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음악은 식물을 더 잘 자라게 할 거라고 믿었던 사람들이 있다. 그저 바람일 수도 있지만, 그 마음만은 기억해둘 만하다. 이 지구에는 인간보다 식물이 더 많으니까.

 

영화와 방송계에서 일했던 린(Lynn)과 조(Joe) 부부는 로스앤젤리스 멜로스 가에 식물가게를 열었다. ‘마더 어스 플랜트 부티크(Mother Earth Plant Boutique)’라는 이름의 이 식물 부티크는 큰 성공을 거두었다.

때는 1970년대, 요가와 채식, 정신 수양에 관심을 갖기 시작한 미국인들에게 집에서 키우는 식물은 무척 매력적인 존재로 다가왔다. 가게는 식물을 사러 온 사람들로 북적거렸고, 줄을 서서 대기하는 것은 일상적인 풍경이었다. 1970년대에는 판매를 위해 레코드를 끼워 파는 일도 잦았던 시기다. 이 가게의 주인 조(Joe Rapp) 역시도 정확히 언제 어떤 캠페인을 하며 앨범 <Plantasia>를 나눠줬는지 기억하지 못한다.

<Plantasia>는 모트 가슨(Mort Garson)이라는 작곡, 연주, 편곡자에 의해 만들어졌다. 그는 무그 신시사이저를 사용해 몇몇 사운드트랙을 만든 적이 있는데, 당시 흔하지 않았던 이 악기로 그는 식물을 위한 음악을 만들었다. 앨범 전체 제목은 ‘Mother Earth’s Plantasia’ 부제는 ‘식물과 식물을 사랑하는 사람들을 위한 따뜻한 지구 음악’이었다. 모트 가슨은 이 앨범이 세상에 다시 나온 것을 알지 못한 채 2008년에 세상을 떠났다. 그의 딸은 이 앨범이 탄생한 과정에 대해 “아빠가 식물을 좋아했던 엄마로부터 영감을 얻었을 것”이라고 말한다. 어쨌든 1976년에 만들어진 이 신시사이저 음악은 마더 어스 플랜트 부티크에서 홍보용으로 배포되었다. 할리우드에서 일했던 작가 부부는 당시 식물에 관한 책을 집필하기도 했는데, 이 앨범 안에는 이 부부가 기술한 식물 가이드 같은 것이 들어 있기도 하다. 시몬스 매트리스를 구매한 사람들도 이 앨범을 번들로 받을 수 있었다고 하는데, 어떤 연유로 이 앨범이 매트리스의 사은품으로 사용되었는지 정확히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브루클린에 소재한 음반사 ‘세이크리드 본스(Sacred Bones)’의 창립자 칼렙 브라텐(Caleb Braaten)은 덴버에 있는 레코드점에서 일한 적이 있다. 염가 중고반 코너에서 이 <Plantasia> 앨범을 발견한 그는 식물을 위한 앨범이라는 부제와 앨범 커버에 흥미를 느꼈다. 디제이 섀도(DJ Shadow)가 그의 음악을 샘플링한 적이 있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원곡자인 모트 가슨의 음악세계에 대해서는 정확히 아는 바가 없었다. 이 매력적인 음악을 듣고 난 이후로 그는 모트의 음악세계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고, 언젠가 그의 앨범들을 세상에 내놓아야겠다고 생각하기 시작했다. 그 사이 <Plantasia>는 인터넷에서, 디제이들 사이에서, 혹은 컬렉터들 사이에서 화제의 앨범이 되었다. 유튜브에 올라온 음원 조회수는 수백만을 넘겼고, 누군가는 이 앨범의 가짜 TV 광고 영상을 만들어 올렸으며 중고음반의 가격은 수백 달러로 뛰어올랐다. 칼렙이 본격적으로 재발매를 추진하기 시작했지만, 과정이 순탄치는 않았다. 우선 이제는 없어진 식물가게 ‘마더 어스 플랜트 부티크’의 그 누군가와도 연락이 닿지 않았고, 모트는 이미 세상을 떠난 뒤였다. 그러던 와중에 모트의 딸과 연락이 닿게 된다. 이미 많은 사람이 모트의 딸 데이 다멧(Day Darmet)에게 연락하고 있었지만 영화사나 광고 회사 등에서 온 연락에 응하지 않고 있던 중이었다. 그러나 자신의 아버지 음악을 제대로 알고 좋아하고 있었던 칼렙의 접근에는 마음을 바꿨다. 그리하여 2019년, <Plantasia>가 사상 처음으로 레코드 가게에 진열될 수 있었다.

사람이 아닌 식물을 위한 앨범이지만, 식물에게 어떤 좋은 영향을 끼칠 수 있는지에 대한 과학적 근거는 없다. 그러나 이 앨범이 뒤늦게 많은 사랑을 받고 있는 걸 보면 사람의 귀에 좋은 음악, 사람에게 좋은 영향을 끼칠 수 있는 음악임에는 틀림없다. 한 음악가의 재능, 그리고 그의 딸조차도 ‘이상한 기계’라고 생각했던 무그 신시사이저에 쏟은 애정, 식물을 사랑하는 주변 사람들의 영향이 어우러지면서 ‘식물을 위한 음악’이라는 다소 이상한 제목의 연주 앨범이 탄생했지만, 44년이 지난 지금 이 앨범은 모두가 들어볼 만한 가치가 있는 ‘클래식’ 대접을 받고 있다. 첫 곡 Plantasia를 트는 순간 주변에 퍼져나가는 편안함, 따뜻함, 안락함….

아, 어쩌면 이런 안락함 때문에 매트리스 회사에서 이 앨범을 사은품으로 줬을 것 같다는 생각이 방금 스쳐 지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