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일이든 중간이 참 어렵다. 상사와 후배 사이에 낀 중간관리자 역시 마찬가지. 리더십과 팔로워십을 동시에 발휘해야 하는 세상의 모든 ‘김과장’이 생존하는 법에 대하여.

 

조직의 ‘허리’로 산다는 것

얼마 전 술자리에 갔다가 2년 차 과장인 친구에게 하소연을 들었다. 위로는 상사를, 아래로는 신입사원을 챙겨야 하는 고충 때문이다. 얼마 전에는 신입사원이 큰 실수를 하고 상사에게 크게 혼난 뒤, 한동안 우울감에서 헤어나오지 못했다고 한다. 후배에게 사정을 꼬치꼬치 캐묻기에는 거리감이 있고, 그렇다고 못 본 체 넘어가자니, 선배의 도리를 다하지 못하는 것 같아 죄책감이 느껴졌다고. 위로를 한답시고 ‘상사의 뜻은 그게 아니라…’라는 이야기로 시작했다가 오히려 ‘제가 왜 그 일을 해야 하는지 잘 모르겠다’는 골치 아픈 고민까지 들었다. 예전에는 조직의 목적을 위해서라면 누구도 희생을 마다하지 않았다. 상사의 질타는 당연했고, 상사의 지시를 잘 따르는 것이 구성원으로서의 마땅한 도리였다. 하지만 시대가 달라졌다. 예전에는 돈이나 지위가 공통의 이해였다면, 이제는 돈도 지위도 필요 없고 내 ‘워라밸’이 가장 중요하다는 사원이 더 많다. 앞으로도 변하지 않을 상사, 계속해서 변화하는 밀레니얼 사원들 사이에 ‘끼인 세대’는 변화가 필요하다. 올라갈 자리는 적고, 아래에서 올라올 기회를 노리고 있는 후배는 많다. 성과를 내기에도 부족한 시간에 일과 전혀 다른 차원의 ‘관계 맺기’에 대한 스트레스가 시작되면, 결국 품에 넣어둔 사표를 꺼내들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섬세하게 소통하기

조직은 늘 커뮤니케이션 능력이 뛰어난 사람을 원한다. 소통 능력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하지만 사회생활을 하며 지겹도록 들어온 ‘원활한 소통 능력’을 발휘하는 일은 생각보다 어렵다. 특히 중간관리자의 소통 방식은 더 중요하다. 상사보다 후배와 가까이에서 더 많은 시간을 보낼뿐더러, 함께 협업하며 부딪히는 일이 대부분이기 때문에, 좀 더 진중하고 섬세하게 다가설 필요가 있다.

후배와의 소통은 내 업무 능력을 제대로 보여주는 것에서부터 시작한다. 자신의 일도 잘하지 못하는 선배의 조언은 그 누구에게도 와 닿지 않기 때문이다. 업무 능력을 과시하라는 말이 아니다. 자신의 업무를 성실히 해낸 뒤에 자연스레 따라오는 후배의 존경심이 소통과 조언의 전제 조건이다. 조언을 할 때는 회사의 입장에서 변명을 하는 것이 아니라, 조금이라도 후배의 입장을 이해하고 공감해주며 경청하는 태도가 필요하다. 후배의 서술어가 끝나기도 전에 ‘라떼는 말이야’라는 식의 과거 회상형 조언은 더 이상 통하지 않음을 명심할 것. 반대로 질책을 할 때는 개인을 탓하는 것이 아니라 오로지 업무 자체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 ‘네가 문제가 많다’ 대신 ‘이 일은 문제가 많다’라고 말해야 한다. 더 나아가 이에 관한 치트키 문장도 있다. 긍정문 뒤에 부정문을 쓰는 것이다. ‘너 정도로 일을 잘하는 사람이 이번엔 무슨 일이야?’라는 식. ‘여기까지는 훌륭한데, 여기서부터는 수정이 필요하다’처럼 수정 요청을 할 때도 응용이 가능하다. 장점에 관해 칭찬을 자주 해주는 것도 좋다. 업무의 공을 후배에게 돌리거나, 상사의 장점에 대해 칭찬하는 것도 성공적인 팀워크를 위한 방법 중 하나다. 핵심은 구성원의 자존심을 지켜주며 조언을 받아들이게 하는 것이다. 잘 타이르는 것도 능력이다.

반면, 상사를 대하는 팔로워십의 핵심은 공감도 아부도 아니다. 꾸준한 보고와 눈앞에 보이는 성과다. 과장 연차가 되면, 일을 배울 시기는 이미 훌쩍 지났다. 업무를 대하는 나만의 방식이 필요한 때다. 시키는 일을 할 뿐만 아니라 시킬 수 있어야 하고, 타당한 근거를 들어 새로운 일을 만들어내야 한다. 자신의 주관을 실어 적극적으로 업무를 해나가는 것, 이보다 훌륭한 소통은 없다.

권한과 책임 사이에서

팀에서 막내 시절, 동기들이 뽑았던 선배의 최악의 멘트는 “조금만 참고 해. 그 대신 끝나면 맛있는 밥 사 줄게”였다. 그 대신이라니? 그게 그렇게 쉽게 치환되는 이야기인가? 맛있는 식사 자리를 거절하면 하지 않아도 되는 일인가? 그때 동기들에게 필요한 건 맛집의 음식이 아니라,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방안이나 조언이었다. 후배가 고민 상담을 해올 때, 공감과 위로도 필요하지만, 사실 그건 동기들과 술자리에서도 할 수 있는 일 아닌가. 공감과 위로를 넘어서 본질적인 해결 방안을 함께 찾는 일도 필요하다. 굳이 상사에게 보고하지 않아도 해결할 수 있는 일도 많고, 설사 상사의 도움이 필요하더라도 중간관리자의 입을 빌려 해결하는 것이 나은 일도 있다. 중간관리자는 신입사원에게 상사보다 상대적으로 덜 두려운 존재이므로, ‘보고하기 쉬운 선배’ 이미지를 구축해나간다면 관계를 다지기가 훨씬 쉬워진다. 게다가 밀레니얼은 회사에서 단순하고, 빠르게, 가장 효율적으로 일을 처리하는 것을 가장 위대한 능력으로 꼽는다. 모든 면에서 실시간 반응에 길들여진 그들은 언제나 현실적이고 빠른 피드백을 요구한다. 그래야 다음 단계로 나아갈 수 있으니까. 물론 언제나 따뜻한 선배가 되라는 말은 아니다. 때로는 불편한 피드백도 필요하다. 그들에게 마냥 ‘좋은 선배’로 남으려는 욕심은 버리고, 부정적인 피드백은 차라리 사이다처럼 톡 쏘는 게 낫다. 대신 납득할 만한 근거를 들어, 그러한 피드백을 도출한 이유를 논리적으로 설명해주면 된다. 내 일 하기도 바빠 죽겠는데, 왜 이렇게 나서서 후배를 도와주어야 하냐고? 후배의 일은 곧 내 일과 직결되기 때문이다. 이미 틀어져버린 일을 수습하는 것보다 처음부터 차근차근 함께 해 내가는 것이 현명한 일이란 걸 사회생활을 하는 동안 몇 번이고 반복해왔지 않나. ‘후배를 관리하는 것조차 내 월급에 포함되어 있다’는 말은 이미 증명된 셈이다.

더 나아가, 멸종 위기의 김과장

인사 컨설턴트나 인적자원관리를 전문으로 하는 학자, 커리어 컨설턴트 등 인사 관련 전문가들은 ‘과장’이라는 계급을 공룡에 비유하곤 한다. 훗날 중간관리자가 사라질 것이라는 예측 때문이다. 과장이라는 계급은 거대한 피라미드형 조직을 전제로 한다. 하지만 이제는 변화의 속도가 걷잡을 수 없이 빨라져, 현명한 답을 품의서에 하나하나 정리해서 계장, 과장, 차장, 부장, 임원 등의 순으로 전달할 시간이 없다. <회사에서 잘나가는 중간의 기술>의 작가 이라이 겐이치 역시 “앞으로 조직 계층은 궁극적으로 스태프(실무진), 미들(관리층). 톱(경영진)이면 충분하다”고 말했다. 그리고 이미 많은 기업에서 변화가 시작되고 있다. 실제로 우리나라의 경우, 통계에 의하면 직원 수가 대략 1000명인 회사에서 8명꼴로 과장이 된다(<통계학적으로 살펴보는 중간리더의 특징>, 염혜윤, 한국포럼, 2017)고. 이렇게 힘들게 과장이 되어도 과장의 수난은 끝나지 않는다. 지금의 중간관리자는 예전에 자신이 모신 상사를 롤모델로 삼을 수 없는 시대를 살고 있으니, 스스로 개척해나갈 수밖에 없다. 과장은 실무자로서의 능력을 인정받고, 경영과 인적자원관리를 포함한 관리자로서의 능력을 배워가는 자리다. 훗날 홀로 서기를 위한 발판을 마련하는 일, 세상의 모든 김과장이 풀어나가야 할 과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