탁월한 연기력은 물론 지성과 스타일을 모두 겸비한 배우 젬마 첸을 만났다. 그녀가 전하는 남다른 긍정의 힘.

우먼인필름은 여성 창작자들의 창작 활동을 독려하는 비영리 조직이다. 영화 및 미디어 현장에서 여성의 기회가 누락되지 않게 하고 여성의 역할 확장에 힘쓰고 있다. 이들은 매년 6월이 되면 우먼인필름 애뉴얼 갈라와 시상식을 통해 할리우드에서 활약하고 있는 여성들의 업적을 기념한다. 이날 행사의 하일라이트 중의 하나는 ‘페이스 오브 더 퓨처 어워드’. 패션하우스 막스마라와 함께 커리어적인 성공, 우아함과 스타일을 갖춘 재능 있는 여배우를 선정하고 그 영예를 돌리는 자리다. 그리고 이제 알렉산드라 십을 비롯해 클로이 그레이스 모레츠, 케이티 홈즈, 조 샐다나, 최근 마리아 벨로까지, 쟁쟁한 여배우들이 지나간 그 길을 2020년, 젬마 첸이 걸으려 한다. 중국계 영국인으로 다양한 캐릭터를 소화하며 자신만의 세계를 구축해온 젬마 첸. 옥스퍼드 법대 출신으로 지성과 스타일을 모두 겸비한 배우라는 평을 받고 있다. 2020 가을/겨울 밀라노 패션위크가 끝나가던 2월의 어느 날 밀라노의 한 호텔에서 그녀를 만났다. 시끄러운 바람이 잦아들어 비교적 평온했던 날, 우리를 맞이하는 그녀의 표정 역시 따스하고 평온했다.

우선 우먼인필름 막스마라 페이스 오브 더 퓨처 어워드 수상을 축하해요. 이 상의 수상 소식을 처음 들었을 때 소감이 어땠나요? 
처음 소식을 접했을 때는 매우 놀랐어요. 무엇보다 여권 신장을 지지하고 옹호하는 우먼인필름과 막스마라에서 수상자를 선정하는 만큼 더욱 영광스러웠죠. 독보적인 커리어를 지닌 과거 수상자들과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게 되어 매우 기뻤습니다.

이 상은 재능과 스타일을 모두 겸비한 여배우에게 수여하는 상이에요. 본인도 이 사실에 동의하나요? 
그렇게 말씀해주셔서 감사해요. 지금까지 이 상을 받았던 여배우들을 생각할 때 저도 그렇다고 조심스럽게 말해볼까요?

우먼인필름은 다양한 방식으로 여배우뿐 아니라 영화계에 종사하는 여성들의 활발한 활동을 지지합니다. 한 명의 여성 영화인으로서 조언을 한다면요? 
영화계의 여권 신장을 위한 우먼인필름의 활동은 독보적이라고 생각해요.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여성에게 폭넓고 공평한 기회가 제공돼야 한다는 거예요. 성별에 상관없이 자신의 재능을 보여줄 기회는 제공되어야 합니다. 과거에는 이런 기회가 전혀 주어지지 않았죠.

여배우에게만 국한된 얘기가 아니라 영화계 전반에 대한 이야기겠죠? 
물론이에요. 작가, 제작자, 감독 그리고 그 밖의 다른 모든 역할에 해당하는 이야기죠. 특히 결정권을 행사할 수 있는 위치에 보다 많은 여성이 자리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때 비로소 진정한 변화의 바람이 불 것이라 생각해요. 아직 갈 길이 멀기는 하지만요.

지난 오스카 시상식에서 드레스 안에 쿠키를 가지고 있던 모습이 인터뷰에 나왔었죠. 매우 인상적이었어요. 많은 이들이 그 모습을 보고 위트 있고 사랑스럽다고 했는데 그때의 상황이나 분위기에 대해 설명해줄 수 있나요? 
누군가에게서 시상식이 아주 오랫동안 이어질 예정이라 저녁식사를 못하게 될 거란 얘기를 전해 들었어요. 그래서 뭔가를 준비해야겠다고 생각했죠. 제 내면의 동양인으로서 준비성이 발휘된 거죠. 시상식이 끝나고 엄마께 문자를 받았는데 “역시 넌 내 딸이야!”라고 하시더군요.(웃음)

패션을 사랑하나요?
그럼요. 특히 패션을 통해 나를 표현하는 방식을 사랑해요. 여배우에겐 스타일을 통해 스스로를 표현한다는 점도 무척 중요한 일이거든요. 어떤 의상을 선택하고 입느냐는 캐릭터를 완성하는 데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하니까요.

평소 스타일은 어때요?
편안한 스타일을 추구하는 편이에요. 입었을 때 고통스러운 옷보다는 편안함과 행복감을 주는 것이 진정한 패션이라고 생각해요.

<얼루어 코리아>는 얼루어링한 사람을 눈여겨보죠. 그리고 당신이 바로 우리가 찾는 얼루어링한 사람이라고 생각했어요. 평소 운동도 열심히 하고, 몸과 마음의 밸런스를 잘 유지하는 것처럼 보이거든요.
외적인 모습뿐 아니라 내면의 아름다움을 동시에 가꾸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정신과 영혼의 수양을 통해 비로소 외적인 아름다움이 완성된다고 믿거든요. 물론 피부와 건강을 관리하는 것도 중요하죠. 완벽하지는 않지만 전 삶 자체를 즐기려고 노력하고 있답니다.

하지만 우리는 보여주고, 보이는 게 다인 세상에 살고 있어요.
맞아요. 저는 정말 다행스럽게도 SNS가 없는 시절에 유년기를 보냈어요. 그 때문인지 유년시절의 저는 외적인 모습에 대해 크게 걱정하지 않았던 것 같아요. 물론 사춘기 시절 두려움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요즘 소녀들이 느끼는 불안감과는 전혀 다른 차원인 것 같아요. 모든 이들이 끊임없이 자신과 타인을 비교하는 것을 보면 걱정이 돼요. 아무리 멋진 여성이라고 해도 SNS에서 다른 사람과 비교하며 시간을 허비하다 보면 스스로의 모습이 초라해 보이기 마련이죠. 게다가 아직 자라고 있는 사춘기 소녀들이 느끼기엔 SNS에서 보이는 것이 다라고 생각할 수도 있죠. 그래서 저는 어린 소년들을 만나면 항상 내면에 집중하라고 조언해요. 책을 읽고, 다양한 것을 보고 배우며 세상에 좀 더 관심을 가지는 행동이 외적으로 보여지는 것보다 더 중요하다고 이야기하죠.

당신의 건강한 내면이 밖으로 보여지는 것 같아요. 지금 충분히 아름답거든요.
그런가요? 고마워요. 오늘 막스마라를 입고 있어서 더 그런가 봐요.(웃음)

오늘 입은 옷은 마음에 들어요?
막스마라의 옷은 걸려 있을 때도 멋지지만 직접 입었을 때 진가가 드러나요. 편안하면서 우아함까지 놓치지 않죠. 이 둘을 동시에 추구한다는 점에서 저에게 막스마라는 완벽함 그 자체예요.

봄맞이 옷장 정리가 필요하진 않은가요? 혹시 정리하고 싶거나 새롭게 추가하고 싶은 아이템이 있다면요?
안 그래도 정리할 것이 산더미예요. 전 매년 옷장을 정리해 안 입는 옷들은 자선단체에 전달하고 있어요. 1년 이상 입지 않은 옷은 정리하는 편이죠. 물론 저에게 특별한 의미를 지닌 옷은 버리지 않고 잘 보관하고 있어요.

특별한 의미를 지닌 옷 중 생각나는 것이 있어요?
할머니가 입던 비즈를 장식한 카디건이 지금까지 제 옷장 한켠을 차지하고 있어요. 혹시 뭐라도 흘릴까봐 무서워 입지도 못하고 옷장 속에 고이 모셔두고 있는데, 그래도 평생 버리지 않고 간직할 거예요.

막스마라 2020 프리폴 컬렉션을 입고 2020 가을/겨울 막스마라 쇼에 참석한 젬마 첸. 화이트 이너에 네이비 트렌치 코트가 조화롭다.

패션의 지속가능성은 주요한 화두죠. 
맞습니다. 한 번 입고 옷장 속에서 잊혀지는 옷이 아니라 오랫동안 간직하며 두고두고 입을 수 있는 옷을 사야 한다고 생각해요. 쇼핑을 할 때 지속가능성에 대해 꼭 생각하고 좀 더 책임감 있는 소비자가 되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얼마 전에 영화 <이터널스> 촬영을 끝냈고 지금 후반 작업 중이라고 들었어요. 요즘 어떻게 지내나요? 
요즘은 휴식을 취하면서 몇 가지 프로젝트에 관해 논의 중이에요. 몇 개월 동안은 영화 촬영은 하지 않을 예정이에요.

<잭 라이언>, <캡틴 마블>과 같은 영화에서 볼 수 있듯이 당신은 SF 장르에 출중하다고 알려져 있어요. SF라기보다 히어로물이라고 해야 맞을까요? 이 외에 관심 있는 다른 장르가 있나요?
호러 무비요! 특히 한국 영화를 매우 사랑해요. 말이 나와서 말인데 <기생충>이 오스카상을 수상하게 되어 얼마나 기뻤는지 몰라요. 봉준호 감독의 재능은 정말 놀라워요. 그의 현실성 넘치는 작품은 매번 감동으로 다가오죠.

많은 아시아계 여배우들의 롤모델이잖아요. 이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나요?
영광이죠. 하지만 누군가의 롤모델이 된다는 것은 막중한 부담감으로 다가오기도 해서 되도록 깊게 생각하지 않으려고 노력해요. 지금까지 해왔던 것처럼 삶을 영위하고 제 모습 그대로 인정받고자 노력하죠. 이러한 태도가 타의 귀감이 된다면 더할 나위 없겠죠.

당신이 타인에게 좋은 영향을 끼친다는 사실은 부인할 수 없을 것 같아요.
유년시절 부모님은 항상 성실함을 강조하셨어요. 그 어떤 것도 당연시해서는 안 된다고 가르치셨죠. 타인에게 친절해야 하며 내가 남보다 잘났다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고 말씀하셨어요. 이러한 부모님의 가르침을 통해 자연스럽게 타인에게 좋은 영향력을 행사하는 방법을 배웠다고 생각해요. 또 최근 열정적으로 참여하고 있는 강좌가 있는데 그런 자리를 통해 훌륭한 업적을 이룩한 사람들을 대중들에게 소개하려고 해요. 물론 자선 활동은 매우 중요하게 생각하는 활동 중 하나고요.

2020년에는 어떠한 일이 기다리고 있을까요? 특별한 계획 있나요?
올해는 꼭 시간을 내서 반려견을 키우고 싶어요.

이전에 반려견을 키워본 경험이 없어요?
처음이에요! 반려견을 키우는 건 제 평생 소원이었어요. 그거 아세요? 반려견을 키우면 수명도 길어진다고 하네요.

반려견과 함께하는 즐거운 모습이 상상이 가요. 커리어도 일상도 지금처럼 긍정적이고 행복하게, 응원할게요.
감사해요. 우리 함께 이 삶을 즐겨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