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 언더그라운드, 테크노, 페스티벌. 모든 게 합쳐진 ‘더 에어하우스’에 다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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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에어하우스의 DJ박스와 스테이지.

작년이었을까. 인스타그램을 둘러보다 더없이 ‘힙’한 동영상을 보게 되었다. 사방이 나무로 둘러싸인 숲 속에 빵빵한 테크노 음악이 울려 퍼진다. 사람들은 저마다 자유롭게 리듬을 타는가 하면 모닥불 앞에 옹기종기 모여 앉아 이야기를 나눈다. 미스터리한 소규모 파티(?)의 정체는 ‘더 에어하우스(The Air House)’. 남양주 운길산에서 1박 2일간 진행되는 뮤직 페스티벌이다. 자연 속에서 밤새워 테크노를 추다 동트는 아침을 맞이하는 건 어떤 느낌일까? 상상되지 않는 낭만에 끌려 운길산으로 향했다.

티켓을 사자마자 주변에 자랑 아닌 자랑을 하고 다녔다. 돌아오는 반응은 크게 “주최가 누군데?”와 “테크노 음악이 뭔데?”로 나뉘었다. 사실 두 질문은 이어지는 맥락이 있다. 더 에어하우스는 비주류 문화인 테크노를 즐길 신이 부족해 테크노를 사랑하는 개인 6명이 무작정 기획한 것이니 말이다. 제1회 때 200명이 찾아온 데 비해 제4회인 이번에는 1300명이 넘는 사람들이 모였다. 생각보다 규모가 커져 다음에는 장소를 옮길 계획이라고. 성장의 중심에는 인스타그램이 있었다. 그새 ‘힙플레이스’로 입소문을 탄 것. 단순히 신나는 음악을 즐기는 공간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아는 사람만 아는 페스티벌이라는 이미지가 밀레니얼 세대의 ‘힙’ 감성을 자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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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둠이 내려앉자 빛을 발하던 미러볼.

밤새 진행되는 페스티벌의 특성상 자정 무렵부터 새벽 세 시가 피크타임이다. 하지만 조금 느긋하게 분위기를 즐기고 싶은 마음에 먹을 것과 옷이 든 커다란 가방, 돗자리, 캠핑의자를 챙겨 낮에 출발했다. 운길산역과 행사장의 거리는 걸어서 15분 정도. 안내판을 따라 들꽃이 여기저기 피어 있는 한적한 길을 걸어가다 보니 멀리서부터 어렴풋이 음악 소리가 들려왔다. 이제는 평화로운 소규모 파티에서는 멀어진 풍경이지만 우거진 나무 틈새로 빛나는 미러볼이 풍기는 낭만은 여전했다.

일찍 도착한 만큼 좋은 자리를 잡을 수 있었다. 돗자리가 스테이지에서 너무 가까우면 어두컴컴한 밤에 오가는 다른 이들에게 밟히기 딱 좋고 스테이지에서 너무 멀면 춤추러 가는 길이 노동이 되어버린다. 낮에 도착한 만큼 나의 목표는 뚜렷했다. 내일 아침까지 지치지 말지어다. 체력이 약한 레이버에게 페이스 조절은 선택이 아닌 생존전략이다. 어두워지기까지 기다리는 시간이 마냥 무료한 것만은 아니다. 세상에서 가장 재밌는 사람 구경이 남아 있으니까. 페스티벌 룩이라는 해시태그가 따로 있을 정도로 누군가는 오늘만을 위한 코스튬에 심혈을 기울인다. 색색의 조명으로 직접 제작한 드레스와 코트를 보고 있으면 거룩한 장인정신이 느껴지기도 한다. 그런가 하면 테크노를 즐기는 사람들 중에는 재미있는 춤을 출 줄 아는 사람도 많다. 그들은 혈중 알코올 농도가 일정 수준에 이르지 않아도, 내내 터지지 않고 싱겁게 흘러가는 비트 위에서도 엄청난 움직임을 보여준다. 격렬하지만 유연하고 웃기지만 경외롭다. 그 춤을 보고 있으면 테크노를 잘 춘다는 것은 곧 자유롭다는 의미라는 걸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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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크노를 즐기는 사람들로 가득하다.

해는 금방 넘어갔다. 어둠이 내려앉자 시시각각으로 변하는 조명이 더욱 화려하게 나뭇잎을 물들인다. 넓지 않은 스테이지지만 위치에 따라 분위기도 천차만별이다. 뒤쪽은 공간이 여유로워 몸을 움직이는 데 제한이 없지만 그만큼 음악소리가 작다. 정신을 살짝 풀 수 있는 ‘무아’의 지경에 이르기 위해서는 심장이 터질 듯한 볼륨이 필요하다. 그렇다면 스테이지 앞쪽으로 진출해야만 하는데…. 눈치싸움의 시작이다. 가끔 우악스럽게 사람들을 헤집으며 나아가는 이들도 있지만 무대 매너가 아니랄까. 쉬러 가는 사람들이 빠질 때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치고 나가는 쪽이 진도는 더디더라도 훨씬 평화롭다. 한 가지 불편한 점은 화장실 시설이었다. 그래서 술을 안 마시기도 했다. 덕분에 간 건강을 사수할 수는 있었지만 새벽 네 시에 맨 정신으로 춤출 때는 조금 억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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캠핑을 신청하지 않아도 돗자리를 가져가 즐길 수 있다.

새벽에는 누군가 시간을 빨리 돌린다는 음모론을 믿는다. 분명 어두워지기만을 기다렸던 것 같은데 어느새 사위가 하얗게 밝아오고 있다. 밤을 꼬박 지샜을 때 느껴지는 특유의 나른함과 몽롱함이 몸을 감싼다. 그때까지 남아 있는 이들은 약간의 성취감과 선명한 피로감을 공유한 채 휘적휘적 좀비 같은 움직임으로 마지막 열정을 불태운다. 돌아오는 길부터 다음 날까지는 기억이 없다. 그대로 쓰러져 20시간을 잤으니 그럴 수밖에. 누군가 더 에어하우스가 어땠냐고 묻는다면 말도 말라며, 손사래를 치면서도 다음 예매를 애타게 기다릴 것을 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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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에어하우스의 밤은 지치는 법이 없다.

EDITOR’S TIP 

1 숲의 새벽을 얕보지 말 것. 기온이 꽤 낮아지니 여벌의 옷은 필수다. 술을 마시고 춤을 추면 열이 날 거라는 생각은 넣어두고 도톰한 담요를 한 장 더 챙기자.

2 일찍 일어나는 새가 돈을 아낀다. 예매 오픈가가 가장 저렴한 것은 모든 티케팅의 법칙이다. 마음의 결정을 내렸다면 그 즉시 결제하자. 더불어 선착순으로 마감되는 셔틀버스를 예매하면 녹초가 되어 첫차를 기다리는 사태를 방지할 수 있다,

3 모든 액체와 약물은 반입 불가다. 아주 꼼꼼하게 검사하니 어떤 전략이든 단념하는 게 좋다. 숙취해소제 또한 예외가 아니니 입장 전에 미리 먹어두도록 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