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른한 여름의 오후. 카이의 시간은 천천히 흘러갔다. 특별할 것 없는 도쿄적인 일상이 펼쳐지는 가운데. 가만히 그 뒤를 따라갔다.

0723-136-1

울 소재 베스트, 쇼츠는 모두 프라다(Parada).

도쿄의 여름은 아찔하게 덥다. 수은주가 점점 올라갈 무렵 카이가 왔다. 분명 누구도 만나지 않은 채, 호텔에서 곧장 왔음에도 마치 이미 화보 촬영이라도 하고 온 듯 멋진 모습이었다. 가장 최근에 구입한 옷을 입은 것이라는 건 나중에 알게 되었다. 화보 촬영장에는 언제나 그날의 주인공을 위한 옷이 반듯하게 걸려 있는 법이고, 그렇기에 셀러브리티들은 가장 자연인다운 모습으로 촬영장에 나타나곤 하지만 카이는 아니었다. 내일은 이 옷을 입어야지, 하고 미리 준비했을지도 모른다. 그는 비주얼 작업을 좋아한다고 여러번 말했다. 그만큼 진지하게 대하는 그의 태도처럼 느껴졌다. 무대에서 누구보다 카리스마 넘치는 카이는 실제로는 낯을 많이 가리는 편이다. 그렇다고 무뚝뚝한 건 아니고, 친해지는 데 시간이 좀 걸릴 뿐이다. 그럼에도 여러 번 본 사람처럼 대할 수 있었던 건 낯선 동네라는 장소가 준 힘이다. 다다미가 깔린 일본식 방에서 책을 읽을 때, 카이는 마치 자신의 방처럼 자유롭게 포즈를 취했다. 도쿄의 한적한 주택가는 다만 한낮의 열기만 있을 뿐, 인적도 없이 고요했다. 그곳에서 누군가 그를 알아볼 확률은 적었기에 카이는 시간이 지날수록 더 자유로워 보였다. 신기하게도 그는 어느 곳에서나 어울렸다. 지나치게 멋지다는 점만 제외하면 어느 풍경에나 녹아들었다. 낚싯대를 드리울 때. 정원에 설 때. 식탁에 턱을 괼 때. 배경을 자기 것으로 만드는 힘이 있었다. 조용하지만 문득 장난기가 빛났고, 활기차면서도 동시에 우아했다. 마침 일본이라서일까? 그를 촬영하는 사이 하루키의 오래전 수필이 떠올랐다. 어느 아침에 우연히 100%의 여자아이를 만나는 것에 대한 이야기다. 물론 100% 여자아이라는 건 없다. 그건 어떤 환상, 인상, 기대에 대한 이야기니까. 100% 남자아이라면 어떨까. 다시 말하지만 그런 게 있을 리 없다. 하지만 있다면, 세상 어딘가에 존재한다면, 오후만 있던 어느 여름날의 카이가 아닐까.

0723-136-2

울 소재 베스트, 쇼츠는 모두 프라다.

이렇게 도쿄에서 만나게 되었네요. 이 동네는 처음 와봤는데 아주 조용하군요. 늘 가던 도쿄 중심지와는 좀 다르죠?
해외 나와서 잡지 화보를 촬영하는 게 아마 처음일 거예요. 그래서 더 재미있었어요. 원래 스튜디오에서 촬영하는 것보다 로케 촬영하는 것을 더 좋아하거든요. 기분도 좋고 오늘은 여행하는 기분이 들어서 좋았어요. 마치 흘러가는 시간 속에서 사진을 남기는 것 같았어요. 나중에 <얼루어>와 함께 또 다른 곳에서 촬영을 하면 좋겠어요.

지금 그 말도 녹음되고 있어요(웃음). 다른 곳을 어서 알아봐야겠는데요? 촬영 중 인상적으로 들어온 모습이 있나요? 
천장이 낮고, 아기자기한 일본식 집이요. 직접 살고 싶진 않지만 다른 삶을 경험할 수 있는 건 좋은 것 같아요. 저는 아파트에서만 살아서, 주택은 잘 관리하지 못할 것 같거든요. 도쿄에서 추억이 많아요. 공연, 연기, 쇼핑, 다양한 추억과 기억들이 있어요. 그런데 화보를 찍으니 다르게 느껴졌어요.

화보 촬영뿐만 아니라 인터뷰하는 것도 좋아해요?
좋아해요. 똑같은 질문을 받아도 매년 제 대답은 달라지니까. 시간이 지나면서 조금씩 생각도 바뀌고요. 그래서 재미있어요. 팬들도 인터뷰를 좋아해주고요. 찍는 것 말고, 찍히는 것을 좋아하고, 옷 입는 것도 좋아하니까 촬영을 즐겨요. 이런 옷도 있구나, 이런 비주얼도 있구나 하고 저도 많이 배워요.

인터뷰하면서 제일 많이 받은 질문은 무엇인가요?
춤 이야기죠. 춤을 좋아하고, 춤으로 많이 알려져 있으니까요.

도쿄 하면 떠오르는 것은 무엇인가요?
옷을 고르는 즐거움! 예쁜 옷이 많아서 항상 옷을 사서 공항에서 자랑해요. 돔에서 하는 공연 생각도 많이 나고요. 최근에는 조카들 선물도 많이 사요. 너무 귀여운 조카가 두 명 있어요.

조카들도 삼촌을 좋아해요? 
저 말고 드라마에서 제가 맡았던 ‘아토’를 좋아해요. 제가 옆에 있는데도 ‘아토’를 계속 보고 있어요. ‘카이 삼촌’이 발음이 안 돼서 ‘카이춘’이라고 불러요. 조카들을 만나는 게 너무 너무 행복해요. 아직 말을 잘 못해서 ‘카이춘’, ‘안 돼’, ‘좋아’, ‘싫어’를 할 수 있는데, 요즘 ‘안 돼’랑 ‘싫어’에 꽂힌 거예요. ‘카이춘, 뽀뽀’ 이러면 ‘싫어, 안 돼.’ 이러면서 저를 때려요. ‘카이춘 간다’ 그러면 ‘안 돼’라면서 저한테 안겨요. 미치겠어요, 진짜. 요즘 홀릭이야. 얼마 전에 선물을 샀는데, 줄 생각에 신이 나요. 천천히 줄 거예요, 뽀뽀 몇 번 받고.(웃음)

오늘 본 것 중 가장 행복한 표정이네요. 아기와 놀아주는 것, 체력 소모가 크지 않나요? 춤추는 것보다 힘들 수도 있는데요. 
애들이랑 하와이 여행을 간 적이 있어요. 제가 아이들을 굉장히 좋아해서 저희 가족처럼 세 명의 아이를 갖고 싶었어요. 근데 그때 처음으로 한 명만 낳을까 하는 생각을…(웃음). 누나가 너무 대단해 보이는 거예요. 잠깐 저 혼자 조카들을 돌본 시간이 있었는데, 저는 왜 우는지도 모르겠고 바지는 묵직하고…조카들을 보면 제가 직접 품어서 낳고 싶은 그런 느낌이 들어요. 또 그런 모습을 보니 저희 부모님도 어떤 마음으로 절 사랑했는지 알 것 같아요.

0723-136-3

마침 <얼루어>는 창간 15주년호랍니다. 15년 전에는 뭘 하고 있었어요?
영광스럽습니다.이런 기회가 오다니. 저도 해외 촬영이 처음이었는데, 그런 의미도 있다니 너무 기뻐요. 15년 전이면 2003년이니까 제가 춤추기 시작했을 때예요. 그러니까 15년 넘게 제가 춤을 춘 거네요. 8살 때부터 춤췄으니까.

15년은 춤을 좋아하는 아이가 아티스트가 될 때까지 충분한 시간이군요. 여전히 데뷔했던 날을 떠올리나요? 
생각나요. 요즘에도 생각이 나고, 사실 어제도 생각했어요. 데뷔했을 때부터 지금까지 힘들었던 때나, 어떤 마음으로 해왔는지 자주 생각하는 편인 것 같아요. 가족들과도 자주 이야기하고, 그러다 보니 어제도 생각을 했었네요.

어떤 마음으로 일하고 있어요, 요즘은?
제가 좋아하는 일을 열심히 하면서 행복하게 하고 있어요. 좋아하는 일들을 하고, 좋아하는 잡지 화보를 찍고, 제가 하고자 하는 미래를 향해 가는 것 같아 행복해요. 엑소 활동을 하면서 많은 ‘기록’이 생겼잖아요. 더불어 제가 행복하고 좋아하는 일을 오랫동안 하고 싶어요.

인생의 많은 과정을 춤, 엑소와 함께하고 있군요. 
제 인생의 반 이상이 춤과 함께였고, 이제 가수 생활을 7년 했는데, 제 인생의 큰 부분이거든요. 그런데 전체로 봤을 땐 짧은 시간이라고 생각해요. 요즘은 서른이 서른이 아니고, 마흔이 마흔이 아닌 것처럼. 저는 시간에 연연하고 싶지 않고, 그냥 행복한 마음으로 하고 싶어요. 그러다 보면 팬들은 좋아해주실 테니까요.

요즘 하는 활동들은 다 카이가 좋아하는 것인가요? 
물론 백 퍼센트는 아니죠. 해야 되는 일도 있고, 부탁을 받기도 하죠. 제가 착해요.(웃음) 제 의사를 많이 따라서 일하죠. 오늘도 그렇고요. 저는 개인적으로 1년이면 잡지 12개를 찍고 싶어요. 한 달에 한 번씩 찍으면 제일 좋겠어요.

데뷔하면서 꿈꿨던 것들을 대부분 이루었나요? 
이룬 것 같아요. 뚜렷한 목표가 있진 않았어요. 앨범이 1백만 장 팔릴 줄도 몰랐고, 1등을 몇 번이나 할 줄도 몰랐고 대상을 몇 번 받을 줄도 몰랐어요. 하지만 저는 우스갯소리라도 ‘적당히 하자’는 걸 싫어해요. 데뷔하기 전에도 싫어했어요. 칼을 뽑았으면 무라도 썰어야 된다고 했는데요. 그러다 보니 기록도 써졌죠.

누구나 부러워할 만한 기록이죠. 
어느 순간은 기록 같은 것에 연연하기도 했고, 체력적으로 힘들 때도 있었어요. 그걸 이겨내려고 다양한 것을 하고 지금처럼 좋아하는 일을 많이 하려고 했죠. 요즘은 스트레스도 없고, 그 어느 때보다 지금이 더 행복해요.

퍼포먼스 면으로도 많은 변화가 있었어요. 어떤 방향이 있었나요? 
스스로 좋아하는 것들을 하려고 하고, 다른 분들과 이야기를 많이 하면서 작업을 만들어가니까 저만의 것도 생기는 것 같아요. 매번 새로운 것을 찾고 싶어요.

0723-136-4

면 소재 슬리브리스 톱은 캘빈 클라인 진(Calvin Klein Jean), 팬츠는 에르메스(Hermes).

곧 엑소의 콘서트가 열리는데 무대를 위해 새롭게 준비한 게 있나요? 
이번 게 엘리시온 닷(The EℓyXiOn

[dot])인데요. <I see you>의 다른 버전을 구상하고 있어요. 아직 완성되진 않았지만 많이 기대해주셨으면 좋겠어요.

세트리스트가 궁금해지네요. 새로운 음악이 나오면 아직도 CD로 전곡을 들어보는데요, 엑소는 좋은 곡이 너무 많잖아요. 
이미 한 건 최대한 안 하려고 하는 편이고요. 저도 노래를 들으면 한 가수의 노래를 들을 때 앨범 전체를 듣는 편이에요. 앨범으로 듣는 걸 되게 좋아해요. 전체적으로 들으면서 앨범의 분위기를 알아가는 게 좋아요. 저도 저희 노래를 정말 좋아해요. 객관적으로도 좋은 노래가 많다고 생각해요. 요즘도 음악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하고요, 하면 즐거운 곡을 많이 하려고 노력해요.

<더 많은 인터뷰와 화보는 얼루어 코리아 8월호에서 만나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