옷을 사는 걸 멈출 수 없다면, 이미 갖고 있는 옷을 순환시킬 수는 있을까? 도저히 패션만은 포기할 수 없는 에디터가 옷장을 열었다.

 

어느 날, 해외 토픽 하나가 시선을 끌었다. ‘제인 폰다, 체포되다’식의 자극적인 제목을 단 그 기사를 열어봤더니, 어떤 큰 범죄에 연루된 것은 아니었고 ‘환경 운동’을 하던 중 집회법을 위반해 연행되었던 것. 할리우드 배우이자 1960년대 반전운동과 여성운동의 아이콘이었던 제인 폰다는 자신의 신념 위에서 여전히 현역이다. 요즘은 환경운동에 열심이며, 기후변화에 대한 정부의 적극적 대처를 촉구하는 시위에 매주 참석하기 위해 그 좋은 캘리포니아를 떠나 워싱턴 DC로 이사까지 감행했다. 그는 최근 시위 현장에서 다음과 같이 선언했다. “이 빨간 코트가 내가 산 마지막 옷이 될 것입니다. 나는 소비주의에 잠식되기 이전 환경에서 자랐어요. 우리에게는 더 이상 새로운 물건이 필요하지 않아요.” 이어 ABC 방송국 뉴스에서는 이렇게 말했다. “시위를 위해 빨간 옷이 필요했어요. 이 빨간 코트를 마지막으로 더 이상 쇼핑을 하지 않겠다고 다짐했죠. 물론 나는 82살이기 때문에 이런 다짐이 훨씬 쉬웠습니다. 하지만 내가 롤모델이 될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제인 폰다는 앞으로 속옷과 양말만 사겠다고 했다.

10년간 <얼루어>에서 그린 이슈와 얼루어 그린 캠페인을 진행하면서 나 역시 많은 부분이 달라졌고, 많은 습관도 몸에 뱄다. 에코백과 텀블러 사용은 물론이며, 일상생활에서 신경 써서 지킬 수 있는 것은 대부분 지키는 편이다. 포장재가 잔뜩 딸려오는 새벽배송서비스, 배달음식서비스도 거의 이용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포기할 수 없는 몇 가지가 남았다. 그중 하나가 패션 아이템 소비였다. 다른 건 다 줄여도, 예쁜 걸 사는 건 그만둘 수 없었다. 미니멀리즘의 유혹과 환경윤리 속에서 갈등했지만 결국 고민 끝에 얻은 결론은 나는 이걸 좋아하는 사람이다라는 것이었다. 문학, 영화, 미식, 여행을 좋아하듯 나는 옷과 신발, 가방을 좋아한다. 그것은 모두 ‘잘 만든 무엇’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오히려 패션을 좋아하는 게 폄하되는 게 가끔은 슬펐다. 누군가의 천재성이 들어 있는데, 패션이라는 이유로 쓸데없는 것 취급을 받는다니. 좋은 소재로 잘 만들어 자신만의 개성을 부여한 블라우스며, 펌프스의 디테일에 나는 금세 감동하고 지갑을 연다. 그랬기에 제인 폰다의 선언은 더없이 아프게 다가왔다. 그렇게 감동받아서 구매한 옷이며, 신발이며, 가방은 끊임없이 바뀌는 유행과 나의 변덕, 나이 등 여러 이유로 그저 짐더미가 되고 있는 것도 사실이기 때문이다. 친한 에디터와 스타일리스트를 모아 ‘에디터스 마켓’이라고 이름 붙인 플리마켓을 열기도 하고, 때마다 기부도 했다. 플리마켓 장사는 잘되었지만 그럼에도 팔리지 않는 건 늘 있고 그건 역시 짐더미다. 즉, 소비는 언제나 과해질 수 있고 과하지 않은 소비였더라도 결국 물건이란 생명력을 잃기 마련이더라는 거였다. 이건 먹어서 없앨 수도 없고 버리면 쓰레기이며 태워도 탄소 발생이다. 제인 폰다처럼 앞으로 옷을 안 산다고 선언하지 않더라도 물건을 잘 관리해서 오래 입는 건 어떨까? 안 입는 옷에 새로운 생명을 부여할 수도 있지 않을까? 그렇다면 나의 죄책감도 덜어질까? 작년, 코펜하겐의 한 거리에 늘어선 수많은 빈티지숍도 떠올랐다. 정체를 알 수 없는 옷도 있지만 1950년대 이브 생 로랑의 블라우스, 샤넬의 스웨터 등도 곱게 나이 들어 팔리고 있었다. 그 거리에서 옷은 계속 순환되고 있었다.

먼저 모바일 시대를 맞아 생겨난 다양한 서비스를 이용해보기로 했다. 먼저 브랜드 제품의 위탁 판매 서비스를 제공하는 신생 업체인 ‘아워스(oursstore.kr)’를 이용해보기로 했다. 이제는 ‘빈티지’라는 말이 어울릴 나의 온갖 가방, 신발, 액세서리를 꺼냈고, 그중에서 이른바 ‘명품’을 골라냈다. 여전히 가죽이 좋았다. 옷은 옷장 공유 서비스인 ‘클로젯셰어(closetshare.com)’에 맡겨보기로 했다. 버리기엔 아까운 옷이지만 누군가 입어주면 내 마음이 좋을 것 같았다(수익금이 발생하긴 하지만 큰 금액은 아니다). 산더미 같은 옷 중에서 다시 봐도 예쁘고 새것 같은 것만 골라냈다. 사실 낡은 것은 수시로 버려왔기 때문에 보관하고 있는 것은 버리면 벌받을 정도로 상태가 좋았다. 그런 옷이 빠르게는 두 달 전에 산 것(직구했지만 사이즈 실패)부터 대학교 2학년 때 산 옷, 왠일인지 태그까지 그대로인 옷까지 있었다. 고심 끝에 분류를 마치니, 위탁 판매로 가야 할 박스가 3개, 옷장 공유 서비스로 갈 박스가 3개였다. 덧붙여 말하지만 이 박스는 대형 박스다. 그 거대한 박스 더미는 거의 침대 크기였다. 필요 없는 양이 이렇게 많았던 거다. 환경으로봐도 낭비였다. 이게 3달 전의 이야기다.

편집장에게 야심 차게 ‘옷 순환’을 위한 다양한 서비스를 체험해보겠다고 큰 소리를 쳤지만 현실은 실제와 달랐다. 먼저 ‘옷장 공유 서비스’. 보낸 옷은 3박스 분량이었지만 그중에서 공유 가능한 아이템으로 채택된 것은 단 7벌이었다. 허무함에 이유를 물어보니 제각각이었다. 이를테면 손상이 우려되는 소재는 업체에서 거절한다. 공유 과정에서 손상되면 업체가 배상을 해야 하기 때문에 신중하게 처리하는 것 같았다. 만 2년이 넘은 옷도 거절 대상이었고(하이엔드 브랜드는 예외로 뒀다), 사람들이 잘 모르는 생소한 브랜드 또한 거절되었다. 그러니까 파리, 런던, 밀란, 뉴욕 등의 편집숍에서 신이 나서 구입한, 패션 피플이나 아는 희소성 있는 브랜드는 안 되는 거였다. 이해가 갔다. 빌려 입는 사람도 자신이 아는 브랜드를 선호할 테니 말이다. 박스 3개는 일주일 후 다시 우리 집 거실로 돌아왔다.

액세서리와 가방을 잔뜩 보낸 ‘아워스’는 좀 더 쉬웠다. ‘아워스’는 웹사이트에 접속해 어떤 물품인지, 판매를 원하는 금액은 얼마인지 등을 양식에 적어 제출만 하면 직접 픽업부터 촬영, 업로드, 판매까지 모든 걸 대행해준다. 약 30개의 물품 중 기준 미달로 등록되지 않은 1개를 제외하면 모두 훌륭한 퀄리티의 사진과 함께 업데이트되었다. 게다가 모든 것은 익명이었다. 스스로를 오픈하면 수수료 등에서 혜택을 준다고 되어 있었지만 나는 혜택 대신 익명성을 택했다. 어쩐지 창피해서다. 문득 통장에 예상 밖의 판매금액이 입금돼 있었다. 판매금액에서 위탁수수료를 제한 금액이다. 확인해보니 쏠쏠하게 팔렸다! 부디 나의 물건들이 좋은 주인을 만나 세상의 빛을 보고 살았으면 한다. 이 밖에 대여와 판매를 동시에 진행하는 업체도 경험해보려고 했지만 ‘시즌 1’ 서비스가 중단되어 아쉽게도 두 서비스를 경험하는 것으로 나의 옷 순환 체험은 끝나는 듯했다.

그러나 공유도 못 하는 박스 3개 분량의 옷은 어쩌란 말일까? 동생에게 쇼핑백 2개분, 친구에게 한 개분, 아름다운 가게에도 3개분을 안겼지만 티도 안 나는 듯했다. 이제 SPA 브랜드는 안 사기로 결심했다. 보니 가장 애매한 처지는 SPA 브랜드였고, 가장 빠르게 생명력을 잃는 것 또한 SPA 브랜드였다. 그러고도 남은 옷은 어떡했냐고? 친구가 추천한 ‘당근마켓’에 가입해봤다. 두 번 입은 세인트 제임스 니트, 파리에서 구입한 이자벨 마랑 코트 등을 산 가격의 10%는 될까 싶은 가격으로 등록하자마자 채팅창에 불이 들어온다. “저요”라는 말과 함께 30분 만에 집 앞으로 온 구매자도 있었다. 신기하기도 했지만 이걸 언제 다 찍어 올리고, 질문에 답하고, 흥정을 하고, 언제 만나고, 만나기로 했다가 안 오는 사람도 있고, 그런 과정 속에서 이걸 어떻게 다 처분할까? 다 처분할 순 있을까? 피곤하고 소모적인 것 또한 사실이라 몇 번 만에 의욕을 잃었다. 다시 제인 폰다의 말이 떠올랐다. “쇼핑을 멈추면 우리에게 훨씬 더 많은 자유시간이 생깁니다.” <바바렐라>의 보디슈트를 벗어 던지고 빨간 코트를 입은 제인 할머니가 나를 향해 웃으며 이렇게 말하는 듯했다. “거봐, 내 말이 맞다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