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의 맨티스는 상대방의 감정과 생각을 읽고 공감하는 초능력자다. 호랑이띠 해 봄에 태어난 배우 폼 클레멘티에프는 이제 자신을 지킬 줄도 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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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킷과 슈즈는 지방시(Givenchy). 팬츠는 이자벨 마랑(Isabel Marant). 링은 존 하디(John Hardy).

서울은 두 번째죠? 
네, 작년 봄 <어벤져스: 인피니티 워> 행사 때 처음 왔어요. 올해는 코믹콘 때문에 왔고요. 이제 막 공식 일정이 끝난 덕분에 자유가 생겼네요. 시간이 많진 않지만 최대한 즐길 생각이에요.

이렇게 더운데 즐길 자신 있어요?
날씨는 상관없어요. 오늘보다 좀 덜 더우면 좋겠지만, 진짜 춥거나 더워도 문제 될 건 없어요. 서울에서 즐기는 이 자유가 더 소중하니까요. 한국에서 만난 좋은 사람들과 한국 음식도 먹었고요. 마침 제가 좋아하는 작가인 제임스 진의 전시가 열리고 있길래 거기도 다녀왔어요. 미국에 있는 그의 작업실에 간 적도 있거든요. 서울에서 그의 작품을 만나니까 더 반갑더라고요.

제임스 진의 작품이 왜 좋아요?
글쎄요, 그런 건 말로 정확하게 설명하기 어렵다고 생각해요. 결국 모든 미술 작품은 아름다움을 표현하기 위함일 텐데, 그의 방식이 마음에 들어요. 굉장히 감성적이잖아요.

‘폼’이라는 이름이 한국과 상관 있다면서요?
어머니가 한국 분이세요. 제가 호랑이띠 해 5월에 태어났거든요. 5월은 봄이고 호랑이를 뜻하는 범의 발음을 따서 폼이라고 지어주셨어요. 또 폼은 프랑스어로 사과거든요. 그래서 어린 시절엔 놀림을 무지하게 받았죠.(웃음) 그 많은 과일 중 왜 이름이 사과냐 뭐 그런 거 있잖아요. 외계인 같은 내 이름이 싫기도 했는데, 오히려 지금은 더 사랑하게 됐죠. 저는 제 이름이 진짜 쿨하고 멋지다고 생각하거든요. 폼 클레멘티에프.

저도 호랑이띠 해 5월에 태어났어요. 
오 마이 갓! 당신도 호랑이였네요. 우린 친구네요. 하이파이브 해요!(웃음)

한국인 어머니와 러시아계 프랑스인 아버지, 태어난 건 캐나다 퀘벡인데, 프랑스 파리에서 자랐고, 지금은 LA에 살죠. 
정확히 조사하셨네요. 다섯 살 때 아버지가 암으로 돌아가셨고, 어머니도 건강이 좋지 않으셨어요. 그래도 프랑스 가족 밑에서 나름대로 아름다운 어린 시절을 보냈어요. 괜찮다면 가족에 관한 이야기는 여기까지만 말해도 좋겠네요. 음, 가족이라는 건 복잡하잖아요.(웃음)

삶이란 원래 복잡한 법이죠. 
맞아요. 저는 여행을 아주 많이 다니며 살았어요. 덕분에 다양한 문화를 경험할 수 있었고요. 아마 그런 경험이 지금의 제 용기를 만들어준 것 같아요. 아마 배우가 되지 않았더라도 늘 새로운 곳을 떠돌고, 낯선 사람과 함께하는 직업을 가졌을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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톱과 스커트는 끌로에(Chloe). 부츠는 스튜어트 와이츠먼(Stuart Weitzm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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셔츠 드레스, 체인, 벨트, 부츠는 모두 알렉산더 맥퀸(Alexander McQueen).

16살에 박찬욱 감독의 <올드보이>를 보고 배우의 꿈을 가졌다면서요?
파리의 작은 독립 영화관에서 처음 <올드보이>를 봤어요. 어렸지만 멋진 건 알아볼 수 있었죠. 캐릭터, 감정, 음악, 촬영, 잔인함 같은 어떤 미친 감정에 감동받았어요. 열정적이라는 느낌도 들었고요. 지금 생각하면 그 열정이 자극적인 한국 음식과 닮았다는 생각이 드네요. 근데, 자신의 영화를 음식에 비유했다고 박찬욱 감독이 화를 내는 건 아니겠죠? 그럼 사과할게요.(웃음)

그의 영화 중 또 뭘 좋아해요?
<아가씨>를 좋아해요. 그 영화도 정말 굉장하던데요. <친절한 금자씨>도 좋아하고요. 눈만 시뻘겋게 칠한 그 메이크업이 진짜 강렬하잖아요.

박찬욱 감독의 <올드보이>는 2003년 작품이죠. 10년이 지난 2013년, 당신은 스파이크 리 감독이 리메이크한 <올드보이>에 출연해요. ‘행복’이라는 이름의 캐릭터로. 
<올드보이>를 통해 꿈을 꾸고, <올드보이>를 통해 꿈을 이뤘다고 할 수 있죠. 그 영화가 미국에서의 첫 오디션이었거든요. 당시엔 비자도 없던 상태라 굉장히 간절했어요. 오디션에 합격하면서 미국에서 체류할 수 있는 비자도 발급받게 된 거예요. 제 인생을 바꾼 영화죠. 스파이크 리가 캐릭터 이름으로 사용하기 좋은 한국 이름을 알려달라고 하더라고요. 매일 인터넷에서 한국 단어를 5개씩 찾아보다가 문득 ‘Happiness’가 한국어로 뭔지 궁금해서 찾아봤더니 ‘행복’이더라고요. 제가 맡은 캐릭터가 행복과 전혀 상관없는 삶을 사는 인물이거든요. 삶의 아이러니를 표현하기에 좋은 이름이다 싶었죠.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의 맨티스는 어때요? 굉장히 독특한 캐릭터잖아요.
재미있는 캐릭터죠. 이마에 더듬이도 있고, 특이한 렌즈도 착용했고요. 감독님과 함께 캐릭터의 특징을 만들어나가는 과정 전부가 즐거웠어요. 아마 배우로 사는 동안 평생 잊을 수 없을 거예요.

최근 마블을 비롯한 할리우드 영화에 다양한 인종과 더 많은 여성 캐릭터가 늘어나는 추세죠. 어때요?
정말 굉장한 일이죠. 지금 그 업계에서 일하고 있다는 게 행운이라고 생각해요. 아마 예전이었다면 오디션 기회를 얻는 것조차 쉽지 않았을 테니까요. 최근 마블이 제작하게 될 몇 편의 영화에는 많은 아시안이 출연하게 됐어요. 그런 큰 변화에 함께하고 있다는 건 정말 흥분되는 일이에요.

히어로물 중 욕심나는 캐릭터도 있어요?
<엑스맨>의 스톰이요. 제가 워낙 할리 베리를 좋아하기도 하고요. 그도 흑인이잖아요. 늘 뭔지 모를 커넥션을 느껴왔어요. 그게 뭔지 직접 확인해보고 싶은 마음이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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톱과 스커트는 이자벨 마랑. 부츠는 크리스찬 루부탱(Christian Louboutin). 링은 존 하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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톱은 알렉산더 맥퀸.

모터사이클과 승마를 즐긴다면서요? 
모터사이클과 승마는 단순한 취미생활을 넘어 제게 영감을 줘요. 저를 자유롭게 해주기 때문이에요. 아주 빠른 속도로 달리면서 어떤 순간, 그러니까 좋았거나 혹은 좋지 않았던 모든 순간을 완전히 잊을 수 있도록 만들어줘요. 이만큼 쌓여 있던 고민과 스트레스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해주죠. 그리고 말은 타는 것보단 그 생명 자체를 좋아하는 거 같아요. 언젠가 말과 함께 수영한 적이 있거든요. 그때 아주 특별한 교감을 나눈 기억이 나네요.

그럼 태권도와 복싱을 비롯한 여러 운동에 도전하는 건 어때요? 독립적이고 강한 여성이 되고 싶은 마음일까요?
저는 늘 강하고 독립적인 사람이 되고 싶었어요. 그런 마음이 저 자신을 보호하고 방어할 수 있는 운동을 배우게 만든 것 같아요. 스스로 지킬 줄 안다는 건 굉장히 어렵지만, 의미 있는 일이거든요.

SNS를 보니까 <매드맥스>와 <킬빌>도 좋아하나 봐요. 당연히 욕심나는 캐릭터인가요?
꿈이죠. 그런 캐릭터를 연기하는 건 아마 많은 여성 배우들의 꿈이기도 할 거예요. 저 역시 기회가 생기면 언제든 도전할 거고요.

서울에서의 지난 며칠은 어땠어요? 
솔직히 말씀드리면 제가 아는 한국은 박찬욱, 봉준호 감독의 영화 속의 모습이 전부였거든요. 어머니의 나라이긴 하지만 알고 있는 게 거의 없었어요. 그냥 낯선 곳이었죠. 막상 와보니까 한국 사람들이 제가 한국계라는 이유로 반가워해주고, 자랑스럽게 생각해주는 게 인상적이었어요. 덕분에 마음의 평화를 찾게 된 것 같아요. 영광스럽고요. 기회가 된다면 또 오고 싶어요.

당신은 이제 행복해요?
10분 후엔 또 어떻게 달라질지 모르지만, 적어도 지금은 행복해요.

다행이네요. 아, ‘Friend’는 한국말로 ‘친구’, ‘Freedom’은 ‘자유’라고 발음해요. 그냥 알려주고 싶었어요. 
오케이. 마음에 드네요. 앞으로 모터사이클 탈 때마다 한국어로 외칠게요. 자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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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킷, 코트, 슈즈는 모두 지방시. 팬츠는 이자벨 마랑. 링은 존 하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