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화하지 않으면 도태되기 쉬운 패션하우스. 오늘은 또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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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열한 경쟁 상황에 놓인 패션하우스가 도태되지 않으려면 지속적인 변화는 필수 조건이다. 하루가 멀다 하고 ‘로고가 바뀌었다’, ‘크리에이티브 디렉터가 바뀌었다’, ‘누가 무엇을 인수했다’는 소식이 들려오는 건, 이들이 소비자들에게 어필하기 위해 꾸준히 변화를 시도하고 있다는 증거다.

로고 변경부터 세컨드 브랜드까지

에디 슬리먼이 입생로랑에서 입(Yves)을 떼고부터였을까. 최근 로고를 바꾸는 패션하우스가 드물지 않게 등장하고 있다. 근래 대대적으로 로고 디자인을 교체한 버버리, 과감하게 악상테귀를 뗀 셀린느, 지난 10월 말 소문자로 로고를 바꾼 알렉산더 왕도 그렇다. 지금 시대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는 새 둥지를 틀자마자 마치 영역 표시라도 하듯 로고부터 바꾼다. 그리고 유행처럼 번져간 로고 바꾸기는 발맹까지 이어졌다. 로고가 브랜드의 이미지를 바꾸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걸 보여준다. 1950년대 이후 처음으로 로고와 모노그램을 재정비한 발맹은 보다 간결하고 알아보기 쉬운 산세리프체를 사용했다. 지금 버버리, 발렌시아가, 셀린느 등 내로라하는 패션하우스가 취하고 있는 미니멀하고 모던한 느낌의 이 서체는 디지털 환경에 능한 새로운 밀레니얼 세대의 감성에 맞춘 전략이라는 평이다. 이러다가 모든 로고가 다 똑같아지는 건 아닌지 걱정은 되지만 당분간은 이 심플한 로고가 대세라는 점은 확실하다.

단순히 로고를 바꾸는 것으로 부족했을까. 전면적인 ‘리브랜딩’을 선언한 디자이너 알렉산더 왕은 기존의 패션쇼 형식에서 벗어나 6월과 12월에 열리는 두 차례의 쇼를 통해 컬렉션을 선보이겠다고 밝혔고, 또 다른 천재 디자이너 마크 제이콥스는 얼마 전 자신의 인스타그램에서 세컨드 브랜드 ‘더 마크 제이콥스’의 론칭을 알렸다. 지난 2015년, 당시 마크 제이콥스의 소유주 LVMH가 마크 바이 마크 제이콥스가 고가의 메인 브랜드인 마크 제이콥스의 이미지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이유로 갑작스럽게 마크 바이 마크 제이콥스를 중단시킨 이후, 4년 만의 론칭이다. 최근 자신의 그런지 컬렉션을 스페셜 캡슐 컬렉션으로 소개한 데 이어 변화를 이끄는 두 번째 행보로 세컨드 브랜드를 선택했다.

새로운 둥지에서의 시작

베르사체는 작년 9월, 카프리 홀딩스로 사명을 바꾼 마이클 코어스 홀딩스의 품에 안겼다. 마이클 코어스, 지미추와 공생하게 된 것. 이것은 곧 베르사체가 겪을 변화가 적지 않음을 예고한다. 화려하고 관능적인 디자인으로 명품 시장을 이끌었던 지난날의 영광을 이곳에서 되찾을 수 있을까? 마이클 코어스의 최고 경영자는 이들의 성장을 위해 투자를 아끼지 않겠다는 입장을 밝혔다고 하니 이들이 어떤 전략으로 과거의 위상을 재탈환할지 두고 볼 일이다. 그런가 하면, 회사 재인수라는 강수로 새 국면을 맞이한 프로엔자 스쿨러의 듀오 디자이너는 지난 18년 동안 수차례 바뀐 투자자로부터 좀 더 자유롭기를 택했다. 민간 투자자들의 도움을 받아 자신들의 회사를 다시 찾은 이들은 오롯이 자신의 브랜드를 컨트롤할 힘을 갖춘 뒤 새로운 자본의 유입으로 핵심 사업인 RTW와 가죽 제품 라인 등의 확장과 성장을 고대하고 있다고.

올드 셀린느 그 후, 신예 기대주의 등장

올드 셀린느라는 신조어가 생길 정도로 피비 파일로를 그리워하는 이들이 많은 만큼 그녀의 공백을 채워줄 누군가를 기다리는 건 당연한 일이다. 한 가지 다행인 건, 과거 셀린느와 함께했던 영광의 후예(?)들이 새롭게 우리를 찾아왔다는 것! 지난 7월 토마스 마이어의 뒤를 이어 보테가 베네타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발탁된 다니엘 리가 그 첫 번째 주인공이다. 오랜 시간 토마스 마이어의 왕국에서 고유의 클래식 무드를 고수하던 이들에게 젊은 피를 수혈한 다니엘 리는 메종 마르지엘라, 발렌시아가, 도나 카란에 이어 셀린느의 레디 투 웨어에서 디렉터로 근무한 수재다(혹자는 올드 셀린느를 그리워하는 이들의 갈증을 풀어줄 다음 컬렉션으로 주목하기도).

또 다른 이는 피비 파일로가 이끌었던 셀린느에서 가방, 주얼리, 선글라스 등의 핵심 디자인을 맡아온 한국인 디자이너 유니 안. 그녀가 메종 키츠네의 새로운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발탁되었다는 소식이다. 셀린느에서의 경력 외에도 스텔라 매카트니, 끌로에, 미우미우 등 다양한 브랜드에서 쌓은 실력으로 메종 키츠네의 새로운 시대를 열 예정. 이들이 피비 파일로를 그리워하는 패션 피플의 허기를 달래줄지 기대를 걸어본다.

물론 이들처럼 로고와 크리에이티브를 바꾼다고 해서 변화를 ‘완성’했다고 말할 수는 없다. 모든 변화가 꼭 순항 중은 아니라는 얘기다. 알버 엘바즈 이후 매출 압박으로 인한 구조조정과 잦은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교체로 진통을 겪고 있는 랑방은 혼란스러운 시간이 언제 종착지를 맞이할지 아직 미지수이며, 2016년 캘빈 클라인의 최고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영입된 라프 시몬스가 2년 만에 캘빈 클라인을 떠난다는 소식은 청천벽력 같기만 하다. 매출이라는 즉각적인 변화를 바랐던 조급한 캘빈 클라인과 동상이몽을 꿈꾸었던 라프 시몬스의 일은 브랜드와 디자이너를 지지하는 모든 이들의 안타까움을 사고 있다.

너무 자주, 너무 빠른 변화는 오히려 독이 될 수 있음을 인지하고 현명한 선택을 하길 바랄 뿐이다. 또 우리는 이 불가피한 변화 속에서 명민한 선택을 하는 주인공은 누가 될지 지켜볼 것이다. 언제 어디서고 변화는 필요하기에.

너무 빠른 변화는 오히려 독이 될 수 있음을 인지하고 현명한 선택을 하길 바랄 뿐이다. 또 우리는 이 불가피한 변화 속에서 명민한 선택을 하는 주인공은 누가 될지 지켜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