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와 영화, 뮤지컬 무대를 오고 가면서 꾸준히 음악과 영화를 만드는 배우 유준상. 그를 이토록 끊임없이 움직이게 하는 힘은 무엇일까? 뮤지컬 <그날들>의 장막 뒤로 엿본 유준상의 오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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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이지 재킷은 맨온더분(Man on the Boon), 이너는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팬츠는 자라(Zara), 스니커즈는 브루넬로 쿠치넬리(Brunello Cucinelli).

얼마 전 드라마 <왜 그래 풍상씨>가 좋은 성적으로 막을 내렸어요. 40부작의 긴 호흡을 이어가는 건 배우에게 어떤 경험인가요? 
극중 ‘간암’이라는 설정 때문에 늘 삶과 죽음 사이에서 고민해야 했습니다. 어느 순간부터는 역할이 일상에도 영향을 주더라고요. 밥도 잘 안 넘어가서, 늘 배가 고팠죠.(웃음) 지금 생각해보면 그런 장면들을 어떻게 찍었나 싶어요. 동료 배우들과 스태프들 덕에 집중할 수 있었죠. 팀워크가 좋아서 시청자들도 확실히 몰입감이 있었을 거라고 생각해요.

한편으로는 또 다른 ‘막장’ 스토리였다는 비판도 있었는데요.
‘막장’이라는 건 어떤 사람의 인생이 끝에 몰렸을 때 어떻게 대처하느냐에 달린 것이거든요. 사실 가족 중 트러블메이커가 한 명만 있어도 힘든데, 풍상이네는 그런 동생이 네 명이나 있죠. 하지만 결국 어려움을 함께 헤쳐나가고 동생들에게 진심 어린 사과를 하게 돼요. 이 드라마에서 보여주고자 하는 바가 드러나는 순간이었죠. 상대방의 입장이 되어서 한 번 더 생각해보는 것, 드라마의 타이틀도 ‘가족은 짐인가, 힘인가’였거든요. 살다 보면 때로는 가족이 남보다 못한 순간이 있으니까요. 이런 걸 좀 더 극적으로 보여주기 위해 작가님이 여러 장치를 해뒀던 것 같아요.

힘든 내면을 연기한 캐릭터는 빠져나오기가 더 어렵나요?
그렇죠. 풍상의 외면과 내면을 완성하기 위해 정말 많은 걸 했거든요. 극 중에서 풍상이는 자동차 정비 일을 하기 때문에 늘 손에 때가 묻어 있었어요. 제작 발표회 때 자동차 정비복을 입고 나가기도 했죠. 아무리 생각해도 풍상이 이미지에 맞는 옷이 없더라고요. 말끔한 옷을 입고 캐릭터에 대한 이야기를 할 수가 없었어요. 작가님과 노래방 연습실에서 어디서 끊고, 어디서 다시 말하는지 말투에 대해 끊임없이 연구하기도 했고요.

드라마와 동시에 뮤지컬 <그날들>을 준비했다면서요?
드라마 찍을 때는 풍상이가 되었다가, 촬영이 끝날 때쯤엔 언제 그랬냐는 듯이 <그날들>의 정학이 되고.(웃음) 이걸 계속 반복했죠.

초연부터 매년 <그날들>의 무대에 서고 있어요. 특별한 이유가 있나요?
초연 당시, 대본을 보고 하루 만에 출연을 결정해서 모두가 놀랐어요. 그때만 해도 다들 창작 뮤지컬에 출연하지 않으려고 했으니까요. 그만큼 <그날들>에는 사람을 끌어당기는 강한 힘이 있었어요. 그때부터 6년 동안 함께 울고 웃으면서 극을 완성해왔기 때문에 정말 애착이 많은 작품이죠.

그때부터 창작극에 대한 애정을 가진 건가요?
애증이죠.(웃음) 창작극은 제가 표현할 수 있는 폭이 훨씬 넓어요. 가이드대로 하는 것이 아니라, 같은 노래도 계속 반복해서 다양한 느낌으로 불러보고, 노래에 따라 조명도 이리저리 맞춰보고, 배경 음악도 넣었다 빼고. 다양한 시도를 하면서 온전히 배우들과 스태프들의 힘으로 0부터 쌓아 올리거든요. 이렇게 힘들게 완성한 끝에 오는 성취감은 말로 다 할 수 없어요. 다만 두 배는 더 힘든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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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트는 김서룡 옴므(Kimseoryong Homme), 이너는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스니커즈는 어그(Ugg).

6년 동안 같은 이야기의 무대에 서는 느낌은 어떤가요?
아무리 같은 이야기라도 매번 느낌이 달라요. 왜냐하면 공연장에 와주시는 관객이 다르거든요. 매년 캐스트가 바뀌기도 하고요. 어떤 캐스트와 합을 맞추느냐에 따라 또 다른 재미가 생겨요. 오히려 같은 무대에 서기 때문에 늘 고민이 많습니다. 오랜 시간 연습해온 작품이라 능숙해졌다거나 잘할 수 있다고 자만하는 순간 무너질 수 있어요. 같이 연기하는 후배들에게도 늘 강조해요. 처음 대면하는 것처럼 연습하자고 말하죠.

많은 훈련과 경험을 쌓은 베테랑 연기자죠. 그럼에도 여전히 ‘연습’이 가장 중요하다고 믿나요?
그럼요. 뮤지컬은 생방송이나 마찬가지니까요. 아무리 연습을 해도 대사나 가사가 생각이 안 날 때가 있어요. 결국 막판에 아슬아슬하게 생각나는데, 이게 결국 연습량 때문이거든요. 아주 작은 변화가 관객들이 극을 이해하는 데 큰 영향을 끼칠 수 있다고 생각해요. 본래 이야기하고자 하는 메시지가 일정하게 전달될 수 있도록 계속 연습하는 거죠. 어제 공연은 좋았는데, 오늘은 별로라는 이야기를 들으면 안 되니까요. 제가 <그날들>에 익숙해져서 조금 멋을 부린다거나, 다른 시도를 해보려고 하면 전체 메시지는 없어지고 배우만 남게 돼요. 이야기 전달을 잘하기 위해 연습, 또 연습하는 거죠.

2019년 버전의 <그날들>에서는 어떤 걸 기대하면 될까요?
<그날들>은 과거와 현재를 오고 가는 구성입니다. 관객들이 시간의 흐름을 놓치지 않고 잘 따라갈 수 있도록 보완했어요. 블루스퀘어 공연장이 여느 공연장보다 더 넓기 때문에 안무나 군무가 좀 더 시원시원하게 표현될 거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관객들이 큰 쾌감을 느낄 수 있을 거예요. 배우들의 연습량이 엄청나거든요. 오케스트라도 인원을 보강해서 알차게 준비했습니다. <그날들>이 우리나라 창작극이라는 것에 자부심을 느끼실 수 있는 공연이 될 거예요.

청와대 경호실을 배경으로 펼쳐지는 이야기이기 때문에 액션 장면도 많습니다. 힘든 점은 없나요?
이제는 안무 감독님과 무술 감독님이 제 몸에 무리가 가지 않도록 알아서 조절해줘요. 그래도 젊은 배우들과 함께 연기해야 하기 때문에 몸을 많이 쓰죠. 정말 힘듭니다.(웃음)

남우현, 윤지성 등 새로운 캐스트들과의 호흡은 어떤가요?
우현이는 <바넘> 공연을 같이 했어요. 케미가 좋다는 칭찬을 들었기 때문에 이번에 다시 만나서 더 반가웠죠. 워너원의 리더인 윤지성은 열심히 하는 모습이 기특해요. 둘 다 극중에서 저에게 반말을 합니다. “야, 너 동안이다” 하고요.(웃음)

지난번 인터뷰에서 젊은 연기자들에게 배울 점을 흡수하고 있다고 했는데, 지금도 무엇인가를 흡수 중인가요?
요즘은 정말 다 연기를 잘해요. 여기에 제가 잘 맞춰주면 상대방이 빛날 수 있죠. 그러면 반대로 상대방도 저를 위해 힘을 내줘요. 그 지점에서 배우는 점이 많아요. 연기는 나 혼자 하는 것이 아니라 상대방과의 호흡을 통해 완성되는 것이니까요. 그래서 연기를 할 때뿐만 아니라 일상에서도 상대방을 파악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어요. 그 사람의 입장이 되어보기도 하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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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트는 조르지오 아르마니(Giorgio Armani), 이너는 김서룡옴므.

故 김광석의 명곡들로 채워진 넘버도 <그날들>의 관전 포인트죠. 좀더 설명해줄 수 있나요?
그럼요. ‘거리에서’ ‘사랑했지만’ ‘흐린 가을 하늘에 편지를 써’ 등 귀에 익숙한 노래들을 들을 수 있어요. 그저 때에 맞춰 음악이 흘러나오는 주크박스 뮤지컬과는 달리, <그날들>의 스토리와 노래 가사가 연결되는 짜릿한 지점들을 만날 수 있을 거예요.

가장 좋아하는 넘버는 무엇인가요?
‘먼지가 되어’요. 새로 추가된 부분이 있는데 가슴에 확 와 닿거든요. ‘거리에서’도 그동안 들었던 ‘거리에서’와는 정말 달라요. 궁금하다면 직접 와서 봐주세요. 티켓 값이 아깝지 않을 겁니다.(웃음)

노래를 부르는 유준상을 넘어서 이제는 직접 노래를 만들기도 하지요. 음악에 대한 꿈은 언제부터 시작됐나요?
어릴 때 피아노를 좋아했어요. 고등학생 때는 밴드를 했죠. 일상에 늘 자연스레 음악이 있었어요. 늘 가슴속에 꿈으로만 간직하다가 45살에는 더 늦기 전에 도전해야겠다고 마음을 먹었죠. 곧바로 ‘제이앤조이 20’이라는 듀오를 만들어서 여행을 하며 음악을 만들었어요. 제가 영화연출 전공이기 때문에 극을 붙여서 음악 영화로 기획했습니다. 첫 번째 영화는 제천국제영화제에 출품했었고, 두 번째 영화인 <아직 안 끝났어>는 이번 5월에 열리는 전주국제영화제에서 만날 수 있어요.

어떤 영화인가요?
미국에서 40일 넘게 14개 도시를 여행하면서 만들었어요. 우리가 이렇게 열심히 만드는 음악을 왜 사람들은 아무도 모를까, 하고 자책하면서 시작하는 다큐멘터리 형식의 영화예요.(웃음) 엔딩 장면을 찍는 날이 마침 미국의 독립기념일이라 높은 곳에 올라가 200~300군데에서 한꺼번에 터지는 불꽃놀이를 봤는데 정말 장관이었어요. 그걸 보고 제목도 짓게 됐고요. 인생의 하이라이트는 단 한 번만 오는 게 아니라, 밤하늘에 불꽃이 터지듯 언제 또다시 찾아올지 모르니 좌절하거나 힘들어하지 말라고 다독이는 이야기예요. 우리 인생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다시 시작하면 된다고 노래하죠.

영화 제작은 어떻게 이루어졌나요?
두 번째 영화까지는 현장에서 바로 바로 만들었어요. 여행하다가 좋은 곳을 발견하면 여기서 찍자고 말하고 멈춰 섰고 대사를 바로 만들어서 레디 액션!을 외쳤죠. 그러다 보니 다시는 이렇게 만들지 말아야겠다는 깨달음이 오더라고요.(웃음) 그래서 세 번째 영화부터는 미리 기획을 하고 수정을 거쳐서 현장에서 맞춰봤어요.

결국 유준상이 음악으로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는 것이군요.
제게 음악은 제가 보고 느끼는 걸 표현하는 수단이에요. 얼마 전에 국악을 토대로 한 노래를 만들었어요. 후반 작업 중인데, 가야금 멜로디가 정말 아름다워요. 경주에서 수묵화의 대가인 소산 박대성 선생님의 ‘솔거의 노래’를 보고 만들었죠. 그때그때 보고 느낀 것들을 쓰기 때문에 다양한 주제를 다뤄요. 얼마 전에는 월드 비전과도 협업해 아프리카를 주제로 앨범을 제작 중이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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핑크 셔츠는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체크 팬츠는 지오 송지오(Zio Songzio), 스니커즈는 지미추 (Jimmy Choo).

항상 바빠 보여요. 아무것도 하지 않는 일상에는 무엇을 하나요?
음악을 만드는 자체가 저한테는 휴식이나 마찬가지예요. 정말 재미있어요. 옆에서 보는 사람들은 잠시도 쉬지 않는다고 생각하지만.(웃음) 여행을 떠나는 일도 늘 좋아요. 미술관이나 박물관을 향해 걷고, 또 걷죠. 현재는 후지산에서 찍은 세 번째 영화의 후반 작업 중이에요. 네 번째 영화의 극도 쓰고 있고요.

동시에 ‘엄유민법(엄기준, 유준상, 민영기, 김법래)’의 일본 콘서트도 계획 중이라면서요?
일본 투어를 하고 서울 공연을 할 생각이에요. 물론 앨범도 준비하고 있어요. 지난 일본 공연 때는 오케스트라만 공연할 수 있는 장소에서 처음으로 춤도 추고 전자 악기도 들여올 수 있게끔 허락을 받아서, 일본 오케스트라와 협업도 이루어지고 다양한 뮤지컬 넘버도 선보일 수 있었죠. 올해로 평균 연령이 48세가 되었지만 힘 닿을 때까지 해볼 생각입니다.

앞으로도 계속 뮤지컬 무대에서 유준상을 볼 수 있을까요?
저는 공연 무대 위에서 연기를 시작했어요. 무대 위에서 쏟아내는 감정과 에너지가 드라마나 영화 현장에서도 정말 큰 힘이 돼요. 특히 공연을 모두 끝내고 관객과 만나는 커튼콜은 제가 가장 사랑하는 시간이에요. 커튼콜에서 관객이 보내주는 함성과 격려는 제가 연기를 해나가는 데 가장 중요한 원동력이 되죠. 그동안의 고생과 노력이 보상받는 느낌이랄까요? 이 5분도 안 되는 시간을 위해서라도 저는 뮤지컬 무대를 놓을 수 없을 것 같아요. 앞으로도 관객들과 가까이에서 호흡할 생각이니, 꼭 함께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