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론 지인의 빤한 위로보다 이름 모를 타인의 격려가 힘이 된다. 에디터가 직접 사용해본‘ 고민 나눔 앱’ 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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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앱이 없어지지 않는 한 계속 사용할 것 같아요.” “이렇게 폰 세상에서 깊은 마음을 주고받을 수 있다니 눈물이 날 정도입니다.” “하다 보니 나도 모르게 미소를 짓고 있었어요.” 진심 어린 리뷰들이 인기를 증명하는 듯 했다. 익명으로 고민을 나눈다는 소셜미디어 앱 이야기다. 유저들은 각 자의 고민이나 생각을 자유로이 적고, 서로 댓글을 주고받으며, 때론 함 께 해결책을 찾는다. 얼마 전, 이런 종류의 앱이 주목받는 이유에 관한 기 사를 읽었다. 간단히 말해 지인에서 타인으로 소통 수단이 변화하고 있다 는 거다. 내 고민을 주변 사람들이 알아차리는 건 싫고, 일기장에 적긴 어 쩐지 쓸쓸하다. 인스타그램과 페북은 지인의 지인까지 연결되어 부담스 럽다. 이름도 성도 모르는 완전한 타인이라면, 오히려 적당한 거리를 유 지한 채 솔직한 감정을 드러낼 수 있다는 것. 고개를 끄덕였다. 나를 아는 사람보다 모르는 사람과 더 솔직한 대화를 나누고, 그 안에서 큰 위안을 얻을 때가 나 역시 있었다.

관련 앱을 검색해봤다. 비슷한 앱이 우르르 쏟아졌다. ‘어라운드’, ‘마리레 터’, ‘밤편지’, ‘감쓰(감정의 쓰레기통)’, ‘틈’, ‘나쁜기억 지우개’ 등이 대표적 이었다. 작정하듯 ‘내려받기’를 눌렀다. 드라마 <미생>에서 주인공 장그래 의 대사였던 ‘시련은 셀프다’를 되뇌며 혼자 삼켰던 쓴 마음을, 이 랜선 세 계에 털어보기로 했다. 앱마다 콘셉트는 조금씩 다르지만 모두 익명 소통 이 기본이다. 어라운드는 인스타그램이나 페이스북에 글을 남기듯 내 감 정을 그대로 옮겨 적으면 됐다. 마리레터는 고민글을 쓰면 ‘마리라이터’로 지정된 사람들이 따뜻한 위로의 말을 달아줬고, 아날로그 감성을 건드리 는 밤편지는 편지라는 소통 방식을 사용해 수신자와 진솔한 생각을 주고 받을 수 있었다. 감쓰는 감정 청소부 캐릭터가 등장하는데, 일정 기간이 되면 글로 쏟아낸 감정을 싹 치워주는(?) 설정이 흥미로웠 다. 에디터는 어라운드를 주로 사용했다. 퇴근길 버스 안, 라디오 사연처럼 차곡차곡 쌓인 누군가의 이야기를 인스 타그램 피드 보듯 쓱 넘겨 읽었다. 하소연하는 글, 자랑 글, 일상 글 등. 어느 누구든, 어떤 글도 남길 수 있었다. 주제 별로 해시태그 검색도 가능했다. #직장인 사연을 찾아 읽 다가 나와 비슷한 고민을 안고 있는 누군가를 발견하면 꼬 았던 다리를 풀고 경청했다. 마음을 담아 ‘공감’과 ‘하트’를 보냈다. 성심껏 댓글도 달게 되더라. 하루 중 가끔씩 타인 의 공감을 알리는 푸시 알림이 떴다. ‘누군가 당신의 이야 기에 공감합니다’라고 적힌 창과 함께. 그럴 때면 일종의 안도감을 느꼈다.

한번은 아침부터 일이 꼬였다. 촬영과 취재로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출근 시간보다 일찍 가서 못 끝낸 일을 마 무리 짓고 싶었는데, 그날따라 도로 상황이 ‘고구마’였다. 하필 엉뚱한 실수까지 저질렀다. 버스 번호를 착각해 중간 에 잘못 갈아탄 거다. 그 사실을 모른 채 멍하니 창밖을 내 다보며 한참을 갔다. 결국 회사에는 제시간에 가지 못했 다. 하루의 시작을 망친 것 같은 기분에 영 의욕이 솟질 않 았다. 익명의 타인들에게 SOS를 쳐야겠다고 생각했다. 지 금의 상황과 기분을 가감 없이 작성해 화면에 띄웠다. 폭 풍 공감까진 아니더라도 ‘내 얘기인 줄!’ 말해주는 누군가 가 있겠지. 15분 정도 흘렀을까? ‘나는 더 심하다. 버스를 세 번 연속으로 잘못 탄 적이 있다’, ‘지하철에서 숙면을 취 하다 역을 지나치기 일쑤다’ 같은 비슷한 실수담부터 ‘누구 나 그럴 수 있다, 별일 아니라고 생각하고 마음 편하게 먹어라’라는 조언 의 댓글이 이어졌다. 버스를 잘 못 타는 일 따위, 정말 별것 아닐 수 있다 . 하지만 덜렁이에 소심이인 나는 그들이 건넨 위로와 격려 덕에 마음이 한 결 편해졌다. 다시 정상적으로 하루를 시작할 수 있었다.

원고를 쓰는 중에 진동벨이 울렸다. 댓글 알림이었다. 새벽 퇴근길에 푸 념을 늘어놓은 게 생각났다. “제가 할 수 있는 것은 당신의 글에 하트 모 양을 누르는 것뿐이지만, 그 힘듦을 잘 압니다. -글쓴이의 아픔을 비슷하 게 느끼는 누군가가.” 그 ‘누군가’가 내 구겨진 마음을 다림질해준 것만은 분명한 것 같다. 그게 일시적이었든 말이다.


공감과 위로를 나누는 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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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라운드 나와 사람들의 솔직 담백한 이야기가 공존하는 앱. 어떤 주제든 자연스럽게 작성해 주변 사람들과 공유할 수 있다. 나만 볼 수 있도록 비공개 설정도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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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리레터 ‘마리샌더’가 되어 자신의 사연을 올리면 지정된 ‛마리라이터’들이 공감편지를 써준다. 주제별로 공감편지를 모아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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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편지 내 솔직한 감정을 편지에 담아 보낸다. 타인에게도 보낼 수 있지만, 지인에게도 보낼 수 있다. 희망자를 받아 사연을 읽어주는 팟캐스트 ‛밤편지 우체국’도 운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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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쓰 분노, 우울, 보통, 행복, 사랑 중 감정 상태를 설정하고 기록한다. 남긴 글은 사용자가 정해놓은 일정 기간이 지나면 지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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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세상의 시간에서 벗어나 일상에 생각의 틈을 가져보자는 취지의 앱. 지금 하고 있는 생각을 일기처럼 기록할 수 있다. 글을 그대로 두거나 하루 뒤에 사라지게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