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미디어 지형의 판도를 바꾸고, 전설적인 아이콘들로 하여금 발가벗듯 자신을 드러내게 만드는 유튜브의 위력. 즐기는 이의 한 사람으로, 그 격렬한 행보를 찬찬히 들여다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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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즐겨 보는 프로그램이 뭐냐고 묻는다면 JTBC의 <SKY 캐슬>을 제외하고 선뜻 대답하기가 어려울 것 같다. 나머지는 모두 유튜브 채널이라 먼저 이런 영상을 아느냐고 되물어야 할 판이다. 언젠가부터 인터넷 뉴스를 보면 유튜브에 관련된 소식이 빠지지 않고 등장한다. 가령, 방탄소년단의 ‘DNA’ 뮤직비디오가 한국 그룹 최초로 유튜브 6억 뷰를 돌파했다더라, 퀸의 ‘보헤미안 랩소디’가 유튜브 등에서 16억 회 이상 스트리밍됐다더라(20세기 최다 기록!), 물의를 빚었던 어느 연예인이 유튜브 채널을 오픈했다더라와 같은 이야기다. 바야흐로 유튜브 속 행보나 지표가 사회적 파워를 규정하는 중요한 척도가 되었다. 유튜브가 2005년, 페이팔을 다니던 친구 몇 명이 그들끼리 쉽게 영상을 공유하기 위한 플랫폼을 고민하던 중 시스템을 고안했다는 사실은 알 만한 사람은 다 아는 이야기다. 그 이듬해 구글에서 이 알토란 같은 동영상 공유 플랫폼을 인수했다. 초창기에 SNS의 한 형태로 사적인 영상과 커뮤니티에 의해 놀이가 집중되었던 데 반해 점차 게임, 먹방, 튜토리얼, 언박싱 등 콘텐츠가 세분화되고 전문화되더니 최근에는 동영상 콘텐츠를 제작하고 제공하는 크리에이터를 업으로 삼아 막대한 이윤을 취하는 이들이 대거 생겨났다. 한글보다 유튜브 화면 작동을 먼저 배우는 귀염뽀짝(?) 어린이들의 인기 장래 희망이 크리에이터라는 것 역시 유튜브의 폭발적인 잠재력을 짐작하게 한다. 최근에는 신년벽두부터 영향력 있는 정치권 인사들의 유입으로 치열한 당외 전쟁이 예견되기도. 19금 콘텐츠, 혐오 콘텐츠, 가짜 뉴스, 그리고 이에 따른 확증편향이라는 다소 심각한 부작용이 시한폭탄처럼 도사리고 있지만, 현재 화제성에서나 경제적인 측면에서 가장 큰 영향력을 행사하는 플랫폼으로 유튜브가 국내 미디어 지형의 판도를 바꿨다는 데에는 이견이 없을 듯 보인다. 유튜브의 가장 큰 매력은 뭐니 뭐니 해도 원하는 영상 정보를 빠르게 찾아 볼 수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킬링타임으로도 좋고, 원하는 바에 따라 시간과 장소에 구애받지 않고 배우고 성장하는 기회를 마련할 수도 있다. 원고를 쓰는 지금 밀라노에서 열리고 있는 2019 가을/겨울 맨즈 패션위크의 런웨이 화면을 기웃거리다 문득 떠오른, 개인적으로 위대하다고 생각하는 컬렉션 중 하나인 1999년 봄/여름 알렉산더 맥퀸의 쇼를 어려움 없이 찾아 볼 수 있는 것. 그게 바로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는 유튜브 세상이다. 그리고 또 하나, 유튜브는 진입장벽이 낮은 덕분에 일반인은 물론 티브이에 자주 나오지 않는 방송인이라 할지라도 콘텐츠만 좋다면 누구나 영상을 공유하고 스타가 될 수 있다(이런 이유로 누군가 억울함을 호소하거나 폭로의 장을 만들기도 하고, 방송 복귀가 어려운 연예인들의 재기의 발판이 되기도). 개인적으로는 과거의 스타들이 저마다의 개성으로 유튜브에서 활약하며 밀레니얼 세대, 나아가 포스트 밀레니얼 세대와 소통하는 모습을 볼 때 짜릿한 쾌감을 얻는다. 마치 그들과 같은 시기를 보낸 나의 어린 시절이 건재함을 공식적으로 인정받기라도 하듯 말이다. 지오디는 몰라도 유튜브 채널 ‘와썹맨’의 박준형은 안다는 요즘 애들이 바로 유튜브 세상을 지배한다.

언니들의 성장은 현재진행형

글로벌 패션계에서도 이 같은 흐름은 크게 다르지 않다. 90년대를 주름 잡았던 왕년의 언니들이 속속 유튜브 활동을 공식화하며 Z세대와 직접 소통을 시작했다. 대표적으로는 클라우디아 쉬퍼, 크리스티 털링턴 등과 함께 이른바 90년대를 주름 잡았던 세계적인 슈퍼 모델 나오미 캠벨이 있다. 함께 활약했던 친구들이 은퇴를 하고 모두 런웨이를 떠난 뒤에도 최근까지 런웨이에 서는 프로페셔널한 모델 중의 모델. 그녀는 영상을 통해 자신의 실제 삶의 모습을 공유하고 전 세계 여성들 그중에서도 특히 아프리카의 젊은 여성들과 소통하고 싶다고 밝혔다. 슈퍼 모델이자 운동가이고, 세계적인 스타들의 친구로서 경험한 것들을 어떻게 보여줄지 기대가 되는 대목. 모든 영상은 그녀의 채널 이름이기도 한 #Being Naomi(빙 나오미)라는 해시태그를 통해 만날 수 있다. 1994년도에 결성된 영국 팝 그룹 스파이스 걸스 출신의 패션 디자이너 빅토리아 베컴 역시 새로운 유튜브 채널의 론칭을 알렸다. 유튜브 패션&뷰티 디렉터인 데렉 블라스버그(Derek Blasberg)와의 유쾌한 대화를 담은 영상을 통해서다. 2018년 데뷔 10주년을 맞이해 뉴욕에서 런던으로 베이스를 옮기기도 했던 그녀다. 유튜브 운영 역시 앞으로 나아갈 10년을 위한 새로운 커리어의 탄생이 아니냐는 이야기들이 떠돌고 있다. 분명한 것은 그녀가 유튜브를 통해 더 많은 스타일 팁과 뷰티 튜토리얼, 그 밖에 자신이 가지고 있는 많은 콘텐츠를 보여주겠노라 공표했다는 것. 그리고 팬의 한 사람으로서 앞으로 만날 콘텐츠가 매우 기대된다는 사실이다.

한편 보다 앞선 2015년, 나오미와 빅토리아가 생각했던 것을 먼저 생각하고 행동에 옮긴 이가 있으니 바로 슈퍼 모델 칼리 클로스다. 그녀는 당시 한 인터뷰를 통해 “나는 캐릭터를 연기한다. 모델로서 <보그>의 페이지를 장식하는 것은 너무나 중요한 커리어지만, 그곳에서 보여지는 모습이 항상 나일 수는 없다. 그러나 유튜브의 내 채널 클로시(Klossy)에서는 진짜 나의 모습을 볼 수 있다. 나의 소리를 들을 수 있다”라고 말했다. 횟수로 4년 차, 그동안 칼리는 그녀의 운동법, 패션쇼 백스테이지, 자선행사, 여행 장면을 영상으로 공개하며 자신의 진짜 모습을 알리는 데 집중했다. 그 결과 현재 70만 명 이상이 그녀의 채널을 구독하며 삶의 다양한 영감을 얻고 있다. 자신의 모습을 보여주고 많은 이들과 소통하며 차후를 도모하는 일은 결코 쉽지 않은 일일 것이다. 하다 보면 조금 지치는 때가 올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럴 때마다 너무 심각해하지 말라고 힘을 실어주고 싶다. 90년대 패션을 매우 경외하는 밀레니얼 세대(아슬아슬하게!)의 한 사람으로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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