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네시아 우붓은 더 이상 작고 조용한 아트 빌리지가 아니다. 스쿠터와 명상가들, 선불교 신자들로 붐비는 요즘. 변치 않는 건 여전히 싱그러운 초록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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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마 후잔 빌라의 베드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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뜨갈랄랑의 야자수.

봄비에 무지개가 떠 있는 우붓에서 아침 식사를 시작했다. 사원과 카페는 물기를 머금고 있고 거리를 어슬렁거리는 개는 비를 맞아 수달처럼 매끄러워 보인다. 비가 그친 순간 모든 건 새로워진다. 밝은 햇살 속에서 작은 도마뱀들이 젖은 바위 위를 이리저리 옮겨 다니고, 우유가 들어간 달콤한 아이스커피는 테이블로 서빙될 준비를 마쳤다. 발리의 심장부에 위치한 우붓의 풍경은 더없이 싱그럽다. 강가 계곡과 물웅덩이까지 모든 것이 완벽한 균형을 이룬다.

정오 무렵에는 하노만 거리(Jalan Hanoman)를 따라 예정된 바이크 투어를 기다렸다. 강한 생명력을 품은 마을은 정교하고 환상적인 사원의 느낌을 자아낸다. 안뜰과 거리 그리고 건물을 오가는 모든 사람이 시선을 사로잡는다. 이곳에는 언제나 돼지고기를 조리하는 냄새가 난다. 아이들은 길가를 따라 난 철판 위에서 구워진 사테를 놓고 옥신각신하는 중이다. 바나나잎에 싸인 쌀밥이 선물처럼 풀어지고 칠리를 곁들인 고기요리 위엔 피너트 소스가 뿌려진다. 허브를 넣은 말차를 마시는 힙스터들은 더위 속에서도 비니를 쓰고 있다. 거리의 악사는 존 콜트레인의 재즈를 연주하고 시차에 적응 중인 모델들은 빨간 히비스커스를 흔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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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마 후잔 건축 스튜디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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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마 후잔 빌라의 기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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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모 우마 우붓의 수영장.

이곳에서 태어나 오랫동안 우붓의 변화를 지켜본 한 토박이는 1980년대 중반 그가 접했던 어느 날의 광경을 내게 들려주었다. 낡은 다리 옆의 들판에 주차된 캠핑 밴에는 서핑슈트 차림의 호주 젊은이들이 잠들어 있었다. 당시 우붓은 관광지가 아니었다. 대부분의 관광객들은 스미냑(Seminyak)과 캉구(Canggu)의 호텔 주변에 몰려 있었으니 말이다. 간혹 이곳에 사람들이 몰려든 건 계단식 논을 구경하거나 빈야사 요가를 하기 위한 것이었다. 지금의 우붓은 숲과 방파제를 따라 대나무로 만든 사무실이 빽빽이 늘어서 있고, 대로변에는 발마사지 살롱이나 비파사나 명상(Vipassana Meditation) 센터가 들어섰다. 이 열대섬의 자연환경을 염려하는 목소리도 높지만, 북적이는 스쿠터들의 요란한 소음이 울려 퍼지는 가운데 여행자들은 한가로이 거닐면서 불을 뿜는 여신상을 구입하곤 한다.

한 시간 남짓한 시간을 보낸 후 이젠 떠나야 하지만, 그러고 싶지 않은 이유가 너무 많다. 바투르산과 아궁산의 동북쪽으로부터 불어오는 산뜻한 미풍이 라일락을 일렁이게 할 때마다 이곳이 고지대라는 사실이 실감 난다. 때로는 희뿌연 안개가 도로에 드리워져 촉촉하게 젖은 영국의 호수지방 컴브리아가 떠오른다. 전설에 의하면, 발리의 산들은 섬사람들이 별이 쏟아지는 하늘과 희귀한 꽃이 가득한 천상의 공간에 살기 위해 만들어졌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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뜨갈랄랑의 논과 야자수 풍경.

주말엔 친구인 바와와 함께 북쪽으로 차를 몰아 산기슭으로 향했다. 그의 어머니를 만나러 가는 길이었다. 타운 끝쪽의 아트숍과 압비얀가(Abhyanga) 마사지 가게를 지나치면서 움푹 파인 길 때문에 차가 덜컹거리기 시작한다. 중간엔 잠시 만월을 기원하는 축제 행렬이 지나갈 수 있도록 차를 멈추었다. 공물을 나르는 긴 행렬 동안 ‘탓 트왐 아시(Tat Twam Asi, Tat Twam Asi)’라는 읆조림이 끊이지 않는다. ‘내가 당신이고 당신이 나’라는 뜻이다. 각종 과일과 성냥, 튀긴 음식, 케이크, 사제의 작은 조각상 등이 실려 있다. 마을의 어린아이들은 오리를 안고 있다. 행렬 중에는 공식적인 사제들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는데, 바와에 따르면 ‘몸은 떠나 있지만 영혼은 함께 있는 상태’이기 때문이라 한다. 발리의 힌두교에는 뿌리 깊은 애니미즘, 불교, 시바파의 우주관, 저승세계에 대한 숭배 등이 혼합되어 있다. 모든 것은 서로 동화되며 신과 인간과 자연이 조화를 이루고 있다. 오늘날 이러한 의례는 결혼이나 장례 등을 포함해 대개 축복의 의미를 띤다. 특히 사원 제례의 경우 제물을 머리에 얹고 가는 긴 행렬과 탑처럼 쌓인 온갖 형태의 성수, 꽃, 각양각색의 과일, 반인반수상 등이 여행자의 시선을 사로잡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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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마 후잔 빌라의 커다란 소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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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외 샤워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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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마 후잔 빌라의 베드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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뜨갈랄랑에서 마주친 여인들.

일요일, 도로를 따라 가족들은 하루를 보내면서 카페에 들러 간단한 돼지고기 요리나 거인이 먹음직한 거대한 크래커를 먹는다. 주유소가 부족해서 가판대에서는 스쿠터를 위해 낡은 보드카병에 휘발유를 넣어 팔기도 한다. 가정용 액화가스부터 머리빗, 야생 바닐라, 지역 특산주, 알록달록하고 동그란 사탕, 엄청난 양의 패션프루트, 해 질 무렵 수영을 마치고 나온 사람들을 유혹하는 장어튀김 등에 이르기까지 거리에서는 온갖 것을 판매한다.

브두굴(Bedugul) 지역의 브라딴 호수에는 ‘물의 여신의 사원’이 있다. 그곳을 향하는 길은 좁고 구불구불하다. 울창한 정글을 지나면 아래쪽으로 반짝이는 논이 보이는데, 마치 당구대를 연상시킬 만큼 완벽한 초록빛으로 가득하다. 아스팔트 길에는 긴꼬리원숭이들이 이리저리 두리번거리고 있다. 차 안에서 지지직거리는 라디오 주파수를 맞추던 바와는 원숭이들과 절대로 눈을 마주치지 말라고 조언해주었다. 라디오에선 당둣(Dangdut: 인도네시아의 70년대 유행 대중가요)이 흘러나온다. 나쁜 남자를 어쩔 수 없이 사랑한 한 여인의 노래다. ‘나를 체포해주세요! 그렇지 않으면 그의 영혼을 훔칠지 몰라요’라는 노랫말이 반복된다.

바와는 10대에 베베틴(Bebetin) 산기슭의 외딴 북쪽 마을을 떠나 덴파사르에서 공부했고 우붓으로 옮겨왔다. 그는 기나긴 밤 동안 파라핀 램프 책과 씨름하느라 얼굴에 항상 검댕이를 묻힌 채 일어났다고 한다. 방과 후에는 매일 학교의 망고스틴 나무에 올라 남쪽을 상상했다. “저 너머에 무엇이 있는지 꼭 알고 싶었죠.” 그가 웃으면서 털어놓았다. “난 몽상가였거든요.”

아보카도 나무들이 바람에 흔들리는 숲에는 커피나무와 강황 그리고 정향 나무가 함께 자란다. 온갖 꽃과 양치식물을 지나 바와가 어린 시절 기도를 드리던 베베틴의 한 사원에 멈추었다. 그는 보석으로 장식된 발과 정령, 검을 쥔 손 등 다양한 석조상을 보여주었다. 모든 것에 이끼가 덮여 사원 전체가 살아 있는 것처럼 보였다. 드레스를 입은 여인상의 굽이치는 머릿결이 너무 성스러워 보여서 마치 콘월의 대성당에 있는 듯한 느낌도 들었다. 사원이 얼마나 오래되었는지 묻자 그는 어깨를 으쓱한다. 바와는 어머니의 나이도 세지 않고 있다고 한다. 자신의 나이 또한 마찬가지다. 이곳에서 시간은 그저 흘러가는 대로 흐르는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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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펠라 우붓의 수영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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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붓의 아침식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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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식을 취하고 있는 악사.

여행자에게 예술과 문화 그리고 힐링의 섬으로 알려지기 전까지, 우 붓은 환상의 섬으로 여겨졌다. 평화의 섬, 천 개의 사원을 지닌 섬, 동방의 이상향, 연금술사의 숨결이 깃든 섬 같은 말이 우붓을 수식 했다. 이곳은 여성 여행자가 혼자 여행하기에도 안전하다(발리를 방 문한 여성들이 공격받는 일은 극히 드물다). 요가 수행자와 명상가 가 넘치고 이들은 세상을 하나의 생명체로 바라보기 때문이다.

한동안 졸음에 겨운 벌이 윙윙거리는 소리만이 들렸던 이곳에 많은 것이 들어서기 시작했다. 코코넛 아이스크림 맛집으로 유명한 투키 스 코코넛 숍(Tukies Coconut Shop)은 후잔 로컬의 유명한 칵테일 바로부터 아주 가까운 거리다. 인근에 사는 60대의 카덱은 거리를 산책하면서 긴 대나무 막대를 사용해 높은 나무에 달린 싱싱한 프랑 지파니 꽃을 따낸다. 가족의 사원에 바치기 위한 꽃이다.

과거를 회상하며 우붓이 얼마나 평화로운 마을이었는지, 얼마나 자 연적이었는지를 얘기하는 사람도 많다. 하지만 우붓은 언제나 생생 하고 싱그럽다. 바투르산 남쪽의 들판과 계곡은 여전히 심오한 자 연을 간직하고 있다. 숨겨진 작은 골짜기와 폭 포 아래선 정화 의식이 치러지기도 한다. 자카 르타에서 온 한 가족과 함께 한 시간가량 폭포 를 따라 올라가 비바람에 씻겨 반들반들해진 바위 위에서 아이의 세례식에 참석했다. 사제 가 갓 만들어진 거미줄을 헤치고 어두운 동굴 안으로 사람들을 이끌었을 때 아이는 발버둥 을 치면서 비명을 질렀다. 내 머릿속은 놀라움 과 강렬함으로 가득 찼다. 몇 시간 후 처음 출 발했던 사원으로 다시 돌아왔을 때, 개는 나른 하게 잠들어 있었고 근처의 사마귀는 기도하 듯이 앞발을 비비고 있었다. 디즈니에 나올 법 한 싱그러운 녹음은 햇빛을 받아 투명한 감람 석처럼 반짝였다.

다시 현실 속 삶으로 돌아왔을 때 나는 무엇 이 더 나은 것인지를 판단하기 어려웠다. 대자 연의 광경은 이미 닫혀버렸기 때문이다. 우붓 번화가를 따라 가라데를 배우는 아이들이 수 다를 떨면서 걸어가고 있고 행사에서 춤을 출 소녀들이 엄청난 보석 장식의 무게를 견디면 서 퍼포먼스 차례를 기다리고 있다. 웅장한 머리 장식은 마치 샹들 리에를 얹은 것 같다. 남자들은 체스를 두고 있고 그 옆의 새장 속 에는 새들이 지저귄다. 미국에서 온 전직 승무원은 로컬 바비큐 맛 집 너티 누리스(Naughty Nuri’s)의 야외 테이블에 앉아 피스코 소어 (Pisco Sours)를 천천히 마시면서 추리소설을 읽는 중이다. 발밑에 는 골든 래브라도가 주인이 집에 가길 기다리고 있다. 해 질 무렵 달 걀 바구니와 향을 머리에 인 여자들이 태양을 등진 채 걸어간다. 체 크무늬 치마와 오렌지빛 메리골드 화환이 햇살을 받아 더 붉게 물든 다. 이 모든 것이 우붓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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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펠라의 동으로 만든 욕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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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라 구눙 레바 사원.

 

WHERE TO STAY

코모 샴발라 에스테이트(Como Shambhala Estate)
2005년에 오픈한 전설적인 리조트로 아융강을 내려다보는 정글 속에 위치해 있다. 자연과 어우러지게 설계해 바람에 흔들리는 숲과 부드러운 분위기의 객실, 싱그러운 논이 보이는 야외풀을 갖추고 있다. 다양한 트리트먼트와 요가와 식단 프로그램도 제공한다. 그 자체만으로 힐링이 되는 자연을 있는 그대로 즐겨도 좋다. 정원의 가파른 계단을 따라 내려가면 손에 잡힐 듯한 아름다운 풍경이 펼쳐진다. comohotels.com. 3박에 £1710부터.

코모 우마 우붓(Como Uma Ubud)
샴발라의 자매 호텔로 템푸한 계곡을 바라보고 있다. 타운에서 걸어서 30분 거리에 반얀트리와 프랑지파니로 덮인 천국 같은 우붓 하우스가 나타난다. 석조 통로, 탑형 지붕, 46개의 오픈 룸을 포함해, 인테리어 디자이너 이케부치 고이치로는 깔끔한 현대식 디자인과 소박한 빌리지 느낌을 조화롭게 혼합했다. 빨간색과 오렌지색을 활용한 대담한 컬러 조합이 시선을 사로잡는다. comohotels.com. 더블룸 £315부터.

루마 후잔 빌라(Rumah Hujan Villa)

우붓 타운의 맨 꼭대기, 템푸한 계곡과 워스강을 바라보는 숲에 위치해 있다. 나무로 가려진 이 모던한 스리베드룸 방갈로는 베네수엘라 출신 건축가 막시밀리안 젠켈이 목재와 용암석과 대리석 등 필요한 모든 자재를 현지에서 조달해 직접 설계하고 지었다. 망고와 파파야 나무로 둘러싸인 정원과 해수풀이 있다. rumahhujan.com. 최소 3박에 £505부터.

카펠라 우붓(Capella Ubud)

우붓 북쪽 끌리끼 계곡에 자리 잡은 카펠라 우붓은 건축가 빌 벤슬리(Bill Bensley)가 설계한 정글 속 22개의 레지던스다. 장식용 천, 동으로 만든 욕조, 유화, 인도네시아 조각상, 티크재 바닥을 사용한 특유의 로맨틱한 분위기는 빅토리아 시대의 탐험가들이 꿈꿨던 장면을 고스란히 옮겨놓은 듯하다. 축음기에선 감미로운 음악이 흘러나오는 낭만적인 곳이다. capellahotels.com. 더블룸에 £785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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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마 후잔 빌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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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펠라 우붓의 텐트 레지던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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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융산의 풍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