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창단된 이화여자대학교 야구 동아리로 24명이 활동 중이다. 여자만으로 구성된 대학 내 야구 동아리로는 국내 최초이자 유일무이. 여자라서 할 수 없다는 말에 합리적인 이유를 찾지 못해 직접 그라운드에 섰다. 목표는 1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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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말에 부산에서 원정 경기가 있었다고요. 이겼나요? 
졌지만 잘 싸웠어요. 콜드 안 당하기가 목표였는데(웃음) 생각보다 점수도 많이 내서 좋았어요. 5점 이상은 내고 싶었는데 8점까지 냈거든요. 수비는 접어두더라도 공격을 잘하면 기쁘기 마련이에요. 어제는 계속 추가점을 내서 지치지도 않고 재미있었어요. 그리고 주루 플레이도 과감했어요. 도루도 많이 했고요.

대학 내 여자 야구팀의 존재 자체에 놀라는 사람들이 많아요. 어떻게 창단하게 되었나요? 
동아리를 만든 선배가 자주 가던 학교 앞 카페가 있었어요. 카페 사장님이 사회인 야구를 하는 분이었는데 야구가 하고 싶으면 도와줄 테니 한번 사람을 모아오라고 했대요. 그렇게 2012년에 창단됐고 그해 9월에 첫 연습이 있었어요. 많아봤자 대여섯 명 오겠거니 생각했는데 열 명이 넘는 인원이 모인 거예요. 그때부터 시행착오를 거치면서 지금의 체계가 자리 잡게 됐어요.

현재 선수 구성은 어떻게 되나요? 
현재 활동 인원은 24명으로 재학생과 졸업생이 함께하고 있어요. 학번, 전공 다 상관없이 모집하다 보니 구성원이 다양해요.

졸업생까지 함께 활동하는 건 흔치 않죠. 이유가 있나요? 
처음에는 동아리 운영을 위해서였어요. 보통 야구 동아리에서 졸업생은 OB로 빠져서 따로 활동하는데 저흰 이제야 자리를 갖추고 있는 상황이라 OB, YB를 나눌 정도의 인원이 되진 않았어요.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졸업생들이 없으면 아예 경기 자체를 할 수 없는 상황이었어요. 이제는 그 정도는 아니라 졸업생이 꼭 의무적으로 나와야 하는 건 아니지만 함께하는 게 즐겁다 보니 남게 됐어요.

다른 대학교에는 여자 야구 동아리가 없나요? 
저희가 국내 최초 대학 내 여자 야구 동아리였는데 8년째 아직도 유일무이한 팀이에요. 하루라도 빨리 다른 팀이 생기는 게 소원이에요. 창단 초기에 언론 인터뷰를 몇 번 했는데, 안 좋은 댓글을 너무 많이 받다 보니 이후로 인터뷰를 피하게 됐어요. 하지만 지금은 그런 걸 무릅쓰고라도 기회가 되면 적극적으로 하려고 해요. 제발 우리를 보고 한 팀이라도, 한 명이라도 시작하는 사람들이 생겼으면 좋겠어요.

어떤 댓글이 달렸죠? 
가장 많은 건 ‘얼평’이었어요. 기사 내용과 무관하게 얼굴이나 몸을 보고 평가를 하는 거예요. 비방과 성희롱이 난무했죠. 그 다음으로는 학교 욕이 많았어요. 여자가 무슨 야구를 하냐, 역시 이대에는 유난스러운 애들이 많다, 뻔한 이야기예요. 그리고 실력이 부족하다는 점도 조명이 많이 되다 보니 그게 자랑이냐는 말도 많아요. 하지만 저희는 학생들끼리 하는 동아리니까 사회인 야구팀과 경력 차이뿐만 아니라 경제력 차이도 많이 날 수밖에 없거든요. 야구라는 취미에 쏟아부을 수 있는 여력 자체가 달라요. 저희도 그 한계를 알고 있지만 그래도 재미있으니까 하는 것뿐인데 댓글 다는 사람들은 그걸 모르죠. 기사를 읽어본 사람이라면 쓰지 않을 댓글들이에요. 여자가 야구를 한다니 욕을 하고 싶나봐요.

여자는 야구를 하는 기회 자체가 어릴 때부터 거의 없잖아요. 언제부터 야구를 하고 싶다고 생각했어요? 
어린 시절에도 하고 싶었어요. 단지 기회가 없었을 뿐이죠. 학교 체육 시간에 남자애들이 축구나 농구를 하고 있으면 같이 끼어들어서 하다가 혼이 난 친구도 있어요. 그냥 같이 뛰는 건데 그게 안 된대요. 여자라서 안 되는 건가? 안 되는 이유에 대해서 아무도 합리적인 답을 내려주지 못했어요. 그 답이 나오지 않는 이유는 하나예요. 애초에 명제가 잘못된 거죠. 여자라서 안 되는 건 없는 거예요. 이걸 깨달은 순간 정말로 야구를 할 수 있겠다 싶었고 이화플레이걸스에서 같은 마음을 가진 친구들을 만났어요.

하고 싶다는 생각에서 직접 하는 것으로 이어지기까지, 용기가 필요하진 않았나요? 
중고등학생 때부터 운동을 한 체대 선수들 네댓을 제외하면 저희 대부분은 대학에서 야구팀에 처음 들어왔어요. 성인이 되어 팀스포츠를 한다는 건 어떤 계기나 결심이 필요한 것 같아요. 자연스럽게 하게 되는 게 아니라 신청을 한다든지 전화를 해야 하니까요. 아무것도 할 줄 모르는데 할 수 있나 싶어서 걱정되고 망설이는 게 보편적이에요. 그런데 다들 들어와서 배우기 시작한다는 말을 듣고 용기를 냈어요. 에라 모르겠다, 하고 싶으니까 해보자 해서 시작했는데 정말 되는 거죠. 야구를 좋아하는 마음과 맨땅에서도 시작할 수 있다는 인식이 중요한 것 같아요.

정말 야구를 못해도 상관없나요? 어떤 식으로 모집하나요? 
학교 커뮤니티에 글을 올리거나 동아리 홍보 기간에 부스를 설치해서 모집해요. 대부분은 원래부터 관심을 갖고 있어서 먼저 야구 동아리를 찾아보고 들어왔어요. 언론 인터뷰를 보고 들어온 사람도 있고요. 야구 실력은 전혀 상관없어요!

야구를 좋아하는 여성이 늘었지만 여전히 직접 하는 여성은 드물어요. 주변 사람들에게 함께 야구를 하자고 설득해본 적 있나요? 
많이 권해봤어요. 우리 중에도 그렇게 들어온 멤버도 많고요. 주로 보는 걸 좋아하는 친구들에게 직접 하면 더 재미있다고 말하면 솔깃해해요. 물론 잘되진 않아요. 대부분은 시도할 생각조차 못하거나 야구를 하는 게 굉장히 어려운 일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아요. 아무래도 여느 구기 종목과 달리 장비가 많이 필요하다는 점도 진입장벽을 높이는 것 같고요.

또 다른 진입장벽이 있다면? 
기회도 인식도 부족해요. 야구장에 가면 여성 관객이 정말 많아요. 야구를 좋아하는 여자들이 그렇게 많은데 직접 해보고 싶어 하는 비율이 이렇게까지 적은 건 말이 안 되는 거죠. 해볼 생각을 미처 못해본 거예요. 기회가 주어지면 누구든 할 수 있어요. 남자라고 해서 운동을 잘하게끔 태어난 건 아니에요. 어렸을 때부터 동네 친구들과 어울리며 공 차고, 학교 체육 시간에 팀스포츠를 하는 게 익숙해지면서 잘하게 된 거죠. 그리고 나와 같은 사람들이 많다는 걸 깨닫는 어떤 촉발점이 있어야 팀이 만들어지는 것 같아요. 못해도 할 수 있고, 여자도 할 수 있다는 거. 아직은 그런 인식 자체가 부족해요.

야구를 보는 것과 하는 것의 차이가 그렇게 큰가요? 
차이 나는 정도가 아니라 아예 모든 게 달라요. 처음엔 볼 때 생각했던 것과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어려워 야구를 볼 때 선수 욕을 덜하게 됐어요. 그러다 두세 달쯤 지나면, 프로 선수들은 돈 받고 하는데 왜 나랑 똑같은 실수를 하지? 이런 생각이 들어요. 내 돈 내고 야구하는 나도 저런 실수는 안 한다!(웃음)

처음 야구를 한다고 했을 때 주변 반응은 어땠나요? 
야구 동아리에 들어갔다고 하면 대부분 야구를 직관하는 동아리인 줄 알아요. 여대라는 사실을 잊고 남자 야구팀의 매니저로 들어갔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많고요. 그게 아니라 야구를 ‘하는’ 동아리라고 설명하면 전형적인 대화로 이어져요. “네가 야구를 한다고?” “그래, 내가 야구를 해.” “아, 하는 거? 진짜 딱공으로?” “그래, 진짜 딱공으로!”

상처받는 일이 많겠군요. 
셀 수도 없어요. 지난주에는 좌익수가 다쳤어요. 경기 후에 택시를 타고 근처 병원에 갔는데 의사가 뭐 하다 다쳤냐고 묻더라고요. 야구하다가 다쳤다고 하니 대뜸 “인필드플라이가 뭐야?” 하는 거예요. 여자가 야구 한다니까 ‘진짜 야구’를 하는지 테스트하고 싶었나봐요. 아무리 그래도 병원에서 다친 환자에게 너무한다 싶더라고요. 여자가 스포츠로 다칠 수도 있다는 걸 상상하지 못하는 것 같아요. 부상에 대해 걱정해주는 사람들도 많은데 그건 남자나 여자나 같이 조심해야 하는 거니까요.

반대로 누가 가장 지지해주나요? 
서로의 존재가 가장 큰 용기를 줘요. 그리고 장거리 경기 갈 때마다 항상 같은 기사님의 버스를 대절하는데 묵묵히 응원해주세요. 혹시라도 다른 버스를 타고 간 날 이길까봐 불안해하시기도 하고요.(웃음) 연습장의 코치님은 1승하면 고기를 사 주시겠다고 약속했어요. 마음의 후원자 분들이 많아요.

감독을 맡은 한지윤은 작년까지 여자야구 국가대표팀에 있었다면서요. 
우리 팀 최고의 인풋이죠.(웃음) 한지윤 감독이 온 후 팀에 변화가 있다면 경기할 때 말이 많아졌다는 점이에요. 저희는 아직 잘하지 못하니까 수비를 20~30분씩 할 때도 있는데 그럴 때는 말이 점점 없어지거든요. 그런데 한 감독은 경기를 많이 해봐서 응원도 할 줄 알고 무엇보다 큰 목소리로 카운트를 해주더라고요. 우리 기가 죽든 말든 아주 꿋꿋하게. 그게 반복되니까 다른 선수들이 보고 배웠어요. 이제는 제가 안 해도 경기장에서 다른 목소리가 들려요. 그게 너무 좋아요. (한지윤 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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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나 대회에는 어떤 식으로 참여하나요? 
저희는 동아리인 동시에 여자야구연맹에 등록되어 있는 사회인 야구팀이기도 해요. 그래서 사회인 야구 대회가 열린다고 하면 신청을 해서 나갈 수 있어요. 작년부터는 서울시민리그에도 참가하고 있고요. 교통편이나 일정 때문에 대회 참가 자체가 어려울 때가 많아요. 시험기간이라도 겹치면 대회에 나가지 못하니까요. 그래서 저희에겐 한 경기 한 경기가 소중해요.

학업 또는 취업 준비와 야구를 병행하는 게 어렵지 않나요? 
일주일에 한 번, 토요일 오전 세 시간은 학업이나 취업 준비에 큰 방해가 되지 않아요. 취업 준비만 하다 보면 삶이 팍팍해지기도 하는데 이틀 활동을 하면서 운동도 하고 에너지도 얻어가요.

지방에서 열리는 대회가 많은 걸로 알아요. 비용이 따르는 일인데 재정적인 문제는 어떻게 해결하나요? 
학교 지원이 거의 없기 때문에 대부분 사비로 충당해요. 원래 한 학기에 차비 정도의 지원비는 나왔는데 이번엔 그마저도 안 나왔어요. 공 두 박스 주더라고요. 24개. 연습 환경도 열악한 편이에요. 학교 운동장은 내야 크기도 안 나오는 공간이에요. 여름에 비라도 한 번 오면 잡초가 발목까지 자라 있어요.

여자들은 팀 경기를 경험할 기회가 적잖아요. 팀스포츠로서 야구의 매력이 있다면요? 
혼자 하는 스포츠는 시작하기 쉽지만 그만큼 그만두기도 쉬워요. 내가 피곤하고 하기 싫은 날 안 가면 그만이니까요. 그런데 팀으로 하는 운동은 정기적인 연습시간이 정해져 있으니 귀찮게 느껴지는 날에도 나갈 수밖에 없어요. 그래도 막상 와서 함께 하면 재미있으니까 계속 하게 돼요. 언제나 날 받아주는 팀이 있다는 건 멋진 일이에요.

경기 외에 언제 팀워크를 느끼나요? 
순도 100%의 야구 이야기를 할 때요. 이렇게 야구 이야기만 많이 할 수 있는 곳을 찾기가 힘들어요. 대부분 야구를 오래 본 사람들이라 십 년 전 이야기를 해도 다 알아들어요. 때로는 신입이 놀라서 나갈까봐 걱정되기도 해요. 너무 ‘덕후’들만 있다고 질색할까봐.(웃음)

야구할 때 가장 기쁜 순간은 언제인가요? 
경기 때 파인 플레이를 하거나 연습 때라도 외야에 뜬 공을 잡으면 다른 팀원들이 입을 모아 “나이스~!”라고 합창해주는데 그때 정말 행복해요. 모두가 동시에 같은 감각을 느낀다는 게 신기하죠. 성격이 외향적으로 변한 사람들도 있어요. 뭔가를 선택할 때 과감해지는 면도 생긴 것 같아요. 말하자면 자존감과 자신감이 높아졌다고 할까요? 일상 속에서는 물건을 좀 더 정확하게 던지게 됐고 악력이 세져서 인간 병따개가 되기도 했어요.(웃음).

승률은 어떻게 되나요? 
0%. 전패예요.

계속 승리하지 못하면 힘든 날도 있을 텐데요.
경기가 자주 있는 게 아니다 보니 경기를 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기뻐요. 경기 후에 ‘오늘의 한마디’를 하는 시간을 갖는데 그날 경기에 대해 좋았던 점, 아쉬웠던 점을 돌아가면서 말하는 거예요. 그렇게 함께 말하다 보면 실책에 대해 자책하기보다 보완의 기회로 삼게 돼요. 사실 서로 놀리느라 정신이 없어요.(웃음) 어쨌든 재미있게 즐기려고 하는 거니까요.

즐기기만 하면 언제 이기죠? 
여성으로서 팀스포츠를 함께 하는 경험이 처음인 친구들이 많아요. 이 경험이 즐겁게 남는 게 승리하는 것보다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사회인 야구도 경기다운 경기를 하기 위해서는 꽤 많은 시간과 연습이 필요해요. 실제로 전국 사회인 야구 대회에 나가보면 다른 여자 야구팀의 평균 나이가 30~40대예요. 20대인 팀은 저희밖에 없어요. 그러니 지금은 즐겨도 되지 않을까요? 물론 1승이라는 목표는 변함없지만요.

언제쯤 1승이 가능할까요? 
올해가 적기예요. 작년부터 서울시민리그에 나가기 시작하면서 고정적으로 5개 정도의 경기를 더 하게 됐어요. 경기 횟수가 늘어나니 경기력도 올라오는 게 실감 나요. 좋은 신입이 많이 들어오기도 했고 잘하는 사람들이 많이 남아주기도 해서 팀이 성장하는 게 보여요.

야구뿐만 아니라 축구, 농구 등 운동을 하고 싶지만 망설이는 여성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나요? 
“할 수 있으니까 일단 해봐라.” 하고 싶다는 마음 하나만으로 충분하다는 걸 알았으면 좋겠어요. 사회가 규정해놓은 여성성 바깥으로 한 발만 내디디면 돼요. 그 자유를 알게 되면 이전으로 돌아갈 수 없어요. 지금 당장 친구와 캐치볼 하는 걸로 시작하는 거예요. 던지던 테니스공이 야구공으로 바뀌는 건 한순간이에요. 그렇게 나아가게 돼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