된사람이 난사람이 된다. 미용만화 작가 ‘된다’ 정나영의 여문 손끝이 그려낸 공감 파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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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인슈타인은 말했다.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은 생각이 만들어낸 에너지의 흐름이라고. 생각은 각각 고유의 주파수를 가지고 있어서 마음을 달리 먹으면 에너지의 흐름도 바뀐다. 양자역학, 자기최면, 끌어당김의 법칙 등 부르는 말은 달라도 결론은 하나. 세상 만사 ‘말하는 대로’. 맞지 않은 옷을 입고 고전하던 스물아홉 회사원 정나영은 블로그에 ‘된다’로 간판을 올리고 뭐든 되겠다고 마음먹었다. 그러자 자신과 그녀를 둘러싼 세상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7월 6일 현재 블로그 누적 방문자 1천6백만 명, 인스타그램 팔로워 7만6천여 명의 탑티어 인플루언서로 성장한 것이다.

런던으로 휴가를 간다더니 안경 끼고 불닭볶음면 먹으며 포스팅을 하고 있다.
여기 온 지 2주가 다 돼가는데 뮤지컬은커녕, 런던 아이 근처도 못 가봤다. 원래 계획은 이국에서 망중한을 즐기는 것이었지만 막상 ‘된다의 작업실’을 선보이게 되니 영혼을 갈아넣게 되더라. 못다 한 숙제는 싸들고 올 수밖에. 그래도 심적으로 훨씬 여유롭다. 주변이 모두 초록초록 해서일까?

부스에 공들인 티가 났다. ‘모셔진’ 입장에서 그렇게까지 하지 않아도 됐을 텐데 사비를 털어 꾸몄다는 비하인드 스토리를 들었다. 
하고 싶은 건 해야 하는 성격 탓이다. 기대에 부응하고 싶다는 욕심도 강하다. 예전부터 그랬다. 초기 포스팅에는 제품 하나에 대한 후기가 주를 이루었는데 당시 독자들의 리뷰 요청이 정말 많았다. 그걸 다 소화하고 싶어서 미친 듯이 화장품을 사들였다. 한 달 평균 1백만원, 많게는 3백만원까지 지출했다. 그렇게 10개월 살았더니 2천만원 있던 통장 잔고가 4백만원으로 줄어 있더라.

쫄보인 나는 듣기만 해도 쫄린다. 어떻게 버텼나?
정체성 때문에 협찬을 전혀 받지 않던 때라 언제나 돈이 부족했고 가끔은 ‘내가 물건 사는 기계인가’ 회의가 들기도 했다. 하지만 막연한 기대감이 있었다. 비록 지금은 한 달에 30만원도 못 벌지만 꾸준히 구독자가 늘고 반응이 좋으니까 조금만 더 하고 싶은 걸 하며 견뎌보자 싶었다.

그래도 먹고는 살아야지. 누군가는 ‘포스팅 하나’라고 가볍게 생각해버릴 수도 있는 일, 조금 느슨하게 굴어도 괜찮지 않았을까?
아무리 사비를 털어 화장품 후기를 작성해도 ‘광고 오지네’라는 댓글이 달린다. 하긴, 돈을 받지 않는데 특정 제품을 이렇게까지 열과 성을 다해 추천해줄 이유가 없다고 생각할 수 있지. 하지만 반대로, 돈을 받지 않는다고 해서 그림을 엉망으로 그릴 이유도 없지 않은가? 나는 내 방식대로 시간을 쌓아왔고 지금에 이르렀다.

믿고 사는 진실의 ‘사라사교’ 교주님 말인가? 지금은 살림살이 좀 나아졌나?
올해 초 소속사가 생기고 나서 확실히 나아졌다. 버는 게 더 많아졌다기 보다 내가 그동안 몰라서 챙기지 못한 크리에이터의 권리 보호, 즉 저작권을 케어해준다. 예를 들어 나는 ‘사라사 엠블럼’을 붙여 제품을 추천하곤 하는데 그걸 상업적으로 사용하고 싶다는 요청이 많다. 하지만 창작자 본인이 몇 개월 동안, 얼마에, 어떻게 활용할 건지 등의 디테일을 조율하기엔 현실적 어려움이 있다. 이젠 소속사 덕분에 나는 창작에만 몰두할 수 있게 됐다.

인플루언서들을 케어하는 소속사가 생기면서 ‘1인 미디어가 상업화되고 있다’는 우려도 있다.
이미 시장은 형성됐고 그것이 건강하게 운영되도록 하는 숙제가 남았다. 체계가 필요하다는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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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처음 만났을 때 당신은 ‘된다’가 아니라 정나영이었다. 이미 꽤 이름을 알린 크리에이터임에도 메이크업을 배우겠다고 정샘물 아카데미에 수강 신청을 하던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무엇이든 물어보세요’ 류의 댓글이 늘어나던 시기였다. 피부 고민 등 내 지식이 미치지 못하는 전문지식은 의사, 연구원 등을 인터뷰하는 형식을 빌렸다. 메이크업 노하우는 책도 읽고 유튜브도 참고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이건 마치 소설을 보고 인생을 깨닫는다거나 드라마를 보고 사랑을 배우는 것과 같다고 느꼈다. 뭐든 직접 경험해보는 걸 따라올 수 없으니 전문 교육을 받아보자 싶었던 거다.

만족했나?
지금 생각해도 참 잘한 일이다. 하지만 동시에 메이크업을 몇 개월 배운다고 해서 갑자기 전문 지식을 뽐낼 수 없다는 것도 인정하게 됐다. 상상 이상으로 많은 경우의 수가 존재했고 나는 그 모든 질문에 답을 할 수 없기 때문이다.

고민과 숙제의 뫼비우스 띠!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다. 솔직히 정샘물 아카데미에 갈 즈음, 내 만화가 옛날 같지 않다는 댓글이 달렸다. 우리가 원하는 건 이런 게 아니었다고.

그들의 질문에 어떻게든 답하고, 각종 신제품의 리뷰 요청을 들어주려 애썼는데도?
그게 문제였던 거 같다. 너무 애썼다. 차분히 지난 시간을 돌아보면서 독자의 요구에 부응하려 한 일련의 노력은 그들이 아닌 나를 위한 것일 수도 있었다는 걸 깨달았다. 실체가 없는 책임감 때문에 내가 할 수 없는 것들을 가능하게 만들어보려 애를 쓴 거였다.

내려놓으니 답이 보인던가?
한 달 남짓 연재를 쉬며 머리를 식혔고, 다시 쉽고 재미있는 눈높이 만화를 그리는 것에 초점을 맞췄다. 공들인 베이스 팁에 대한 노하우는 다른 전문가 채널에 많이 있으니까, 나는 아침에 베이스를 20~30분 동안 두드릴 수 없는 사람들에게 맞는 정보를 준다. 물론 ‘좋은 것만 좋다’고 말한다는 소신을 사수하는 건 기본이다.

그건 충분히 느끼고 있다. 모 마사지 숍에서 인플루언서임을 알고 나서 태도가 바뀌자 실망감을 표했잖나. 요즘 많은 1인 미디어가 받고 있는 대접일 뿐이었는데도 민감하게 반응했다.
내가 어떠한 사람이라는 걸 알게 된 후 잘해주는 것은 내 독자들에겐 아무 쓸모가 없다. 내가 받은 것과 같은 대우를 받지 못한다면 그게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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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초부터 브랜드 제공 콘텐츠도 소화하고 있다. 상업화되지 않기 위한 ‘된다’만의 솔루션이 있나?
나만의 색을 유지하는 거다. 예를 들어 지금까지는 한 번도 인스타그램에 돈을 받고 포스팅한 적이 없었는데 모 브랜드가 제품을 들고 내 얼굴이 나오게 사진을 찍어 올려달라고 요청해왔다. 아무리 생각해도 그건 ‘된다’답지 못했다. 그래서 만화로 그리겠다고 설득했고 결론적으론 온라인상에서 제품이 몇 시간 만에 품절됐다. 물론 그림을 그리면 번거롭고 힘들다. 하지만 내 색을 잃지 않는 것이 가장 중요하니까 기꺼이 하고 있다.

모 프레스티지 브랜드와의 콜라보 콘텐츠 제안을 거절한 것도 꽤 유명한 비하인드 스토리다. ‘써봤는데 큰 효과를 못느꼈어요’라고 말했다고.
광고 들어오는 것 중, 하는 것보다 거절하는 게 몇 배는 많다. 돈 때문에 아무거나 하진 않는다.

‘콘텐츠에는 전략이 필요하다’라고 말했다. 당신의 전략은 뭔가?
철저한 공감이다. 읽히지 않는 글은 좋은 콘텐츠가 아니다. ‘제가’를 ‘전’으로, 조사는 가능한 한 생략하며 단 한 글자라도 줄이려 노력한다. 테크놀로지, 브랜드 스토리부터 읊으며 가르치려 들어도 안 된다. 먼저 눈길을 끌어야 한다. 대놓고 광고주를 디스하고도 대히트를 기록한 피지 세제 광고가 대표적인 예겠지.

장기적으로도 바람직할까? 스토리 없이 ‘대박 촉촉해요’라고 말하는 것이 언제까지 먹힐까?
그래서 강한 신뢰가 바탕이 돼야 하는 거다. 사람들은 내가 웬만해선 좋다고 하지 않는다는 걸 안다. 그래서 추천하는 제품이라면 무조건 산다. 이렇듯 날 믿고 따라주는데 어떻게 아무거나 좋다고 할 수 있겠나? 한 번은 ‘맛없는 걸 맛있다고 해서 독자님을 잃느니 홈플러스를 잃겠다’고 한 적도 있다. 싫으면 싫다고 하고 좋으면 좋다고 하는 것이 내가 신뢰를 쌓는 방식이다.

끝까지 지켜지길 바란다. 진심이다.
드라마만 봐도 중반부 넘어가면 내용이 산을 타면서 인물이 ‘캐붕’되곤 하잖나. ‘된다’가 그렇게 되어선 안 된다. 내 캐릭터가 무너지지 않도록 끊임없이 애쓸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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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4년 차가 됐다. 콘텐츠 크리에이터로서 한계를 느끼고 있진 않나?
왜 아니겠나. 시장 트렌드가 너무 빨리 변하기 때문에 계속 안테나를 세우고 있어야 한다. 스트레스가 과해 예민해졌다 싶으면 그냥 한두 회 쉰다. 창작 활동이라는 게 너무 그것만 바라보면 오히려 풀리지 않는 경우가 많아서 잠시 스스로와 거리를 둘 필요가 있다. 무엇보다 내 컨디션이 안 좋으면 독자들이 바로 눈치 챈다.

디지털 콘텐츠 크리에이터들에게는 마인드 힐링이 중요할 거 같다. 악플과도 ‘소통’해야 하니까.
어떤 면에서는 연예인과 비슷한 직업이다. 광고 수입이 없어도 영상은 계속 찍어야 하고, 잔고는 점점 바닥을 드러내지만 티를 낼 수는 없다. 오디언스가 보고 싶어 하는 건 즐거운 얼굴이니까. 악플로 멘탈을 털리는 일도 허다하다. “여자들은 머리에 똥만 차서 마스카라 바르는 법 따위나 보고 있냐” 류의 댓글은 그냥 웃겨서 괜찮다. 하지만 올해 초 4년 만에 처음으로 ‘앞으론 협찬도 받겠다’고 했더니 “예전엔 니 돈으로 좋다고 잘 사더니 이제는 싫은가봐?” 하는 댓글이 달렸을 땐 타격이 있었다. 이 악물고 버티면서도 생색 내거나 징징대는 건 ‘된다’의 캐릭터가 아니기에 혼자 삭였는데, 그걸 당연하고 쉬운 일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니 상처가 컸다.

직업이 인플루언서라는 건 어떤 기분인가?
회사원은 사무실에서 일을 하고 학생은 독서실에서 공부를 하듯 뷰티 인플루언서는 행사장에서 사진을 찍고 새로운 제품을 먼저 써본다. 보여지는 직업이라 SNS 세상에서는 항상 즐겁고 너무 행복해 보이지만 사람 사는 건 다 똑같다. 힐 신어서 발 아파 미치겠으니 빨리 집에 가서 트레이닝복 입고 떡볶이나 먹고 싶다고 쓸 순 없잖은가.

요즘은 너도나도 콘텐츠 크리에이터를 자처한다. 우려는 없나?
시장이 커진다는 건 그만큼 주목받고 있다는 것이고 찾는 사람도 많아진다는 의미니까 좋게 보고 있다. 무엇보다 콘텐츠 크리에이터가 많아져도 그걸 꾸준히, 진짜 잘하는 사람은 많지 않으니 내가 나다움을 잃지 않는다면 문제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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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플루언서가 되고 싶나? 일단 시작하라. 자신을 알리는 것이 첫걸음 이니까. 두렵다고? 유튜브에 영상 하나 올린다고, 블로그에 글 하나 쓴다고 세상이 뒤집히지 않는다. 오히려 허무할 정도로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그러니 겁내지 말고 당장 뭐라도 시작하자.

패션 회사에 다닐 땐 별로 특출한 사원이 아니어서 방황했다고 했다. 아마 대부분의 20대가 그런 고민을 하고 있을 거다. 그리고 생각의 끝은 언제나 ‘때려치울까?’다.
드림 잡을 찾고 싶은 청춘들에게 항상 ‘돈부터 모으라’고 말한다. 하고 싶은 일에 대한 기대감과 희망도 물론 중요하다. 하지만 내가 부모님 눈치 보지 않고 한 달이라도 더 버틸 수 있었던 건 통장에 모아둔 2천만원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또 한 가지. 꿈은 유레카처럼 순간 번뜩이는 게 아니다. 여러 성공한 사람들을 만나면서 느끼는 건 ‘어쩌다 보니 여기까지 왔다’고 말하는 분들이 훨씬 많다는 것. 어쩌면 꿈을 찾고 발견한다는 건 미디어가 만든 환상이 아닐까? 평생 공부만 한 공대생이 우연히 본 뮤지컬에 감명받아 갑자기 배우에 도전하는 스토리가 착실히 한 우물만 파온 것보다 훨씬 드라마틱하니까. 나도 그런 것만 보고 자라서 꿈의 유레카를 기대했다. 하지만 답은 생각보다 가까운 곳에 있었고, 그걸 깨닫고 이뤄내기까지 필요한 건 시간과 비용이었다. 그러니 지금은 인내하며 돈을 모아라. 그런 다음 그 통장으로 ‘존버’하며 달려보는 거다.

천 퍼센트 동의한다. 워크가 없으면 밸런스 맞출 라이프도 없으니까. 인플루언서를 꿈꾸는 사람들에게 조언을 부탁한다.
가장 중요한 건 일단 뭐라도 시작하는 거다. 자신을 알리는 것이 인플루언서의 첫걸음. 시작이 가장 두렵다는 거 안다. 하지만 겁낼 필요 없다. 국민 MC 유재석도 모르는 사람이 있는데 하물며 우리? 당신을 아는 사람보다 모르는 사람이 압도적으로 많으니 유튜브에 영상 하나 올린다고, 블로그에 글 하나 쓴다고 세상이 뒤집히지 않는다. 오히려 허무할 정도로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그러니 당장 그냥 뭐라도 시작하자.

이젠 뭐가 되고 싶나?
개인전을 하고 싶다. 요즘 내가 다른 뷰티 인플루언서들과 좀 다르구나 느낄 때가 있다. 다들 레드벨벳의 커버 메이크업을 할 때 나는 그들의 캐리커처를 그리고 싶어 한다는 거다. 그런 생각을 할 때마다 과연 나는 뷰티 인플루언서일까 의심하게 된다. 그림쟁이와 뷰티 인플루언서라는 두 자아가 충돌하는 오춘기라 나의 내면을 들여다보려 노력 중이다.

둘 다 하면 되지. 난 빨리 당신이 아마존에 진출했으면 좋겠다.
생각만 해도 가슴이 뛴다. 물론 화장품 콘텐츠는 문화적 차이, 기후 차이 때문에 신중해야 하는 부분이 있다. 하지만 방탄소년단처럼 언어나 문화가 달라도 통하는 부분을 찾아낸다면 혹시 나에게도 기회가 오지 않을까? 지금까지 그래왔듯 될 거라고, 간절히 원하면 이루어질 거라고 믿고 있다.