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 4인의 인생 책과 글귀, 그리고 그 길을 따라가다 보면 마주하게 될 어떤 향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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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 라보의 바닐 44 EDP 파리에서 영감을 얻은 시티 익스클루시브 컬렉션으로 로맨틱하지만 강렬한 우디 바닐라 향이다. 100ml 59만5천원.

 “나는 그들과 함께 시와 소설을 즐기고 커다란 쇼핑백에 담아온 내 시집을 1달러씩에 팔았다.”

<Just kids>+풋풋하지만 당당한 파리의 향
유지혜 | 여행 작가

스물셋 첫 유럽 여행을 떠나기 전 서점에서 우연히 이 책을 샀다. 집에 두고 여행을 다녀와서 읽었는데, 센세이셔널하고 예술적인 패티 스미스의 인생 이야기에 가슴이 터질 것 같았다. 원래 전혀 모르던 책이었고 누군가에게 추천을 받은 게 아니라서 더 좋았다. 날것의 느낌, 풋풋하지만 어딘지 모르게 당당함이 느껴지는 파리의 향기를 닮았다.

몹시 진한 기억을 초대한다는 것. 그것이 책과 향의 공통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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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쉬의 카마 EDP 매력적인 파촐리와 상쾌한 오렌지가 조화를 이뤄 어디서도 본 적 없던 이국적인 향을 선사한다. 100ml 14만원.

 “오, 아름다움아. 너는 깊은 하늘에서 왔어, 심연에서 왔어? 악마 같으면서도 신 같은 네 눈길은 은혜와 죄악을 닥치는 대로 퍼부으니 너는 포도주와 같구나.”

<악의 꽃>+무거움에서 상쾌함으로 넘어가는 향
김은비 | 시인

시를 보여주기도 전부터 독자를 집어삼키는 힘을 가진 책이다. 프롤로그 페이지인 ‘독자에게’를 읽을 때 나는 감히 마음의 준비를 했다. 이 안에 어떤 시가 나를 살게 하기도, 죽게 하기도 하겠다고. 짐작할 수 없으나 그에게 기꺼이 나를 내어주고 싶다고. 사랑의 무게를 받아들이면 새로운 세계가 펼쳐지듯이 특유의 무거움에서 상쾌함으로 넘어가는 향이 생각난다.

사람마다 나를 완전해지게 하는 책이나 향기가 있다고 믿는다. 그것들은 내면을 지배하는 힘을 가졌으니까. 나의 경우 마음이 불안정할 때 향을 피우고 좋아하는 책을 펼치면 완전한 보호 속에 있다는 느낌을 받는다. 각자 그런 책과 향기에 대해 떠올려보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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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가리의 아쿠아 뿌르 옴므 아틀란틱 EDT 레몬, 베르가모트의 프레시한 향과 앰버그리스의 웅장함을 통해 깊고 넓은 대서양 바다를 표현했다. 100ml 13만3천원.

“헤프지 않은 나의 웃음, 아껴둔 나의 향기 모두 당신의 것입니다.”

<꽃은 흩어지고 그리움은 모이고> 중 ‘제비꽃연가’ +나의 20대를 떠오르게 하는 새파란 향
김경현 | 시인

따뜻한 바닷바람 사이로 아이들이 뛰놀고, 하늘은 드높아서 책을 읽기 좋은 날이었다. 어느 날 누군가 내게 읽어주었던 <꽃은 흩어지고 그리움은 모이고> 속 ‘제비꽃연가’를 다시 펼쳐보았다. 헤프지 않았던, 아껴두었던, 모두 당신의 것이었던 나의 20대와 그 시절을 함께 보낸 새파란 향이 떠오른다. 쉽게 사라지는 듯하지만 섬세하게 남아 있는 향기가 퍽 마음에 들었던 그때. 꽃은 흩어지고 그리움은 모여서, 누구보다 작은 시인이 되어야겠다고 다짐하고 또 다짐했다.

향이란 가볍지만 은은하게 퍼져 길가에서 쉽게 지나치는 제비꽃을 닮았다. 누구에게는 가장 작은 꽃일 제비꽃이 가장 큰 기쁨이 되기도 하듯이, 숨겨둔 나의 향기는 모두 당신의 것이기도 하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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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콜라이의 세드라 인텐스 EDP 은은하게 퍼지는 캐모마일과 일랑일랑 향이 여유를 선사하고 쌉싸래한 우디 노트로 마무리된다. 100ml 18만9천원.

“그리고 방금 또 다른 교훈이 떠올랐다. 사랑할 수 있을 때 사랑하라는 것. 그것이 남는 장사다.”

<마더 나이트>+캐모마일을 품은 샤프한 곡선의 향
태재 | 시인

흠모하던 선배의 추천으로 접하게 된 <마더 나이트>, 그리고 소설가 커트 보네거트. 그 선배에게서 처음 맡은 아련한 캐모마일 향과 커트 보네거트가 가진 샤프한 곡선의 느낌은 이런 이야기의 도움을 받았겠구나 하는 힌트를 얻을 수 있었다. 물론 지금까지도 나와 나의 작업에 적절한 영향을 끼치고 있다.

책과 향은 부조리한 것들에 유머를 투척하는 저력을 가졌다. 그 유머가 비록 쓴웃음일지라도. 단순히 매혹적이거나 진하지 않은, 어딘가 쎄한 이야기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