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판은 눈앞에 차려질 음식을 상상하고 기대하게 하는 것 그 이상의 매력이 있다. 텍스트, 사진, 그림 혹은 형태로 남다른 인상을 주는 메뉴판을 들여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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믹솔로지

‘그림책 아님 주의.’ 실력 좋은 믹솔로지스트가 상주하는 칵테일&몰트바 믹솔로지의 팝업북 메뉴판은 믹솔로지 김봉하 대표의 솜씨다. 어느 날 아들에게 읽어주던 팝업 동화책이 모티브가 됐다. 아이의 눈을 사로잡은 입체적인 그림을 보며 가게에 찾아오는 손님에게도 그런 기쁨을 주고 싶다고 생각했다고. ‘The Mixology’라 적힌 메뉴판의 첫인상은 마치 백과사전 같지만, 펼치는 순간 화려한 그림책이 된다. 칵테일 사진과 함께 등장하는 관련 이미지를 보며 연관성을 찾아보는 재미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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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오

일본 가정식 전문점 시오의 메뉴판은 대학 새내기의 다이어리처럼 풋풋한 매력이 있다. 사연은 이렇다. 시오에서 일하던 직원 중에 스무 살 미대생이 있었는데, 자신의 다이어리를 꾸미듯이 한 장 한 장 정성껏 메뉴를 그려 넣은 것. 반찬 가득, 한 상 차려 나오는 메뉴를 실사에 가깝게 그린 덕에 손님들의 반응도 좋다. 시오에 다녀왔다는 후기에는 메뉴판 사진이 꽤 올라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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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나스

도산공원 디저트 카페 우나스는 파인 아트 같은 디저트를 낸다. 이은아 우나스 총괄 파티시에가 빚어내는 아름다운 빛깔과 모양새의 디저트들은 보기만 해도 황홀한데, 이 집의 메뉴판도 그의 작품만큼이나 정교하다. 펜으로 쓱쓱 그려낸 듯한 디저트 일러스트는 친절하게도 디저트 단면이 함께 묘사되어 있다. 어떤 재료들로 레이어를 쌓아 올렸는지 꼼꼼한 설명도 곁들였다. 시간 여유가 있다면 적힌 재료를 찬찬히 읽어보길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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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페 현상소

서울역 뒤편에 간판 없이 자리한 카페 현상소는 편지지가 메뉴판이다. 봉투를 열면 직접 쓴 2장의 편지지가 나온다. 커피와 티, 디저트, 주류 메뉴가 적당한 간격을 두고 쓰여 있는데, 어쩐지 점잖게 두 손으로 들고 봐야 할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사진 없이 펜과 종이만으로 완성한 메뉴판이 이렇게 낭만적일 수 없다. 드문드문 바랜 종잇장도 멋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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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다호

망원동에 위치한 복합 문화 공간 아이다호 운영자는 소설책 사이사이에 메뉴를 끼워 넣은 흥미로운 메뉴판을 생각해냈다. 참신한 메뉴판만큼 눈길이 가는 건 이곳의 시그니처 메뉴들. 구스 반 산트 감독의 <아이다호>를 좋아해 메뉴에 영화 주인공의 이름을 붙이고, 레시피를 직접 짰다. 메뉴 설명이 재료나 맛이 아닌, 캐릭터와 장면 중심이어서 맛에 대한 호기심을 넘어 영화에 대한 궁금증을 갖게 한다. 이를테면 메뉴 ‘키아누 리브스’는 블랙티 시럽이 들어가는 달콤 쌉싸래하면서 과일 맛을 느낄 수 있는 커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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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아름다운 세탁소

서촌에 있는 프랑스 가정식집 나의 아름다운 세탁소는 미술을 전공한 주인장이 직접 연필로 스케치하고 색을 채워 완성했다. 식재료 알레르기가 있는 손님들을 위해 메뉴에 들어가는 각종 재료를 빠짐없이 그려 넣었다. 메뉴를 정했다 하더라도 메뉴판을 끝까지 넘겨볼 것. 영화 <아름다운 세탁소>에서 영감받아 그린 일러스트, 좋아하는 파리의 공원 그림 등 감상할 것들이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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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선키친

익선동 골목에 자리한 퓨전 레스토랑 익선키친의 메뉴판은 하얀 냅킨 같기도, 전시 팸플릿 같기도 하다. 이 소박한 메뉴판은 음식에 관심이 많은 평범한 가정주부였던 엄마가 메뉴를 꾸리고, 사진작가인 그의 아들이 사진을 찍고 디자인했다. 단순하지만 시선을 머물게 하는 플레이팅과 사진은 1960년대에 지어진 한옥을 개조해 만든 공간과 조화를 이룬다. 메뉴판 첫 장에 써진 ‘이곳에서 좋은 시간을 보내길 바란다’는 인사말이 유난히 정겹게 느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