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달에 한 번 도심 속에 나타나는 푸른 채소의 숲, 마르쉐@. 소박한 채소시장과 활기찬 농부시장으로 향했다. 채소를 가득 담아도 튼튼한 에코백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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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선한 여주와 노각(늙은 오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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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일 판매하는 채소들로 채워진 채소지도.

모양은 조금 구부러졌어도 이 계절에 가장 신선한 가지고추를 내놓는 농부들과 흙이 묻은 비트를 쿨하게 에코백에 담아가는 손님들이 있다. 바로 ‘마르쉐@’의 모습이다. 마르쉐@는 2012년을 시작으로 한 달에 한 번 도심에서 열리는 도시형 농부시장이다. 프랑스어로 ‘장터’라는 뜻의 마르쉐에 ‘at’를 의미하는 @를 붙여 ‘어디에서나 열릴 수 있는 시장’이라는 뜻의 마르쉐@는 현재 혜화, 합정, 성수에서 열리고 있다. 이곳에서는 농작물을 손수 키운 농부들이 직접 셀러로 참가한다. 도소매를 거치지 않고 생산자와 소비자가 얼굴을 마주함으로써 특별한 소통이 이루어지는 시장을 지향한다고. 인스타그램의 ‘#마르쉐’ 태그 게시물은 2만 개가 넘어가고 있고 유튜브에는 마르쉐 브이로그가 높은 조회수를 기록하고 있다. 이미 문화로 자리 잡은 ‘마르쉐@’의 매력을 체험하기 위해 아침 일찍 장바구니를 챙겨 길을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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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부시장에서 판매하던 꼭시넬의 옥수수샐러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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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마트에서는 보기 드문 파프리카와 고추.

지금 가장 신선한 채소시장

마르쉐@합정은 신선한 농작물에 집중한 ‘채소시장’으로 매달 네 번째 화요일에 서는 장이다. 카페 무대륙의 공간을 빌려 이번 달에는 농부 18팀이 참가했다. 도착하자마자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은 채소시장의 간판과도 같은 채소지도. 이 계절에 가장 맛있는 제철 채소를 알려주는 안내판이다. 널찍한 나무판자 위에 오밀조밀 놓인 채소와 과일 옆에는 채소 이름과 이를 구매할 수 있는 농부팀의 이름이 써 있다. 평일 오전 11시, 장이 열리는 시간에 딱 맞추어 갔는데도 이미 손님들로 북적이고 있었고 여기저기에서 소통이 자연스럽게 이루어지고 있었다. “오늘 올라오시는 데 힘들진 않으셨어요?” 자색 아스파라거스를 판매하는 구정농장 앞에서 들린 인사말이다. 이미 얼굴이 익은 사이인 듯한 농부와 손님은 눈을 맞추며 대화를 이어갔다. 농부가 이번 달 농사 이야기를 꺼내면 손님은 지난번에 구매한 파파야 맛에 대한 이야기로 화답한다. 구매한 아스파라거스 세 단을 에코백에 넣자 농부가 향이 좋다며 라임 하나를 더 챙겨준다. 마르쉐@에서는 이런 대화가 모든 곳에서 이루어지고 있었다. 판매와 구매만을 위한 정보교환이 아닌, 인간적인 관계를 쌓아가는 대화가 오가는 장이라는 말이 이제야 이해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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뿌리온더플레이트의 현미케이크.

다품종 소량 생산 방식을 택한 곳이 많은 덕에 일반 시장이나 마트에서는 보기 힘든 농작물을 찾아볼 수 있다. 생전 처음 보는 채소가 워낙 많다 보니 구경만 해도 시간이 훌쩍 갈 정도. 이름도 모습도 생소한 채소가 궁금하다면 망설일 필요가 없다. 누구보다도 그 채소에 대해 잘 아는 농부가 바로 앞에 있지 않은가! “이건 뭐예요?” 전남 화순에서 올라온 김아랑 농부의 산들녘 코너 앞에서 발걸음을 멈췄다. 생긴 건 꼭 마늘과 같은데 크기가 그 10배는 된다. 마늘 한 알이 손바닥만 하니 이게 뭐냐고 묻지 않을 수가 없었다. “코끼리 마늘이에요. 이름만큼 정말 거대하죠? 처음 보시는 분이 많은데 이래봬도 토종 마늘이에요.” 김아랑 농부는 신기해하는 반응이 익숙한 듯 미소를 띤 채 효능과 먹는 법, 보관 방법까지 상세히 설명해준다. 여행지에서 재미있는 기념품을 사는 마음으로 코끼리마늘 한 봉지를 안아 들었다. 15개 남짓 들어간 한 봉지에 8천원 돈이니 저렴한 가격은 아니지만 아깝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그래도 시장이다 보니 저렴한 값을 기대하고 온 손님도 있지는 않을까? 그러고 보니 재래시장에서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는 흥정의 광경을 이곳에서는 찾아볼 수 없었다. “마르쉐@는 암묵적으로 농작물의 가치가 합의된 장이라고 생각해요. 채소를 키워낸 농부와 이곳을 찾아오신 손님 모두 그걸 알고 있기에 가격에 대해서 이미 동의가 이루어진 공간이죠.” 봉금의 뜰의 김현숙 농부의 말이다. 누군가의 수고로 생산된 물건의 가치를 모두가 알아보는 공간이 마르쉐@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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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로 만든 소품을 판매하는 모리스가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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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니멀리스트 키친의 이수부 셰프가 선보인 채소점심.

도심 속 축제, 농부시장

열흘 뒤 마르쉐@를 다시 찾았다. 이번에는 혜화역 근처 마로니에 공원에서 둘째 주 일요일마다 열리는 ‘농부시장’으로 훨씬 더 규모가 큰 시장이라는 말에 궁금증이 생겼다. 전날 태풍 링링의 여파로 출점이 취소된 팀도 많았지만 채소시장 참가팀의 거의 두 배에 가까운 33팀의 농부팀이 참가했다. ‘농부시장’은 농부팀 외에도 요리팀, 수공예팀, 이벤트팀이 참가하며 매달 주제가 정해져 있어 볼거리가 더욱 다양하다. 이달의 주제는 커피. 메쉬커피, 모멘토 브루어스 등 커피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한 번쯤 가봤을 카페의 이름이 가득한 커피팀 구역에는 향긋한 커피향이 가득했다. 아직 공원을 한 바퀴도 돌지 못했는데 어디선가 종소리가 들렸다. 마르쉐 자원봉사자들이 ‘마르쉐 타임’이라 적힌 팻말을 들고 시장 전체를 돌고 있었다. “마르쉐 타임은 마르쉐@에 출점한 셀러분들끼리 소통하는 시간이에요. 오전 11시부터 시장이 열리면 셀러분들끼리는 대화할 시간이 부족하다 보니 개장 30분 전에 따로 마련한 시간이죠.” 자원봉사자의 설명이다. 다른 팀들의 당일 품목을 구경하기도, 인사를 나누기도 하며 서로가 서로에게 영감을 주고받는 시간이라고. 손님들도 이러한 마르쉐 타임을 배려해, 일찍 도착하더라도 여유롭게 둘러보다 시장이 열리는 시간에 맞추어 장을 보기 시작한다. 누구도 규칙으로 정하지 않았지만 모두가 서로를 배려하는 문화와 예의가 이곳에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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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수 만든 도자기 그릇과 무농약 과일잼을 판매하는 ‘소요하기’.

채소시장과 농부시장의 차이는 규모뿐인 걸까? 이날 다시 만난 김현숙 농부에게 물었다. “일단 규모에 있어서도 차이가 많이 나지만 분위기 자체도 많이 달라요. 농부시장은 농부팀 외에도 다양한 출점팀이 모이기도 하고 문화공연도 함께 이루어지다 보니 정말 축제와 같은 느낌이 있어요. 그냥 지나가시던 분들도 들러서 재미있게 둘러보고 갈 수 있는 문화의 장으로 자리 잡았죠. 그에 비해 채소시장은 더 작은 공간에서 열리지만 말 그대로 채소에 집중한 시장이에요. 신선한 먹거리에 관심 있는 손님들이 일부러 찾아오시는 곳이다 보니 농부로서는 채소시장도 농부시장만큼 활성화되었으면 하는 바람이 있어요.” 이날 찍은 사진을 인스타그램에 올리자 많은 ‘좋아요’를 받았다. 특히 평소 환경에 관심이 많거나 비건을 지향하는 사람들로부터 직접 가보니 어떠냐는 질문을 받기도 했다. 마르쉐@를 향한 관심을 다시금 느끼며 자연스럽게 나 역시 다음 장을 볼 약속을 잡아놓았다. 수확의 계절인 만큼 도심 속 채소숲 역시 더욱 풍성해질 것이다. 그러니 부지런히 축제의 장을 즐겨야 한다. 차가운 겨울이 오기 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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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품종 소량생산을 보여주는 ‘베짱이농부’.

 


‘마르쉐@’ 즐기기

1 장바구니 챙기기 일회용품 사용을 지양하는 시장이기에 장바구니, 텀블러, 포장용기 등을 챙겨오는 손님들에게 덤을 얹어주는 셀러가 많다. 환경도 지키고 할인도 받으니 일석이조.
2 친구와 함께하기 마르쉐@에서 구매하는 모든 재료의 생명은 다양함과 신선함. 두고두고 먹을 수 있는 가공품이 아니라면 함께 간 친구와 여러 가지 채소를 사서 공유하면 더욱 좋다.
3 출품팀 예습하기 인기가 많은 팀은 시장이 열리자마자 긴 줄이 늘어서기도 한다. 출품팀은 사전공지가 되니 가고 싶은 곳을 눈여겨보고 가능하면 일찍 가는 것이 좋다. 조금만 늦으면 매진되기 일쑤!
4 정보 받아보기 마르쉐@기획단은 다양한 플랫폼을 통해 정보를 전달하고 있다. 인스타그램 @marchefriends와 네이버 블로그 blog.naver.com/fmmarcheat를 통해 상세일정과 출점팀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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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소시장이 열리고 있는 카페 무대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