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질러진 방을 깨끗이 하고, 밥을 먹으면 설거지를 하듯, 우리의 마음도 청소가 필요하다. 나의 마음을 있는 그대로 들여다본 봉인사에서의 시간.

 

1116-270-1

휴식이 끝났음을 알리는 스님의 타종.

편안함의 반대말이었다. 내 머릿속에 명상이란 지루하고 따분한 것으로 일괄 정리되어 있었다. 막연한 오해일 수도 있다. 제대로 해본 적은 한 번도 없었으니까. 선뜻 시도해볼 기회가 없었을 뿐 호기심은 있었다. 마음 근육을 키우기에 명상만 한 게 없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어서다. 다양한 힐링 테라피 중 명상이 꾸준히 회자되는 걸 모르진 않았다. 11월호 특집 기사로 준비하면서 템플스테이에 자원했다. 템플스테이를 운영하는 절은 우리나라에 100곳이 넘지만 프로그램 내용은 비슷한 편이다. 대개 염주 만들기, 등불 만들기, 108배 하기 등 불교문화와 자연 속에서 힐링을 경험하기 위한 프로그램으로 짜여 있다. 그중 드물게 명상에 특화되었다는 봉인사의 템플스테이가 눈에 들어왔다. 프로그램 이름은 ‘상담이 있는 명상- 상상 템플스테이.’ 나와 멀어져 가던 명상을 실제로 접해볼 뜻밖의 기회가 이렇게 찾아왔다.

1116-270-2

초록의 기운으로 둘러싸인 봉인사의 큰법당. 앞에는 300년 된 살구나무가 있다.

1116-270-3

지장전으로 가는 길 계단에 쏟아진 아름다운 볕.

상담과 명상이 있는 템플스테이

프로그램 일정을 살펴보니 꽤 본격적이었다. 명상으로 시작해 명상으로 끝나는 토, 일 1박2일 일정이었다. 안내 글에는 누워서 음악과 함께하는 명상, 참여자 간의 대화를 통한 심신의 이완, 삶 속에서 다루기 힘들었던 내면의 문제와 생각들을 정리해볼 수 있는 시간을 선사한다고 소개되어 있었다. 새벽 5시 기상이 조금 마음에 걸렸지만 큰 문제는 아니었다. 가장 솔깃했던 건 프로그램 체험으로 얻을 수 있는 기대효과였다. 행복감, 자존감, 자신감. 상처 치유, 관계 회복, 스트레스 관리, 감정 관리, 직관력. 집중력, 통찰력…. 명상이 설마 만병통치약인가. 이번 체험은 내게 맞춤 처방전일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탄성을 잃은 자존감이 다시 차오를 수 있을까?

조선시대 초중기에 지어졌다고 알려진 봉인사는 남양주에 있는 천마산 서쪽에 자리하고 있다. 경춘선 금곡역에서 봉인사까지 운행하는 64번 마을버스가 사찰 마당까지 들어온다. 사찰 안까지 노선버스가 다니는 사찰은 전국에 경북 예천의 용문사와 봉인사밖에 없다고 한다. 수시로 운행하기 때문에 대중교통으로 오기 편리해 접근성이 좋다. 종무소에서 안내를 받아 짐을 풀었다. 절에서 제공하는 수련복으로 갈아입고 오리엔테이션 장소인 지장전으로 향했다. 그곳에서 만난 다른 참가자들과 인사를 나눴다. 나를 제외하곤 모두 명상 경험자였다. 그들은 긴장한 나에게 아무 걱정하지 말라고 했다. “마음이 샤워한 것처럼 아주 상쾌하고 유쾌해질 거예요.”

1116-270-4

삼성각으로 향하는 풍경.

상상 템플스테이는 봉인사 주지이자 동국대학교 평생교육원에서 ‘가피명상’ 강의를 하고 있는 적경 스님의 지도로 진행됐다. 명상이란 무엇인지부터 짚어봤다. “명상의 목적은 심각해지려는 게 아닙니다. 편안해지는 거예요. 편안하다는 것은 만들어서 얻어내는 게 아니죠. 우리는 아무것도 안 할 때 편안해지잖아요. 그런데 편안함을 ‘얻으려고’ 해서는 안 돼요. 그건 ‘에고(Ego)’가 하는 장난이에요. 나를 자각하면 저절로 편안해질 겁니다.” 나를 자각한다는 건 곧 ‘알아차림’을 의미한다. 화가 났으면 화가 난 감정을 알아차리고 무엇 때문에 마음이 불편했는지 들여다보는 것을 말한다. ‘내가 이런 생각을 하고 있구나’, ‘이런 감정이구나’ 하고 말이다. 관찰은 명상의 핵심 요소다. 그리고 알아차림을 위해선 관찰이 필요하다. 스님은 우보(牛步)라는 표현을 사용했다. 소처럼 느린 걸음 걷듯 찬찬히 들여다보라는 뜻인 것 같았다. 내가 생각했던 명상의 개념은 보기 좋게 틀렸다. 명상은 집중이 아닌 이완이고 관찰이었다.

1116-270-5

절에서만 맛볼 수 있는 공양간 음식. 한 끼만 먹어도 건강해지는 기분이 든다.

1116-270-6

지장전에서 올려다본 푸른 하늘.

기원명상 체험하기

첫 명상은 기원명상이었다. “눈앞의 고통을 피하는 방법은 익숙할 거예요. 술을 마시거나 잠을 잘 수 있죠. 하지만 명상은 고통을 피하지 않고 정면으로 ‘직시’합니다. 고통과 함께 가는 거예요. 지금부터 고통과 마주하는 시간을 가질 겁니다.” 고통에서 벗어나기 위한 명상이 아니라 겪었던 고통을 다시 소환해야 하는 명상이라니! 높은 허들을 넘어야 하는 느낌이었다. 시작도 전에 마음 한쪽이 저릿해왔다.

기원명상은 눈을 감고 평소 내가 믿는 신(종교가 없다면 본인이 신성시하는 어떤 대상)을 떠올리는 것으로 시작했다. 그 다음 신성으로 충만하게 해달라고 기원하며 정수리에서부터 온몸에 퍼져나가는 황금빛 에너지를 상상해본다. 마지막으로 내가 누군가로부터 상처받는 일에 대해 ‘다시 한번 경험하게 해달라’고 기원하는 것이 순서다. 방법은 쉽고 명료했다. 애쓰지 않아도 그때의 순간들이 자연히 떠오를 거라는 스님 말씀이 맞았다. 마음 아팠던 기억이 꿈처럼 장면 장면 등장했다. 과연 명상이 될까? 걱정할 틈도 없이 나는 다시 그곳에 서 있었다. 상황도 사람도 그때와 같았지만 내 반응은 달라져 있었다. 훨씬 편안한 모습이 보였다. 생각과 감정을 내 안에서 분리한다는 게 이런 걸 말하는 거라면 아주 조금은 알 것 같았다.

1116-270-7

봉인사 주지스님이자 상상 템플스테이를 진행하는 적경 스님의 명상 시간.

기원명상을 하면서 감사나 용서의 마음이 들 수도 있고, 아니면 원망이 더 차오를 수도 있다. 스님은 원하는 방향으로 흘러가지 않았다 하더라도 조급해하지 말라고 조언해주었다. 상처를 에너지로 바꾸는 데는 관점의 전환이 이뤄져야 하는데, 이는 명상 공부를 깊게 한 사람들이 경험할 수 있는 것이라고 했다. 스위치를 온오프하듯 버튼 하나로 되는 일은 아닐 테다. 명상을 마친 후에는 감기약을 먹고 졸음이 오기 직전 같은 조금은 들뜬 상태가 지속됐다. 머리는 살짝 찌릿찌릿했다. 사용하지 않던 뇌세포를 사용하면서 그게 아픔으로 느껴질 수 있다고 한다. 아주 큰 의식을 치른 기분이었다. 기원명상이 이 템플스테이의 핵심이라는 스님의 말씀이 이해가 가는 순간이었다.

1116-270-8

절 곳곳의 나무에는 깨달음을 주는 문장이 적힌 팻말이 달려 있다.

상담이 있는 명상으로 치유하기

공양간에 들러 이른 저녁을 먹은 뒤 잠시 휴식을 취했다. 대단한 절경은 아니어도 초록의 기운이 가득한 절 풍경은 아름다웠다. 저녁 7시쯤 다시 지장관에 모였다. 둘씩 짝지어서 하는 상담명상을 진행했다. 깊이 있는 대화를 나누며 나도 모르는 사이 받아온 상처를 되짚어보고, 그 상처를 치유해나가는 수업이었다. 상담에 들어가기 전 서로의 눈을 바라보는 시간을 가졌다. 눈동자를 관찰한다고 표현하는 게 더 정확하겠다. 상대의 눈동자 안에 비친 내 모습을 그렇게 골똘히 보는 건 처음 하는 경험이었다. 스님의 안내대로 눈을 감고 가슴에 커다란 귀를 그려 넣었다. 그러고는 길게 호흡했다. 한 번씩 내담자와 상담자가 되어 서로의 이야기를 경청했다. 걱정했던 대로 말보다 눈물이 먼저 왈칵 나와버렸지만 괜찮았다. 누군가 내 이야기를 귀가 아닌 가슴으로 들어주고 있다는 사실을 깊이 느낄 수 있었으니까. 나를 살피는 것만큼 남을 살피는 것에 대한 느낌을 알아갈 수 있는 시간이기도 했다.

1116-270-9

템플스테이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참가자들이 묵는 곳인 자광전.

1116-270-10

약사여래불이 모셔져 있는 자광전 앞마당.

다음 날에는 새벽 108배, 자연 속에서 정확한 한 지점을 보고 내가 그 대상이 되어보는 명상, 잠들어 있는 몸의 에너지를 깨워주는 차크라 명상, 전날과는 반대로 고통을 주었던 경험을 만나는 기원명상을 이어서 경험했다. 1박2일간 몇 가지 명상을 체험하면서 깨달은 건, 명상은 마음의 청소이기도 하고, 관점의 전환이기도 하며, 나 자신을 사랑하는 일이기도 하다는 것이었다. 물론 단 한 번의 명상 체험으로 명상을 할 수 있게 되었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떨어진 자존감이 반짝하고 솟아나는 일도 없다. 단, 내 마음에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살펴보고, 그게 만약 괴로운 감정일지라도 ‘직시’할 수만 있다면 앞으로 나아갈 수 있겠다는 용기를 얻고 돌아왔다.

템플스테이를 다녀오고 일주일쯤 지난 지금, 머릿속에 선명하게 남은 장면이 있다. 가만히 누워 공중을 유영하는 먼지를 눈으로 따라갔던 순간이다. 수업 중 유일한 딴짓(?) 아니 혼자 한 명상이었다고 생각한다. ‛일상에서 명상이 아닌 것이 없다’는 스님의 말씀이 떠올랐다. 내 삶을 들여다보면 이보다 완벽한 가르침은 없을 거라는 것도.

1116-270-11

볕 든 오후의 소소한 절 풍경.

 


봉인사 템플스테이 | 주소 경기 남양주시 진건읍 사승로 156번길 295  홈페이지 bonginsa.templestay.com 문의 031-574-558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