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를 그저 그런 로봇쯤으로 알고 있던 에디터를 무색하게 만든 새로운 쇼핑 세상. 우리는 지금 집 안에서 마음껏 피팅 후 온라인 쇼핑을 즐길 수도, 나의 쇼핑 취향을 큐레이션할 수도 있는 세상에서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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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여름 인공지능을 가진 에어컨을 구입했다. ‘더워’라고 말하면 에어컨을 켜주고, ‘춥다’고 말하면 알아서 온도를 조절해준다. 한 가지 놀라운 건 이 모든 패턴을 기억하고 있다가A I 모드를 실행하면 전에 사용하던 온도 패턴을 그대로 실현해준다는 것. A I 스피커도 마찬가 지다. TV를 틀어줘, 심심해, 날씨를 알려줘, 노래 좀 틀어줘 등 친구처럼 다정하게 이름을 부르고 물어보면 제법 기특하게 대답한 후 제 일을 해낸다. “AI 그게 뭐야?” 천하의 이세돌 을 이긴 바둑 두는 기계쯤으로 여겼던 지난날이 무색할 정도다. 모르면 몰랐지 이토록 편하 니 곁에 두고 계속 써먹고 싶은 마음뿐.

이렇게 똑똑한 AI가 할 줄 아는 게 과연 이것뿐일까? 한 데이터 콘텐츠 조사 기업에 따르면 패션 업계 또한 디지털 사회의 영향을 많이 받으면서 AI를 활용한 주문형 자동화 생산 방식 이 적극 도입될 것이라는 전망을 내놓았다. 즉 소비자가 컴퓨터를 통해 원하는 스타일과 치 수를 입력하면 AI는 소비자가 입력한 내용과 SNS 활동, 최신 유행 스타일 등을 기반으로 빅데이터를 분석해 새로운 스타일을 만들어낸다는 것. 또한 고객은 증강현실 속 피팅룸을 이용해 AI가 추천하는 다양한 룩을 가상으로 입어보고, 선택할 수 있다. 3D 패션 디자인 플 랫폼이 고객이 입력한 신체 치수에 따라 옷을 디자인하고 제작해 배송하는 식이다.

먼 얘기 같나? 실제로 미국 최대의 온라인 쇼핑몰 아마존은 지난 2017년 4월 카메라가 달 린 인공지능 스피커 ‘에코 룩(Echo Look)’을 출시하고 올해 6월 정식 판매를 시작했다. 에코 룩을 향해 “알렉사, 사진 찍어줘”라고 말하면 사용자의 모습을 사진이나 동영상으로 촬영 하면서 기능이 시작된다. 먼저 ‘스타일 체크’ 기능은 2개의 옷차림을 찍어 올린 후 어떤 룩 이 더 나은지 의견을 받을 수 있다. 사진을 보내면 몇 분 안에 실루엣, 컬러, 스타일링, 트렌 드를 기반으로 더 나은 선택을 돕는다. 두 번째 ‘데일리 룩’ 기능은 에코 룩을 통해 찍은 매 일의 옷차림을 사진이나 비디오로 구성해 사용자 스스로 자신의 룩을 살필 수 있다. 쇼핑할 때 자신이 가지고 있는 옷과 매치해 구매하는 데 유용할 듯하다. 세 번째 ‘컬렉션 기능’은 ‘데일리 룩’을 통해 수집한 콘텐츠를 기반으로 ‘외출할 때’, ‘소개팅 나갈 때’ 등과 같이 TPO에 맞도록 카테고리를 분류해서 관리하는 기능을 선보인 다. 아마존은 온라인 쇼핑의 취약점을 보완하기 위한 노력을 아끼지 않 는다. 지난해 10월에는 인체의 통계적 3D 모델을 개발하는 보디 스캐닝 신기술에 투자를 강화한다고 밝혔다. 직접 입어보지 않아 생기는 사이즈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포부다. 이 기술은 고객의 보디를 3D 형태로 정확 하게 측정하고 예측할 수 있는 기술을 시현할 컴퓨터 비전 벤처업체 ‘보 디 랩스(Body Labs)’를 인수하면서 시작됐다.

또한, 증강현실을 이용해 편하게 가상 쇼핑 경험을 할 수 있는 ‘매직 미러’ 에 대한 특허를 신청했다. 이는 거울과 카메라 조명 등을 활용해 다양한 배경에 어울리는 옷과 액세서리 착용 모습을 볼 수 있는 기술이다. 인공 지능과 증강현실 기술을 통해 온라인 쇼핑 실패율을 줄이고 판매자와 소 비자의 거리를 한 단계 줄일 수 있는 방법이 될 것이라 기대된다.

그런가 하면 패션계의 넷플렉스라고 불리는 ‘스티치 픽스’는 머신 러닝을 탑재한 AI 빅데이터와 실제 스타일리스트의 전문적인 의견을 결합해 스 타일 큐레이션과 서브스크립션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회원 가입 시 본인의 신체 조건부터 취향까지 상세한 질문에 답을 끝내면, 데이터에 맞 는 5가지 옷을 고객에게 발송하며, 그중 맘에 드는 제품만 골라 나머지를 반품하는 시스템이다. 빅데이터의 인공지능 알고리즘과 실제 스타일리 스트들이 협업한 성공사례로 손꼽힌다.

오프라인 매장도 진화가 필요해

인공지능의 활약은 오프라인 매장에서도 만날 수 있다. 주로 매장에 방 문하는 고객 중 브랜드가 타깃으로 정한 특정 고객을 선별해 이들이 선 호하는 상품, 구매 여부 등의 정보를 수집하고, 분석해 최적화된 상품과 서비스를 제공한다. 온라인 쇼핑몰 파페치의 ‘미래형 오프라인 매장’을 예로 들 수 있다. 이들은 자신들이 인수한 유명 명품 부티크 ‘브라운스’ 와 협업관계인 ‘톰 브라운’ 매장을 통해 이 같은 서비스를 선보였는데, 온 라인 쇼핑이 편하긴 하지만 값비싼 명품 옷을 직접 입어보지 않고 구매 하기란 쉽지 않다는 걸 알고 있는 이들의 방안책이다. 소비자가 옷을 들 면 옷걸이에 붙은 RFID(무선 주파수 인식 장치)가 자동으로 옷을 인식해 고객의 스마트폰에 깔린 파페치 앱에 관심 목록으로 담아주는 일까지 한 다. 탈의실 안에 있는 디지털 거울은 고객이 그동안 파페치에서 구입한 제품을 데이터화해서 취향에 맞는 옷 등을 추천해준다.

이 같은 행보는 중국에서도 마찬가지다. 중국의 최대 전자상거래 업체 알리바바 그룹은 지난 7월 5일부터 7일까지, 홍콩 이공대학교 캠퍼스에 서 인공지능을 기반으로 한 세계 최초의 인터랙시브 패션 AI 콘셉트 스 토어를 오픈했다. 매장 내에 스마트 거울을 통해 고객들이 원하는 아이 템으로 매치한 룩을 제안하는데, 이 스마트 거울은 이전에 구입한 ‘ 타오 바오’, ‘T몰’ 속의 아이템과 상호 매치가 가능한‘ 타 오바오 옷장’을 제공한 다. 자이로 센서, 저전력 블루투스, 무인전자식별 칩을 갖춘 스마트 잠금 장치가 장착된 각 아이템들은 만지는 즉시 가까운 매직 미러를 통해 볼 수 있으며, 이를 선택하면 매장 직원들이 알림을 받고 제품을 고객의 피 팅 장소에 준비해놓는다. 고른 옷들을 바리바리 들고 피팅룸까지 가지 않고, 편안하게 쇼핑을 즐길 수 있다는 얘기. 이렇듯 온라인 쇼핑의 발달 로 오프라인 매장은 새로운 돌파구를 찾아야 할 때다. 오늘날 쇼핑몰들 은 온오프라인과 모바일 채널을 연결하는 이른바 ‘옴니 채널’을 이용한 쇼핑을 제안하고 있다. 국내에서는 롯데백화점에서 큐레이션 서비스와 가상 피팅 서비스를 통한 ‘3D 가상 피팅 서비스’와 ‘3D 발 사이즈 측정기 ’ 등을 운영하고 있으며, 온라인몰 ‘SSF샵’은 상품 이미지만으로 유사 제품 을 찾아주고, 해당 제품과 연관성이 높은 아이템을 선별해 고객에게 맞춤 형으로 제안하는 서비스를 진행하고 있다.

이렇듯 인공지능과 조우한 패션이 어느새 우리 생활에 점점 더 자연스럽 고 깊숙이 스며들고 있다. 스티치 픽스의 CEO 카트리나 레이크의 말처 럼 쇼핑은 본질적으로 개인적이고 인간적인 행위이기 때문에 가상현실 속에서 옷을 사는 것이 달갑지 않았다. 하지만 매장에서 고른 옷을 입어 보기 귀찮았던 경험, 온라인 쇼핑몰에서 사이즈 때문에 반품과 교환을 반 복했던 경험 때문인지 어제와 다른 미래 쇼핑에 점점 더 기대를 걸게 되 는 게 사실이다. 곧 집 안에 누워서 “하이 빅스비, 저 옷을 구해줘”라고 외 칠 날 말이다. 적어도 쇼핑에 실패한 경험이 많은 에디터는 그렇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