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왜 비건 뷰티에 열광하는가. 식물성 성분이기 때문에? 동물 실험을 하지 않는 브랜드이기 때문에? 비건 뷰티 열풍에 관한 진단 .

 

비건은 더 이상 비주류가 아니다. 영국 시사주간지 <이코노미스트>는 지난 2019년을 ‘비건의 해’로 지정했으며, 2017년에는 지난 3년 사이 미국 인구 중 비건 비율이 무려 6배가 증가했다는 통계도 있다. 최근 힙스터들의 새로운 성지로 떠오른 발리 역시 ‘비건의 천국’으로 불린다. 크고 작은 음식점과 카페에는 비건을 위한 메뉴가 따로 구비되어 있고, 피자집에서조차 약간의 비용만 추가하면 비건 치즈로 만든 피자를 맛볼 수 있다. 이렇듯 비건 열풍은 몇몇 국가에 국한된 것이 아닌 전 세계적인 추세로 자리 잡고 있으며, 어린 세대에서 더욱 뚜렷하게 나타나고 있다. 밀레니얼의 4분의 1이 스스로를 비건, 혹은 베지테리언이라고 생각하고 있으니 말이다. 이렇게 된 데는 비욘세와 제이지, 나탈리 포트만 등의 셀러브리티들이 다양한 채널을 통해 팬들에게 비건이 되는 것을 독려하는 분위기도 한 몫 했을 것이다. <기묘한 이야기>의 10대 스타 밀리 바비 브라운은 최근 ‘플로렌스 바이 밀스’ 뷰티 브랜드를 론칭하며 비건 제품을 선보여 주목받고 있다.

비건에 대한 인식이 강화될수록, 이는 자연스럽게 윤리적 소비로 이어진다. 그저 성분이나 소재의 식물성 여부를 따지는 것에 그치는 것이 아닌, 사람과 동물이 공존하고, 건강한 지구를 만들 수 있다는 데까지 생각이 이어지기 때문이다. 비건이 대중화되고 비건 식품이 매년 빠르게 성장하면서 패션, 뷰티 업계에서도 동물성 재료를 지양하는 문화가 지배적이다. 특히 뷰티는 식문화의 유행과 흐름을 함께하는데, 친환경에서 오가닉으로, 다시 비건으로 트렌드가 옮아가며 눈부신 성장을 거듭하고 있다. 2012년 이후 구글에서 ‘비건 뷰티’를 검색하는 횟수는 매년 두 배씩 증가하고 있으며, 글로벌 뉴 프로덕트 데이터베이스(GNPD)에 따르면 2013년 7월부터 2018년 6월까지 비건 뷰티 시장은 무려 175%나 성장했다고 한다. 최근엔 그 성장세가 더욱 가파르고, 한국도 다양한 비건 뷰티 브랜드가 등장해 인기를 끄는 중이다.

비건 뷰티란 과연 무엇일까? 비건의 사전적 의미를 따져보면 동물성 원료를 사용하지 않는 것을 뜻하지만 뷰티 시장에서 비건의 의미는 보다 포괄적이다. 그저 식물 유래 성분을 함유한 화장품은 ‘천연 화장품’, ‘식물성 화장품’에 가깝기 때문이다. 동물 실험을 하지 않는 크루얼티 프리 인증을 받아야 완벽한 비건 뷰티라 인정하는 추세다. 미국의 ‘비건 액션’, 프랑스의 ‘이브’ 등의 기관에서 비건 인증을 받고, ‘리핑 버니 프로그램’을 통해 제품 생산 과정에서의 동물 실험 여부를 확인한 다음 크루얼티 프리 인증을 추가한다.

하지만 전문가들의 비건 뷰티에 대한 의견은 분분하다. 식물성 기름으로 튀긴 감자칩은 비건 음식임에는 틀림없지만 건강하지 않은 것처럼, 비건 뷰티 역시 비건 인증을 받았다고 해서 절대적으로 피부에 유익하고 안전하다고 보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식물성 성분이라고 해도 소비자의 개인적 체질에 따라 알레르기의 원인이 될 수 있고, 기존 화장품에 비해 안정성에 대한 의심 역시 끊이지 않고 있다. 특히 대부분의 동물 실험은 원료 단계에서 이루어지기 때문에, 완벽한 비건 제품을 찾기가 쉽지 않은 것 역시 뷰티 시장의 현실이다. 게다가 동물성 성분 대신 사용하는 식물성 원료는 비싸고, 이는 높은 단가로 이어져 소비자에게 부담이 전가된다는 문제점도 있다. 그렇다면 왜, 우리는 이토록 비건 뷰티에 열광하는 걸까? 비건 식습관은 건강을 위해 선택하는 경우가 많다면, 비건 뷰티 제품을 주목하는 데는 보다 윤리적인 이슈가 강하게 작용한다. 화장품에 주로 쓰이는 대표적인 동물성 성분인 우유, 꿀, 비즈왁스, 라놀린, 스쿠알렌, 콜라겐, 알란토인은 피부에 전혀 해로운 성분이 아니다. 하지만 채취하는 과정에서 많은 생명이 희생된다는 것이 문제다. 피부 탄력에 도움을 주는 젤라틴은 소나 돼지의 뼈, 껍질에서 추출하는 단백질 성분이다. 화장품의 유화제 역할을 하는 라놀린은 양모에서 추출한 지방으로 피부를 촉촉하게 하는 데 도움을 주지만, 이를 얻기 위해 양털을 깎을 때 폭력적인 방법이 동원되기도 한다. 마유나 산양유 같은 성분도 사정은 비슷하다.

하지만 우리가 아름다워지기 위해 사용하는 화장품을 꼭 이렇게 동물을 괴롭혀가며 만들어야 하는 것일까? 화장품에 사용되는 동물성 성분이 식물성 성분에 비해 압도적으로 우월한 것도 아닌 데다, 식물성 콜라겐이나 식물성 스쿠알렌 등 대체할 만한 성분은 충분히 존재한다. 또 최근 건강을 위협하는 우한폐렴이나 메르스의 원인이 야생동물에서 비롯된 변형 코로나바이러스라고 밝혀지면서 동물성 성분에 대한 안전성을 무시할 수 없는 상황이다.

비건 뷰티의 한 축을 차지하는 동물 실험 역시 비윤리적이기는 마찬가지다. 아직도 많은 화장품 제조사에서 동물을 이용해 제품을 테스트하고, 그 과정에서 동물들이 학대를 당하거나 죽음에 이른다. 마스카라의 안전성을 실험하기 위해 토끼의 눈에 수천 번씩 마스카라를 바르고, 고통을 잘 참고 사람을 따른다는 이유로 비글이 화장품의 독성 여부를 확인하는 실험견으로 사용된다는 것은 이미 잘 알려진 사실이다. 우리가 아름다워지는 데 무고한 생명이 희생되는 것을 원치 않는 것, 참혹한 동물 실험을 막고, 동물을 보호하고 나아가 지구 환경을 생각한 실천을 하고자 하는 것이 비건 뷰티의 결이자 방향이다. 다행인 것은, 뷰티 업계도 이러한 움직임에 동참하고 있다는 것. 스킨케어와 보디케어는 물론 색조, 향수 등 비건 인증을 받은 제품들이 늘어나며 선택의 폭이 넓어졌다. 비건 코스메틱의 선구자인 닥터브로너스를 비롯해 아워글래스, 어반디케이, 샹테카이와 인디 리, 렌, 향수 브랜드 르 라보 등이 대표적인 브랜드로 손꼽힌다. 이들은 필수 불가결한 일부 성분이 들어간 제품을 제외하고, 전체 생산의 약 80% 이상이 비건 제품이며, 점차 그 비율을 늘려가고 있다. 국내 비건 뷰티 시장 역시 활발하다. 아로마티카, 디어달리아, 보나쥬르, 아떼, 베이지크 등 다양한 비건 브랜드가 탄생해 인기를 끌고 있다. 올해 한국 론칭을 앞두고 있는 밀크는 이름과 달리 유제품을 대체하는 식물성 성분을 사용한 스킨케어와 메이크업 제품을 판매한다.

비건 뷰티의 유행은 소비자들이 화장품 원료에 더욱 신경 쓰고, 그들이 물건을 살 때 의문을 가지고 좀 더 꼼꼼히 공부하도록 만들었다. 소비자의 인식 개선은 제품의 품질로 이어지고 기업 역시 윤리적인 방식으로 제품을 만드는 데 더욱 힘쓰게 되었다. 비건 뷰티가 인정받기 위해 끊임없는 연구가 필요하지만 비건 뷰티의 철학을 실천하는 것이 얼마나 가치 있는 것인지 알게 된 것일 터. 비건 뷰티는 한두 시즌에 그치지 않고, 뷰티 업계가 나아가야 할 방향이자 먼 미래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