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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가 축구 하는 이야기

중학교 3학년 무렵 ‘신도시’로 전학 갔을 때의 일이다. 아파트는 새것이라 더없이 반짝반짝거렸지만, 운동장에는 공사의 흔적이 담긴 돌멩이가 잔뜩 있었다. 체육 시간마다 우리가 운동 대신 하는 일은 돌을 골라내거나 꽃을 심는 거였다. 그러다 운동장에 돌이 웬만큼 사라지자 체육 선생은 발야구 아니면 피구를 주야장천 시켰다. 남학생반은 농구 아니면 축구였다. 한 학년에 매주 몇 명씩 전학을 올 무렵이라 지금 생각하면 어이가 없을 정도로 엉망이었던 것. 발야구도 피구도 너무 지겨워질 무렵 우리 체육반장은 다른 걸 하고 싶다는 아이들의 볼멘소리를 전했고, 선생은 “그럼 축구를 할래?”라며 대충 무마하려 했다. 그런데 우리는 그랬다. “축구 할게요!” 여중생들 아닌가. 우리는 축구공을 따라 달리기 시작했다. 발야구로 단련된 기술을 이용해 뻥뻥 차면서 말이다. 희한하게 웃음이 났다. 웃음이 나서 뛰기가 힘들 정도였는데, 그냥 깔깔대며 뛰었다. 그런데 그 유일한 축구 수업 후에 남학생반에서 이런 소리가 들려왔다. “재수없게.”

이 이야기에는 한 치의 거짓도 없다. 축구를 해본 것은 그때가 유일하지만 그때의 어쩐지 유쾌했던 기분, 신나던 기분만은 남아 있다. 여자이기 때문에 할 수 없다고 여겨지는 생활 스포츠가 얼마나 많은가. 어쩌면 내 안에 숨은 천재 스트라이커의 자질이 미처 발견되지 못한 건 아닐까? 나는 축구, 야구, 테니스 경기의 애청자지만 경기를 보면 뛰고 싶어진다. 남자였다거나, 학교의 운동부 활동이 활발한 다른 나라에서 태어났더라면 난 뭘 했을지 생각해보게 된다. <우아하고 호쾌한 여자 축구>는 그 마음을 행동으로 옮긴 여자들의 이야기다. 초개인주의자라고 스스로 믿어왔던 김혼비는 여자 축구팀의 일원이 되어 달린다. 뛰고 달리는 과정의 호쾌함, 아름다움, 카타르시스 등이 고스란히 느껴진다. 필드를 달리기엔 너무 늦은걸까? 어쩌면, 늦지 않았을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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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쾌한 삶

나는 영화 <미쓰 홍당무>, <비밀은 없다>의 팬이다. 그 말은 감독 이경미의 팬이라는 뜻도 되겠다. 두 작품 모두 이경미 감독만의 색깔이 진하게 묻어 있었으니까. 한 인터뷰를 통해 만난 실제 그녀 역시 친구이거나, 옆집에 사는 이웃이었으면 싶을 정도로 매력적이었다. 그 이경미 감독이 첫 에세이 <잘돼가? 무엇이든>을 통해 직접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일부러 만든 이야기는 없다. 어느 한구석도 위악적인 면은 없는 고백과 농담으로 가득한 에세이는 인생이란 결코 아름답게 굴러가지 않지만, 살 만한 것임을 느끼게 한다.


NEW BOO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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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 떠내려가는 집에서>
한 시절에 조경란은 문단의 총아였다. 원로 작가가 된 지금도 조경란은 쓰고 있구나, 싶었다. 조경란의 일곱 번째 소설집으로, <일요일의 철학> 이후 소설집으로는 5년 만의 작품이다. 총 여덟 편의 단편소설로 이루어져 있다. 작가 조경란 출판 문학과지성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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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소한 부탁>
<밤이 선생이다>다 이후 5년 만에 나온 황현산 신작이다. 선생의 글에는 요즘의 유행, 트렌드 같은 건 찾아볼 수 없다. 평생을 써온 그 글 그대로다. 2013년부터 2017년 12월까지 쓴 글은 시간의 흐름을 따라 묶었는데, 결과적으로 사회의 증언이 되었다. 저자 황현산 출판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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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와 하모니카>
에쿠니 가오리의 신작 여섯 편을 모은 단편집이다. 표제작인 ‘개와 하모니카’는 제38회 가와바타 야스나리 수상 작품이기도 하다. 마음대로 되지 않는 감정들이 오가고, 제각기 고독하면서도 감성적인 에쿠니 가오리의 작품 세계는 그대로다. 저자 에쿠니 가오리 출판 소담출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