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번도 겪어보지 못한 새로운 세대가 등장했다. 미래 권력이 될 Z세대는 그냥 ‘좀 유별난 요즘 애들’이 아니다.

 

밀레니얼 그후

통계청은 본격적인 세대론의 첫 주자를 1950~1964년 사이 출생한 베이비붐 세대로 정의한다. 1965~ 1979년 사이 출생한 인구는 X세대, 1980~1994년 사이 출생한 인구는 밀레니얼 세대다. 나는 밀레니얼 세대다. 아주 화끈하게 30세기쯤 태어났다면 좀 더 ‘쿨’했겠지만, 어중간한 24세기를 사는 것보단 20세기 말에 태어나서 운이 좋았다고 생각하는 편이다. 밀레니얼 세대는 가장 젊고 건강한 시기에 아날로그의 20세기와 디지털의 21세기를 동시에 산 유일한 세대다. 우리는 인터넷이 없을 때 태어났지만, 새로운 기술의 실험 대상처럼 모든 최초의 기술을 온몸으로 겪으며 살아왔고, 살고 있다. 어느덧 밀레니얼 세대는 지구상에서 가장 젊고 당돌한 ‘요즘 것들’의 표상으로 자리매김했다.
시간은 누구를 위해 천천히 흐르거나 멈춰 있지 않는다. 밀레니얼의 ‘요즘 것들’이 차례차례 어른이 되는 동안 새싹처럼 자라 등장한 새로운 세대를 우리는 Z세대(Generation Z)라고 호명하기로 한다. 인구통계학자들은 일반적으로 1990년대 중반에서 2000년대 중반까지 출생한 인구를 Z세대로 분류하는데, 언제까지를 Z세대의 끝으로 정의할지에 대해서 아직 의견 통일을 이루지 못했다. 다만 대한민국 통계청은 우선 1995~2005년에 출생한 인구를 Z세대로 분류한다. 2020년 기준 만 25세 이하인 Z세대는 아직 대부분이 학생이거나 몇몇 빠른 경우 이제 갓 직장생활을 시작한 사회 초년생이다. 언뜻 좀 ‘어린 밀레니얼’쯤으로 간과하기 쉽지만 그들은 태생부터 사고방식과 라이프스타일, 삶을 지배하고 있는 기운마저 밀레니얼 세대와 닮은 듯 완전히 다르다.

X세대 부모

세대 이야기가 나와서 말인데 Z세대와 밀레니얼 세대의 가장 큰 차이점은 그들의 부모 세대를 살피면 좀 더 쉽게 읽힌다. 밀레니얼 세대는 소위 ‘58년 개띠’로 대표되는 베이비붐 세대의 자녀가 우세하다. 베이비붐 세대는 한국 전쟁의 혼란기를 겪은 뒤 빠른 경제성장으로 그야말로 무에서 유를 일궈낸 세대다. 이들에게는 경쟁에서 승리하는 일, 더 나은 삶을 살기 위해 애쓰는 일이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가치였다. 경제뿐 아니라 사회 전반의 발전을 온몸으로 이끌어오면서 노력만 하면 못할 일도 없다는 자신감과 자부심 또한 크다. 적어도 부모 세대에는 ‘노오력’한 만큼 잘 먹고 잘살 수 있는 기회의 문이 아직은 열려 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반면, Z세대의 부모는 발해를 꿈꾸던 ‘서태지와 아이들’로 대표되는 X세대가 주를 이룬다. 그들은 대한민국에서 ‘나’에게 집중하며 개성을 존중하고 자신의 취향과 주장을 거리낌 없이 표현하기 시작한 첫 번째 세대라 할 수 있다. 역사상 가장 진보적인 세대로 기록될 만한 X세대의 특성은 그들의 자녀에게 고스란히 이식됐다. Z세대는 개인주의, 다양성 추구, 일과 삶의 균형을 중요한 가치로 내세우는 등 부모 세대가 꿈꾸던 자유롭고 진보적인 가치관을 그대로 물려받았다. 소유보다 공유, 단순한 상품보다 경험, 활발한 SNS 활동과 수평적 인간관계로 정의되는 특성은 자칫 밀레니얼 세대의 가치관과 비슷하지만, 그 기저에는 전혀 다른 성향을 지닌 부모가 버티고 있다. 밀레니얼 세대가 부모세대에 저항의 마음을 품고 있다면, Z세대는 부모의 성향과 가치관을 지극히 당연하고 자연스럽게 받아들인다.

유튜브 너머에 틱톡

Z세대는 ‘디지털 원주민’이다. 2000년을 기점으로 대한민국에 일어난 IT 붐과 함께 태동한 이들은 태어날 때부터 완전한 디지털 환경이 갖춰진 상태였다. Z세대는 실질적으로 아날로그 환경을 체험조차 한 적 없는 첫 번째 세대다. 밀레니얼 세대가 디지털이 익숙한 세대라면, Z세대에게 디지털 이외의 다른 선택지는 처음부터 보지도 듣지도 알지도 못했던 것이다.
지금 지상 최대의 화제이자 누군가에게는 풀어야 할 숙제인 ‘유튜브’를 예로 들자. 밀레니얼이든 Z세대든 유튜브를 활발히 사용하는 건 맞다. 하지만 당신이 무슨 일을 하기 전 궁금한 게 생겼을 때, 휴대폰의 화면을 켜고 가장 먼저 선택하는 앱을 생각해보길 바란다. 밀레니얼 세대는 우선 구글이나 네이버 같은 포털을 열 확률이 높다. 그리고 궁금한 키워드를 검색한다. 격렬한 ‘디깅’의 시간을 거친 후 유튜브로 넘어갈 확률이 높다. 하지만 Z세대는 우선 유튜브다. 언젠가 십여 명의 멤버로 이루어진 아이돌 그룹의 촬영을 진행한 일이 있다. 당연히 전형적인 Z세대의 집합체였다. 촬영 중 찰나의 쉬는 시간이 발생할 때마다 그들은 각각 어딘가에 자리 잡고 휴대폰을 집어 들었는데, 가장 먼저 열린 앱은 유튜브였다. 그들은 그곳에서 삶에서 필요한 모든 걸 익히고 배우고 즐기는 것처럼 보였다. 유튜브는 여전히 Z세대의 막강한 지지를 받는 플랫폼이다. 그렇다면 유튜브를 향한 Z세대의 지지는 영원히 지속할 수 있을까?
‘틱톡’은 15초짜리 동영상을 공유하는 플랫폼이다. 중국 기업 바이트댄스가 2016년 서비스를 시작했다. 틱톡의 월간 스마트폰 앱 다운로드 수는 이미 유튜브, 페이스북, 인스타그램을 넘어섰다. 특히 수많은 Z세대 인구를 보유한 중국과 미국에서 그 기세가 뜨겁다 못해 무섭다. 틱톡의 인기에 운영사인 바이트댄스의 가치도 치솟았다. 바이트댄스는 2018년 말 일본 소프트뱅크로부터 30억 달러의 투자 유치를 받은 후, 750억 달러의 기업 가치를 인정받고 있다. 이는 우버, 에어비앤비 등을 뛰어넘는, 사실상 지금 세계에서 가장 높은 가치를 품은 스타트업 회사로 성장했다.
틱톡의 한국 홍보를 맡은 커뮤니크의 이이화 팀장은 틱톡을 이렇게 소개한다. “밀레니얼 세대를 포함한 Z세대는 연예인보다 인플루언서의 영향을 더 많이 받아요. 틱톡에는 틱톡커(TikToker)라는 인플루언서가 있죠. 지금 이 순간에도 다양한 틱톡커가 활동하고 있어요. 틱톡의 유저는 단순히 소비자에 머무르는 것이 아니라 적극적인 참여자로 활동하고 있어요. 1분 미만의 짧은 동영상을 제작하고 공유하는 트렌드를 형성했죠. 중국, 미국뿐 아니라 한국, 일본을 포함한 글로벌에서 막강한 성장세를 보이고 있어요.” 실제로 틱톡은 사용하기 쉬운 비디오 캡처 및 편집 툴을 활용해 누구나 쉽게 영상 제작이 가능하도록 함으로써 아주 빠르게 크리에이터와 팬들을 연결한다. 최근 인터넷에서 유행하는 ‘밈(Meme)’의 시작도 틱톡과 이어진다. 틱톡의 힘은 머라이어 캐리와 보이즈 투 맨이 가지고 있던 빌보드 싱글 차트 16주 연속 1위의 최장 기록을 깨는 데 계기가 됐다. 틱톡커인 래퍼 릴 나스 엑스(Lil Nas X)는 카우보이 음악을 배경으로 카우보이 흉내를 내는 비디오를 틱톡에 올렸고, 이 영상이 관심을 받으면서 그의 음악도 덩달아 상한가를 올렸다. 릴 나스 엑스가 부른 컨트리 힙합 곡 ‘Old Town Road’는 무려 19주 동안 빌보드 싱글 차트 1위를 지켰다. 그는 지금 세계에서 가장 ‘힙’한 별이 되었다. 그의 기록을 깬 인물 또한 Z세대의 아이콘 빌리 아일리시다.
이이화 팀장은 앞으로 틱톡이 나아갈 방향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틱톡은 공고한 현지화 전략을 보유하고 있습니다. 마켓별 유저들의 창의성을 존중하고, 콘텐츠 다변화를 추구해서 Z세대를 대표하는 플랫폼으로 자리매김할 것입니다.”

Z세대는 외롭다

시작은 곧 진격해 올 Z세대를 파악하고 어떻게 하면 이 새로운 인류와 섞여 시너지를 낼 수 있을까? 라는 호기심이었다. Z세대의 특징과 문화, 놀이 방식에 대해 알아보던 중 드리워진 그림자에 대한 의심이 부풀기 시작했다. 그러니까 그들은 혼자 놀기의 달인이 아닌가. 공부도, 놀이도, 친구와의 만남도, 연애도 모두 스마트폰 안에서 해결하고 있는 것 아닐까? 생각해보면 Z세대는 막강한 디지털 권력을 손에 쥔 채 자유롭고 합리적인 마인드를 가진 부모에게 좋은 영향을 받으며 정신적으로는 그 어느 세대보다 풍요로운 환경에서 자랐지만, 경제적으로는 그러지 못했다. 사춘기 무렵 글로벌 금융위기를 겪었고, 기저효과로 인한 2010년 6.5% 성장 외에는 연 4% 이상 경제성장을 경험해본 적이 없다. 미국의 세대 연구 전문가 진 트웬지 샌디에이고주립대 심리학 교수는 자신의 저서 <#i세대>를 통해 “세계적 경제 호황기에 청소년기를 보낸 밀레니얼 세대가 자기 확신이 강한 이상주의자에 가깝다면 불황기만 경험한 Z세대는 더 실용성을 추구하고 때로는 우울하기까지 한 성향을 보인다”고 분석했다. 그는 또한 Z세대를 ‘안전’에 관심이 많은, 스마트폰을 바라보는 것이 주된 사회 활동이 되어버려 진짜 사람을 만나는 일을 ‘두려워하는 세대’라고 정의했다. 좀 심한 비약이 아닐까 싶은 의심이 들 무렵, 최근 한국에서도 배달의 민족, 요기요, 쿠팡 등 물건을 구입할 때 판매자와 구매자가 대면하거나 전화 통화마저 나누지 않는 앱의 폭발적인 성장에 대해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나조차 배달 기사인 라이더에게 ‘그냥 현관문 앞에 두고 가주세요’라는 메시지를 남기는 편이니까.
마크 피셔라는 음악 평론과 문화 평론을 하는 영국의 소문난 비평가가 있다. 그가 우울증으로 세상을 떠나기 전, 온 세계 젊은이들의 가슴을 때린 얇은 문화비평서 한 권을 출간했다. 제목은 <자본주의 리얼리즘>. 그는 책에서 젊은 세대의 무력증과 우울, 휴대폰을 비롯한 각종 디지털 매체에 종속되어 쾌락만 갈구하는 현실의 태도를 비판했다. 그의 주장은 이렇다.
어차피 세상은 달라지지 않을 거다. 그러니 대충 눈치껏 닥치고 사는 게 상책이다. 이른바 ‘존버(최대한 버티기, 비트코인 열풍 속에서 생겨난 신조어다)’의 정신. 또 어차피 세상은 달라지지 않을 테니까 뭔가 나아질 게 있을 거라는 헛된 희망을 품지 말자. 그냥 눈만 끔뻑이며 사는 게 제일이다. 어차피 이번 생은 망했으니 너무 큰 목표 설정은 그만두고 ‘소확행’에 인생을 올인하는 게 현명하다. 집을 사거나 차를 살 생각은 말고 그때그때 내키는대로 여행이나 떠나고, ‘핫’한 레스토랑을 경험해보는 등 차라리 ‘삶의 질’을 높이는 데 집중하라. 그 경험을 SNS에 공유해서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좋아요’ 수확을 거두고, 그리하여 인플루언서가 되거나 최소한 힙스터 대열에 드는 것. 어쩌면 Z세대가 바라는, 그리고 누릴 수 있는 최대치의 호황이 부디 거기서 멈추지 않길 바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