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맛 까다로운 신인류의 등장이 새로운 시장을 탄생시켰다. 불편한 것은 질색이지만 자신을 꾸미는 것에 돈을 아끼지 않는 세대. 무엇보다 내가 가장 중요한 세대들의 소비 성향 ‘라스트 핏 이코노미’가 오고 있다.

 

니트는 로우클래식 (Low Classic), 스커트는 마르니(Marni).

밀레니얼 세대와 Z세대가 새로운 소비 주역으로 떠오르면서 이들의 쇼핑 성향을 일컫는 ‘라스트 핏 이코노미(Last Fit Economy)’에 대한 관심이 뜨겁다. 라스트 핏 이코노미란 서울대 소비 트렌드 분석센터에서 내놓은 <트렌드 코리아 2020>에서 명명한 신조어로 고객을 마지막 순간까지 만족시키려는 근거리 경제 활동을 의미한다. 이는 사형수가 집행장까지 걸어가는 마지막 거리를 뜻하는 ‘라스트 마일’에서 파생된 말로 상품이 고객에게 전달되는 ‘마지막 배송 접점’을 의미하는 유통업계 용어에서 시작됐다.

 

아직도 가성비를 따져요?

한때 에디터의 소비 척도는 가성비였다. 비싼 가격을 오롯이 결제하고 쇼핑하는 일명 ‘호갱(호구고객)’이 되고 싶지는 않았던 탓이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실용적으로 보였던 그 가성비의 기회비용이 절대 적지 않다. 발품 파는 쇼핑은 물론 온라인상에서 최저가 찾기 그리고 배송 대행지를 찾아야 하는 해외직구까지. 물건 하나 사는 데 값은 최저가지만 들이는 공과 시간은 그렇지 않았다. 그런데 얼마 전 에디터에게 신선한 충격을 준 이가 있었다. 바로 에디터 못지않게 쇼핑을 즐기는 친구의 나이 어린 동생이다. “가격 차이가 그렇게 많이 나요? 나 같으면 빨리 사고 그 시간에 다른 걸 할 것 같아요. 시간이 아깝잖아요”. 쿨내 풀풀 나는 이 대사에서 생각지도 못한 세대 차이를 느낄 줄이야. 밀레니얼 세대의 중심에 있는 그녀는 가장 저렴한 가격에 좋은 물건을 사는 것보다 바로 지금, 나에게 빠르게 올 수 있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말했다. 듣고 보니 그것도 맞는 말이다. 고작 몇천원, 몇만원 때문에 나는 며칠을 고민하고 망설였던가. 이토록 쿨한 그녀의 소비 생활 패턴이 궁금해졌다. 대략은 이렇다. 먹거리를 살 때는 오후 늦게 주문해도 다음 날 새벽에 집 앞에 배달해주는 ‘새벽배송’을 주로 이용한다. 근처에 대형 쇼핑몰과 식료품점이 있지만 ‘핑거 쇼핑’의 편리함을 따라올 수가 없다는 것이 이유다. 또 한 스포츠 브랜드의 온라인 몰에서는 멤버 전용으로 이용할 수 있는 오늘 도착 서비스를 받는다. 추가 금액 5천원을 지불하고 말이다. 까다로운 세탁이나 수선은 칼 배송을 보장하는 모바일 세탁소를 이용한다. 집 앞에 빨랫감을 두고 앱으로 업체를 부르면 빠르면 24시간 이내에 세탁물을 받을 수 있다.

모두 모바일 터치 하나면 하룻밤 사이에 이뤄지는 것들이다. 쇼핑 외 그녀의 생활 방식은 어떨까? 우선 생활 반경이 굉장히 좁은 편이다. 최근 새로운 이동수단으로 급부상하고 있는 전동 킥보드를 타고 주거, 쇼핑, 문화 생활 등 모두를 근거리 안에서 해결한다. 공연이나 쇼핑 등을 위해 먼 지역에 찾아가는 것도 불필요한 시간 낭비라고 생각한다. 이동에 들어가는 노력과 시간, 경비를 최소화하고 더 많은 여유를 갖고 싶어서다. 하지만 자칫 편리에 치중한 게으른 소비문화를 가진 건 아닌가 의문이 들 때쯤 아이러니한 상황은 벌어진다. 바로 지역 기반 거래 플랫폼의 생활화다. 같은 지역 내에 사는 사람들끼리 서로 필요한 것을 나누는 중고 직거래 앱 일명 ‘당근 마켓’의 열혈 이용자이기도 한 그녀는 내게 필요 없는 것과 필요한 것을 구분해 싼값에 거래하고 근거리 동네 사람들끼리 물건을 주고받는다. 벼룩시장, 중고 거래에 익숙하지 않은 에디터가 보기엔 꽤 흥미로운 부분이다. 여기에서 또 한 번의 반전은 그렇게 편리하고 빠른 것을 좋아하는 그녀가 스니커즈와 피규어 쇼핑에는 여간 까다롭지 않고 신중하다는 것. 신발을 구매하기 전 유튜브를 보며 제품의 0부터 10까지를 훑어보고 배송이 오는 박스의 포장 상태까지 확인하며 스스로 만족해한다. 가격은 그리 중요하지 않다. 그녀는 쇼핑을 하기 전부터 받는 순간까지 설렘과 행복한 마음으로 쇼핑을 마친다. 진정 갖고 싶은 것에는 들이는 모든 시간과 노력이 아깝지 않다고.

새로운 쇼핑의 주인공

<90년대생 소비 트렌드 2020>의 저자 곽나래는 그녀처럼 새로운 소비의 주체로 떠오른 이들을 이렇게 표현했다. ‘명품과 저가 상품을 동시에 소비하며 인플루언서 마켓에 열광하고, 편의점 제품과 가정 간편식을 누구보다 사랑하는 세대. 생각이 없어 보이지만 말해보면 똑똑하고 흥청망청 쓰는 것 같지만 나름대로 의식 있게 소비하는 집단. 자신이 가치 있다고 생각하는 것에는 과감하게 투자하고, 불편한 것은 질색이지만 자신을 꾸미는 것에 돈을 아끼지 않는 세대’라고 말이다. 확실히 가성비보다는 가심비에 가까운 세대다. 이 책에서 말하는 새로운 세대는 밀레니얼과 Z세대를 아우르는 90년대생이 주류이며, 지금 라스트 핏 이코노미 서비스를 윤택하게 누리고 있는 앞에서 언급한 그녀 또한 90년생이라는 점. 이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새로운 소비의 주역인 밀레니얼 세대와 Z세대가 신개념 쇼핑 트렌드를 창출하고 있는 것이다.

앞서 <트렌드 코리아 2020>에서 말하는 라스트 핏은 편리한 배송으로 쇼핑의 번거로움을 해소해주는 배송의 라스트 핏, 집 근처에서 모든 것을 해결할 수 있도록 이동의 과정을 편리하게 돕는 이동의 라스트 핏, 구매의 모든 여정을 만족스럽게 만드는 구매 여정의 라스트 핏 등 크게 세 가지로 구분된다. 그러니까 90년대생인 그녀가 새벽 배송으로 장을 보는 행위는 번거로움 없이 제품을 편리하게 배송받는 ‘배송의 라스트 핏’에, 이동이 간편한 집 근처 동네에서 하는 당근 마켓 활동은 ‘이동의 라스트 핏’에, 자신이 좋아하는 제품의 포장부터가 소중한 그녀의 심적 만족감은 ‘구매 여정의 라스트 핏’에 해당한다.

이들의 내용을 빌리자면 이렇다. 지금의 소비자들은 이제 복잡한 의사 결정 과정을 꺼리고 제품이 필요하다고 생각되면 즉시 구매를 결정한다. 가격이 싼 유통 플랫폼을 찾는 데 걸리는 시간과 노력보다 유료 멤버십을 통해 버튼 하나만 누르면 다음 날 아침 문 앞에 물건이 놓여 있는 것을 더 매력적으로 느낀다는 것. 최근 늘어나는 익일 배송 서비스, 귀찮은 생활용품 쇼핑을 정기적으로 대행해주는 정기 배송 서비스 등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는 이유다. 지난 6월, 아마존이 프라임 회원들을 상대로 무료 1일 배송 서비스를 개시한다고 발표한 이유도 이러한 추세에 힘을 싣는다. 또한 유튜브 영상에 언박싱과 하울 콘텐츠가 많은 것도 이러한 현상에 기반한다. 이것은 단순히 제품의 기능과 디자인에 초점을 맞추는 것이 아닌 포장을 풀어 상품을 처음 만지는 그 순간이 더욱 중요하다는 얘기다. “마블링 박스가 너무 예뻐서 버리지 않고 정리함으로 써야 할 것 같아요. 배송 상자까지 이렇게 예쁠 일”, “제 돈 주고 샀지만 선물받는 느낌이에요”. 온라인 패션 플랫폼 매치스패션닷컴이나 네타포르테의 포장 박스를 받고 단 댓글이나 하울 영상을 보면 심심치 않게 들을 수 있는 얘기다. 더구나 제품 포장까지 민감하게 반응하는 이 소비자들은 택배 상자의 크기부터 포장재의 재활용 여부와 분리배출 여부까지 살피는 등 결코 간과할 수 없는 부분까지 중요하게 여기는 섬세함을 드러냈다. 역대 가장 주관적이고 예민한 소비 세대가 아닐까. 어디로 튈지 모르는 예민한 고객을 잡기 위한 브랜드의 진화한 쇼핑 서비스도 더욱 기대된다. 인간과 사물을 유기적으로 연결해 인공지능 기술로 배송 환경을 바꾸는 일이 현실이 되고, 정보 기술을 통해 더욱 빠르고 안전하게 배송해주는 등 특화된 서비스가 펼쳐지는 일. 그리 먼 미래 이야기는 아닌 듯하다.

이처럼 2020년, 소비자의 개인적, 주관적 가치가 상품의 본질보다 중요해지는 시대. 제품과 기능, 브랜드 레벨보다 편리성이 중심이 되는 소비현상은 앞으로 더욱 가속화될 전망이다. 그러니 더욱 기대가 된다. 신인류들의 독특한 취향과 욕구가 앞으로의 쇼핑 문화에 어떤 나비효과를 일으킬지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