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고적이면서도 현대적인, 그리고 미래를 향하는 어떤 것들.

2019년 한 해 동안 가장 많이 언급한 단어를 꼽으라면 주저 없이 뉴트로, 지속가능성, Z세대라 답할 것이다. 그리고 ‘이것들이 2020년에도 통하겠는가’라고 묻는다면 ‘거의 그렇다’. 침체된 경기 속에서 이미 한차례 검증을 끝낸 셀링 키워드는 그것 자체로 어드밴티지를 갖는다. 위험 부담이 적다는 이유에서다. 그런데 소비의 주체가 Z세대라고 한다면 더 그럴 것이다. 그들에게 복고적 아이템은 향수가 아닌 아예 새로운 경험인 까닭이다. 지속가능성이라는 주제는 아무리 이야기해도 부족함이 없다. 할머니가 입던 것을 딸이 물려받고, 딸이 또 그 딸에게 물려주는 것이 진정한 의미의 지속가능성이라 할 수 있을 것. 오래 입고, 고쳐 입자라는 슬로건이 다시 입에 오르고 있다. 보릿고개 시절 돈을 아껴 살림을 불리기 위해 부르짖었던 명제가 오늘날 인간 존엄과 생태계 파괴의 위협으로부터 보호하는 메시지가 된 것이다. 그래서 지나간 과거의 영광이 이번 시즌에도 거리에 오른다. 대표적으로 디스코 풍 빅 칼라와 손바느질로 뜬 크로셰, 1960년대 월페이퍼를 연상케 하는 패턴들이다. 이 얘기를 하기 위해 퍽이나 진지를 떨었다.

이번 시즌 디스코 후예가 떠난 자리는 디스코 와이드 칼라가 남아 그 흥을 이어간다. 어깨선을 웃돌게 넓게 퍼진 칼라는 코트와 재킷, 셔츠 등 아이템을 가리지 않고 리듬감을 부여한다. 칼라만 머스터드 컬러로 장식한 랑방의 투톤 코트가 대표적이다. 2020년답게 간결한 실루엣과 커팅, 부드러운 컬러 조합에 꽤 신경 쓴 느낌이다. 세일러풍 와이드 칼라 재킷에 트랙슈트를 매치한 살바토레 페라가모, 벽돌 컬러의 셔츠를 톤온톤 재킷과 터틀넥에 매치한 빅토리아 베컴, 마린풍 의상에 와이드 칼라 쇼츠를 더한 생 로랑, 투톤 칼라와 토속적인 모티브로 다채로운 분위기를 풍기는 코트를 선보인 J.W. 앤더슨까지. 과거의 소스를 선택했으나 하나같이 동시대적이며 딸에게 물려줘도 좋을 클래식함을 지니고 있다.

코바늘 뜨개질 방식의 크로셰 아이템은 봄을 봄답게 맞이하는 또 하나의 키워드라 할 만하다. 블랙, 화이트, 아이보리, 베이지 등 모노톤의 그것은 물론, 옐로, 블루, 그린 등 다양한 컬러에 내려앉았다. 질 샌더처럼 디너 파티에 어울리는 맥시 드레스부터 해변에 잘 어울리는 펜디의 비치 룩, 가브리엘라 허스트의 드레시한 장식, 조나단 심카이의 캐주얼 룩까지 분위기도 천차만별이다.

1960년대를 설명하는 자료 속에서나(오래된 외할머니의 주방이랄지) 보았을 법한 패턴 역시 다양한 아이템에 녹아 그만의 생생함을 어필한다. 크리스토퍼 케인, 프라다, 구찌처럼 반복적 배열로 복고적인 느낌을 극대화한 것들이 있는가 하면, 펜디, 에트로, 마크 제이콥스처럼 개성 있는 꽃무늬에 집중한 것들도 눈에 띈다. 올봄에 빈티지풍의 꽃무늬 원피스 하나 잘 골라놓으면 만병통치약을 얻은 듯 옷 입는 재미를 볼 수 있으리라. 디스코 와이드 칼라 재킷과 크로셰 니트 톱도 마찬가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