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종옥은 배우는 초연해야 한다며 절반이 자신을 칭송한다면 절반은 자신의 적이라고 한 모택동의 말을 인용했다. 찬사와 환호는 오늘을 위한 것. 내일이 되면 아무 일도 없었던 듯 새 무대로 향할 것이다.

 

이너 톱과 메시 소재 톱은 모두 펜디(Fendi).

블랙 톱, 레더 스커트, 벨트, 레더 롱 부츠, 골드 뱅글은 모두 생 로랑 바이 안토니 바카렐로(Saint Laurent by Anthony Vaccarello). 골드 이어커프는 원스 인 어 라이프타임(Once in a Lifetime).

얼마 전 종영한 <우아한 가>는 MBN 개국 이래 최고 시청률을 기록했어요. 어떤 분위기였나요? 
방송국은 오히려 리액션이 없었어요. ‘드라마를 이렇게 모르나?’ 할 정도였어요. 시청률은 계속 잘 나오는데, 우리가 오버하는 것처럼 느껴지는 건가, 너무 덤덤한 거예요.

어느 순간 사람들이 다 <우아한 가>를 보고 있는 거예요. 한 칼럼니스트가 그렇게 말하더라고요. MBN에서 시청률 6%대라는 건, 대부분의 사람들이 보고 있는 거라고요. 
옛날 공중파였다면 난리 났을 거예요. 방송국에서 좀 더 홍보를 했으면 더 잘 나왔을 거예요. 그냥 뭐, 우리끼리 잘하자고 했죠. 지지부진 끌지 않은 게 저희 드라마의 성공 요인이었던 것 같아요. 예를 들어 제가 어떤 지시를 하면 다음 신에 바로 실행되고 결론이 나오니까요.

시청률이 좋은 현장은 뭔가 다른가요? 
나도 기분이 좋더라고요. 시청률이 전부는 아니지만 또 전부인 부분도 있어요. 원래는 시청률에 대한 생각 없이 작업하는 스타일인데 이번엔 촬영장 갈 때 시청률 물어보는 게 재미 중 하나였어요.

지금까지 했던 작품들로 증명이 된 부분이기도 해요. <바보 같은 사랑>, <거짓말> 같은 작품은 당시 시청률은 낮았더라도 아직까지 회자되니까. 
그런 작품들이 되게 많죠. 시청률이 전부가 아니라는 걸 시간이 얘기해줘요. 좋은 작품이라는 평가를 받으니까 제 배우 필모그래피에는 문제가 없었기에 지금껏 시청률에 기대진 않았어요. 시청률에 너무 좌지우지되는 건 저는 별로 배우답지 않다고 생각해요. 묵묵히 자기 갈 길을 가다 보면 어느 날 시청률도 오르고 또 좋은 작품을 할 수 있는 기회가 오거든요. 너무 어린 친구들이 시청률에만 반응하는 걸 보면 이해가 잘 안 돼요.

블랙 코트와 레이스 케이프는 프라다(Prada). 귀고리는 고이우(Goiu). 레이스 장갑은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올해 선보인 또 다른 작품인 <60일, 지정생존자>는 넷플릭스 리메이크작으로 화제를 모았지만, <우아한 가>는 기대작은 아니었어요. 왜 이 작품을 선택했어요? 
저는 작품 선택할 때 화제성 같은 건 잘 몰라요. 관심을 못 받는 작품인 건 느껴지더라고요. 이 작품을 한 건 순전히 한제국이라는 캐릭터 때문이었어요. 캐릭터가 너무 멋있는 거예요. 중년여배우가 그런 역할을 하기 쉽지 않거든요. 이것도 원래는 남자 배우가 안 한다 그래서 저한테 온 역할이에요. 대본을 받고 읽어보니 남자인 거예요. 원래는 몸이 힘들어서 작품을 쉬려고 했는데 이 캐릭터를 놓치고 싶지 않았어요. 그래서 용기를 냈죠.

시대에 맞게 여성 캐릭터를 채택한 작품이라 생각했는데 본래는 남자로 설정된 캐릭터였군요. 
하지만 선택을 도와주는 게 시대였을 수 있다고 생각해요. 남자 배우 캐스팅이 불발되고 감독님이 여자로 가자고 했을 때 다들 ‘어? 그래도 되나?’ 하는 반응을 보였대요. 감독님이 그걸 트셨던 것 같아요.

한제국은 재벌의 꼭대기에서 모든 걸 내려다보는 ‘킹 메이커’ 입니다. 어떻게 표현하려 했어요? 
처음 의도했던 것보다 촬영하면서 훨씬 더 멋있게 만들어진 것 같아요. 본래 남자 캐릭터다 보니 여자의 파워와는 달라서 처음 리딩할 때 작가나 감독님은 한제국이 충분히 파워풀하다고 느껴지지 않아 걱정했다고 하더라고요. 강렬하다고 해서 소리를 지르거나 힘으로 누르는 것보다는 다른 무언가가 있어야 했어요. 여자이기 때문에 남자와는 다른 파워풀함이 느껴져야 하는데, 저는 그게 ‘여성’에서 나온다고 생각했어요.

언제부터 흐름을 타기 시작했어요?
촬영 가서 아무 말도 없길래 잘됐나 했죠. 아무 말 없음 좋은 거죠. 한제국이 잘 나왔다고 하길래 그때부터는 제가 가진 톤을 더 살렸어요. 대사나 상황으로 보면 무지막지한데 겉으로 보면 굉장히 나이스하게. 그런 식으로 연기를 하려고 노력했고요.

한제국은 복수심도, 출생의 비밀도 없이 자신의 욕망 그 자체로 움직여요. 여성에게는 잘 주어지지 않는 역할이죠. 올해 좋은 드라마가 많았고, <더 뱅커>의 강삼도처럼 노회한 인물, 꼭대기의 인물은 왜 늘 남자가 할까 싶었는데 한제국이 나타났어요.
그래서 한제국이라는 인물이 다른 거예요. 끝날 때까지 한제국이 회장의 딸일 거라는 둥 추측이 나왔는데…. 막장 코드가 있는 드라마였기 때문에 끝까지 막장 코드가 나올 거라고 생각했는데 안 나왔죠. 그래서 저희 작품이 더 재미있었던 것 같아요.

결말도 한제국다웠다고 생각해요? 
정말 잘 끝내고 싶었어요. 원래 모완수(이규한)도 자살이 아니라 그냥 끌려가는 거였어요. 이규한 배우가 대본을 봤냐면서, 자기는 자기 캐릭터가 자살하는 걸로 결말을 생각했다는 거예요. 좋은 생각이다 싶어서 감독님과 얘기해보라고 했죠. 그래서 바뀐 거예요. 저 같은 경우도 감독님이 고민해보라고 했었고, 저도 처음에는 행방불명으로 가자고 했어요. 어딘가 숨어서 사람들을 다 속이는. 그런데 스스로 검찰로 들어가는 게 한제국에게 낫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 정도로 게임을 움직인 여자라면 자기가 살아날 구멍은 만들어놨겠다. 그냥 들어가서 자기 죄를 다 청산하고 나오는 게 훨씬 더 깔끔하다. 그래서 상의 후에 그렇게 됐어요.

이너 톱과 메시 소재 톱, 플리츠 스커트는 펜디. 이너로 입은 샤 스커트는 라 실루엣 드 유제니(La Silhouette de Eugenny). 세르펜티 투보가스 골드 네크리스와 블랙 컬러의 비제로원 컬렉션 링은 불가리(Bvlgari). 귀고리는 에스 바이 실(S by S.IL). 이어커프는 원스 인 어 라이프타임. 스틸레토 힐은 슈츠(Schutz).

<우아한 가>는 당신의 긴 필모그래피에서 어떤 의미로 남을 작품인가요? 
일단 시청률에 있어서 제 필모그래피에 쓸 수 있을 정도죠. 한제국이라는 인물에 대해 사람들이 반응해주니까 재미있었어요. 인물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도가 다른 작품 할 때보다 훨씬 높았던 것 같아요. 그런 게 배우 입장에서는 좋은 일이었죠.

요즘은 배우로서의 어떤 꿈을 꾸나요? 
배우로서 늘 좋은 작품을 만나길 꿈꾸죠. 다음에는 어떤 작품을 만날 수 있을까? 그렇다 보니 늘 준비 상태인 게 중요한 것 같아요. 작품을 잘해내려면 체력 관리가 제일 중요해요. 배우를 오래 한다는 건 연기력의 문제가 아니에요. 난 체력이라고 생각해요. 쉬지 않고 운동을 하죠. 쉬는 날엔 운동해야 된다는 게 있죠. 몸매를 위한 게 아니라 체력과 건강을 위한 거예요. 이번에도 되게 힘들었어요.

좋은 작품은 어떤 작품인가요? 
항상 좋은 작품이 오면 좋겠다고 얘기하는데, 예를 들어 <지정생존자>의 윤찬경 캐릭터나 한제국 같은 인물을 연기하고 싶다고 꿈꿔본 적은 없었어요. 하지만 작품으로 인물을 만나면서 저도 느끼는 거예요. 앞으로 어떤 걸 하게 될지 저도 알 수 없지만 좋은 작품에서 멋진 캐릭터를 해내는 게 여전히 내 꿈이에요.

<지정생존자>는 열린 결말이었죠. 대통령은 누가 됐을까요? 
제가 되지 않았을까요? 왜냐면 강상구는 전반적으로 저보다 조금 못 미치는 느낌이었으니까.(웃음)

40대 이후 여성 배우를 위한 역할은 없다고 하고, 늘 전형적인 역할을 맡게 된다고 하지만, 당신은 항상 예외예요. 이유가 뭘까요?
너무 특별한 기회죠. <라이브>도 경찰관 역할이었고. <지정생존자>도 윤찬경이면 해볼 만하다는 생각이 들었고요. 제가 운이 좋은 편인 것 같아요. 그동안 자아가 강한 역할을 많이 해서 그런 것 같아요. 의지가 있고 사회에서 차별받고 부조리한 부분에 대해 말할 것 같은 캐릭터거든요, 제가. 그래서 여자팬이 많고 저를 통해 대리만족을 한다는 얘길 많이 들었어요. 젊었을 때부터 그런 게 있었어요.

개인적인 삶에서는 어떤가요? 
어떤 부분은 그런 면이 있지만 저는 그냥 조용히 제 일을 하는 편이에요. 배우이기 때문에 이것과 저것을 다 가능하게 해내는 거겠죠.

최근 했던 작품들의 면면을 들여다보면 평범치 않아요. 정치 드라마도 있었지만, <환절기> 같은 작품도 있었어요. 
작품이 좋거나 캐릭터가 마음에 들거나인데 <환절기>는 작품이 마음에 든 쪽이에요. 이 이야기는 성 소수자인 아들보다 아들의 엄마에게 이야기가 집중되어 있는 게 좋았어요. 엄마의 이야기를 담담하게 다룬 이야기는 잘 없으니까, 그게 마음에 들어서 했어요. <환절기>는 영화제에서 평이 좋았는데 개봉했을 땐 했는지도 모르게 내려갔어요. 그런데 오히려 사람들에게 <환절기>를 잘 봤다는 이야기를 듣곤 해요.

그런 말을 들으면 어떤가요?
이 영화를 본 사람이 있구나. 본 사람이 있는 게 반갑죠. <러브 토크>라는 영화도 극장에는 얼마 안 걸려 있었어요. 한번은 카페에 갔는데 직원이 커피를 만들어주면서 <러브토크> 잘 봤다고 하더라고요. 너무 고맙더라고요. 며칠 걸려 있지도 않았는데.

연말엔 장진의 연극 <꽃의 비밀> 무대에 오를 예정이죠. 연극 무대에 꾸준히 서는 건 어떤 이유인가요? 
연극무대는 제가 공부하는 곳이에요. 무대를 경험하지 않으면 배우라고 말할 수 있을까. 무대에 올라가서 2시간을 감정 안에서 관객들을 끌어가는 건 배우로서 엄청난 에너지가 필요한 일이에요. 그런 걸 경험하지 않고 카메라 앞에서 연기하는 것만으로는 배우가 될 수 없어요. 뒤늦게라도 배우로 자리 잡은 사람들을 보면 베이스가 연극이잖아요. 그게 공부의 과정이에요.

늘 코미디를 하고 싶다고 이야기하는데, <꽃의 비밀>이 갈증을 해소해주나요? 
정말 나한테 코미디를 왜 안 줄까요? 나 정말 잘할 수 있다고 10년째 얘기하거든요. <꽃의 비밀>도 원래 처음에 장진이 소피아 하라고 했는데, 나 자스민 하고 싶어. 자스민 할 수 있어 하고 우겨서 한 거예요.

예전에 좋은 작품을 보면 몇 주가 행복하다는 말을 했었죠. 최근에도 그런 작품을 만났나요? 
딸에게 <더 리더>를 추천했는데, 봤더니 너무 좋다고 해서 저도 영화를 다시 봤어요. 그 영상에 빠져 있었어요. 영화가 좋아서 원작 소설을 읽고 있죠. 좋은 영화를 보면 한동안 그 영상에서 빠져나오지 못해요. 올해 <돈 워리>도 좋았어요. 호아킨 피닉스라는 배우에 대해 새롭게 인식한 영화였어요.

골드 벨벳 슈트는 아드브르(Adouvres). 코트는 김서룡(Kimseoryong). 옐로 골드와 아코야 진주 데인저 이어링과 링, 스콜피온 이어커프는 타사키(Tasaki). 골드 스틸레토 힐은 슈츠.

노희경 작가와 돈독한 우정으로 유명해요. <라이브> 이후 함께 작품을 할 계획이 있나요? 
없어요.(웃음) 사실 저희 거진 전화도 안 해요.(웃음) 봉사를 1년에 두 번 같이 해요. 그때와 작품 같이 하게 되면 이야기하고 그래요. <라이브>도 재미있었죠. 그 작품으로 배성우 배우가 새롭게 인식된 것처럼, 제게는 한제국이 그런 작품인 거죠. 노희경 작가 작품 속 캐릭터를 아무리 잘해내도 ‘배종옥은 노희경 작품 늘 했잖아’에서 벗어나지 않는 거예요. 메릴 스트립이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를 통해 다시 섰듯이 그런 의미에서 <우아한 가>가 저에게 의미 깊어요. 대중에게 새로운 모습도 보여주고 인정도 받았으니까.

대중에게 여전히 새로운 걸 보여주고 싶나요? 
로맹 가리가 에밀 아자르라는 필명으로 <자기 앞의 생>이라는 책을 냈잖아요. 저는 그게 이해가 돼요. 제가 배우생활을 오래 하며 기대치가 높아지니까 제가 집중을 받는 작품을 만나기가 쉽지 않아요. 한때 로맹 가리에 빠져서 작품을 다 읽었는데 <그로칼랭>에서는 ‘이 사람도 참 고통스러웠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난 새로 시도하고 있어, 왜 모르니?’ 하는 작가의 소리 없는 외침이 너무나 느껴지는데 어쨌든 자신의 전작을 뛰어넘을 수 없는 거잖아요. 저도 배우생활을 오래 하다 보니 뭘 해도 평가를 벗어날 수 없어요.

배종옥이라면 어떤 평가에도 당당하고 의연할 것 같은데요?
그런 부담을 느끼는 건 당연한 거고 그런 부담 때문에 내가 해야 할 걸 못하면 또 안 된다는 생각이 두 번째. 그 두 개가 공존해서 가는 것 같아요. 배우를 꿈꾼다면 칭찬도 욕도 담담히 받아들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해요. 욕도 듣고 칭찬도 들으면서 그런 과정에서 저도 많이 성장했어요. 저도 욕 많이 먹고 신인 때는 연기 못한다는 얘기도 많이 들었고 내 세계에 갇혀 있다는 얘기도 들었죠. 도시 여자 이미지를 넘어 멜로드라마를 하려고 시도한 게 노희경 작가와 한 <거짓말>이었어요. <바보 같은 사랑>은 스스로를 변화시켜야 했기에 고통스러웠고요.

지금 필모그래피는 분투의 과정과 기록이군요. 
그럼요. 사람들은 저에게 작품이 왔고 그걸 했다고 생각하지만 그걸 해내기 위해 치열하게 살았어요. 그것까진 타인은 모르죠. 제겐 그게 배우로 살아올 수 있는 원동력이었어요. 그런 재미가 없었다면 배우를 하지 않았을 것 같아요. 새롭게 도전하고 해내고 하면서 욕도 먹는 과정들이 배우로 가는 길이라고 생각해요. 대중들의 질타를 두려워하지 말라고 하고 싶어요.

질타를 두려워하지 말라는 말이 마음에 들어오네요. 후배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인 것 같기도 하고요. 
후배들에게는 너무 따지지 말고 들어온 작품이 하고 싶다면 용기를 내서 하라고 해요. 자신의 장점과 단점을 알게 되면서 새로운 길이 보이게 되니까. 저는 작품 하는 중엔 댓글도 보지 말라고 해요. 절대로 도움이 되지 않아요. 작품이 다 끝나고 이런 반응이 있더라 하는 것만 알면 돼요. 제 박사학위 논문 주제가 인터넷 게시판이 제작진과 상호 연관성 여부에 대한 건데도 전 게시판을 안 봐요. 인간은 누가 날 질타하는 거에서 결코 자유롭지 않거든요.

턱시도 드레스는 케이수 바이 김연주(KayeSu by Kimyeonju). 블랙 메탈 초커는 엠포리오 아르마니(Emporio Armani).

지금은 무엇을 바라보고 있나요? 
통로는 하나예요. 연출과의 대화. 기회가 되면 후배들에게도 이야기를 하지만 받아들이는 건 그들의 몫이죠. 난 그런 생각을 가지고 있고 그렇게 한다고만 말할 수 있을 뿐이에요. 대중들은 어떨 땐 욕을 하고 어떨 땐 칭찬을 하는 거지, 그들이 나에게 다 환호하는 게 아니에요. 모택동이 중국을 지배할 때, 저기 모인 사람들의 반은 나의 적이라고 했다죠. 그렇게 담대할 필요가 있어요. 남의 세상도 보고 나의 세상도 보는 게 다 삶이지, 나한테 모두가 박수를 칠 수는 없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