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경과 예술, 역사가 어우러진 남프랑스. 눈이 닿는 곳마다 이야기가 들려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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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중해를 끼고 있는 그림같은 호텔, 캅 에스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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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종일 니스 비치에 내리쬐는 따스한 여름 햇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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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스의 관광 명소인 마크 샤갈 뮤지엄.

상징적 리비에라, 니스

에릭 로메르 감독의 1986년 작품 <녹색 광선>은 시인 랭보의 구절로 시작한다. “오! 시간이 되니 심장이 뛰는구나!” 여주인공의 복잡한 심경과 무관하게 내 심장을 뛰게 한 건 남프랑스 코트다쥐르의 아름답고도 아련한 풍경이었다. 해가 질 무렵 하늘과 바다 사이에 잠깐 나타나는 녹색의 띠가 행운의 표시라 말하는 귀여운 할머니들, 눈부시게 내리쬐는 지중해의 태양과 그 빛을 온전히 받아들인 바다의 반짝임. 저 풍경 안으로만 들어간다면 녹색 광선을 보기 위해 애쓰지 않아도 좋을 일이라 생각했다.

‘리비에라(Riviera)’로 불리는 지중해 연안 도시 중에 최고로 꼽히는 니스(Nice)는 남프랑스 여행의 좋은 시작이다. 코발트빛 해변, 높이 뻗은 야자수, 여유로운 휴양객이 파도처럼 넘실대는 이 도시에 마티스와 샤갈 등 많은 예술가가 마음을 빼앗겼다. 또 18세기 영국 귀족들은 니스를 너무나 사랑해 많은 돈을 기부하기도 했다. 쪽빛 바다를 끼고 만들어진 4km의 해안로가 ‘영국인의 산책로’를 뜻하는 프롬나드 데 장글레(Promenade des Anglais)라 불리는 이유다. 물이 유난히 맑고 깨끗한 천사의 만(Bay of Angels)은 프롬나드 데 장글레를 지나 캅 당티브까지 뻗어 있다. 5~9월에는 매주 수질 검사를 한다는데 그저 눈으로만 봐도 그 맑음이 느껴진다. 오전엔 바다에서 수영을 하고 바닥에 깔린 갈레(Galet)라 불리는 작은 조약돌 위에 누워 한참 동안 햇빛을 쬐었다.

저녁에는 마세나 광장(Place Massna)으로 향했다. 니스에서 가장 번화한 이곳에는 상점과 레스토랑이 즐비한다. 스페인 출신의 아티스트 하우메 플렌사의 야외 설치 미술 작품에 조명이 켜지고 무명 연주자들의 공연이 펼쳐지면서 로맨틱한 분위기는 정점을 찍는다. 18세기 옛 모습을 간직한 구시가지의 완연한 자태도 빠뜨릴 수 없다. 마세나 광장에서 프랑수아 드 폴 거리를 걸어 대법원 건물을 지나면 그때부터는 정겨운 골목을 만끽하는 시간이다. 오랜 시간 이곳을 지켜온 이들의 일상이 집 앞의 화분과 빛바랜 문, 다정하게 널어둔 빨래에서 드러난다.

마티스 미술관(Muse Matisse)은 니스를 대표하는 명소다. 20세기를 대표하는 화가 앙리 마티스를 두고 프랑스 출신 작가 루이 아라공은 이렇게 말했다. “마티스의 창은 니스를 향해 열려 있다. 경이롭게 열린 창 너머에는 안경 너머 마티스의 눈동자처럼 파란 하늘이 있다. 거울과 거울의 대화가 펼쳐진다. 니스는 화가를 바라보고 화가의 눈에 투영된다.” 마티스는 자신의 작품을 니스에 기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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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즈 빌리지의 입구에서 바라본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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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즈 빌리지 언덕 길에서 발견한 작은 문.

니체의 길을 걸으며, 에즈

지중해와 함께 그림처럼 펼쳐지는 하얀 저택. 19세기 말 러시아 왕자가 개인 별장으로 지은 캅 에스텔(Cap Estel)은 모나코와 니스 사이의 에즈, 그중에서도 푸앵트 드 카뷔엘(Pointe de Cabuel)에 자리 잡았다. 1950년 유럽 귀족을 위한 호텔로 변신했으며 프랑스 조지 퐁피드 대통령, 오만의 국왕, 비틀스, 로버트 드니로 등이 머무른 곳으로도 유명하다. 30여 개의 모든 객실이 지중해를 내려다보는 뷰를 자랑하고, 이곳의 상징이기도 한 인피니티 풀은 그 유명세를 증명하듯 하늘과 바다, 풀과 자쿠지 풀이 각기 다른 푸른빛으로 빛나고 있었다.

오후에는 에즈 빌리지로 향했다. 해발 429km에 자리한 에즈의 길은 언덕과 좁은 골목으로 이어진다. 13세기에는 로마의 침략을, 14세기에는 흑사병을 피해 사람들이 모여든 이 언덕 마을은 단 한 마리의 노새만 지나갈 수 있도록 만들어졌다. 철학자 프리드리히 니체는 한동안 이곳에 머물며 <자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의 세 번째 부분을 완성했다. 에즈를 유난히 사랑한 그는 점차 시력을 잃어가면서 손끝으로 느껴지는 나무와 돌의 흔적을 더듬으며 에즈를 경험했다. 니체의 길(Chemin de Nietzsche)이라 쓰인 화살표 간판을 따라 걸으니 어느덧 그가 사색하고 고뇌하던 길이 나타났다. 정상에 도착한 이들에게 선물을 안기듯 등장하는 에즈 열대 식물원(Jardin Exotique d’ze)에는 아프리카, 남미 등 세계 각지에서 공수한 수백 종의 희귀한 아가브, 선인장, 꽃, 나무가 푸른 바다가 내려다보이는 절벽 위에 홀연히 피어 있다. 1920년 스웨덴의 윌리엄 왕자는 이 풍경에 심취해 30년 동안 매해 여름 에즈의 고성을 찾았다. 그곳은 현재 샤토 에자(Chteau Eza)라 불리는 호텔로 운영되고 있다. 호텔로 돌아와 니체의 글을 찾아 읽었다. “에즈에서 보내는 시간 동안 잘 자고 많이 웃고 환상적인 활기와 인내심을 얻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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칸의 구시가지에 자리한 파스텔 컬러의 예쁜 집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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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점의 영화 벽화를 찾는 것은 칸의 빠뜨릴 수 없는 즐거움 중 하나다.

한번쯤 영화처럼, 칸

5월 초의 칸은 국제 영화제 준비가 한창이었다. 고급 호텔과 명품 부티크, 카지노, 영화제를 위한 공간이 해안가를 따라 화려한 모습을 드러낸다. 레드 카펫이 깔리는 영화제의 무대 팔레 데 페스티발 에 데 콩그레(Palais des festivals et des Congrs), 그리고 24개의 계단은 그 존재감 때문인지 멀리서도 눈에 들어온다. 곳곳에 영화적 요소를 가진 칸인 만큼 길을 걷다 보면 14점의 커다란 벽화를 만날 수 있다. 마릴린 먼로, 장 폴 벨몽 , 존 웨인 등 유명 영화배우와 작품 포스터가 그려져 있는데 14점의 벽화를 모두 찾아 인증샷을 남기곤 한다.

칸 시내는 그리 크지 않아 걸어 다니기 좋지만, 관광객 기분을 내기 위해 칸 시네마 투어 기차에 올랐다. 팜비치와 럭셔리 부티크숍, 좁은 골목 등 한 시간 동안 칸 구석구석, 차가 다니지 못하는 언덕까지 둘러보는 코스다. 영어 오디오 가이드가 마련되어 있어 곳곳에 나타나는 호텔에 어떤 배우가 묵었는지, 칸 국제 영화제의 스토리까지 간략하게 들려준다. 기차는 한 번 정차하고 그곳에서 자유 시간을 주는데, 바로 카스트르 박물관(Muse de la Castre) 앞이다. 정원으로 둘러싸인 여러 개의 전시관에는 원시 시대 예술품, 칸과 리비에라의 풍경화, 세계 악기 컬렉션 등 다양한 장르를 아우르는 예술 작품으로 꾸며져 있다. 이 박물관이 유명한 또 하나의 이유는 그 앞으로 펼쳐지는 파노라마 뷰 때문이다. 갈색 벽돌로 치장한 지붕, 창문에 걸터앉은 고양이, 담벼락에 걸어둔 그림과 가로등까지 칸의 민낯이 가까이 들여다보인다. 이 일대를 아우르는 슈발리에 산자락 지대는 르 쉬케(Le Suquet)라 불린다. 칸에서 가장 역사가 깊은 구시가지로 화려한 항구 부근과는 다른 편안하고도 고즈넉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다음 날엔 칸의 섬을 찾았다. 생토노라(Saint-Honorat) 섬과 생트 마르게리트(Sainte-Marguerite) 섬을 묶어 레린(Lrins) 섬이라 부르는데 화려한 칸 항구를 떠나 하루 정도 쉬어가기 좋은 곳이다. 생트 마르게리트는 두 개의 섬 중 더 큰 섬으로 칸에서 보트를 타고 15분이면 도착한다. 섬에 발이 닿자마자 소나무와 유칼립투스 나무 향이 코끝을 찔렀다. 20가구 남짓 어부들의 터전임을 증명하듯 아침부터 부지런히 낚아 올린 물고기를 빠르게 손질하는, 평생을 바다에 바친 어부의 거친 손이 가까이 보인다. 17세기에 세워져 감옥으로 사용된 포르트 루아얄(Fort Royal) 성채로 걸음을 옮겼다. 감옥이라 하기엔 너무 아름답고 평화로운 풍경. 평생 철가면 뒤에 숨겨졌던 루이 14세 쌍둥이 동생의 슬픈 전설이 떠오른다. 배에서 내려 해안 산책로를 걷다가 희귀 동식물이 사는 연못도 둘러보고 조금은 아쉬운 마음을 뒤로한 채 다시 칸으로 가는 보트에 올라탔다. 다시 찾은 칸의 밤은 낮보다 화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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엑상프로방스에서 관합성을 즐기는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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엑상프로방스에서 만난 오래된 예술 공방.

우아한 도시의 얼굴, 엑상프로방스

엑상프로방스(Aix-en-Provence) 인구의 절반은 은퇴한 노인이지만 나머지 절반은 젊은 학생이다. ‘지성의 도시’라는 수식어가 붙는 것에서 예상할 수 있듯 유수의 대학교가 이 도시에 모여 있기 때문이다. 덕분에 레스토랑의 테라스에는 머리가 희끗희끗한 노부부와 얼굴에 피어싱을 한 대학생들이 가까운 테이블 간격만큼이나 자연스럽게 어우러진다. 노인과 대학생이 중세의 건물과 뒤섞여 있는 모습. 엑상프로방스의 여행은 이 흥미로운 장면을 목격하는 것에서부터 시작된다.

오랜 산책로 미라보 거리는 빠뜨릴 수 없는 이름이다. 17~18세기에 지어진 오래된 건물들을 따라 걷는 일은 산책의 즐거움을 더해주었다. ‘물의 도시’라 불리는 만큼 곳곳에 분수가 자리 잡아 더운 여름날의 산책이라 해도 다르지 않다. 미라보 거리 끝에 위치한 르네 왕의 분수, 중심에 자리한 로통드 분수 등 크고 작은 분수 20여 개가 엑상프로방스를 촉촉하게 적신다. 건축에 500여 년이 걸려 로마네스크, 고딕, 신고딕 등 여러 건축 양식이 공존하는 생 소뵈르(St-Sauveur) 대성당, 18세기 건축물을 복원 후 갤러리 겸 카페로 오픈한 코몽 예술센터(Caumont Centre d’Art), 세잔과 에밀 졸라가 함께 미술과 문학, 정치와 혁명을 이야기하던 카페 레 되 가르송(Les Deus Garçons)을 차례로 찾았다. 비록 두 사람의 우정은 비극으로 끝났지만 30년 동안 서로에게 영향을 주고받았고 그 열정과 논쟁이 가장 생생하게 담겨 있는 장소다.

아를이 고흐의 도시라면 엑상프로방스는 폴 세잔의 도시다. 굳건히 자리를 지키고 있는 동상, 거리의 바닥에 새겨진 이니셜 ‘C’, 그의 작품이 살아 있는 듯 숨쉬는 아틀리에까지 말이다. 북쪽으로 떨어진 세잔 아틀리에는 세잔의 흔적을 그대로 보존하고 있다. 이곳에서 나고 자랐으며 여생을 보낸 그는 후대 미술사를 관통하는 많은 걸작을 완성했다. “이 작업실은 미술관이 아니다. 세잔 이외의 다른 것을 찾으러 오지 말 것”이라는 아틀리에 앞 안내문은 가구를 거의 배치하지 않고 오로지 그림을 그리기 위해 만들어진 이 공간을 위한 적절한 설명이다. 엑상프로방스의 모든 풍경은 세잔의 캔버스에 담겨 작품이 되었는데 그중에서도 생트 빅투아르(Sainte-Victoire) 산을 배경으로 무려 87점을 남겼다. 산으로 가는 길목에 위치한 비베뮈스(Bibemus) 평원에서 30여 점의 유화와 수채화를 완성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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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프랑스 판타지를 채워주는 이상적인 공간, 도메인 드 망비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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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롭고 고즈넉한 도메인 드 망비유에서 즐기는 티타임.

가장 남프랑스적인, 레보드프로방스

프로방스 지방 언어로 ‘Baux’는 돌출된 암벽이라는 뜻이다. 마치 독수리 둥지처럼 알필 산맥에 터를 잡은 절벽 마을, 론강과 듀랜스강 사이, 비옥한 붉은 땅에서 솟아오른 올리브 나무가 자라는 곳이 바로 이곳 레보 드 프로방스(Les Baux de Provence)다. 그 가운데에는 ‘남프랑스 판타지’를 채워줄 이상적인 공간, 도메인 드 망비유(Domanine de Manville)가 있다. 레보 드 프로방스는 국내에선 덜 알려진, 하지만 프랑스인이 가장 사랑하는 도시 중 하나다. 파리와 다른 프로방스 도시에서 온 프랑스인, 그중에서도 나이가 지긋한 노부부가 조용한 휴가를 위해 찾는 곳이다. 이곳에서의 아침은 레스토랑 옆 테이블에 앉은 노부부와 눈인사를 나누는 것으로 시작되었다. 앞과 뒤 천장, 사방으로 뚫린 창과 그 너머로 보이는 키 큰 나무들, 햇살이 쏟아지는 조식 레스토랑에서의 아침은 프로방스에 품고 있는 환상을 현실로 만들어주었다. 갓 구운 빵과 직접 재배한 채소, 싱싱한 과일과 함께 즐기는 건강한 아침 식사는 그저 밥을 먹는 행위가 힐링일 수 있다는 것을 깨닫게 했다. 이곳에 왔다면 빛의 채석장(Carrieres de Lumieres)을 둘러보아야 한다. 1935년 문을 닫고 80여 년간 버려져 있던 채석장이 미술관으로 새롭게 태어났는데, 그 특이한 이력답게 여느 미술관과는 다른 이색적인 모습이 압도적이다. 피카소와 샤갈, 모네의 그림이 채석장 안 동굴의 벽과 바닥, 천장을 비추고 시시각각 변화하는 그림에 웅장한 음악이 더해지자 마치 한 편의 뮤지컬을 감상하듯 생생한 현장감이 느껴진다.

식사를 하러 들른 도메인 드 망비유의 미슐랭 레스토랑 ‘라 타블(La Table)’은 최고였다. 4코스 또는 6코스 요리 중 선택할 수 있으며 호텔에서 한 시간 거리의 와이너리에서 가져왔다는 샤도네이가 곁들여졌다. 스태프가 디저트를 서빙하며 말을 건넨다. “문 닫는 시간을 신경 쓰지 말고 여유롭게 즐기세요. Slowly in the morning, Not too fast in the afternoon.” 프로방스인들의 삶을 보여주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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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석장에서 미술관으로 변신해 수많은 관광객들을 불러모으고 있는 빛의 채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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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의 카페 테라스’의 배경이된 고흐가 사랑한 장소 카페 반 고흐.

고흐의 흔적을 따라, 아를

아를(Arles)로의 여행은 곧 반 고흐의 흔적을 따라 나서는 일이었다. 이곳에서 밤의 카페 테라스, 별이 빛나는 밤, 해바라기 등 300여 점의 작품이 탄생했다. “내가 더 못나고, 늙고, 아프고, 가난해질수록 나는 잘 배치된, 눈부시게 빛나는 훌륭한 색채로 복수하고 싶어진다.” 1988년 9월, 고흐가 남긴 글이다. 고흐가 머무를 때 병원으로 사용하던 에스파스 반 고흐(L’espace Van Gogh)는 병든 이들, 부모가 없는 아이들을 위한 곳이었다. 현재는 고흐에 헌정된 문화 공간으로 사용된다. 이번에는 폰다시온 빈센트 반 고흐 아를(Foundation Vincent Van Gogh Arles)로 향했다. 1080년대부터 빈센트 반 고흐 재단에서 수집하기 시작한 고흐의 컬렉션이 걸린 곳으로 2014년, 15세기에 지어진 이 하얀 맨션으로 자리를 옮겼다. 천장과 창으로 빛이 쏟아져 내리는 공간과 고흐의 작품이 더없이 근사하게 어우러졌다. 또 하나의 관광 명소 아를 아레나(Arnes d’Arles)는 관객 2만5천 명을 수용할 수 있는 원형 경기장으로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된 건축물이다. 여름에는 야외 음악회가 열리고 투우의 전통을 계승하는 축제 페리아는 4월과 9월 중순에 열리며, 연중 크고 작은 축제로 성황을 이루는 이곳 역시 ‘아를의 원형 경기장’이라는 이름으로 고흐의 작품에 등장한다.

‘별이 빛나는 밤’이 탄생한 론강을 걷고, 그의 여러 작품에 등장하는 랑글루아 다리(Pont de Langlois)를 찾았다. 고갱과 함께 살았던 노란 집을 찾아 창문을 올려다보고, ‘밤의 카페 테라스’의 배경이 된 카페 반 고흐의 테라스에 앉아 커피 한 잔을 마셨다. 고흐의 작품에 등장하는 우체부 롤랑과 그의 집 앞 카페 주인 지누와 동생 테오에게 보낸 편지를 떠올리니 이 작은 골목의 생김이, 큰 나무의 주름이 낯설지 않았다. 아를은 물론 남프랑스를 여행하는 동안 풍경과 예술, 역사의 경계에 서 있는 짜릿함을 느꼈다. 그건 긴 여행이 끝나기도 전에 다시 남프랑스를 찾아야겠다고 생각한 가장 큰 이유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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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스파스 반 고흐에서 고흐의 흔적을 찾는 사람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