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값이 끝도 없이 오르는 서울에서 집 한 채가 없다는 불안감은 절망의 다른 이름이 되어간다. 나 그리고 당신의 이야기도 다르지 않다. 우리도 집 살 수 있을까…?

 

기억도 어렴풋한 소설이 있다. 어린 시절 소년소녀 명작전집의 일부였을 <집 없는 아이>는 집이 없어 이 집 저 집을 떠도는 고아 레미의 고난기를 그린 작가 말로의 소설이다. 레미의 불행은 모두 집이 없다는 데에서 시작되었고, 마지막에는 부잣집의 잃어버린 아이임이 밝혀져 행복하게 살게 된다. 이야기는 거기에서 끝나므로 아이의 삶은 어떻게 되었는지는 모르지만 레미에게는 마침내 따스한 집이 생겼다.

소설에서 집은 ‘가족’을 의미했지만, 요즘 들어 문득문득 레미가 떠오르는 이유는 단어 그대로 ‘집’ 때문이다. 지금 이 서울을 살아가는 많은 사람은 부유한 부모를 둔 출생의 비밀이 없기에 집이 없다. 부동산에 대한 기사는 하루에도 몇 번씩 쏟아지지만 그중에서도 지난 연말 내 시선을 당긴 기사는 두 가지였다. 첫 번째는 문재인 정부 2년 반 동안 서울 아파트 가격이 40% 급등했다는 것이다. 부동산114에서 발표한 자료에 의한 것으로 24만1621건을 전수 조사했다고 한다. 매일경제신문은 40%를 뛰어넘어 54.5%가 올랐다는 분석을 내놓았다. 그만큼 집값은 솟아올랐다. 두 번째는 30대(1980~1990년생)가 부동산 거래 시장의 큰손으로 등장하고 있으며 이들이 전통적인 부동산 구매 주류계층인 40대를 제치고 가장 활발하게 부동산 거래에 나서고 있다는 내용을 다룬 기사다. 30대 후반인 나의 고민도 그와 다르지 않았다. 연말, 편집장이 에디터들의 새해 소원을 모을 때에도 정신적 소원 ‘무사평안’ 뒤에 슬그머니 ‘집을 사야 할까’라는 세속적인 소원을 더했듯이 말이다.

언론은 30대가 부동산에 뛰어든 이유를 ‘불안감’으로 분석한다. 30대 그룹의 일원인 내가 최근 2~3년간 절실하게 느끼고 있는 점이기도 하다. ‘집을 살 수 있을까?’는 부자가 되고 싶다라는 갈망이 아닌, 집도 절도 없이 살다가는 길에 나앉을 수 있다는 근원적 공포에 가깝다. 이 공포가 매순간 압박한다. 십수 년간 꾸준히 회사 생활을 했음에도 저축예금으로는 집을 살 수 없다. 30대는 집을 사기 어렵다. 전문직도, 맞벌이 부부도 아닌 30대 싱글 회사원은 집을 사기 어렵다. 문재인 정부 들어 청약 추첨제가 사실상 폐지되고 청약 당첨 가점제가 되면서 신혼부부도 아니며, 자녀도 없는 싱글은 ‘내 집 마련’에서 더욱 멀어졌다.

30대 초반만 해도 집 또는 부동산 이야기는 남 얘기였다. 어른들, 기성세대들의 시시한 관심사였다. 부모님이 부동산으로 얼마를 보유하든, 당장 쓸 돈만 있으면 좋은 게 20대이고, 내가 번 돈을 쓰기도 모으기도 하는 재미를 느끼는 게 30대다. 부동산보다 스스로의 행복이나 성장을 꿈꿀 수도 있었던 이 30대를 뒤흔든 건 눈에 보이는 숫자였다. 집값 상승은 전셋값과 월세 상승으로 이어지며 더 이상 남 얘기가 아니게 되었으니까.

신문의 아무개 씨가 아닌 더없이 가까운 주변인의 사례는 그야말로 피부로 다가온다. 부동산 성공사례는 지금 당장 열다섯 사례도 말할 수 있다. 성공과 실패는 말하지 않아도 눈에 보인다. 몇 년 전 결혼한 후배가 신혼집으로 구입한 성수동 아파트, 선배가 구입한 마포 아파트, 본인의 예금과 부모님의 도움이 합쳐진 친구의 잠실 아파트, 구남친이 은행이 좇아오는 꿈을 꾼다고 호소하며 중도금을 부어갔던 그 아파트는 지금 어떻게 되었냐고? 당연히 엄청나게 올랐다. 이것은 지켜보는 자에게도 당사자에게도 허무함을 불러일으킨다. “좋긴 좋은데… 힘들게 회사를 다니는데, 집이 나보다 훨씬 잘 번다는 게 허무해”라고 한 친구는 말했다. 반면, “그때 그걸 샀어야 했는데…”라고 탄식하는 또 다른 그룹이 있다. 이들의 가장 큰 죄는 그저 늦게 태어났다는 점이다. 언젠가는 살 집을 구입하려고 했는데 집을 사기엔 어린 축이었고 결혼과 이사 등 당장 살 이유는 없었다. 큰 빚을 지는 것이 내키지 않아 때가 되면 사야지 했는데 어느덧 집값이 천정부지가 되어 있더라는 거다. “그때 부동산에서 매매를 권한 아파트가 3억8천이었는데 전세가 2억5천이었거든. 그게 지금 9억이 됐어. 그사이 저축은 8천밖에 늘지 않았는데.” 월급으로 1억을 모은다는 건 어려운 일이다. 또 그만큼을 모아 갚아나가면 될 거라고 여겼던 집은 이제 너무 비싸져 손이 닿지 않는다. “협소주택이라도 지을까?” “주택을 지으려면 땅이 있어야 하잖아. 건축비는 있고?” “차라리 계약 결혼을 해서 집을 사고, 나중에 나누는 건 어때?” 같은 의미 없는 대화를 한다. 그런데도 지금이라도 사야 한다고 한다. 요즘은 “지금 회사 다니시잖아요? 회사를 다니면서 얻을 수 있는 유일한 이득은 대출뿐이에요”라는 말을 자주 듣는다. 이 모든 일이 30대의 주변에서 일어났다. 지금은 비슷해 보이지만 이 추세라면 몇 년 후, 우리의 삶은 집을 가지고 있음과 없음으로 많은 것이 달라져 있을 것이다. 가진 것도 별로 없는 30대가 무리에 무리를 거듭해서 얼마 되지 않는 종잣돈을 들고 부동산 전쟁에 뛰어들고 있는 이유다.

새해가 되고 업무를 제외하고 달력에 표시한 유일한 일은 아파트 청약일이었다. 되면 ‘로또’라고 한다. 한 후배는 새해를 맞아 로또를 샀다. 10억만 됐으면 좋겠다면서. 되면 뭐 할 건데? 물었더니 아파트를 살 거라고 한다. 아파트가 로또인지, 로또가 되어야 아파트를 살 수 있는 건지 알 수가 없다. 가장 많은 세대수를 뽑는 타입을 골라서 청약 신청을 넣고 촬영장으로 향했다. 아마 또 떨어질 것이다. 라디오에서 커피소년의 ‘장가갈 수 있을까’라는 노래가 흘러나오고 어느새 나는 그걸 집 살 수 있을까로 개사하고 있었다. 집 살 수 있을까? 남들도 사는데 집 살 수 있을까? 남들처럼 그렇게 집 살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