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문유강은 연극 <어나더 컨트리>로 데뷔와 함께 불쑥 올라섰다. 젊은 배우는 행복해지기 위해 연기와 삶을 명확히 구분하려 한다. 연기는 연기고 삶은 삶이라고 했다. 좀 다른 세대의 배우를 마주한 기분이 들었다.

 

티셔츠는 브라바도(Bravado). 바지는 랙앤 본 바이 비이커 (Rag & Bone by Beaker). 목걸이는 일레란느. 팔찌는 베르툼(Verutum).

재킷과 바지는 캘빈 클라인 진(Calvin Klein Jeans). 팔찌는 일레란느(Illelan). 반지는 크롬하츠(Chrome Hearts).

요즘 오스카 와일드의 원작을 기반으로 한 연극 <도리안 그레이의 초상> 무대에 서고 있죠? 
네, 오늘 저녁에도 공연이 있어요. 지난 9월부터 시작했는데 이제 딱 세 번의 공연이 남았네요. 아마 오늘 대화가 세상에 나올 때쯤엔 되게 먼 과거를 돌아보는 기분이 들 것 같아요.

연극 <도리안 그레이의 초상>은 우리가 아는 작품과 얼마만큼 가깝고 또 멀죠?
이 작품에 함께하기로 하고 그의 책을 읽었어요. 작업이 진행될수록 원작과 많이 달라지겠다는 느낌이 들더라고요. 개인적인 의견으로는 원작의 기본적인 틀이나 골조조차 가져오지 않았다고 생각해요. 최소한의 소재와 소스 정도만 가져왔다고 볼 수 있어요.

공연 일정을 보니 2회 차부터 마지막 공연까지 꾸준히 무대에 서더군요. 처음과 끝을 책임진다고 볼 수 있을 정도예요. 남다른 기분이 들 것 같은데요?
애정이 많죠. 아쉽기도 하고요. 특히 이번 작품은 체력 소모가 큰 작업이었거든요. 처음으로 춤을 추기도 했고, 극의 서사가 일반적이지도 않았어요. 축약과 생략도 많아 여러모로 큰 도전이었죠. 제가 맡은 제이드라는 인물은 예민한 감각을 지닌 예술가인데요. 우울증과 조증의 감정을 동시에 표현해야 할 땐 좀 어렵더라고요. 처음엔 낯설기도 하고 두렵기도 했지만 덕분에 많은 걸 배웠고 그래서 더 큰 애정이 생긴 상태예요.

극과 극의 감정을 오가는 연기를 한 경험은 어때요? 연기뿐 아니라 개인에게도 영향을 미치던가요?
처음부터 그 점을 경계했어요. 저는 행복한 사람으로 살고 싶어요. 제게 연기는 정말 소중하고 특별한 의미를 지니지만 제가 맡은 역할이 제 삶과 생활에 부정적인 영향을 끼치게 방치하고 싶진 않아요. 그래서 역할과 제 삶을 확실히 구분하려고 노력하는 편이죠. 연습 과정에서 저도 모르게 우울한 감정이 자주 들었어요. 감정이 복받치는 순간도 오더라고요. 막 눈물이 날 정도로요. 배우로서는 몰입했다는 증거니까 좋을 수 있지만, 저에게는 아주 위험한 일이라고 선배들이 말씀하셨어요. 인 앤 아웃이 빨라야 좋은 배우라는 조언도 들었어요. 우울증이 여기에 있고, 조증이 저기에 있어요. 그 사이를 아슬하게 오가면서 한쪽으로 훅 뛰어내렸다가 다시 치고 올라와야 해요. 아직도 배우고 있어요.

퍼 베스트는 앤 드뮐미스터 바이 아데쿠베(Ann Demeulemeester by Adekuver). 바지는 디젤(Diesel). 부츠는 앤더슨벨(Andersson Bell). 팔찌는 베루툼.

그럼 당신이 표현하는 제이드는 어떤 인물인가요? 
저는 제이드에게서 자신감 결여의 모습을 봤어요. 자존감이 낮고 굉장히 위태롭고, 속을 알 수 없는 인간이라고 생각했어요. 정신적인 질병을 가진 인물이기도 하고요. 연기할 때 그 면면을 적극적으로 보여주고 싶었어요. 우리 사회는 아직도 마음의 병을 언급하는 일에 조심스럽잖아요. 누구에게나 찾아올 수 있는 단순한 외상이고, 치료받으면 건강하게 지낼 수 있다는 걸 알리고 싶은 마음도 있었어요. 물론 그걸 어떤 방식으로 연기하는 게 좋을지 고민도 많이 했고요. 제가 하는 표현이 누군가에게는 또 상처가 될 수 있으니까요. 취재나 자료 조사를 많이 했고요. 실제 마음의 병을 가지고 계신 분들의 조언을 듣기도 했어요.

검색창에 당신의 이름을 검색하면 ‘267대 1의 경쟁률을 뚫고 데뷔’했다는 기사의 제목이 맨 먼저 떠요. 그야말로 별처럼 데뷔한 셈인데, 사람들의 관심과 기대는 어때요?
의식하지 않으려 노력해요. 그러고 보니 올해 크고 작은 변화가 많았어요. 요즘 다짐하는 게 있거든요. 처음의 생각과 신념을 잘 지켜나가고 싶어요. 전과 비교해서 환경이나 상황이 변한 건 사실이지만, 저는 그냥 가던 길을 가려고요. 지금 덤덤하게 말씀드렸지만 사실 신기해요, 저도.(웃음) 요즘 일기를 자주 써요.

일기의 내용은 주로 뭐예요?
원래 배우 일지를 열심히 썼거든요. 매일 한 페이지를 가득 채웠어요. 약간 강박처럼요. 연습하면서 느낀 것들, 다짐 같은 게 주를 이뤘죠. 어느 순간부터 여백이 많아졌어요. 아주 소소한 것들이 더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맛있는 커피를 마신 기억 같은 거요. 아마 오늘의 촬영이나 지금 나눈 대화를 통해 느낀 건 구구절절 써 내려갈 것 같긴 하네요. 잊고 싶지 않으니까요. 잡아두기 위해서요.

어쩌면 당신이 연기를 대하는 태도의 변화처럼 들리기도 하네요. 정말 좋은 연기는 기술이든 감정이든 완벽해야 한다는 욕심을 버릴 때 나오는 법이잖아요. 덜어내는 순간, 여백을 통해서요. 
맞는 말씀이라고 생각해요. 처음 연기를 전공했을 때의 열정적인 마음은 지금도 여전하지만, 모든 게 계산된 연기가 꼭 좋은 건 아니라는 걸 알게 됐어요. 상대 배우와의 호흡에서 생기는 우연, 문득 다가오는 어떤 순간, 미처 깨닫지 못한 상태에서 불어오는 바람이 제 연기를 더 풍성하게 만들어줄 수 있다는 걸 배우고 있어요. 공백이나 여유 같은 거요.

니트는 질 샌더(Jil Sander). 바지는 디젤. 팔찌와 반지는 일레란느.

예술을 믿어요?
네, 저는 예술을 믿는 사람이에요. 사는 동안 무조건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예술은 마음을 따뜻하게 해준다고 믿거든요.

진짜 예술은 고통과 광기 없이 탄생하지 않는다고 하죠. <도리안 그레이의 초상>에도 나오는 말이고요. 예술에 관한 다소 전통적인 개념의 주장이라고 할 수 있죠. 동의해요?
그 대사가 극 중 제이드에게 굉장히 중요한 지점이긴 한데요. 저도 완벽하게 동의하진 않아요. 그게 뭐든 작업자가 가지고 있는 재료를 똑똑하게 파악하고 잘 꺼내 쓰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또 그걸 잘 포장하는 것도요. 결국 예술이란 그런 것 같거든요. 공감과 설득이요. 그걸 잘해내는 작업이 좋은 예술 아닐까요? 위대한 예술 작품을 만들기 위해서 제 삶을 벼랑 끝으로 내몰고 싶진 않아요.

내내 배우로서의 삶과 개인의 삶을 현명하게 분리하고 싶어 한다는 느낌이 드네요.
네, 영리하게요. 그게 행복한 길인 것 같아요. 아까도 말씀드렸지만 완벽한 분리가 쉽진 않아요. 그럴수록 더 노력해야죠. 연기는 연기고 제 삶은 제 삶이에요. 그걸 확실히 구분 짓고 싶어요.

아름다움에 대한 생각은 어때요? 지금 가장 젊고 아름다운 시기를 지내고 있잖아요. 
저는 ‘아름답다’는 표현이 좀 어색하고 어려워요. 특히 이번 작품에서 아름다움을 표현해야 하는 입장인데 그게 좀 그렇더라고요. 가만히 생각해보니까 저도 모르게 아름답다는 표현을 여성적인 표현으로 여기고 있더라고요. 이 작품을 통해 아름다움에 대한 생각을 많이 하게 됐죠. 나는 어떤 아름다움을 가지고 있을까, 어떤 아름다움을 표현할 수 있을까, 그렇게요. 결국 모든 사람은 다 나름의 아름다움을 가지고 있다는 결론에 닿게 됐어요. 지금은 아름답다는 표현이 너무 좋아요. 정말 귀한 표현이라는 생각이 들거든요. 예쁘다는 말보다 훨씬 더요.

재킷과 바지는 오프화이트(Off-White). 이너는 크롬하츠. 신발은 프라다(Prada). 반지는 베르사체(Versace).

얼마 전 배우 하정우 씨의 워크하우스컴퍼니와 전속 계약을 맺었죠. 
어느 회사에 소속되든 사실 제가 달라지는 건 별로 없어요. 그냥 하던 걸 하는 거고, 제가 잘하는 게 중요하니까요. 다만 하정우 선배님을 뵀을 때 참 편안해지더라고요. 마음이요.

스타가 되고 싶은 마음도 있어요?
당연하죠. 연기를 직업으로 선택하는 사람은 모두 그런 마음이 있어요. 좋은 연극과 함께 영화나 드라마에 도전하고 싶은 마음도 있어요. 요즘은 기분이 좋아요. 이제 시작이긴 하지만 좋은 사람들을 많이 알게 됐어요. 앞으로 어떻게 될지 모르지만, 그 사람들과 함께하는 시간이 그냥 좋아요. 시간이 지나면 저도 얼마만큼 변하겠죠? 좀 천천히 변했으면 좋겠어요. 지금 마음이 최대한 오래가길 바라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