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 빼려다 정신분열증? 식욕을 줄여 다이어트에 도움을 준다는 식욕억제제가 환각 작용으로 논란을 겪고 있다. 잘 쓰면 약, 못 쓰면 독이 되는 식욕억제제에 대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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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욕과 의욕을 잃고 이명을 얻다?

“누군가 날 부르는 소리가 들려요.” “주변에 검은색 벌레들이 기어 다녀요.” 공포 영화에나 나올 법한 이 환청과 환각 증상은 정신질환자만 겪는 일이 아니다. 생각보다 우리 주변에서 쉽게 접할 수 있는 다이어트 약, 식욕억제제의 부작용이다. 식욕억제제는 마약류로 지정 관리되는 성분인 펜터민, 펜디메트라진 등을 함유했기 때문에 과다 복용시 치명적인 정신분열을 일으킬 수 있다. 최근 한 배우 역시 식욕억제제 8알을 한꺼번에 복용한 뒤 환각 증세를 보여 차도에 뛰어들었다. 당시 그는 식욕억제제를 복용하는 것만으로도 마약검사에서 필로폰 양성반응이 나왔을 만큼 약에 취해 있었다고 한다. 이 사건을 보니, 얼마 전 친한 패션 에디터에게 들은 식욕억제제 복용기가 머릿속을 스쳤다. 그녀가 식욕억제제를 처음 접하게 된 건 마동석 같은 팔뚝이 고민이라며 지방분해 주사를 맞으러 갔을 때다(물론 내가 보기엔 그저 보기 좋은 팔뚝일 뿐이다!). 팔뚝 주사를 한두 번 맞고 나서도 여전히 쌀 한 가마니를 거뜬히 들어 올릴 정도로 근력이 남아돌던 그녀에게 의사 선생님은 “사실 제가 의사지만 그런 주사 백 번 맞아도 소용없어요. 입에 음식 넣는 걸 그만둬야죠”라고 ‘팩폭’을 던졌다고 한다. 정신이 번쩍 든 그녀는 의사 선생님에게 고해성사 중인 어린 양마냥 “그러기엔 세상에 맛있는 게 너무 많아요…”라고 털어놓은 것. 이후 다이어터들 사이에서 ‘나비약’이라고 불리는 나비 모양의 식욕억제제인 ‘디에타민’을 처방받았다(디에타민은 마약류 항정신성 의약품으로 분류된 펜터민이 들어 있는 약으로, 의사의 처방 없이는 구입할 수 없다). 그렇게 그녀는 식욕과의 싸움을 선포하며 식욕억제제를 복용하기 시작했다. 며칠이 지나고 마감 기간이 되어 서로의 스트레스를 공유하려던 차, 낯설 만큼 평온한 모습의 그녀를 마주했다. 평소 같았으면 섭외, 원고, 촬영 등 할 일을 수만 가지 늘어놓으며 한숨만 쉬었을 게 분명한데, 감정 없이 글만 쓰는 ‘원고 기계’가 된 것 같았달까? 확실히 여느 때와는 다른 분위기였다. 사정을 들어보니 식욕억제제 복용 후 아무런 분노가 느껴지지 않는다는 것. 그저 온몸의 힘이 빠지고 유체 이탈한 기분이라고 했다. 식욕은 물론 세상살이에 대한 의욕까지 모조리 잃었다고. 처음엔 웃어넘겼지만 결국 그녀는 괴로운 이명을 듣기 시작했고, 손까지 벌벌 떨리는 부작용을 겪고 나서야 식욕억제제 복용을 중단했다. 평소 다이어트에 강박이 없던 나도 친구의 식욕억제제 복용기를 지켜보고 나니, 점점 이 약이 불안하고 궁금해졌다. 도대체 식욕억제제는 어떤 약이길래 이렇게 어마어마한 부작용을 낳는 걸까?

잘 쓰면 약, 못 쓰면 독!

식욕억제제는 비만 환자 치료에 보조요법으로 사용되는 약이다. 복용 시, 뇌에서 배고픔을 덜 느끼게 하거나 포만감을 증가시키도록 하는 신경전달물질의 작용이 증가한다. 결과적으로 식욕이 줄어들어 체중 감량을 돕는 것이다. 복용하자마자 식욕이 억제되는 걸 느낄 수 있는데, 그로 인해 체중이 얼마나 줄어드는지, 줄어든 체중이 얼마나 지속되는지는 개인마다 다르다. 모든 식욕억제제는 펜터민, 펜디메트라진, 디에틸프로피온, 마진돌 등 마약류로 지정 관리되는 성분을 함유해 의사의 처방이 있어야만 구입 가능하다. “펜터민은 뇌에 ‘노르아드레날린’이라는 신경전달물질을 증가시켜 교감신경을 흥분하게 해요. 가만히 있어도 긴장하거나 공포에 처한 상황처럼 느끼게 되죠. 결국 신진대사가 빨라져서 식욕이 억제되는 거예요.” 린클리닉 김수경 원장의 설명이다. 이렇듯 식욕억제제는 중추신경을 흥분시키는 작용을 하기 때문에 사람에 따라 가슴 두근거림, 맥박 상승, 불안감, 현기증 등의 부작용이 나타날 수 있다. 과다 복용할 경우에는 심리적 불안, 환각에 빠지기도 한다. 그렇다고 무조건 식욕억제제를 피하라는 얘기는 아니다. 복용량, 복용 기간 등 의사의 처방을 준수한다면 탄수화물 중독이나 폭식증 같은 잘못된 식습관을 막아 체중 감량에 큰 도움을 받을 수 있다. 식욕억제제를 다이어트의 조력꾼으로 만들지 훼방꾼으로 만들지는 건강한 복용법에 달렸다는 사실을 잊지 말자.

 

부작용 경고 신호
적정 복용량을 준수했다고 할지라도, 아래와 같은 증상이 나타날 경우 즉시 복용을 중지하고 의사와 상담할 것.

1 사지가 떨리고 호흡이 빨라질 때.
2 메슥거림, 구토, 설사를 동반할 때.
3 극심한 공포와 불안감이 느껴질 때.
4 부정맥, 고혈압 또는 저혈압 등 순환계의 이상반응이 나타날 때.
5 환청이나 환각 작용이 일어날 때.

 

식욕억제제, 알고 먹자

1 동맥경화증, 심혈관계 질환, 중증의 고혈압, 폐동맥 고혈압, 갑상선기능 항진, 교감신경 흥분성 아민류에 특이체질, 녹내장, 15세 미만의 환자는 복용을 피한다.
2 복용과 동시에 적절한 운동, 건강한 식사 습관을 유지해야 한다.
3 펜터민, 펜디메트라진, 플루옥세틴 등 식욕억제제의 종류마다 1회 복용량이 다르니, 반드시 의사가 처방한 복용량을 지켜야 한다.
4 일반적으로 4주 이내만 복용하도록 권고한다. 의사의 판단에 따라 4주 이상 복용이 가능하지만, 3개월을 넘길 경우 심각한 부작용이 나타날 수 있다.
5 두 가지 종류 이상의 식욕억제제를 함께 복용해서는 안 된다.
6 우울증 치료제인 플루옥세틴, 설트랄린, 플루복사민, 파록세틴 등의 의약품과 병용 투여하지 않는다.
7 복용 중 술을 마시면 유해한 반응이 나타나기 쉬우므로 금주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