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방은 고루하다는 편견, 메이드 인 코리아면 다 같은 K뷰티라는 편 먹기, 한국 사람은 한국을 잘 알고 있다는 착각. 소격동 뒷골목에 문을 연 뷰티 브랜드 ‘이스 라이브러리’의 창립자 양태오는 이 모든 오만에 의문을 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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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 라이브러리의 리딩룸. 브랜드의 시그니처인 AYM 원액을 체험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예약제로 운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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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 라이브러리를 직접 체험해볼 수 있는 소격동 쇼룸.

언젠가 이런 날이 올 줄 알았다. 뷰티인들 사이에서도 양태오의 시들지 않는 피부는 화제였으니까.
원래 그랬던 건 아니다. 10여 년 전 불면증을 겪던 중 만난 한의사 장동훈 원장이 어떤 차를 처방해줬다. 심신 안정이 목적이었던 거 같은데 막상 드라마틱한 변화를 경험한 건 피부였다. 얼굴에 윤기가 돌고 온몸의 피부톤이 맑고 하얘진 거다. 오늘의 ‘이스 라이브러리’는 이 신비한 차의 성분을 분석하면서 시작됐다.

만약 피부과에서 이런 경험을 했다면 이스 라이브러리의 모습이 좀 달랐을 수도 있겠다. 
아니, 아마 태어나지 않았을 거다. 내 작업과 연결 짓지 못했을 테니까. 알다시피 나는 한국적인 것을 모던하게 표현하는 것을 업으로 한다. 우리 패키지 모티브는 고서가 쌓인 위로 ‘본질’을 상징하는 돌이 올라앉은 형상이다. 처음 한의학 서적이 쌓여 있는 서고에 들어섰을 때 그 유구한 치료의 역사와 시간의 무게에 압도당했다.

언뜻 봐선 한방 브랜드라고 느껴지지 않을 만큼 모던하다. 
혹시 마음 한구석에 ‘한방=옛 것’이라는 선입견이 있는 건 아닌가? ‘한국적인 것은 오래된 것이라 나와는 상관없는 어르신들의 세계’라는 생각 말이다.

정신이 번쩍 든다. 그동안 한방은 시간과 공간을 분리해 생각하지 못하는 이들의 선입견에 희생돼온 건지도 모르겠다. 
‘동시대적 전통’은 나의 영원한 테마다. 모든 사람은 아름다운 것을 좋아하고, 내가 제대로 하고 있다면 점차 선입견이 극복되리라 믿는다.

디자인적으로는 더할 나위 없다. 하지만 이스 라이브러리는 뷰티 브랜드다. 당신이 지금까지 해온 크리에이티브는 주로 소수를 위한 럭셔리 영역에 머물러 있었다. 뷰티는 대중 그 자체! 매우 다른 도전이 될 거다.
먼저 되묻고 싶은 것이 있다. ‘대중적’이라는 건 대체 무엇인가? ‘대중’이라고 불리는 우리의 고객들은 생각보다 수준이 높다. 그것이 비주얼적 접근이든, 제품의 퀄리티든 나는 그들에게 최고의 것을 제공할 의무가 있다. 그리고 우리 화장품은 매우 대중적이다. 누가 써도 좋은 제품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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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부심이 느껴진다. 
제품에 자신이 있다. 이스 라이브러리의 대표 성분인 AYM의 모체는 앞서 언급한 한방차다. 이 차를 함께 마시던 친누나가 결혼해 분가한 후 피부가 다시 칙칙해진 것을 보고 ‘진짜 뭔가 있다’고 확신했다. 코파운더인 장동훈 원장의 한방 연구소에서 실제 성분 검사를 해보니 미백과 항산화, 노화 방지에 강력한 효과를 자랑하는 성분임이 밝혀졌다.

다른 뷰티 브랜드와의 협업을 통해 이미 뷰티의 맛을 봤다. 그래서 다들 이스 라이브러리가 당신이 그간 선보인 콜라보 작업의 연속선상에 있을 거라 예상했다. 하지만 뚜껑을 열고 보니 완전히 다른 색이다. 
누구와 타협하거나 협의하지 않아도 되는 내 브랜드니까. 앞서 말했던 ‘대중적’이라는 신화 때문에 나의 아이디어가 고객에게 전달되지 못할 때도 많았다.

온라인 스토어보다 오프라인 매장을 먼저 열었다. 좋게 말해 전통적, 나쁘게 말하면 구식이다. 이것도 ‘마음대로’ 결정한 건가?
다들 이상하다고 한다. 하지만 나는 이스 라이브러리를 찾는 고객들이 우리의 공간에 흐르는 음악과 향을 느끼며 그 안에 서 있는 자신을 봤으면 한다. 내게 중요한 건 오직 진실한 공감뿐이다. 우리가 보여주고자 하는 한국적 모던함을 알아주는 사람이 지금은 비록 소수라 할지라도 이러한 선한 의지를 전파해줄 전도사가 되기에는 충분한 숫자다. 실제로 지난 11월 26일 소격동 쇼룸을 오픈하고 나서 매장에 고객이 끊이지 않고 있다. 대부분 자신의 친구를 데리고 재방문을 하거나 지인의 추천을 받아 찾아온다. 공간이 가진 힘과 스토리가 마음을 움직인 것이다. 나는 ‘100번째 원숭이 효과’를 믿는다. 어떤 행위를 하는 개체수가 일정 수준에 이르면, 그 행동은 공간을 넘어 확산된다. 나는 변화를 이끌어내는 ‘첫 번째 원숭이’가 될 거다.

소격동 뒷골목, 화장품 상권과는 동떨어진 매장 위치에 대해서도 의견이 분분했을 것 같다.
이스 라이브러리에는 나와 장동훈 한의사 외에도 공동창업자가 더 있다. 브랜드에 예술성을 더하기 위해 고민하는 갤러리스트 송보영 이사다. 그는 ‘우리는 경험을 중시하는 브랜드가 되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이다. 이스 라이브러리로 가는 길에 문화적 코드가 가득하다면 그 경험은 또 다른 잔상으로 남을 거라고 믿는다. 그래서 미술관이 많은 소격동의 작은 뒷골목을 택해 한 발짝 뒤로 물러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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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 라이브러리의 고농축 세럼 ‘더 퓨어 원더’ 제품.

소신과 취향으로 점철된 진짜 인디 브랜드로군. 솔직히 고백하자면, 처음에 브랜드 이름에 번데기 발음이 들어간다는 이야기를 듣고 ‘엉망’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지금은 이 진실하고 무모한 브랜드를 응원하게 된다. 
이렇게 금방 감화하게 되는 브랜드라니까! 당신이 두 번째 원숭이가 된 거다. 이름은 사연이 많다. 우리가 전달하고자 하는 가치에 포커스를 맞췄는데 그게 한 단어로는 안 되더라. 결국 ‘Evolutionary, Achievement from Traditional Heritage’의 약자, EATH를 선택했다. 고대 영어로 ‘쉽다’, ‘부드럽다’는 뜻을 가지고 있는데, 재미있는 건 이 발음이 중국어로는 ‘의미’라는 단어로 들린다고 한다. ‘의미의 서재’라는 이름을 가진 기품 있는 한국 브랜드에 대한 호감이 매우 높다.

이미 유럽과 중국 등 세계의 러브콜이 쏟아지고 있다. 개인적으로 ‘K뷰티는 그저 가볍고 재미있다’는 편견을 깨줄 좋은 선봉이 되리라 기대하고 있다. 
해외에 비춰지는 ‘한국’의 이미지는 K팝이라는 대중문화의 코드 그리고 한복을 차려입은 ‘옛 것’으로 양분되어 있다. 이스 라이브러리가 가장 동시대적인 한국의 헤리티지를 보여주는 존재가 되면 좋겠다.

당신이 생각하는 진짜 한국적인 것은 무엇인가?
가볍지도 무겁지도 않은 중도의 미, 그리고 기다림의 미학이다. 우리나라의 목가구와 집은 화려하진 않지만 깊이가 있다. 선비들은 그러한 공간에서 평생 글을 읽으며 자신을 연마한다. 준비가 되면 왕에게 부름을 받고 궁으로 들어가 세상을 이롭게 하는 유토피아를 펼치리라 꿈꾸며 인내한다. 그런 선비의 공간에서는 청렴하고 단정한 묵향이 풍긴다.

먹의 향 말인가? 
그렇다. 공간에서 묵향이 나려면 1만 권의 책이 있어야 하고 그 1만 권이 펼쳐져 움직여져야 한단다. 읽고 사색하고 꿈을 꾸는 행위가 만들어낸 향이라는 뜻이다. 자신의 중심을 확실히 지키는 한국적 사색! 이제 곧 ‘조용한 독서가’라는 향이 출시될 거다. 가장 한국적인 묵향으로 고객들의 공간을 채우고 싶다.

듣기만 해도 마음이 정화되는 것 같다.
솔직히 내가 하는 일에 자신 있었던 적은 단 한 번도 없다. 그저 목표를 향해 달려가는 열정뿐이다. 하지만 확실한 건 좋은 의미와 의지는 반드시 전달된다는 것이다. 이스 라이브러리는 단순히 피부만 예뻐지는 것을 목표로 하지 않는다. 나는 아름다운 사람의 이미지를 만들어내는 것의 일환으로 화장품을 선택했기 때문에 이 브랜드를 라이프스타일의 일부로 만들고 말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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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토피와 같은 민감한 피부를 위한 이스 라이브러리의 솝바 ‘더 퓨어 아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