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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모두가 에세이를 내고 읽고 있다고 하지만, 작가의 에세이는 조금 더 무게감이 생기는 게 사실이다. 여기에 문학과지성사가 더해진다면? 물론 갑작스러운 일은 아니다. 문학과지성사는 창립 이래 <문학과지성 산문선>을 줄곧 유지해왔으니까. ‘문지 에크리’ 시리즈는 동시대의 취향을 반영한 새로운 산문 시리즈다. 에크리는 ‘쓰다’라는 프랑스어. 처음 출간된 네 권의 작가는 문학평론가 고 김현과 이광호, 시인 김소연과 김혜순이다. <마음사전>, <시옷의 세계> 등으로 시와 산문을 이어온 김소연의 <사랑에는 사랑이 없다>는 사랑에 대한 시인의 응시가 담겨 있다. 이광호의 <우연한 고양이>는 ‘여전히 수상하고 알 수 없는 존재’인 두 마리의 고양이와 한 명의 동거인을 그린다. 에세이임에도 2인칭으로 그려진 화자가 독특하다. 한편, 이응준은 <해피 붓다>라는 ‘엣쎄이 소설’을 발표했다. 소설가이면서 시인, 영화감독과 에세이스트인 그는 장르의 ‘매시업’을 주저하지 않는데, 그 결과 에세이 같으면서도 소설 같은, 소설 같으면서도 에세이 같은 한 권이 완성되었다. 실명으로 등장하는 시인 함성호, 대중문화평론가 김봉석은 대체 무얼까? 실제와 허구, 픽션과 논픽션이 오락가락하며, 풍자와 해학으로 웃기려고 하는 건가 싶을 때 진지한 질문을 던져대는, 그야말로 롤로코스터 같은 작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