

‘케미가 좋다’라는 말을 많이 들었죠, 이 드라마에서. 어떤 거라고 생각해요? 
연기를 할 때 상대배우와의 사이에 뭔가 에너지가 있다는 거라고 알고 있어요. 연기공부를 시작했을 때부터 무대 위에서 존재감이 좋다는 얘기를 많이 들었거든요. 그런데 그걸 어떻게 기술적으로 표현해요? 어떤 사람이 케미가 있고 없고, 존재감이 있다 없다 라고 하는데 왜 그런지 모르겠어요. 진솔했다는 거는 맞는 것 같아요. 그 순간에는 저 스스로 진솔했어요.

마지막에 유진한은 선택을 하죠. 여권을 버리고 돌아나가는 장면으로 유진한의 후일담은 나오지 않고요. 어떤 이야기를 생각했어요? 
그 장면은 두 테이크 만에 완성되었어요. 제 개인적인 해석은, 어쨌든 자신의 정체성을 찾기 위해서 모든 걸 감수하겠다였어요. 들어왔던 길로 나가는데, 다시 한국으로 돌아간다는 의미였겠죠. 책임지겠고 나의 정체성을 찾아가겠다. 유진한이 내적으로 한국 정체성과 전쟁을 하고 있었는데 이제는 화해하고 그걸 받아들이겠다고 생각했어요.

유진한은 자신의 인생을 건 선택을 했죠. 유태오의 선택 중 가장 의미 있는 선택은 뭐였나요? 
연기하겠다는 순간. 그리고 결혼하겠다는 순간.

누군가에게는 정말 어려운 선택이죠. 평생 선택하지 않을 수도 있고요. 
저한테는 제일 쉬운 선택이었어요. 저의 중대한 선택들은 본능적으로 금방 와 닿아요. 사소한 선택들은 엄청 고민을 많이 하고요. 큰 선택은 행복 위주로 선택해요.

실크 슬리브리스와 블랙 와이드 팬츠는 김서룡 옴므. 블랙 부츠는 보테가 베네타. 실버 체인 브레이슬릿은 디올 맨(Dior Men).

한 인터뷰에서 ‘니키에게 나의 정체성이 있다’고 말했었죠. 어떤 의미인가요? 
그냥 느끼는 대로 말한 거예요. 서양에서는 ‘자기주의’가 먼저잖아요. 내 정체성을 확정하는 게 우선 나이고 사회에서 그걸 수용하는 식인데 우리나라에서는 예를 들어 스스로 장미라고 했을 때 주변에서 100명이 너는 해바라기처럼 보인다고 하면 결국 그것에 따라 정체성이 결정되는 문화예요. 관계 안에서 정체성이 정해지는 문화죠. 우연히 이국 땅에서 태어나고 자랐지만 니키를 만나고 제 정체성은 조금 더 동양적이라는 걸 깨달았어요. 저도 저를 스스로 확정하는 것보다 관계 속에서 저를 확정해나가는 게 저한테는 더 편하더라고요. 그래서 그런 대답을 하기가 더 편해요. 그게 제가 느끼는 사실이니까요.

인생은 선택의 연속이죠. 주로 어떤 쪽을 선택하곤 해요? 
남에게 피해만 끼치지 않으면, 자신의 즐거움을 선택하는 게 좋다고 생각해요. 행복은 감정이고 즐거움도 감정이지만 그런데 사람들이 대부분 행복은 어떤 형태라고 믿고 있잖아요. 사실 그냥 감정인데 말이죠. 뭘 하면 즐겁게 살 수 있을까를 기준으로 선택을 하고 남한테 피해만 안 끼치면 된다고 생각해요.

점점 대중에게 알려지고 있어요. 그와 별개로 점점 좋은 배우가 되고 있다는 만족감도 있나요? 
관객에게 맡겨야 할 문제라고 생각해요. 제가 잘하는지 못 하는지가 늘 고민이고 특권적 고통이라고 생각해요. 아티스트로서의. 그래서 밤에 편하게 못 자요.(웃음) 저는 항상 차분해요. 정말 신나서 하는 건 연기할 때. 그때가 진짜 재미있어요. 연기든 뭐든 뭘 처음으로 했을 때 그것의 유일성에 자부심을 느껴요. 인스타그램에 올린 인증영상도 그걸 어떻게 해야 하나 고민을 한 달 전부터 했어요. 미리 가서 리허설하고 영상 찍어보고 어떤 콘텐츠를 ‛인증’이라는 키워드와 연결할 수 있나 엄청 많은 고민이 들어갔어요.

그림책을 낸 작가이기도 하고, 요리는 물론 다양한 분야에 재능이 많은데 또 도전하고 싶은 새로운 분야는 없나요? 
전에는 생각이 없었는데 올해가 계기가 되었어요. 지금 생각 중인 건 있는데 아직 공개는 할 수 없어요. 제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회사에서도 몰라요. 일단은 제가 혼자서 시도를 해봐야 해요.(웃음)

100살까지 살고 싶다면서요. 60년 동안 충분히 많은 시도를 할 수 있겠어요. 
할 일은 많아요. 관심 있는 게 많아서.(웃음)

화이트 슈트 재킷과 블랙 플립플랍은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이너 슬리브리스 톱은 셀린느(Celine). 화이트 벨티드 데님 팬츠는 르메르.

창의적인 사람들이 요리를 즐긴다고 하죠. 어떤 요리를 즐겨요? 
신선한 재료를 제일 좋아해요. 제일 저렴한 가격으로 제일 고급스러운 요리를 어떻게 만들어낼까 하는 고민을 해요. 일반적으로 제일 맛있는 요리를 어떻게 만들 수 있나 고민해요.

그렇게 나온 채소 요리 레시피 하나만 말해줄래요? 
운동을 많이 하니까 단백질이 많은 요리를 연구하는데, 채소 중에서는 콩 종류예요. 병아리콩이나 렌틸콩으로 죽을 만들어요. 콩과 양파와 마늘, 강황가루를 넣고 소금, 후추 살짝 그리고 코코넛 슈가랑 코코넛 크림을 넣으면 크리미한 커리처럼 돼요. 단팥 페이스트도 만들어요. 그걸 빵에 바르고 버터를 두껍게 잘라서 먹으면 맛있어요. 오늘 저녁에 먹을 거예요. 며칠 전에 팥을 끓여 놨거든요.

호러 영화를 가장 좋아한다던데, 최고의 작품은 무엇인가요? 앞으로는 뭘 해보고 싶고요? 
지금까지 본 영화 중 1등은 <마터즈>라는 프랑스 호러 영화. 제게는 최고의 호러 영화예요. 2등은 <엑소시스트> 3등은 <굿바이 마미>라는 오스트리아 영화예요. 앞으로는 멜로, SF, 액션을 해보고 싶어요. 개인적으로 좋아하고, 국내에서 대중성을 얻고 싶거든요.

가장 좋아하는 계절이 여름이라고 했는데, 그 여름이 오고 있네요. 
따뜻한 걸 좋아해요. 또 다른 이유는 독일은 여름방학이 길어서 항상 여름에 한국에 왔는데, 제가 기억하는 추억 속의 한국은 열대지방처럼 더워요. 1980~90년대의 홍콩 영화처럼, 화면에서 전해지는 습한 느낌처럼 로맨틱하게 느껴지더라고요. 방학 때 한국에 들어오면 친척집에서 지냈는데 일요일 아침에 눈을 뜨면 멀리서 매미소리와 수박 파는 아저씨 소리가 들리곤 했어요. 이런 것들이 ‘노스탤직’하게 느껴져요. 그래서 여름이 좋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