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를 제대로 내지 못하는 나, 비정상인가요? 분노에 대처하는 우리들의 자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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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왜 화를 내지 못할까?

언제부터인가 화를 내지 않는다. 아무리 분노가 치밀어 올라도 입으로 내뱉는 말은 온화하다. 이게 반복되다 보니 화를 내지 않는 것이 습관처럼 굳어버렸다. 부당한 일은 부당하다고, 힘든 것은 힘들다고 솔직하게 이야기하는 용기가 사라졌다. 나는 왜 화를 내는 법을 잊어버렸을까? 태평양처럼 넓고 고운 마음씨를 가져서일까? 생각보다 화가 나는 일이 없어서일까?
분노는 대다수 사람이 위험한 감정이라고 인식한다. 특히 직장에서 생기는 분노는 사적인 관계에서 생기는 분노보다 훨씬 다루기가 어렵다. 엄마한테 화를 내는 건 쉽지만, 상사나 후배에게 화를 내는 건 어렵다. 자칫 화를 냈다가 관계가 틀어질까, 누군가에게 악역으로 비춰질까, 사회 생활에 불이익을 받지 않을까 두려운 감정이 앞선다. 감정에 대한 자기 검열이 심하다 보니 직장에서는 아무리 분노가 치미는 일이 있어도 혼자 삭이게 된다. 그렇다면 무조건 참는 것이 나를 위한 최선일까?
어느 날, 화가 나는 상황마다 감정을 그대로 드러내는 선배에게 물었다. 마음껏 분노를 표출했을 때 상대의 반응이 두렵지 않냐고. 그때 돌아온 선배의 대답이 신선했다. “나는 화를 내는 게 아니라, 힐링하는 중이야.” ‘성인발달연구’로 유명한 하버드 대학의 조지 베일런트 교수도 이와 비슷한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화를 잘 내는 직장인이 승진이 빠르며, 실망감이나 좌절감을 억누른 사람은 진급하지 못할 가능성이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세 배나 높다는 것이다. “사람들은 분노를 위험한 감정이라고 여기고 긍정적인 사고를 연습하도록 자신을 부추깁니다. 그러나 이러한 접근 방식은 자기기만이며 결국 끔찍한 현실을 거부함으로써 손해를 입게 되죠”라고 말했다. 다시 말하면 다양한 관계에서 비롯된 크고 작은 분노를 제때 해소하지 못하면 걷잡을 수 없이 불어난 분노의 덩어리가 엉뚱한 곳에서 터진다는 의미다. 분노를 외면하고 자신의 감정을 스스로 돌보지 않으면 결국 극단적인 결과를 낳는다. 이직이나 퇴직을 선택하거나 참았던 분노를 가족이나 지인에게 터뜨린다. 그리고 사표를 받아든 상사와 가족, 지인은 황당한 표정을 지으며 이렇게 말할 것이다. “갑자기?”
모든 인간은 행복을 추구하는 존재다. 행복하기 위해서라도 분노라는 감정을 제때 다스릴 필요가 있다. 다만 모든 상황에서 분노를 그대로 표현하라는 이야기는 아니다. 분노도 세련되게 표출해야 한다. 어떻게 하면 현명하게 화낼 수 있을까? 한창욱 저자의 <걱정이 많아서 걱정인 당신에게>(정민미디어)를 참고하자.

세련되게 화내는 법

Step 1 분노를 표출할지 판단한다
순간적으로 솟구치는 분노를 모두 표현하며 살아갈 수는 없다. 짧은 시간 내 사라지는 분노라면 발산하지 마라. 감정이 가라앉았음에도 억울해서 참을 수 없다면 화를 낼 적당한 준비를 하라.

Step 2 적절한 장소를 찾는다
인간의 감정은 장소와 분위기에 따라서 변한다. 여러 사람이 지켜볼 수 있는 장소는 피하는 게 좋다. 권위에 대한 도전으로 받아들일 수도 있고, 지위나 체면 때문에 속마음과 전혀 다른 말을 내뱉을 수도 있다. 상대방이 마음을 열고 허심탄회하게 대화할 장소를 골라라.

Step 3 말투와 표정을 ‘분노 모드’로 바꾼다
화가 나 있는데 실없이 웃는다면 상대방은 내 기분을 알아차릴 수 없다. 내 감정을 상대방이 공감할 수 있어야만 대화가 가능하다. 표정은 물론이고 말투에서도 ‘나, 지금 화났어!’라고 정확하게 인식시켜줘야만 상대방도 내 분노를 받아들일 마음의 준비를 한다.

Step 4 핵심만 골라 설명한다
내가 화난 이유를 상대방도 당연히 알 것 같지만 실상은 모르는 경우가 태반. 내가 왜 화가 났는지를 먼저 이해시켜야 한다. 단, 감정적인 분풀이, 인신공격, 이번 일과 상관없는 과거의 이야기는 꺼내서는 안 된다. 주어도 ‘당신’이 아닌 ‘나’를 사용해야만 상대방도 객관적으로 상황을 바라볼 수 있다. “네가 잘못했어”라고 무조건 비난하는 것이 아니라 그 일로 인해 내 감정이 어떠했는지 설명하는 것이다.

Step 5 상대의 답변을 경청한다
인간은 자기 위주로 생각하고 판단하는 경향이 있다. 내가 미처 생각하지 못한 상대방의 입장이나 감춰둔 진실이 있을 수도 있다. 내 입장만 고집할 것이 아니라 마음을 열고 상대방의 답변을 진지한 태도로 경청한다.

Step 6 타협점을 찾는다
상대방이 나의 화를 누그러뜨리는 답변을 해줄 때도 있지만 그렇지 않을 때도 있다. 대화에 진척이 없다면 타협점을 찾아야 한다. 갈등만 남은 상태에서 돌아서면 관계가 아예 단절될 수 있으니 주의할 것. 타협점을 찾았다면 화는 그 자리에서 털어버리는 것이 좋다.

 

이럴 때 이렇게 분노하세요

1 살면서 한 번도 화를 내본 적이 없다면 ⇢ 굳이 분노하기 위해 노력할 필요는 없다. ‘나도 이제부터 화가 나면 화를 낼 거야!’라고 결심했다가 정작 화를 발산하지 못하면 스트레스만 가중된다.

2 시도 때도 없이 화가 난다면 ⇢ 혹시 잠재된 분노가 가슴속에 있는 것은 아닐까? 분노의 이면에 감춰진 진실을 보려는 시도만으로도 분노의 크기가 줄어든다. 오랜 세월 억눌러온 억울함, 좌절감, 열등감, 스트레스 등 분노의 발원지를 알면 감정을 다스리기가 쉬워진다. 억울한 일이 있다면 가까운 사람에게 토로하고, 누군가를 이해하며 화해하고, 받아들이기 힘든 현실을 인정하고, 할 수 있는 작은 도전부터 시도하며, 스트레스는 운동과 여행으로 풀어보길. 화가 난다고 무작정 소리를 지르는 대신 이렇게 생각해보라. ‘이게 과연 이렇게 화낼 일인가?’ 하고.

3 후배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욱해서 소리를 지르고 있다면 ⇢ 이분법적 사고로 생각하고 있지는 않나. 예부터 사회는 ‘해야 할 것’과 ‘하지 말아야 할 것’으로 구분되어왔다. 그래야 통치하기 쉬우니까. 어느 정도 지위에 오르면 직장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이런 논리는 정신 상태에 부정적인 영향을 끼친다. 타인의 말을 경청하지 않고 소리부터 지르게 되니까. 일단 역지사지의 마음으로 진지하게 경청하며 공감하는 태도를 길러보라. 네 입장에서는 그럴 수도 있겠구나 하고 한발 물러서보길. 무조건 ‘절대 안 돼!’라고 자르지 마라. 관계가 악화될 뿐이다.

4 타인이 아닌 제 스스로에게 분노하고 있다면  열등감에 시달리거나 자존감이 낮은 사람들은 자기 자신에게 자주 욱한다. 정말 이것밖에 안 되나? 하고. 상대방이 의미 없이 던진 말을 왜곡하거나 확대 해석하기도 한다. 이로 인해 수치심과 분노를 느낀다. 하지만 남들은 당신에 대해서 많이 생각하지 않고, 내가 나를 깔보지 않으면 아무도 나를 깔보지 않는다. 먼저 나 자신을 충분히 존중하고 사랑해주길.

5 불합리한 직장 상사에게 늘 화가 나 있다면 ⇢ 상상만 해도 싫은 상사가 있다면 감정적으로라도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라. 업무 외에는 마주치지 않도록 노력하고 감정적으로 그 사람과 나를 떼어놓으면 분노와 스트레스가 줄어든다. 혐오의 단계까지 이르렀다면 이직을 생각해보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한 번뿐인 인생, 계속 분노하며 살 수는 없지 않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