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라인 쇼핑. 생각보다 더 치밀하고 유혹적인 세상에서 유랑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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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마다 쇼핑에 임하는 자세가 다 다르다. 대표적으로 나는 필요한 것(꼭 사야 하는 것)이 정해졌을 때, 직접 가서 만져보고 입어보고 사야 만족하는 스타일이었다. 물론, 이런저런 쿠폰들 때문에 온라인 숍이 유독 쌀 때는 오프라인 숍에 가서 착용해보고 구입만 온라인 숍에서 한 적이 있긴 하다. 그러나 기본적으로 바로 내 손에 넣을 수 있는, 쇼핑백을 달랑달랑 들고 집에 와야 직성이 풀리는 오프라인쇼핑-주의자였다. 이 경험을 과거형으로 적은 이유는 현재는 많이 달라졌기 때문이다. 시시때때로 모바일 폰을 열어 자주 가는 온라인 숍에서 위시리스트를 만들어둔다. 그리고 필요한 것이 생겼을 때(아직도 충동구매는 덜하는 편) 빠르게 결제를 한다. 국내외 할 것 없이 요즘은 특별한 경우가 아닌 이상 3~5일 안에 배송이 된다(빠른 배송 선호하는 편). 내 방 전신거울 앞에서 옷이나 신발을 착용해보고 마음에 들면 옷장으로, 그렇지 않으면 바로 환불 절차를 밟는다(구매 확정도 빠른 편). 요즘 유명 해외 직구 사이트는 다양한 라인업, 빠른 배송 등 좋은 점이 많지만, 못지않게 편리한 점이 반송 서비스다. M사이트의 경우는 모바일 사이트에서 클릭 몇 번으로 반송을 신청할 수 있다. 애초에 배송할 때에 컴퓨터로 입력한 반송 송장을 동봉하고, 양면 테이프를 부착해놓아 애써 다시 포장할 필요도 없다. 양면 테이프를 뜯어 쓱 봉하고, 반송 송장을 올려두면 택배사에서 알아서 가져가고 며칠 뒤 친절하게 카드 취소 내역을 알려준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예쁜 옷과 액세서리를 구경하는 것을 좋아함에도, 사람이 붐비는 오프라인 숍에 가는 것이 망설여진다. 그곳이 특히 인기가 많은 곳이라면 많은 사람을 뚫고 원하는 옷을 골라야 하고, 피팅룸에서 옷 한번 입어보려 하면 또 상당한 시간을 기다려야 한다. 많이 더운 여름날에 땀이 쏙 빠지는 것쯤은 각오해야 하는 상황. 나는 나도 모르는 사이, 며칠이 걸려도 어디서나 손쉽게 결제하고, 쾌적하게 내 방에서 피팅하는 것을 즐기는 온라인쇼핑-주의자가 되어 있었다. 브랜드 입장에서는 어떨까. 나 같은 사람이 많아지다 보니 로드숍은 물론이고 특히 백화점에 입점한 숍의 경우 원했든 원치 않았든 쇼룸의 역할을 하는 경우가 늘고 있다. 사람들이 많이 와서 물어보고, 이것저것 착용하더라도 결제까지 이어지지 않는 것이다. 임대료가 높은 매장이라면 울며 겨자 먹기식 운영도 한두 해일 것. 많은 브랜드가 상시적인 오프라인 숍의 수를 대거 줄이고, 필요시 제한적 팝업 형태로 쇼룸을 운영하며 돌파구를 찾고 있다. 최근 96년 전통의 미국 럭셔리 백화점 체인, 바니스 뉴욕이 파산 보호 신청을 한 것은 이 같은 상황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지속되고 있는 패스트 패션 트렌드, 그리고 모바일 쇼핑과 해외 직구 등 디지털에 핏된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과 경쟁에서 밀린 것이다. 글로벌 출판 체인들이 오프라인 발행을 접고 디지털 전용으로 바꾼다고 했을 때도 비슷한 충격이었다. 아날로그와 디지털, 오프라인과 온라인 등 아슬아슬하게 오버랩되어 있는 시장이 디지털과 온라인 위주로 재편되고 있다.

국내 패션 기업은 이 같은 변화의 흐름에 휩쓸리지 않기 위한 방편으로 온라인 전용 브랜드를 선보이고 있다. 대부분 오프라인 숍을 운영했던 브랜드들이 순차적으로 매장 수를 줄이고, 아예 다 없애며 온라인 전용 브랜드로 전환하는 것이 수순이다. 한섬의 잡화 브랜드 덱케가 대표적이다. 현대백화점그룹 계열인 한섬은 이 같은 변화를 가장 먼저 체감하고 빠르게 변화를 주도하고 나섰다. 타깃층을 낮춰 패스트 패션에 반응하는 밀레니얼과 포스트 밀레니얼 세대를 공략한다. 가격대도 함께 낮췄다. 백화점에 입점했던 숍은 모두 철수했고, 그 대신 국내 유명 온라인 패션몰에 입점했다. 새로 설정한 타깃층이 반응하기 시작하니 매출은 눈에 띄게 좋아졌다. 임대료 들어갈 일이 없으니 그것도 전부 수입으로 남는다. 삼성물산은 약 2년 전 온라인 브랜드로 리론칭한 빈폴 키즈의 성장세를 본 후 온라인 전용 브랜드 론칭에 자신감이 붙었다. 올 초 밀레니얼 여성 고객을 공략한 브랜드 오이아우어를 론칭했고, 남성복 엠비오도 온라인 전용 브랜드로 전환했다. 오프라인의 부진을 온라인에서 메운다는 이야기가 속속 들려온다. 한편, 쓱닷컴을 론칭하고 이커머스 시장에서 공격적인 마케팅을 펼치고 있는 신세계도 온라인 전용 브랜드를 소개하며 선전하고 있다. 지난해 자체 남성 편집숍 맨온더분에서 온라인 전용 브랜드 미스터분을 선보였고, 신세계 톰보이는 스토리 어스, NND 등을 론칭하며 밀레니얼 고객층의 지지를 받고 있다. 올해 삼성물산을 제치고 패션 기업 매출 1위를 달성한 LF의 변화도 순항 중이다. LF는 기존 브랜드의 온라인 전용 전환에 힘을 쏟았는데 남성복 일꼬르소, 캐주얼 브랜드 질바이스튜어트, 여성복 브랜드 모그 등이 전환 이후 경쟁력을 높이고 있다. 이 밖에 코오롱인더스트리 FnC도 스포츠 브랜드 헤드를 시작으로 온라인 영업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물론 아직까지 소재의 촉감을 바로 느끼고, 유능한 직원들의 응대를 받으며, 기분 좋게 쇼핑백을 들고 나서는 달콤함을 다 버릴 수는 없다. 우리가 만드는 잡지도 온라인 세상에 수많은 비주얼과 쇼핑 노하우가 차고 넘치도록 있으나, 심도 있는 큐레이션, 종이 냄새, 넘기는 촉감과 기분, 마음에 드는 페이지를 북 찢어 원하는 곳에 붙여놓는 공감각적 행위 때문에 존재한다. 너무 빠른 변화가 애처롭고 쓸쓸할 뿐. 그 마음 달래기 위해 다시 온라인 쇼핑몰을 켠다. 핫!