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디터가 어떤 일인지도 잘 모르면서 무작정 신기루를 좇았던 ‘매거진 키드’의 추억. 그 스크랩북 한 페이지에 피터 린드버그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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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WD>의 SNS 계정으로 피터 린드버그의 부고를 처음 알게 된 건 가을임을 의심하던 9월 4일이었다. ‘영화적 촬영 스타일로 유명한 전설적 사진가 피터 린드버그. 74세로 사망’. 이후 샤를리즈 테론과 밀라 요보비치 등 그와 작업한 셀러브리티들의 물기 어린 송가가 이어졌다. 나도 어딘가 찌릿하고 쓸쓸하고 무엇인가 말하고 싶어 견딜 수 없는 기분이 들었다. 칼 라거펠트가 사망했을 때 각자 어떤 때에 그를 만났고, 어떤 시즌을 사랑했고, 얼마나 존경했는지를 토로하던 타임라인도 떠올랐다. 칼을 실제로 만난 경험을 소중하게 간직하고 있는 패션 동료들과 달리 나는 피터 린드버그를 한번 만나지도 못했다. 2013년 10 꼬르소 꼬모에서 열린 사진전을 위해 내한했을 때 기회가 있었지만 다른 취재로 놓쳤다. 그러나 만나지 못했다고 해서 그가 나에게 영감을 주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에디터로 첫발을 내딛던 시절. 매거진을 좋아했기에, 에디터 일을 잘하고 싶은 열망에 가득 찬 조무래기가 나였다. 하지만 잡지 저널리즘을 다루거나, 매거진 에디터의 삶과 철학에 대해 알려주는 저작물이나 창작물은 어디에도 없었다. <바자>와 <보그>의 전설적 편집장 리즈 틸버리스의 자서전인 <패션 천재들> 정도만이 있을 뿐이었다(절판 상태라 값비싸게 구해 소중하게 간직했으며 이후 2014년에 개정판이 나왔다). 있더라도 대개 패션에 포커스가 맞춰져 있기에 피처 에디터의 가려운 등은 늘 그 상태였다. 수전 손택, 존 버거, 오리아나 팔라치, 노라 에프론, 벤 브래들리 등 손에 닿는대로 읽으며 여기선 이것을, 저기선 저것을 찾으려 애썼다. 요컨대 매거진 키드가 매거진을 경험하고, 공부하고, 영감을 받을 수 있는 것 또한 매거진뿐이었다. 지금처럼 편집장, 디자이너, 사진가, 아티스트를 0.1초 만에 팔로우하는 것만으로 엿볼 수 있는 시절이 오기 전에는 모든 게 느리고 좀 더 귀했다. SNS는 물론 아마존도 인터넷서점도 없던 시대에는 해외 잡지 전문 서점이 창구가 되어주었다. 한두 달에 한 번씩 서점을 찾아서 해외 잡지를 사곤 했고, 피터 린드버그가 담은 화보나 커버는 과월호도 그냥 지나치지 못했다. 피처 에디터이기에 모델 촬영 대신 아티스트와 셀러브리티를 촬영하는 나는 창연한 세트나 스펙터클한 로케 화보를 찍는 사진가 대신 인물의 감추어진 내면을 표현하는 듯한 피터 린드버그를 가장 좋아했다. 그점이 차라리 현실적이기도 했다. 표현하기보다, 바라보는 것 같았다. 케이트 모스도 그가 찍으면 드라마가 됐다. 그렇게 찍고 싶었고, 그렇게 찍을 날을 기다렸다. 내게는 파울로 로베르시, 스티븐 마이젤, 애니 레보비츠도 아니었던 거다.

그에 대한 존경과 애정은, 잡지 페이지를 소중하게 뜯어내어, ‘가장 좋아하는 것만 모으는 파일’에 구겨질세라 조심스럽게 집어넣는 일로 표현되었다. 얇디얇은 해외 잡지의 종이라서 최대치의 노력이 필요했다. 컬러 복사기 사용이 자유로운 회사에 입사하며 더 이상 잡지를 자르지 않고도 시안을 모을 수 있게 되었다. 모든 일이 그랬다. 잡지 에디터도, 사진가도 커다란 포트폴리오용 파일을 사서 자신의 포트폴리오라는 걸 만들고, 무겁게 파일을 안고 면접을 보았다. 지금은 아이패드, 맥북, 인스타그램의 해시태그 등이 대신하고 있는 일이다. 포트폴리오는 이제 어린시절 앨범 같은 게 되고, 시안은 이미지 파일로 바뀐지 오래다.

시안으로 피터 린드버그의 사진을 간혹 내밀어도 편집장을 통과하지는 못했다. ‘이건 피터 린드버그고 밀라 요보비치야’라고 하듯. 이제는 그런 사진이야말로 가장 어렵다는 걸 안다. 매거진은 ‘트렌드’가 중요하고 사진의 유행은 패션만큼이나 빠른 속도로 변해갔기 때문에 그의 사진을 시안 삼은 적은 거의 없다. 그럼에도 어떤 인물 사진을 진행할 때에도, 그 시도가 성공하거나 실패하는 것과 상관없이 늘 그 점은 바랐다. 배우고 스타이기 전에 한 사람으로 보였으면 한다는 것. 어떤 옷을 입고 어떤 화장을 하더라도 눈빛만은 그 사람 고유의 것이었으면 했다. 피터 린드버그의 사진처럼.

그렇다. 한번 만나본 적도 없는 피터 린드버그가 내게 해준 일. 친구들과 <논노>를 돌려 보았고, 할리우드와 프랑스 배우들의 흑백 사진이 실린 영화지를 읽고, 또 중철지와 라이선스 잡지가 폭발적으로 창간하던 때를 만난 매거진 키드. 파리도 런던, 밀라노, 뉴욕도 아닌 한국에서 태어난 사람에게 그의 사진이 준 것은 매거진에 대한 동경과 환상, 상상이었다. 어떤 실마리이기도 했고, 욕망의 실체였고 원동력이었다. 나는 피터 린드버그의 부고를 듣고서야 이제 칼 라거펠트를 떠나보낸 동료들의 슬픔을 좀 더 복잡하고 섬세하게 공감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한 시대의 우상. 아름다운 한 시절의 종말. 그리고 우리를 꿈꾸게 해준 모든 것에 대한 감사를. 저마다의 마음으로 작별 인사를 건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