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상에도 계획이 다 있구나. 속이 시끄러운 에디터가 명상 앱과 하루를 시작했다.

 

조용히 나만의 시간을 가지며 내 마음과 기분을 들여보다는 명상, 마음 챙김, ‘마인드풀니스(Mindfullness)’는 서구권에서는 새로운 삶의 태도이자 또 다른 형태의 요가처럼 여기고 있다. 힌두교인이 아니어도 요가를 통해 몸의 균형을 찾듯, 불교인이 아니어도 명상을 통해 마음을 가다듬을 수 있다는 게 골자다. 영국 의회의원, 실리콘밸리의 엔지니어들은 다양한 명상 프로그램에 꾸준히 참여하고 있고, 미국에서는 이미 1천 개가 넘는 명상 앱이 우수수 등장했다. 명상 컨퍼런스가 열리면 IT기업 창업자, 심리학자, 신경과학자, 주요 언론사들이 대거 참여해 뜨겁게 북적인다. 명상이 열풍이 되자 비즈니스가 됐고, 돈에 힘입어 애플리케이션은 한층 더 세련되게 발전했다. 그래서 일주일간 명상 앱을 사용해보기로 했다. 여러 종류의 앱을 번갈아 켜가면서, 명상에 대한 편견도 거두지 않은 채, 일단 한번 부딪혀보자는 마음을 단단히 먹었다.

DAY 1 명상 앱을 켰다. 5분이 채 안 돼 일단 껐다. 명상 앱을 이용할 때는 성능 좋은 스피커를 먼저 갖추는 게 좋겠다는 판단에서다. 거의 모든 앱이 ‘명상 음악’을 제공하고, 명상을 진행하면서도 음악을 깐다. 실제로 ‘명상의 무드’를 조성하는 가장 직접적인 요소가 음악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는데, 그 익숙한 멜로디 때문에 마사지 숍에 와 있는 기분을 떨치기란 쉽지 않았다. 덕분에 온몸이 이완되는 기분은 즉각적으로 전달됐지만 수면 유도 명상을 제외하곤, 음악이 좀 과하다고 느꼈다. 그런 점에서 ‘헤드스페이스(Headspace)’ 앱은 오히려 음악 없이 목소리만 덤덤하게 깔려서 좋았고 ‘코끼리’ 앱은 음악이 좀 단조롭게 느껴졌다. ‘캄(Calm)’ 앱에는 마사지숍 배경음악을 벗어나 ‘샘스미스 슬립 믹스’와 같은 명상 음악이 있어 좋았다.

DAY 2 잠자기 전에 다시 명상 앱을 켰다. 이번엔 유명인들이 녹음한 명상 강의를 들어보기로 했다. ‘코끼리’ 앱에는 혜민스님, 곽정은, 다니엘 튜더 등의 연사가 주도하는 명상이 많다. ‘캄’ 앱에는 배우 이상윤이 들려주는 명상도 있다. 하나씩 누워서 들었다. 천장을 보고 있던 눈이 자연스럽게 감겼다. 그러자 목소리의 주인공들, 그들의 얼굴이 머릿속으로 훅 들어왔다. 명상에 집중하려고 할수록 예능 프로그램의 한 코너를 보고 듣고 있는 것 같은 기분을 떨치기가 힘들었다.

DAY 3 집 밖에서 명상 앱을 시도해보기로 했다. 생각해낸 장소는 자동차 안이다. 하루에 약 1시간 운전을 하면서 실제로 온갖 잡생각이 머리를 스치는데 이 시간을 명상으로 채워보기로 했다. ‘마보’ 앱, ‘헤드스페이스’ 앱을 번갈아가며 시도했다. 마보 명상은 자꾸만 이야기가 귓등을 치고 튕겨나갔다. 운전이라는 게 생각보다 많은 주의집중을 요구하는 일이라 흘러나오는 명상에 온전히 집중하기가 힘들었다. 그래서 오히려 영어로 진행하는 헤드스페이스의 명상이 더 좋았다. 영어 라디오를 듣는 기분, 전화영어 수업을 하는 기분이 들면서 어떻게든 이해해보려고 집중하려는 내가 느껴졌다. 그리고 영어 명상이 확실히 ‘오글거림’ 지수가 낮았다. 한글 명상을 들을 때는 자꾸만 작은 표현에 집착하는 나를 떨칠 수가 없었다. “도대체 ’온전히’라는 말은 몇 번 나오는 거야…저 성우는 왜 문장 끝의 억양을 자꾸 올리는 거지, 유치원생에게 하는 말처럼….”

DAY 4 사무실에서 명상 앱을 시도했다. 요즘 대부분의 공유 사무실에는 ‘웰니스(Wellness) 룸’이 마련돼 있다. 사전에 예약만 하면 최신식 안마 의자에 누워 불을 끄고 1시간가량 나만의 시간을 가질 수 있는 공간이다. ‘캄’ 앱에 있는 ‘스트레스 관리’ 명상을 켰다. 얼마 전 스트레스를 줄이지 않으면 정신줄이 끊어진다는 것을 체험했다. 귀뚜라미 소리와 물소리가 함께 들리는 이 명상 앱을 켠 채로 30분이 넘도록 안마의자에 누워 있었다. 절실하다 생각하니 집중이 됐다. “마음이 이리저리 떠돌아다닌다면 이를 완전히 받아들이고 천천히 호흡합니다.” 쉴 새 없이 에어 펌프를 하는 최신식 안마의자의 거친 기계소리가 들리지 않기 시작했다.

DAY 5 서재에 요가매트를 깔았다. 15분짜리 짧은 명상 수업을 듣고 난 뒤 몸을 움직일 생각에서다. 며칠 동안 명상 앱을 켜고 끌 때마다 ‘몸을 움직이고 싶다’는 생각이 머릿속을 지배하는 걸 멈출 수 없었다. 내 감정, 내 기분을 들여다보면 볼수록 차라리 몸을 움직여 땀을 흘리고 싶다는 욕망이 떠올랐다. 좋은 덕담을 해주는 어른들 앞에서 괜히 농담을 던져 숙연한 분위기를 엎어버리는 특유의 성격 때문인지, 스스로의 마음을 바닥까지 들여다보기에는 두려웠던 것인지…. 15분간의 명상을 한 뒤 15분간 요가의 태양경배자세A 아사나를 이어서 했다. 맥주가 한 잔 생각났지만 마시지 않았다. 그래도 개운했다.

DAY 6 여섯째 날에는 앱을 켜지 않았다. 커튼을 활짝 열고, 소파를 창가 쪽으로 끌어온 뒤 커피 한 잔을 들고 앉았다. 성우들의 목소리가 귓가를 쉴 새 없이 채우는 명상 앱에서 벗어나 나 혼자 명상을 한번 해보기로 했다. 지난 며칠간 “자신의 몸과 마음을 스캔해보라”, “내 안의 기분을 들여다보라”는 이야기를 수없이 들었지만 정작 스스로 긴 시간을 투자해 내 생각의 깊은 곳까지, 저 끝까지 내달려보지 않았다는 기분이 들었다. 내 마음이 가장 안정적이었을 때, 내 기분이 가장 평온했을 때의 추억을 떠올려보기로 했다. 늘어지는 일요일 오후. TV 소리가 엷게 들리고, 부엌에서 멸치 다시 국물을 빼는 냄새가 멀리서 풍겨올 때 침대에 누워 뒹굴거리는 내 모습이 떠올랐다. 좋았던 기분을 타래로 엮어가며 생각에 빠졌다. 신비로운 음악 하나 없었지만, 팔다리가 이완되는 기분이 들었다.

DAY 7 명상 앱을 시도해본 지 딱 일주일이 되는 날, 문득 내 휴대폰 평균 이용시간을 확인해봤다. 하루 평균 이용시간은 총 6시간 48분. 트위터와 인스타그램을 합쳐 일주일에 29시간 42분을 쓴다는 통계도 나왔다. 이렇게 수없이 많은 시간을 할애해 머릿속과 마음속에 소모적이지만 재미있는 각종 이야기와 정보를 꽉꽉 채워왔었구나…. 명상은 그 꽉 찬 서랍을 잘 정리해 한구석에 빈 공간을 만드는 일이라는 걸 깨달았다. 그래야 잊고 있었던 내 기분과 마음을 서랍 속에 잘 챙겨둘 수가 있다.
얼마 전엔 신년을 맞아 별자리점을 보러 갔다 왔다. 상담 시간이 끝나고 나도 모르게 ‘힐링된다’는 말이 입 밖으로 튀어나왔다. 점성술사가 나도 몰랐던 내 성격과 성향을 하나씩 짚어주는데, 맞고 틀리고를 떠나 그 순간이 엄청난 위로처럼 느껴졌다. 내가 나를 조금이라도 이해했다는 사실이 이렇게 위안이 될 줄이야. 앞으로 명상 앱을 어떻게 써야 할지에 대한 계획이 순식간에 세워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