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를 지키기 위한 미식 업계의 노력은 하루이틀 이어진 게 아니다. 하지만 본격적인 노력은 지금부터 시작이다.

 

신선한 음식을, 최소한의 이동 거리로 공수해 식탁 위에 올린다는 ‘팜 투 테이블’ 운동이 대두되기 시작한 것이 1960~70년대다. 캘리포니아의 ‘셰 파니스’가 레스토랑으로서는 본격적으로 ‘팜 투 테이블’을 실현하기 시작하고, 2000년대 들어서는 동참하는 레스토랑의 수가 폭발했다. 손님을 감동시키는 요리를 위해서는 주방에서 핀셋을 들고 세심하게 접시 위를 꾸미는 일보다 더 중요한 게 있다고 셰프들이 외치기 시작했다. 얼굴과 손에 흙을 묻히고, 농장에서 농부 수준으로 구슬땀을 흘리는 만큼, 내놓는 한 접시의 음식은 더 특별해졌다. 손님들은 기꺼이 더 많은 금액을 지불했다. 채소가 주인공이 되는 레스토랑이 미쉐린 3스타를 받는 것도 이제는 전혀 놀랍지 않은 일이 됐다.

팜 투 테이블의 선두주자로 알려진 ‘블루힐 앳 스톤 반스’의 댄 바버 셰프는 2014년 그의 저서 <제3의 식탁>을 출간하며 이렇게 말했다. “팜 투 테이블 운동은 큰 규모로 볼 때 지속가능한 농업을 실현하는 데 실패했습니다.” 팜 투 테이블을 실현하기 위해, 레스토랑과 계약된 작은 농장 한복판에 서 있던 그가 불현듯 깨달은 내용이다. ‘블루힐 앳 스톤 반스’에 제공하는 좋은 밀을 얻기 위해, 이 농장에서는 몇 가지 피복 작물을 재배하고 있었다. 피복 작물은 비옥한 땅을 위해, 소량의 질 좋은 밀을 생산하기 위해 희생되어 버려지는 작물이다. 이를 본 댄 바버는 좋은 식재료를 찾는 것을 지나, 한정된 이 땅의 식재료를 위해 메뉴를 만들어야 하는 시기가 왔다는 생각에 다다랐다. 댄 바버는 ‘로테이션 리소토(Rotation Risotto)’라는 새 메뉴를 만들어 선보이기 시작했다. 피복 작물로 재배되는 곡물과 콩으로 만든 리소토다. 하나의 식재료를 뿌리부터 껍질까지 다 활용하는 친환경 조리법처럼, 한 농장에서 나는 모든 작물을 다 요리에 쓴다는 개념이다. 생태계가 순환될 수 있도록 돕는, 지속가능한 농장과 레스토랑의 중요성을 수면 위로 끌어올렸다.

미식 업계에서 ‘지속가능성’은 이제 선택의 문제가 아니다. 그보다는 모든 활동의 기저에 깔고 가는 개념으로 자리 잡는 중이다. 공장식 축산업과 대규모 양식업, 동물 기반의 단백질 산업이 불러일으키는 환경 오염 문제가 대두되면서 미식 업계는 다방면에서 동물성 재료를 대체할 식재료를 찾아 나서기 시작했다. 특히 그중에서도 온실가스 발생량으로 따지면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축산업이 적극적으로 보완해야 할 대상으로 떠올랐다. 식물기반(Plant-based) 식료품이 개발되기 시작했다. 대체재를 찾는 전문가들의 노력도 심상치 않다. ‘D.O.M’의 알렉스 아탈라 셰프는 오래전부터 ‘대체 식품으로서의 곤충’에 대해 강조해온 인물이다. 요리뿐만 아니라 살아온 인생마저 멋과 철학으로 가득 찬 알렉스 아탈라 셰프가 지난 2011년, 식물과 곤충이 미식업계의 미래이자 동반자가 될 것이라며 강조한 연설을 진행한 적이 있다. 같은 내용으로 강연한 지난 2012년 ‘서울 고메’ 행사에서도 알렉스 아탈라는 아마존의 검은 개미를 조금 가져와 보여주며 레몬그라스 맛과 향이 난다는 내용으로 연설했고, 직접 먹어보니 정말 바삭하면서도 향긋했다. 그리고 이후, 알렉스 아탈라의 이 같은 철학을 접한 ‘노마’의 르네 레드제피 셰프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르네가 운영하는 연구실 ‘노르딕 푸드 랩’에서 ‘곤충 프로젝트’를 진행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후 ‘노마’를 비롯해 다양한 팝업 레스토랑에서 르네 레드제피는 곤충을 주요한 식재료로 활용한 요리를 선보였다. 지난 2017년에는 파이돈(Phaidon) 출판사와 함께 <On Eating Insects> 책을 내며 곤충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아름다운 프레젠테이션의 곤충 요리를 소개하기도 했다.

또 어딘가에서는 누군가가 바닷속을 뒤지고 있었다. 그간 동양권에서 즐겨 먹는 해초류가 새로운 대체식품으로 떠오르기 시작한 것이다. 바다의 잡초라고 여겨졌던 해초류는 지난 몇 년간 ‘골든 클로렐라(Golden Chlorella)’라고 불리는 등 슈퍼푸드 대접을 받으며 다양한 영역에서 활용되고 있다. 근사한 레스토랑의 메인 식재료로 사용되기도 하고 ‘알게(Algae)’ 블렌드로 조합돼 식물성 고기, 식물성 해산물을 만드는 주요 자원으로 쓰이기도 한다. ‘트렌디’한 이유로 여러 레스토랑에서 해초류가 대안으로 떠오르고 있는 경향도 있지만, 넓은 시야에서 보면 미식 업계는 ‘식물 기반(Plant-based)’을 향해 달려가고 있다. 이제 주방에서 우유, 달걀, 치즈, 버터 등을 식물 기반으로 바꾸는 일은 크게 어렵지 않다.

레스토랑 주방에서 발생하는 음식 쓰레기를 줄이기 위한 노력도 이젠 하나의 요리 철학으로 자리 잡았다.
‘제로 웨이스트(Zero Waste)’ 운동이 레스토랑 주방으로 넘어가면 ‘비닐백 사용 금지’ 정도의 소극적인 단계를 훌쩍 뛰어넘는다. 코펜하겐의 레스토랑 아마스(Amass)는 제로 웨이스트 운동을 온전히 셰프의 시각으로 풀어내고 있다. 레스토랑 앞에 크게 펼쳐진 텃밭에서 식재료를 공수하는 팜 투 테이블은 기본이고, 이렇게 공수된 모든 식재료 총량의 80%가 넘는 양을 모두 식탁 위에 올린다. 허비되어 없어지는 음식 쓰레기를 최소화하고 심지어 주방에서 사용한 물도 다시 텃밭으로 돌려보낸다. 이를 실현하기 위해 맷 올랜도 셰프의 특별한 ‘기술’이 투입된다. 커피를 내리고 남은 찌꺼기를 활용해 미소된장 소스를 만들고, 어제의 빵과 감자 껍질을 이용해 근사한 식전 스낵을 만들기도 한다. 잎을 따고 남은 식물의 줄기도 말리고 갈아서 다시 사용하고, 차를 우리고 남은 찻잎조차도 마리네이드 용도로 재활용한다. 이렇게 쓰고 쓰고 또 썼는데도 남는 음식 쓰레기는 퇴비로 만들어 다시 레스토랑 앞 텃밭으로 돌아간다. 이 정도로 제로 웨이스트에 에너지를 쏟는 레스토랑의 음식 수준은? 시종일관 터지는 감탄사 때문에 혼자 앉아 밥을 먹는데도 정신이 없을 정도였다. 음식물 쓰레기로 버려질 뻔했던 식재료는 다른 재료와 만나 빛을 발했고, 그 조합이 아주 창의적이었다.

‘지속가능성’이라는 이슈는 기본 중의 기본이 되었다. 미국의 요리 잡지 <본아페티>는 지난 2월호를 통해 잡지에서 소개하는 레시피는 물론, 잡지 콘텐츠를 만드는 쿠킹 스튜디오에서도 지속가능성을 고려한 요리를 하겠다고 선언했다. 앞으로 이 잡지를 통해 소개하는 레시피의 30% 정도를 고기가 없는 식물 기반의 요리로 맞추겠다고 설명했다. 음식 화보를 촬영할 때 무심코 사용하는 엄청난 양의 플라스틱 용기들과 키친 타월도 최대한 줄이겠다고 공언했다. 이 작은 변화가 가정의 주방을 변화시키고 나아가 지구를 변화시킬 수 있을 것이라는 믿음도 덧붙였다. 수많은 지구인이 숨을 쉬듯 끊임없이 먹으며 생을 유지한다. 미식과 식품 분야에서 지속가능성을 실현하는 일은 그 어떤 분야에서보다 절실하다. 동시에 그 어떤 분야에서보다 확실하고 큰 변화를 일으킬 수 있다. 그리고 이미 많은 사람이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