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이 굿즈가 된 시대. 잘 팔리는 책을 만들고 싶지만 그것만이 책의 존재 이유일까? 시인이자 출판사 편집인이 매일 겪는 딜레마다.

 

얼마 전 귀하고 귀하다는 문학 편집자 공채 자리가 나왔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응시자가 아닌 인사 담당자로 면접에 참가하게 되었다. 자기소개서 같은 서류 몇 장과 몇 분 동안의 인상만으로 누군가의 능력치를 가늠한다는 게 어불성설이지만 그런 방법밖에 다른 도리가 없는 것도 사실이어서 괜히 미안하고 주눅이 들었다. 백여 명이 지원하고 여덟 명이 서류 심사를 통과했고 그중 한 명을 뽑아야 하니, 그 과정에 당당하다면 되레 이상하지 않겠는가.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몇 가지 질문을 했다.

최근 읽고 있는 책은 무엇인가요? 인상 깊게 읽은 책이 있다면? 책을 고르는 자기만의 기준이 있나요? 입사하게 된다면 어떤 책을 만들고 싶나요? 그리고 물론 이런 질문도 했다. 우리 출판사에 지원하게 된 이유는? 이런 정도에 식상한 질문에 그들은 참신한 답변을 내놓으려 노력했다. 여기서 한 가지 예상하지 못한 패턴을 발견했는데, 지원자 대부분이 북 디자인에 대해 말하고 있는 것이었다. “최근 읽고 있는 책은 작고 날렵한 판형이 눈에 띄어 동네 서점에서 구입한 것이다.” “인상 깊게 읽은 책은 무엇인데 표지가 너무나 예뻤다.” “디자인을 먼저 보고, 귀여운 ‘굿즈’까지 있으면 더욱 좋다.” “독자들이 편하게 집어들 수 있는 책을 만들고 싶다.”……“요즘 멋진 책이 많이 나와서 이곳에 지원하게 되었다.” 등등.

책은 디자인의 총체이다. 표지에는 제목과 저자 및 출판사의 정보가 기입되지만 무엇보다 책 자체의 광고판 노릇을 한다. 매력적으로 만들어야 함은 물론이다. 표지뿐만 아니라 책의 모든 페이지마다 디자인 요소가 있다. 여백은 적당하게 두고, 글은 양끝 정렬을 할지 왼쪽 정렬을 할지, 들여쓰기인지 내어쓰기인지, 서체는 무엇으로 할지… ‘글을 읽는다’는 담백한 쓸모에 비해서 그 쓸모를 구현하는 디자인의 영역은 광범위하다. 내용과 형식은 상호 조우하기 마련이며, 좋은 책은 대부분 대단한 내용물을 훌륭한 그릇에 담아낼 때에야 탄생하기 마련이다. 두 번 말할 것도 없는 출판의 본질일 것이다.

시간이 지나면 본질도 달라질 수 있다. 책의 외형이 책의 전부가 될 수도 있다. 애니메이션의 유명 캐릭터는 물론 메신저 서비스의 이모티콘 캐릭터까지 책이 되어 나온다. 거기에 특별한 내용이 있을 거라 기대하는 독자는 별로 없다. 가령 <곰돌이 푸, 서두르지 않아도 괜찮아> 같은 책을 보는 독자들이 현대인 특유의 조급증을 해결할 실마리를 찾으려 그 책을 산 건 아닐 것이다. <튜브, 힘낼지 말지는 내가 결정해> 같은 책의 독자들도 그 정도는 이미 스스로 결정하고 있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그들은 무엇을 샀는가. 어떤 사람들이 그 책을 베스트셀러로 만들어주었을까.

지원자들의 대답이 그리 틀린 것은 아니었다. 독자들은 캐릭터를 활용한 디자인 상품으로서 책을 구매했을 것이고, 거기에 편안한 글은 덤인 셈이다. 꼭 위의 책이 아니더라도 소설과 시집, 인문서를 막론하고 SNS에 찍어 올리기에 좋은, 편안하고 세련된 느낌의 표지가 대세고 책이 나온 후에는 책에 맞는 디자인의 굿즈를 발매해 다시 독자를 모은다. 면접 말미에 쓸데없는 질문을 추가하고야 말았다. “디자인이 책의 전부는 아닐 텐데요?” 우물쭈물하는 지원자를 보면서 본의 아니게 압박 면접 비슷한 질문을 해버린 걸 깨달았다. 사실 그 질문은 스스로를 향한 것임에도, 괜한 심술을 부린 것이다.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다음에 만들 책의 디자인 회의를 하러 곧 나설 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